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일의 더 큰 행복—경험하고 있는가?
연회장의 실내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음악 소리가 약해졌다. 사람들은 추던 춤을 멈추었다. 화려하게 포장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놓은 상자들 위로 집중 조명이 비쳐진다. 거기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쌓여 있다. 네모난 상자, 둥근 상자, 핑크색 상자, 파랑색 상자, 은색 상자, 금색 상자 등 각양 각색이다. 온통 매혹적인 리본과 나비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들떠 있는 신부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하나씩 포장을 벗기는 동안, 신랑은 쑥스러운 듯 말없이 도와주고 있다.
선물 상자 안에는 주방에서 사용할 토스터와 믹서, 도자기와 은식기류, 식탁보와 식당에 잘 어울리는 냅킨 등이 들어 있다. 세수 수건과 목욕용 수건도 많이 있으며, 침대 시트와 베갯잇은 평생 쓸 수 있을 정도이다. 방마다 하나씩 놓아도 충분할 만큼 많은 시계에다, 모든 미식가들이 미각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요리법이 실린 요리책들이 있다.
선물 포장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신혼 부부는 “야”하고 탄성을 발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을 한다. 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이 신혼 부부는 받는 행복을 경험한 것이다.
결혼식, 기념일, 크리스마스, 생일 및 기타 수많은 축하 행사와 같은 사교적인 관습에서는 모두 선물을 주는 일이 당연시되고 아예 행사의 일부로 인정된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선물을 주는 일이 당연시되기 때문에, 주는 사람은 종종 주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주는 일도 있다. 그러한 선물은 크든 작든, 받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며, 주는 사람은 가장 큰 행복을 맛보게 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예를 들면, 19세기 미국의 기업가 앤드루 카네기는 그 나라에서 최초로 억만 장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네기는 자기 재산의 90퍼센트를 18년 동안에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사재가 거의 다 고갈되어 가고 있다고 비서가 경고해 주자, 카네기는 이처럼 유쾌하게 대답하였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군. 계속 나누어 주게.” 동 시대의 인물로 세계에서 으뜸가는 부자 중에 한 사람인 존 D. 록펠러는 그의 생애 중에 7억 5천만 달러(약 6천억원)를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고급 승용차인 “캐디락을 수십대씩 나누어 주곤 하”였으며, 그러기를 매우 즐거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로운 관습이 아니다
선물을 주는 일은 거의 인간 자신 만큼이나 오래된 관습이다. 인간 생활의 시초부터 선물을 주는 일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여호와께서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지명하셨다는 증거를 본 후에, 리브가에게 보석을 선물로 주었다. 또한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었다. (창세 24:13-22, 50-53) 욥은 역경을 겪은 후에, 그의 형제와 누이 및 이전에 알던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각자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을 주었다.—욥 42:10, 11.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을 방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에 감동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듣고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솔로몬의 종들이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바의 여왕은 말하였다. 스바의 여왕은 깊이 감동한 나머지, 솔로몬에게 금 120달란트(약 40,000,000,000원의 가치)와 귀한 보석 및 값비싼 발삼 향유를 선물하였다. 스바의 여왕은 아마도 그 작은 왕국의 국고를 상당량 고갈시켰을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그는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솔로몬 역시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였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분명 스바의 여왕이 자기에게 준 보물보다도 더 가치있는 선물을 답례로 주었기 때문이다.—역대 하 9: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궁핍한 형제들을 위하여 선물 혹은 헌금을 하였다. 비록 가난했지만, 자신들의 실제 능력 이상으로 유대에 있는 궁핍한 형제들을 위하여 주는 일에 관대했던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도다.]”—로마 15:26, 27.
“말로 주는” 선물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물을 주는 일은 사랑과 우정의 띠를 연결하고 강화하며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관심을 알리는 인간미 넘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어떤 결혼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단지 “사랑해요”라고 말함으로 선물을 한다. 단순히 사탕 한 봉지나 꽃다발 하나를 선물로 줄 수도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선물도 있다. 더우기 사랑 많은 부모는 항상 자녀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가? 낙심한 사람을 달래 주고, 우울한 영혼을 격려해 주고, “속히 쾌차하세요”라고 말해 주며, 상대방이 나타낸 친절 및 후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거나, 혹은 단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읍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선물이 될 수 있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궁핍한 사람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을 위한 선물도 있다. 아픈 사람에게 과일 한 바구니,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분재 화초 몇 가지, 절친한 벗에게 장신구 한개를 주는 것과 같은 조그만 선물도 커다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선물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으로 하는 선물이다. 이런 작은 것들이 대개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주는 일 가운데에서,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크리스마스 때의 허례 허식이다. 이 때는 먼 옛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습에 따라 선물을 주며 흥청거린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축하 행사가 걱정거리이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열렬히 고대하는 날이다. 이 날은 재정적인 재난과 풍요라는 커다란 차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친구 사이에 선물을 주고 받는 관습은 서로를 더욱 가까와지게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미치는 이와 같은 역설적인 영향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고려할 것이다.
[2면 삽화]
장난감도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부모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