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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장에서의 난동—병인가, 증세인가?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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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7/15 20-23면

축구장에서의 난동—병인가, 증세인가?

「깨어라!」 영국 제도 통신원 기

“우리는 그 명칭에 걸맞은 흥분을 몰고 올 유럽 컵 쟁탈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다”라고 1985년 5월 29일자 런던 「타임즈」지는 보도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에는 이런 말이 부언되었다. “브뤼셀 시당국은 리버풀 팀 응원단의 도착에 대비하고 있다 ·⁠·⁠· 대규모 경계 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이탈리아 팀이 경기를 벌였을 때 브뤼셀의 하이젤 경기장에서는 난동꾼들의 소란으로 38명이 죽고 150명 이상이 부상당하였다. 런던의 「데일리 메일」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경기 예정 시각 1시간 전에 필시 리버풀 응원단이 쥬벤터스 관중석을 약올리기 시작하자 그 참사가 발생하였다. 양쪽 응원석 사이에는 허름한 장벽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는데, 리버풀 팬들이 그 위로 올라가 그것을 넘어뜨렸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치는 이탈리아인들의 무게로 벽과 방책들이 무너졌다 ·⁠·⁠·

“벽이 무너진 뒤, 잡석에 하반신이 갇혀 짓눌린 사람들은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면서, 팔을 내 뻗어 도와 달라고 외쳐댔다.

“그러나, 그들 주변과 위에서는 팬들이 여전히 서로 싸우고 걷어차고 주먹을 휘둘러 대거나 물건을 집어 던졌다 ·⁠·⁠· 그 폭동은 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려던 80개국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다 ·⁠·⁠· 그 참사가 있은 지 1시간 30분 이상이 지나서 양팀 주장들이 진정할 것을 호소하였음에도, 양측 응원단들은 여전히 벨기에의 폭동 진압 경찰대에 야유를 퍼부으며 병, 깡통, 크고 작은 돌, 및 불붙은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러한 난동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폭동을 일으키는 팬들은 많은 축구 경기 중이나 후에 공포 분위기를 유발하여 우르르 몰려 나가게 하고 사망을 초래한다. 브뤼셀에서 참사가 벌어졌던 바로 그 달에, 멕시코 시티의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관중들 사이에 폭동이 일어나 8명이 죽고 51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단지 몇 건의 다른 사고들을 언급해 보면 이러하다.

1982년 10월에, 모스크바의 레닌 경기장에서 벌어진 축구 시합 후에 20명이 죽었다. 그리이스의 피레우스에서는 1981년 2월에 19명이 죽었다. 1980년 8월에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16명이 죽었다. 1974년 2월에,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는 48명이 짓밟혀 죽었다. 1968년 6월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팬들 사이에 격투가 벌어져 72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리고, 1964년 5월에, 페루의 리마에서 페루 선수의 득점을 주심이 인정하지 않자 싸움이 벌어져 최소한 318명이 죽고 500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그렇지만, 축구장에서의 난동은 특히 영국 팬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런던 「타임즈」지는 지난 23년 동안 영국 축구 시합에서 벌어진 난동 행위들을 열거하는 침울한 목록을 게재한 바 있다. 영국 축구 클럽의 응원단들은 로테르담, 파리, 생테티엔, 토리노, 마드리드, 바젤, 오슬로, 암스테르담, 브뤼셀, 발렌시아, 코펜하겐, 룩셈부르크 및 리스본 등과 같은 유럽 내 도시들에서 대황폐를 자행해 왔다. 유럽인들이 축구장에서의 난동을 “영국 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브뤼셀에서의 참사를 보도하면서, 런던 「타임즈」 기자 데이빗 밀러는 많은 사람들의 느낌을 대변하여 이렇게 썼다. “경기장 밖에서는 앰뷸런스와 응급 의료진들의 긴 행렬이 전쟁터를 연상시키면서 사상자들을 돌보고 있고, 시합이 있은 후에 길거리에서는 싸움이 무시무시하게 계속되고 있다면,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축구장에서의 난동은 실로 사회에 재앙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난동과 관련된 폭력은 단순한 증세에 불과한 것일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병의 증세인가?

병든 사회?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지는 축구를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묘사하면서, “우리의 현 사회는 추악하고 탐욕적이며 폭력적인 사회다”라고 평하였다. 그 신문은 이렇게 부언하였다. “축구 그 자체가 폭력의 원인은 아니지만, 폭력을 연출하는 완벽한 극장인 셈이다 ·⁠·⁠· 축구는 폭력을 유도하거나 이끌어 들이는 데, 축구가 아니라면 폭력은 표면화되지 않거나 간헐적으로 폭발할 것이다.”

축구 클럽들 사이의 적대 의식에서 표출되는 폭력은, 소위 법을 준수하는 많은 시민들이 용인하고 있는 다른 행동들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을 따르는 것이다. 축구장에서의 난동을 7년간이나 연구한 후에, 데이빗 로빈스는 그의 저서 「우리는 인간을 증오한다」(We Hate Humans)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념이나 도덕적 원칙들과는 지극히 무관하게 폭력적인 수단으로 영토 분쟁을 해결해 보려는 국가들의 경향은, 정치적 문외한이 보건대, 축구 전쟁을 대형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므로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렇게 충고하였다. “부끄러움을 아는 영국인이 브뤼셀에서의 참사를 숙고해 볼 때, 그러한 참사를 가능케 한 문화적 가치 체계를 검토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난동을 병든 사회의 증세로 보는 ‘경찰서장 협회’ 회장인 차알스 맥라클란은 현대 생활에서의 징계의 부족을 한탄하면서, 청소년들을 위한 더 나은 지침을 요구하였다. 에섹스 경찰국장 로버트 버냐드는 축구 폭동을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자행하는 행동의 집중 현상”으로 묘사하였다.

인간 사회에 만연한 그 병은 치유 불능인가? 아니면 치료책이 있는가? 어떤 치료 방법이 성공을 거둘 것인가?

증세를 치료함

난동꾼들이 축구장에 잠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분증과 신체 수색이 제안되었다. 축구의 안전 장치에 관해 조사를 지휘하였던 고등법원 판사인 포플웰은 응원자 회원증을 요구하는 것이 난동을 격감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제안이 시행된다면, 이따금 경기장에 오는 사람들은 축구장에 입장하지 못할 것이다. 포플웰은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일반 대중과 축구 클럽들이 축구 폭력을 줄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다.”

다른 추천 사항들 중에서, 포플웰은 경찰에게 군중의 폭력을 감시하기 위해 폐쇄 회로 텔레비전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충고하였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이미 받아들여져서 경찰은 훌리밴으로 알려진 차량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경찰이 이 차량내의 컬러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여 엄중 감시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 사건을 포착하자마자, 경찰은 난동꾼 개개인을 확인하여 촬영해 둘 수 있다.

축구장이나 그 근처 또는 가는 도중까지도 알콜의 판매를 금지하는 계획을 세운다면 그 역시 폭력을 줄이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런던 타임즈」 지는 이러한 사설을 게재하였다. “영국 축구는 결국 계단 자리 앞에 철책을 두르고 회전식 입장문마다 음주 탐지기[호흡시의 알콜 함량을 측정하기 위한 것]를 설치한, 방비를 강화한 원형 극장에서 치러야 할 것이다. ·⁠·⁠· 장래의 축구 시합은 과거의 전국적인 경기의 흥분과 낭만을 지니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그것은 또 다시 경기, 즉 시합을 치를 만하고 또한 외국에 나가서도 안전한 경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도는 좋다해도, 그러한 조처들이 증세는 치료해줄지언정 그 병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디언 위클리」 지가 이렇게 피력한 바와 같다. “어느 경기에도 그 병 자체가 아니라, 단순히 증세만을 다루는 방비 시설을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면, 그 병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 어떻게 난동이 스포츠 시합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로부터 근절될 수 있는가?

난동을 축출함

5월 29일의 그 끔찍한 사건은 그 축구 경기장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헤이젤에 있는 전시 공원 홀들에서 두달 후에 일어난 일과 현격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것은 마치 흉용한 겨울 바다와 평온한 여름 바다 사이의 차이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1985년 7월 25일에서 28일 사이에,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군중이 다시 그곳에 모였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 군중은 ‘여호와의 증인’의 4일간의 지역 대회에 함께 모인 것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그리스도인 충절에 관해 배웠으며, “무신적인 세상에서 진리에 대한 충절을 지킴” 및 “하나님의 때와 계절—무엇을 가리키는가?”와 같은 주제들에 관하여 생각을 자극시켜 주는 여러 가지 토론들을 들었다. 총 참석자가 27,402명에 달했지만, 어느 누구도 도둑질, 싸움 및 이전 모임의 특징을 이루었던 신체적 상해 등을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인 사람들은 평화와 질서 정연함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금요일 오전에, 회기 진행이 모종의 폭탄 위협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압력하에서도 이 군중이 보인 이러한 상이한 반응에 유의하라. 발표가 있자, 모두는 질서 정연하게 홀들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한 보도원은 빠져나가는 데 소요된 시간을 재었는데, 불과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홀은 겨우 4분 만에 비워졌다! 이 일은 한 여성 참석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만원을 이룬 홀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었는데, 확성기 소리는 전혀 없었다. 그가 불과 5분 후에 다시 돌아 왔을 때, 홀은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어리둥절한 뒤에야 비로소 일어난 일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홀들은 경찰 및 500명의 자진 봉사자들이 전체 건물들을 수색하느라 1시간 동안 비워져 있었다. 아무런 폭탄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대회 프로그램은 다시 속개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영국에서 10군데의 경기장에서 개최된 ‘여호와의 증인’의 “충절 고수자” 대회를 4일 동안 약 142, 859명의 사람들이 즐겼으며, 그들의 연합은 어떤 난동 행위로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실상, 한 축구 클럽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어떠한 마찰도 없었으며 ·⁠·⁠· 그 평화로운 분위기가 ·⁠·⁠· 매력적이었읍니다.”

그 대회의 군중과 축구 시합의 군중을 대조하면서, 맨체스터의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축구 관객들은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며 아주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호적이 되고자 애쓰는군요.” “만일 모두가 ·⁠·⁠· 여러분처럼 조직된다면, 나는 당장 일자리를 잃고 말 것입니다.”

이 군중이 축구 시합 관중과 그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체 수색이나 폐쇄 회로 텔레비전 감시를 시행한 탓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평화로운 생활 방식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전에는 폭력적인 생활 방식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기적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성서의 가르침을 생활에 적용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는 성서의 교훈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함에 따라, 그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베드로 전 3:11.

하지만, 이러한 행실 자체만으로는 지구상에서 축구장에서의 난동을 포함한 온갖 폭력을 일소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왕국’이 지상사에 개입하여 온갖 불의와 폭력을 제거할 때에 일어날 것이다. 그때 “평화의 군왕” 아래 평화가 편만하게 될 것이다.—이사야 9:6, 신세.

‘여호와의 증인’은 독자가 ‘증인’의 ‘왕국회관’과 대회들에 참석해 보도록 따뜻하게 초대하는 바이다. 사람들이 성서에 나와 있는 원칙들을 적용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 보기 바란다.

[22면 삽입]

어리석기 짝이 없게도 축구장을 피로 물들인 저녁, 우리는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프랑스 잡지 「옹즈」

[21면 삽화]

이곳에서는 이토록 평온한 상태를 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20면 사진 자료 제공]

ROSSEL and CIE, S. A., Bruss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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