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8 1/15 22-25면
  • 위기에 처해 있는 국제 박람회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위기에 처해 있는 국제 박람회
  • 깨어라!—1988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기원과 목적
  • 엑스포 86: 1986년 세계 박람회
  •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 비용과 부채
  • 어둡게 하는 다른 요소들
  • 박람회의 전망
  • 일본의 ‘엑스포’ ’70에 대한 소감
    깨어라!—1970
  • “발견 시대”—그 대가는 무엇인가?
    깨어라!—1992
  • 21세기로의 진입
    깨어라!—1986
  • “자연의 지혜”
    깨어라!—2007
더 보기
깨어라!—1988
깨88 1/15 22-25면

위기에 처해 있는 국제 박람회

국제 전람회와 만국 박람회는 일반적으로 대중의 흥미를 크게 일으켜 왔고, 또한 세계 무역을 촉진시켜 왔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국제적인 전시회가 앞으로도 계속 개최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가?

박람회의 역사와 그 목적을 살펴보면서 최근에 개최되었던 박람회를 고려해 본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원과 목적

박람회의 역사는 그리스도 전(前) 시대로 소급하여 중동 지역에서 있었던 종교적 축제 및 집회와 관련이 있다. 그것이 기점이 되어 페니키아인들과 같은 무역상들이 지중해 연안 전역에 상품을 보급할 수 있는 길이 트였던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아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상업 박람회는 중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상인들 및 다른 사람들에게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모임이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박람회”(영어로 fair)라는 단어가 중세기의 종교적 바자나 축연과 관련이 있는 라틴어 “페리아이”(축제)에서 유래한 사실로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박람회에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 메서는 ‘미사’를 의미하는 라틴어 미사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국제판)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적 색채는 완전히 사라졌고, 상업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상업적 요소가 특히 부각된 것은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수정궁 박람회에서부터였는데, 그것은 실제로 최초의 만국 박람회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그 다음 계속되는 박람회의 표본이 되었다. 수정궁 박람회의 목적은 “영국제 상품과 제품 생산 과정을 세계에 알림으로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목적은 성공을 거두었는가?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영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우수한 미술 공예를 배우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관람자들은 ·⁠·⁠· 영국제 상품과 기계 설비 및 생산 기술의 우수성을 예리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곧이어 영국제 상품에 대한 주문이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국제 규모의 박람회가 빈번히 개최됨에 따라, 이러한 박람회를 국제 기구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25면 네모 안에 열거되어 있는 목록은 잘 알려진 만국 박람회의 일부이다.) 그래서 1928년, 프랑스의 파리에서는 35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만국 박람회 개최 회수 및 방법을 규정”하는 외교 협약을 맺자는 데 동의하였고, 1931년에는 이 협약에 의해 전시회를 감독하기 위한 BIE(국제 박람회 사무국)가 설립되었다.

엑스포 86: 1986년 세계 박람회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제 박람회는 1986년 5월 2일부터 10월 13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엑스포 86이었다. 70헥타르 넓이에 90개 이상의 특설 전시장이 마련되었고, 54개국이 참가하였다. 엑스포 86의 주제는 “운송과 통신”이었으며, 주제에 대한 성명은 “움직이는 세계, 밀착되는 세계”였다. 이 박람회의 중앙 장식 건물은 스테인레스 강(鋼)으로 만들어진 측지식 반구형(半球形) 17층 건물이었는데 엑스포 센터로 불리었다. 특히 그 건물 안에는 8층 높이의 주변 시야 스크린 (벽면과 천정이 모두 스크린)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만든, 500석을 갖춘 초대형 극장이 있었다!

소련과 미국은 여행과 통신 분야에서 그들이 이룩한 업적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주선과 인공 위성을 전시하였다. 그러나 그 박람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캐나다 전시관에 전시된 ‘캐나다 별관’이었는데, 그것은 “연방 정부 상설 종합 건물”이 될 것이었고 무려 1억 4,480만 달러(약 115,840,000,000원)를 들여 완성한 건물이다. 그것은 밴쿠버 항의 선창에 지어져, 마치 막 출항하려는 호화 유람선과 거대한 다섯개의 돛을 단 항해선을 복합시킨 것처럼 보인다.

박람회가 끝나자, 캐나다 전시관은 세계 무역 센터가 되었는데, 그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전시관은 2개의 축구 경기장만큼 커서 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23개의 회의실을 만들고, 500개의 호텔방과 무도장까지 갖출 수 있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전시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계속 사용하고 또 그 부대 지역을 개발하는 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그 비용이 얼마나 들든지 간에, 세계 박람회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박람회로 인하여 생기게 된 가치있는 부산물뿐 아니라 신종 직업과 관광객의 증가, 세액 수익, 새로운 운송 시스템, 다리, 고속 도로 등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은 박람회에서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오락 마련이 아주 다양했던 점에 대하여 격찬한다. 박람회에서는 각 전시관마다 교육적 전시물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오락장과 4개의 원형 극장에서의 영화, 그리고 무용과 음악회와 같은 무료 공연이 43,000여회나 있었다. 한 작가는 박람회의 분위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단지 그 주위를 걸어 다니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상영된 영화 중 한편은 “단편물로서는 대단히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서 아카데미 상에 추천”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라고 한 신문에서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엑스포 86의 마지막 날에 캐나다의 한 신문은 수억 달러의 빚을 짊어지게 된 것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내일부터는 후유증이 시작될 것이다.”

비용과 부채

“그 박람회는 3억 4천 9백만 달러의 적자를 남기고 끝났다”라고 「토론토 스타」지는 보고했다. 과거의 박람회들에서 있었던 적자는 25면의 네모 안에 지적되어 있다. 엑스포 86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박람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인 2,200만명 이상이나 되는 관람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탁월하게 세계적인 자유 홍보 활동도 있었는데 그 박람회를 취재하기 위하여 10,000명의 공인 기자들이 60개국으로부터 왔었다. 8년 동안이나 그 박람회를 준비하였고 그것을 선전하기 위하여 “화려한 세계 시장 조성 운동”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경제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는가? 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 지방의 악화된 경제 상태는, 마치 마약 중독자가 갈구하는 짧은 환각 상태와 같은 한 순간의 호황을 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국제적 투자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 그 지역에서의 실직 사태는 박람회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납세자들이 치러야 할 비용은 아직도 남아 있다. 캐나다 전시관처럼 아름다운 시설은 앞으로 계속 사용될 전망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도 수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내부 시설을 철거하는 데만도 약 1,000만 달러가 들 것이고, 그것을 수리하는 데 이미 1,800만 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박람회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어둡게 하는 다른 요소들

어떤 작가는 관찰한 바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이제 우리는 과학 기술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기에 이르렀읍니다. 이제 더는 과학 기술에 대하여 조금도 외경감을 갖지 않습니다.” 박람회는 더 이상 격찬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캐나다의 과학자, 데이비드 스즈키는 엑스포 86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공 지능, 외계 여행, 핵융합 등의 찬란한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박람회는] 그것들이 작용함으로 가장 먼저 초래될 군사적인 결과, 사기업이 거두게 될 막대한 이익 및 다가오는 변화에 따른 사회적, 환경적, 개인적 결과에 관하여는 지적하지 않았다.”

관심을 감소시키는 또 다른 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국 박람회는 이제 더 이상 산업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현대 세상은 감탄에 대한 감각이 훨씬 둔화되었다. ·⁠·⁠· 사람들은 ·⁠·⁠· 텔레비전을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경이로운 일들을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박람회가 빈번히 개최된 것으로 인해 이제 싫증을 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람회의 전망

‘미국만을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너무나 많은 종류의 박람회와 더불어 너무도 많은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만국 박람회를 구상하는 일이 재검토되고 있다’라고 엑스포 86의 위원장은 말했다. 더우기 그러한 현상은 엑스포 86이 열리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 열리는 수많은 박람회들에 관람자가 감소하는 추세는 박람회를 조직하고 장려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4월 30일에 브리즈번에서 개막될 엑스포 88을 준비하고 있다. 그 박람회의 주제는 “과학 기술 시대의 여가 활동”이다. 그 박람회는 과연 엑스포 86 만큼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박람회들이 계속 이어지기 위하여는 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거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아 줄 그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함이 분명하다.

[25면 네모와 삽화]

잘 알려진 만국 박람회 및 국제 전람회

◼ 1893년에 열린 시카고 만국 박람회는 세계 최초로 페리스 관람차를 소개하였으며, 입장자는 2,750만명이었다.

◼ 1939-40년에 열렸던 뉴욕 세계 박람회는 미래의 트릴론과 페리스피어를 만들어 “내일의 세계”라는 주제를 강조하였으며, 4,500만명 가량의 관람객이 있었다.

◼ 1964-65년에 열렸던 또 하나의 뉴욕 세계 박람회는 42미터 높이의 스테인레스 강철구(球)로 된 유니스피어를 만들어 “이해를 통한 평화”라는 주제를 강조했는데, 2,000만 달러 이상이 든 박람회 비용은 수입금을 초과하였다.

◼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엑스포 67(400헥타르)은 5,000만명 이상의 관람객과 60개국 이상의 참가국으로 인해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3억 달러의 부채를 남겼다.”

◼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 70(330헥타르)은 64,218,770명의 관람객을 유치하였고, 77개국이 참가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 미국, 테네시 주, 녹시빌 (1982년)에는 1,110만명이 입장했다.

◼ 미국, 뉴올리언스(1984년)에는 730만명이 입장했으나 약 1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막을 내렸다.

◼ 일본 츠쿠바(102헥타르) (1985년)에는 2,030만명이 참석하였다.

[자료 제공]

배경 사진: Library of Congress

[23면 삽화]

위—뉴욕 세계 박람회의 유니스피어, 1964-65년

왼쪽—브뤼셀 만국 박람회의 오토미엄, 1958년

아래—밴쿠버 박람회의 엑스포 센터 1986년

[24면 삽화]

엑스포 86의 광경, 밴쿠버

[22면 사진 자료 제공]

배경 사진: Library of Congress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