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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직자들이 정치에 가담하는 이유
  • 깨어라!—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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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7
깨87 5/1 5-8면

교직자들이 정치에 가담하는 이유

우리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그 “이유?”를 물어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정치에 가담하는 사제나 교직자 및 여타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똑같은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죄시하는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빈민을 염려하는 것과 같은 훌륭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동기를 파악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더 나은 입장에서 고려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더 잘 인식하게 된다.

지위, 이득 및 정치 활동

교직자들이 정치에 가담하는 한 가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하여, 제 1세기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남자들이 유대인 최고 법정을 구성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신 일 때문에 화가 난 그들은 이렇게 추론하였다. “만일 저[예수]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위치, 신세]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한 11:48.

‘우리 위치와 민족.’ 그렇다. 그들은 우선 자기들의 지위와 영향력 및 권세를 염려했고, 그 다음으로 국가주의적 관심사를 나타냈다. (마태 23:2-8) 정치가의 비위를 맞춰 주어 요직에 오르는 교직자도 있다. 많은 교직자가 그 덕분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다. 사실상 성서의 마지막 책은 “큰 바벨론”이라고 하는 한 “여자”를 묘사하는데, 그 여자는 “사치의 세력”으로 유명해졌다. 성서와 역사가 밝혀 주듯이, 그 여자는 지상 전역에 있는 거짓 종교를 상징한다.—계시 17:1-5; 18:3.

일부 교직자가 정치에 가담하는 이유가 바로 그 점 때문이라는 증거를 이제 살펴보자. 「종교와 개혁」(Religion and Revolution)이라는 책은 이렇게 지적한다. “1774년부터 1790년 사이에, 프랑스 주교 192명 중 173명은 귀족이었다. 주교 중 절반 가량은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 수도의 부귀 영화를 누렸다. 폴리냐 추기경은 15년 전에 임명받은 대주교구를 한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채 1741년에 사망했다. 아울러 수도사들도 점증하는 태만의 영에 물들었는데 다수의 수도사는 상당한 부자였다.” 고위 교직자들은 사치를 누린 반면, 수많은 교구 사제는 빈곤하게 살았다.

멕시코에 또다른 예가 있다. 1810년에 미겔 이달고라는 마을 사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주도했다. 궨터 루이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로마 교황을 위시하여 사실상 전체 주교단은 [멕시코인] 애국자들을 정죄했다. [나중에] 고위 교직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돌변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독립을 열렬히 지지하고 나섰는데 ·⁠·⁠· 그러한 위선적인 태도를 너무도 분명히 볼 수 있어서, 교회란 신뢰할 수 없는 특수 이익 집단이란 이미지를 남겼다. ·⁠·⁠· 교회는 토지와 건물로 치부했는데, 국가 부동산의 절반이 넘는 양을 교회가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유대교 혹은 여타 종교의 교직자들이 높여진 위치를 고수하려고 정치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데 우리 모두는 동의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나치 독일 시대부터 현재까지

나치 시대를 살펴보면 종교가 정치에 가담한 점에 관해서 더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생각있는 많은 사람은 ‘가톨릭과 루터교 교직자들이 히틀러와 그의 잔혹한 나치 당원을 어떻게 대했는가?’ 하고 궁금해 하였다.

지원하거나 적어도 공존하는 것이 기본 태도였다. 종교적 항의를 표명한 일은 거의 없었다. T. A. 길 교수는 하나의 예외를 기술한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15세 때부터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들은 말 곧 교회는 더 이상 생명을 바쳐도 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마침내 깨달았다.” 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하거나 그에게 굴종하는 것에 비위가 상한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 하지만 본회퍼는 예외적 인물이었다.

폴 존슨의 「그리스도교 사」(History of Christianity)는 전형적인 경우를 이렇게 묘사한다. “가톨릭과 루터교 대다수는 나치 정권을 적극 지원했다. ·⁠·⁠· 복음주의 교역자 17,000명 중 [나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기형을 받고 복역한 사람은 50명도 안 되었다. 가톨릭 교인 중에서는 한 주교가 자기 교구에서 추방되었고, 다른 한 주교는 화폐법 위반으로 단기형을 받았을 뿐이다.” 자신들의 원칙에 고착한 사람들에 관하여, 존슨은 이렇게 계속 말한다. “가장 용감한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는데, 그들은 시초부터 명명 백백한 교리적 반대 입장을 천명했기에 고통을 당했다. 그들은 나치 국가에 어떠한 협조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여타 교직자들은 명망과 권력과 부에 있어서 자신들의 위치를 계속 누리고자 잔혹한 정권에 협조하였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의 한 사설 내용은 이러하다. “아르헨티나에서 가톨릭 교회가 취한, 기대를 저버린 행동은 무자비한 군 정권에 대한 침묵이자 공모이며, 현대 역사상 최악의 것에 속한다. ·⁠·⁠· 기실 가톨릭의 고위 교직자들은 항변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어쩌면 그 정권이 지닌 종교적 정당성을 박탈할 입장에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군복을 입은 교직자들을 포함하여 몇몇 교직자가 고문과 살인을 승인했다.”—1985년 4월 12일자.

민권, 사회 정의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이유로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상당히 칭송받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침례교 교직자 마틴 루터 킹 2세는 오랫동안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벌인 민권 지도자였다. 여성과 특정 소수 민족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서 투쟁한 교직자도 있었다. 사제와 교직자들은 선거권이라든가 동일 직, 동일 급여 및 공정한 취업 기회 등과 같은 대의 명분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에 적극 나섰다. 근년에 들어, “해방 신학”은 빈민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일을 하여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을 장려해 왔다.

사회 활동 즉 이따금 문제시되는 “현세 인본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종교 지도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하여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발생하는 일을 보고 못마땅해 하는 교직자도 있다. 근본주의 교직자인 키스 제파트는 이렇게 논평했다. “자라면서 나는, 교회는 정치에서 떠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줄곧 들어 왔다. 이제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거의 죄로 간주되는 듯하다.” 한 종교 문제 담당 신문 기고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1970년대 초부터,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대의 명분이 바람직해 보인다 할지라도, 교직자들이 그같은 조처를 어느 정도나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조처가 용인할 만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해방 신학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페루의 가톨릭 사제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빈민의 곤경에 부응하여 급성장하고 있는 “해방 신학” 부면에서 널리 신망을 얻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확산되어 있다.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 위클리」지의 보도를 보면, 더럼 주의 주교는 정부의 기본 정책을 비난하고는 “‘해방 신학’ 운동을 촉진”시키라고 강력히 촉구하였다.

그러한 신학은 성서가 강권하는 바대로 빈민에 대한 염려에 오로지 역점을 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영국의 해방 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일부 분석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더럼 주의 주교는 시인한다. 여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리를 이용하여 빈민의 계급 투쟁을 해석하는 것이 내포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1986년 7월 4일자) 지는 “브라질에서 교회와 국가가 땅 싸움을 벌이다”라는 표제를 실었다. 이러한 충돌을 빚게 된 근본 원인은, 극소수의 “대지주가 그 나라 토지의 83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교직자들은 “땅 싸움”의 일환으로 집회와 시가 행진을 주도한다. 사실상 “싸움”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700여건의 충돌에서 218명이 살해당했는데, 그중에는 6월 11일에 피살된 브라질 사제이자 토지 개혁 지도자인 주시무 타바레스 신부도 들어 있다.”

해방 신학이 인기를 얻고 있다. 교황청의 공식 입장은 교직자들이 파벌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교황청은 “해방 신학의 근본 이념 곧 정치적 자유와 자주적 생활을 얻기 위한 빈민의 투쟁을 그리스도교 복음서가 옳은 일로 본다는 점도 받아들인다”고 「뉴욕 타임스」지 사설은 인정하였다.

비슷한 측면에서 가톨릭의 메리놀 선교회는 “해방 신학과 사회주의 정치 복음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85년의 한 연구 서적 「혁명 단체」(The Revolution Lobby)는 이렇게 추궁했다. “메리놀 선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의 폭력에 의한 혁명 메시지를 대중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것은 그 선교회가 가톨릭 교회에서 큰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메리놀 선교회의 메시지는 평신도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정책가들에게도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가?

오늘날 전세계 모든 종교가 정치에 가담하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며, 그 이유는 천차 만별이다. 그러나 그처럼 가담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성서가 알려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조만간 자신의 견해를 명백히 밝히실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당신의 현재의 태도와 행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6면 네모]

“독일의 가톨릭 교회는 철두 철미 독일식이었고,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그 권세를 후원하였다.”—「히틀러 치하의 독일 교회」(The German Churches Under Hitler).

“러시아 정교회는 어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군축 제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는데, ·⁠·⁠· 그 교회는[그 제의가] ‘그리스도교 방식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였다.”—「가디언」지 (런던), 1986년 4월 9일자.

[7면 삽화]

마틴 루터 킹 2세는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벌인 종교 지도자 중에서 탁월한 인물이었다

[자료 제공]

UPI/Bettmann Newsphotos

[8면 삽화]

빈곤과 불공평이 해방 신학이 생기게 한 원인이 되었다

[자료 제공]

J. Viscarrs/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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