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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지바른 영국의 채널 제도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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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7/1 21-23면

양지바른 영국의 채널 제도

깨어라!」 영국 제도 통신원 기

저지 그리고 건지—이들 이름이 독자에게는 무엇을 뜻하는가? 스웨터인가? 그렇다. 이들은 무늬와 디자인이 특이하고 결이 가장 고운 편직물 의류에 속하는 옷 이름이다. 젖소인가? 그렇다. 젖을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 동물 역시 그런 이름으로 불리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저지와 건지는 채널 제도라고 알려진 섬 집단에 속한, 영국 해협에 자리잡고 있는 두개의 조그만 섬 이름이다.

이 섬들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쾌청한 날이면 거기서 프랑스의 해안을 볼 수 있다. 이 섬 집단의 주요 섬들 중 하나인 올더니에서 프랑스의 세르브르 반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13킬로미터이다. 반면에, 영국 본토와는 북쪽으로 약 96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 섬들의 총 면적은 195 평방 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 130,000명이다.

프랑스와의 연관 관계

이 채널 제도는 사실상 프랑스의 문턱에 있는 데도, 어떻게 영국에 속하게 되었는가? 이곳 섬 사람들의 대답은 이러하다. ‘결코 영국이 우리를 정복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국을 정복한 것이다!’ 이 말의 배후에는 흥미있는 역사가 한 토막 있다.

본래, 이 섬들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였다. 1066년에, “정복 왕” 윌리엄 공작은 영국 해협을 건너 영국을 점령하고는, 영국 왕 윌리엄 1세가 되어 두 지역을 통합시켰다. 그것이 바로 노르만 정복이었다.

약 150년 후, 영국 왕 존은 노르망디에 대한 주권을 잃었지만, 채널 제도는 붙들고 있었다. 이곳 섬 사람들의 충성에 대한 상으로 그는 그들에게 자치 정부를 구성하는 헌법을 허락하였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 아주 가깝기 때문에 이들 섬에는 자연히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겨져 있다. 영어가 일상 생활어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법률 용어는 프랑스어이다. 만일 독자가 모험심을 발휘하여 상점들을 답사해 보기 위해 비좁은 골목길로 찾아 들든지, 또는 외곽 지역들을 방문해 보면, 그곳 섬 사람들 중 다수가 아직도 원래의 노르만-프랑스어에 가까운 패트와 즉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 유혹

바이킹인들의 초창기부터, 바다는 섬들과 섬 사람들의 특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저지 해안선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간만의 차 중 하나를 볼 수 있는데—봄철의 조수시에는 물이 12미터까지 오른다. 그 결과 빚어지는 변덕스러운 해류는 그 주위에서의 항해를 위험한 일이 되게 한다. 폭풍 역시 영국 해협을 휩쓴다. 조용한 일기인데도 안개가 짙게 깔릴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이곳 섬 주민들은 늘 능숙한 뱃 사람들이며 계산이 빠른 장사꾼들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프랑스 및 영국과 교역을 하였다. 결국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 그 다음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훨씬 더 멀리 진출해 나갔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로부터, 그들은 봄이 되면 정기적으로 대서양의 반대쪽 해안으로 항해해 갔다가 가을 추수와 경작 시기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나, 모든 교역이 다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밀수와 상선 나포 행위로 오늘날 아주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는 이들 섬의 많은 멋진 고옥(古屋)들에 재원이 조달되었다.

캐나다의 세인트 로렌스 강 어귀에 있는 가스페이의 한 공동 묘지에는, 이들 섬 사람들이 멀리까지 온 것을 증언해 주는 현판이 하나 있다. 그 현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들은 채널 제도의 건지와 저지섬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왔다. 그들은 바닷가에 가옥과 교회와 학교를 지었고, 바다로부터 와서 살다가, 바다 옆에서 영면하다.”

북미의 다른 지방에서도 채널 제도 사람들의 여행을 말해 주는 증거를 볼 수 있다. 오하이오 주 건지군(郡)은 최초의 건지 개척자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하지만, 더 잘 알려진 것은 뉴저지주이다. 저지 총독인 조지 카트렛경은 왕 차알스 2세로부터 영국 내란 중에 왕을 지원한 일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의 허드슨과 델라웨어 강 사이의 모든 땅을 하사받았다. 아주 당연하게도, 조지경은 뉴저지란 이름을 좋아했으며,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계속 불리어지고 있다.

이 섬들의 생활

영어에서 “저지”와 “건지”란 이름으로 확고히 굳혀져 온 상품들은 바로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는 풀오버 즉 머리부터 뒤집어 써서 입는 편물이다. 편물업은 한때 이들 섬의 주요 산업이었다. 그들의 편물 의류는 유럽 전역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 섬 주민들이 그 새로 찾은 재원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저지에서는 추수를 하는 일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추수기엔 남자들이 뜨개질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남자며, 여자며, 어린이—은 심지어 교회에 갈 때에도 뜨개질 거리를 가지고 가곤 하였다. 뜨개 바늘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설교자의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수치스러운” 행동을 중지시키는 데는 당국(지방 의회)의 명령이 필요했다.

젖소의 훌륭한 두 품종인 저지와 건지는 수출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다. 순종을 보존하기 위해, 이들 섬에서는 다른 종류의 소를 기르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해외로 보내진 소가 다시 되돌아 오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적갈색 혹은 짙은 황갈색의 저지는 건지보다 조금 작지만 소 중에서 지방질이 가장 많은 젖을 생산하는 것으로 탁월하다. 한편, 흰점이 박힌 옅은 황갈색의 건지는 저지보다 우유 생산량이 더 많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양지바른 이들 섬에서는 토마토며, 야채며, 꽃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건지에서 생산되는 이른 봄철의 난초는 영국에서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사실상, 건지는 종종 유리 온실 섬이라고 일컬어 지고 있다. 공중에서 이 섬으로 접근해 보면, 섬 전역에 흩어져 있는 온실들에서 반사되는 햇빛으로 눈이 부시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들 섬 주위의 따뜻한 물에서 풍부하게 자라는 브랙 해초는 이곳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이것을 모아 말려서 주로 비료로 사용한다. 잊지 못할 지방 특산물로서 갑각류 별미 식품인 전복이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채널 제도는 영국 제도 중에서 유일하게 나찌 군대에 점령당한 섬이었다. 이들 섬을 방어하는 데 희생될 인명과 물자를 고려하여, 영국 정부는 원하는 사람을 모두 대피시켰다. 올더니 섬은 독일의 전쟁 포로 수용소가 되었다. 다른 섬들은 전쟁 탓에 심한 물자난을 겪은 것외에는, 대체로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성서 진리가 신속히 자라나다

성서 진리의 씨들은 제퍼나이어와 에델 위델이 정기적인 성서 연구 프로그램을 조직하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자전거를 갖고 도착한 1925년에 이곳에 뿌려졌다. 그들의 수고의 직접적인 결과로, 저지와 건지에서 곧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들이 형성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증인’의 사업이 금지되었지만, 성서 연구는 계속 번창하였으며,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참석하는 집회가 조용히 그리고 정기적으로 열렸다. 이들 섬이 해방되었을 때는, 섬 전역에 걸쳐 80명이 넘는 ‘증인’이 전파 사업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그것은 네 배로 증가한 수였다. 지금은 350명이 넘는 ‘증인’이 있다. 그 사이 여러 해가 흐르면서, 워치 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 졸업생인 선교인 세 사람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 시간 복음 전파자가 되었다. 그 세 사람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있다.

영원한 벗들

만일 독자가 이 채널 제도를 방문하는 행복한 경험을 한다면, 그 추억은 길이 남을 것이다.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와 조용한 모래 해변은 확실히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물이다. 그러나 독자는 아마 저지의 세인트 헬리어나 건지의 세인트 피터 항구에 있는 현대식 생활의 이기보다는, 고분들과 그 섬들에 있는 다른 역사적 유물들—인간의 초창기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진정한 보고(寶庫)—을 견학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친절하고 후대하기를 좋아하는 섬 주민들의 태평한 생활 방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들을 알게 되면, 이곳 양지바른 채널 제도를 다시 방문할 때마다 독자는 분명히 따뜻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

[21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영국

영국 해협

채널 제도

프랑스

올더니섬

건지섬

사크섬

저지섬

[23면 삽화]

건지섬의 세인트 피터항

[자료 제공]

J. Tesson/H. Armstrong Rob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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