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1914년 이후의 세계
“1914년 이후의 세계”에 관한 일련의 기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한국어판은 1987년 3월 15일호부터 7월 1일호까지) 학교에서 우리는 언제나 정복 왕 윌리엄 시대 이래의 역사를 배웠지만, 최근의 세계 사건은 배워보지 못했읍니다. 전에는 사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유와 배경 사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었읍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는데, 귀지에서 지적한 “공포”는 매우 실제적이어서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느꼈을 정도입니다.
C. L., 영국
귀지의 연재 기사 “1914년 이후의 세계”는 정말이지 굉장히 좋았읍니다! 제 1부가 실려 있는 잡지를 대충 훑어 보았을 때는, 그 기사에 별로 흥미가 끌리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일단 읽어 보기로 하고 시작해 보니, 멈출 수가 없어서 가지고 있던 제 2부 기사까지 계속해서 읽었읍니다. 오히려 이어지는 기사들을 당장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읍니다. 이전에는 지나간 일에 대해 그토록 흥미를 가져 본 적이 없었읍니다.
J. E. S. J., 브라질
가톨릭 교회와 히틀러
미국에 있는 5,000만 이상의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여 가톨릭 종교 인권 옹호 연맹은 귀지가 “종교의 정치 참여—하나님의 뜻인가?”란 기사에서 교회에 대해 터무니없는 비방을 한 것에 대해서 경악과 실망을 표하고자 합니다. (한국어판은 1987년 5월 1일호) 표지에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 한 사람이 히틀러와 악수를 하는 사진이 실려 있읍니다. 나치 운동 및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대량 학살 기도가 완전히 가톨릭 교회의 협조와 축복을 받았다는 노골적인 암시입니다. 이러한 거짓되고 무책임한 비난은, 가톨릭 교직자들이 나치 정권을 “지원하거나 적어도 공존”하려고 했다는, 6면에 나오는 주장 가운데 분명히 나타납니다. 실제로는, 아직은 나치의 폭정이 제어될 수 있기를 바랄 만한 때였던, 나치 독일의 초창기에 로마 교황청은 히틀러와 화해하려고 시도했었읍니다. 나치의 폭정이 드러남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저항은 증가하였읍니다. 이 잡지의 편집자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것에 대해 가톨릭 신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록을 정정함으로써 독자들에게도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K. G. L., 공무 이사, 미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 독일을 방문하면서, 가톨릭 교회가 나치주의에 반대하였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읍니다. 보도에 의하면, 교황은 나치에 반대했던 가톨릭 교직자와 평신도들을 많이 열거하였읍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지 (1987년 5월 4일자)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일부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가톨릭 지도자들이 교회의 특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이상으로 나치 폭정에 실제로 저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교황이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읍니다.” 심지어 교황이 나치를 대항하여 기탄없이 말한 인물로 시복한 예수회 사제인 루페르트 마이어도, 나치 지도자와 교회 고위 교직자간의 합의하에 에탈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연금되어 있었읍니다. 「뉴욕 타임스」지에 따르면, 그 사제로 인해 예수회가 기탄없이 말했다는 주장도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었읍니다. 예수회 사제 한명뿐입니다! 왜 교황은 나치에 반대한 사람으로 수십명의 가톨릭 주교, 대주교, 추기경에 더하여 수천에 달하는 가톨릭 사제들에게 영예를 돌리지 않았읍니까? 왜냐하면, 절대 다수가 나치주의를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