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영광 속에 물러가는 가을 잎
동장군에게 그 공로가 돌아가지만, 사실 그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잎이 그 일을 하며,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무들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하지만, 그들은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신비스런 일들 배후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조용히 이 흥행을 감독한다. 흥행이 시작되면, 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부시며 마음은 감동을 받는다. 이 화려한 극이 절정에 이른다 해도, 다음해의 공연이 가지에서 기다린다.
10월초가 되면 요란한 트럼펫의 합주도 없이 조용히 흥행의 막이 오른다. 잎자루가 작은 가지에 연해 있는 부분의 작은 세포군이 느슨해져 마르기 시작한다. 이들 세포와 작은 가지 사이에 코르크 같은 세포층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잎이 떨어지기 전인데도 형성되는 떨켜 즉 이층(離層)이다.
조금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무대에 등단한다—창조물 가운데서 지극히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다른 신비들처럼. 때는 청명한 낮과 서늘하고 상쾌한 밤—다채롭고 화려한 극이 연출될 만한 여건—의 계절이다. 추위를 몰고 오는 전설의 동장군은 이 드라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페인트 통을 든 상상 속의 요정은 배역에 들어 있지 않다.
떨켜가 단단해지면, 잎으로 수액(樹液)을 운반하는 작은 관이 막힌다. 그동안 줄곧 다른 세포층도 느슨해지면서 마른다. 잎으로 오는 수액의 흐름은 이미 막혔다. 그러나 잎이 떨어지려면 아직도 두 주일이 지나야 된다. 이 두 주간이 바로 가을의 찬란한 영광의 날들이다. 수액이 없으므로 잎에서의 광합성이 멈추고 잎의 녹색 엽록소가 태양 광선에 의해 파괴된다.
녹색이 없어지면서, 여름 내내 잎에 있던 색소들이 이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색소는 카로틴이다—카로틴이란 명칭은 색깔 때문에 당근(영어로 캐럿)에서 따온 이름이다. 버터와 같은 황색, 계란 노른자위와 같은 오렌지 색이 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색소이다. 사탕단풍나무 잎에는 오렌지색과 황연색 카로틴이 있다. 자작나무에는 순수한 황색 카로틴이 있다.
그러면 붉은 단풍나무의 진홍색, 참나무의 주홍색, 사사프라스 나무의 짙은 적색, 서양 물푸레나무의 짙은 자주색은 어떤가? 이 색깔들은 잎에게는 새로운 손님들이다. 떨켜가 수액이 잎으로 흐르는 것을 막은 뒤에야만 이들 강렬한 색깔들이 가을 흥행의 극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안내한다. 날씨가 서늘하고 맑으면 잎은 당분간 계속 당분을 만들며, 이제 이 당분이 잎에 축적되어 안토시아닌이라는 화학 물질로 변한다. 수액이 산성이면 안토시아닌은 적색으로 변하고 알칼리성이면 청색이나 심홍색으로 변한다.
이제 이 흥행은 그 끝에 가까와진다. 동장군은 이 드라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며, 다가오는 겨울 추위 때문에 낙엽이 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 자체가 수분을 보호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겨울에는 땅이 얼기 때문에 땅에서 수분을 거의 얻을 수 없으며, 낙엽수의 넓은 잎들은 많은 양의 수분을 소모한다. 새로운 수분 공급이 없으면, 잎은 곧 나무의 수분을 다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상처를 떨켜로 봉한다.
나무는 계속 수분을 보유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해에는 흥행이 계속되지 못할 것이다. 봄의 푸르름도, 여름의 그늘도, 눈을 부시게 하고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을의 군엽도 없을 것이다.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녹색 가지가 뻗어 나올 봄의 새싹은 새로운 손님이 아니다. 그들은 일년 내내 가지에 붙어서 따스한 햇볕이 물관을 녹여 수액의 흐름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제 그들은 신속히 자라면서 이용 가능한 최대량의 양분을 흡수한다.
그러나 동시에 잎, 꽃, 작은 가지, 줄기들로 가득 차 있는, 핀 머리만한 작은 싹들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한 여름까지만, 이 작은 싹들은 더 크게 자라는 데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이듬해 봄에 모습을 보일 잎, 꽃, 줄기, 작은 가지를 단단히 방수 포장하여 간직한다. 마르거나 얼지 않게 보호된 상태에서 싹들은 봄이 오기를 7개월 동안 동요 없이 기다린다. 이와 같이 일시적으로 활동이 정지된 상태의 싹을 나무의 겨울눈이라고 부른다.
찬란한 영광 속에 무대를 퇴장하는 가을 잎의 총천연색 극을 경외와 경탄 가운데 구경할 때면, 다음해의 흥행 배역들이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고 마음을 감동시킬 차례를 가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흥행 제작자를 알고 그분에게 감사하자. 하나님만이 그런 나무를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이치적으로 부인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