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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4부: 기원 622년 이후—하나님의 뜻에 복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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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4부: 기원 622년 이후—하나님의 뜻에 복종함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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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8/1 21-24면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

제 14부: 기원 622년 이후—하나님의 뜻에 복종함

“이 사도들[사자들][중] ·⁠·⁠· 일부는 다른 사도들 위에 있[느니라.]”—쿠란a의 알-바카라(제 2수라), 253절에서

전능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인정한다. 그런 사람들은 신성한 지식을 위탁받은 사자들을 통해서 그분이 베푸시는 인도에 대해 감사한다. 이 사자들 중 일부는 둘 이상의 세계 주요 종교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예를 들어, 8억이 넘는 이슬람교 추종자들은 유대-그리스도교의 인물인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및 예수를 하나님의 주된 예언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곱째 사자가 다른 모든 사자들 위에 있다고 믿는데, 그 사자는 바로 예언자 마호메트이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은 복종 혹은 굴복—이 경우에는 알라의 법과 뜻에 대한 복종 혹은 굴복—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의미 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복종 혹은 굴복의 길을 따르는 사람을 가리켜서, 이슬람이란 단어의 능동형 분사인 “모슬렘”(이슬람교인)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인이 복종해야 하는 대상은 알라이다. 고유한 이름으로 생각되는 알라는 “하나님”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알-일라의 축약형이다. 이 이름은 쿠란에 약 2,700회 나온다.

이슬람교 최고의 예언자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 빈 압둘라(압둘라의 아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기원 570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그 지방의 다신교적 신앙과 의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친근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슬람교인인 저술가 H. M. 바길은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원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알라는 이윽고 자신의 원래 계획의 일부로서, 그 모든 변화를 회복시킬 부흥 운동자로 자신의 마지막 예언자 마호메트를 보내셨다.”

마호메트는 의례와 의식들에 아라비아식 특색을 더하였다.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메카와 그 거룩한 사원, 카바로 대치되었다. 유대인들이 토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지키던 공동 기도일은 금요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이슬람교인들은 이제 모세나 예수가 아니라 마호메트를 하나님의 최고 예언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약 40세 때, 마호메트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로 불림을 받았다고 선언하였다. 마호메트는 처음에 친족과 벗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하였으며, 점차적으로 일단의 추종자들이 형성되었다. 이슬람 기원의 실제 시작은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했을 때인 기원 622년인데, 이 사건은 아라비아어로 “이주”를 뜻하는 히지라(헤지라)로 불린다. 따라서 이슬람 기원을 A. H.(Anno Hegirae, 도피의 해)라고 한다.

마호메트는 메디나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새 종교와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게 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대인들은 마호메트를 반대하고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그의 원수들과 음모를 꾸몄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의 주요 집단들은 추방되었으며, 쿠라이자라고 하는 한 족속은, 남자들은 처형되고 여자와 어린이들은 노예로 팔리면서 멸족되었다.

마침내 메카는 이슬람 기원 8년(통용 기원 630년)에 평화적으로 장악되었으며,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의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마호메트가 죽은 지 몇십년 후에, 계승권을 놓고 논쟁이 벌어져 내란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반작용으로 이슬람 공동체는 비이슬람 그룹과 사상들에 대해서 거의 수용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단순한 종교 이상의 것

이슬람교는 생활 방식 전체로서, 국가, 법률, 사회 제도 및 문화를 포괄하는 것이며, 따라서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이 사실은 「초기 이슬람교」(Early Islam) 책에서, 600여 년 동안 “이슬람교는 가장 강력한 정치력과 가장 중요한 문화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종교였다”라고 기술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사실상, 마호메트가 사망하고 나서 일 세기가 못 되어, 아라비아 제국은 전성기의 로마 제국보다 더 크게, 인도로부터 북 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까지 뻗어 나갔으며, 서구 문명을 풍요롭게 한 발명품들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라비아 제국은 법률, 수학, 천문학, 역사, 문학, 지리학, 철학, 건축, 의학, 음악 및 여러 사회 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기여하였다.

유성처럼 곧바로 사라지다

“아라비아의 정복은 마호메트의 설교의 직접적 산물이었다”라고 「콜린스 세계사 도해」(The Collins Atlas of World History)는 알려 준다. 물론, 다른 요인들 역시 이슬람교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예를 들어, 비잔티움의 그리스도인들과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양쪽 모두 서로간의 종교 분쟁으로 인해 아라비아의 발흥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종교를 사용하여 넓게 뻗어 있는 제국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슬람교인들은 자신들이 최종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의 선언을 코란 속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였”다고 저술가 데즈먼드 스튜어트는 설명한다. 그들은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미 전부 알려져 있으며, 비이슬람 사상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되었다. 그들은 변화를 “고집세게 저항”하였다.

결국, 11세기 무렵에는 이미 제국이 쇠퇴하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그 제국을 “[자신의] 활력을 곧바로 소모하면서, ·⁠·⁠· 밤하늘을 스치고 지나가는 유성”에 비한다. 그와 같이, 형제애 관념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비교적 쉬운 길을 제시한 그 종교는, 사실상 한때 그 창설에 이바지하였던 바로 그 제국을 쇠퇴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다. 일어날 때도 신속했던 것처럼, 소멸도 갑작스러웠다. 이슬람 제국은 죽었다. 그러나 그 종교는 살아 남았다.b

참다운 복종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법 및 그분의 대표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포함된다. 마호메트는 아라비아의 아랍 부족들을 연합시키는 데 성공하여, 자신과 쿠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설립하였다. 그것은 복종의 힘으로 한 지도자 아래 사람들을 형제로 결속시키는 종교 국가였다. 이슬람교는 아랍 부족의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칼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칼은 이슬람의 제국과 종교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호메트가 죽자, 폭력적인 불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할리파(칼리프) 곧 지도자를 택하는 문제로 일어난 정치적 불화였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자기 형제들과 싸우기 위해 칼을 뽑았다. 종교와 정부의 병합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다. “복종”은 사람들을 한 지도자 아래 연합시키지 못하였다.

전승은 마호메트 자신이 72개의 이슬람 이단 분파들이 생겨날 것을 예견하였다고 알려 준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권위자들은 그 수가 수백개에 달한다고 말한다.

두개의 주요 분파는 시아파와 수니파다. 하지만, 각 분파에는 세분된 수많은 파가 있다. 이슬람교인 100명당 약 83명은 수니파고 약 15명은 시아파다. 나머지는 드루즈파, 블랙 모슬렘, 그리고 이슬람교와 불교와 힌두교 및 지방 종교를 혼합한, 인도네시아의 아방간파와 같은 다양한 여러 분파 집단에 속한다.

소수파인 시아파의 특징은 종교와 쿠란에 은밀한 즉 감추인 의미가 있다는 신앙이다. 그러나 시아파에서 실제로 제기한 것은 계승권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시아(“알리 당원”을 가리킬 때의 “당원”을 뜻하는 단어)파는 통치권이 마호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알리의 후손들에게 국한된다고 주장하면서, 정통주의로 불리는 교리를 옹호한다.

알리와 그의 후손들은 이맘, 즉 절대적인 영적 권위를 지닌 지도자였다. 얼마나 되는 이맘이 있었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십이 시아파라고 불리는 최대의 시아파 그룹은 12명의 이맘이 있었다고 믿는다. 기원 878년에, 열 두번째 이맘이 “숨겨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끝에 돌아와서 공의로운 이슬람 정부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사라졌다.

시아파 이슬람교인들은 해마다 마호메트의 손자인 후사인의 순교를 기념한다. 저술가 라만은 이렇게 논평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 행사의 그러한 묘사적인 장면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시아파 이슬람교인은 아마도 비극과 불공정에 대한 깊은 감정이 발전될 것이며, 그 결과로 순교에 대한 이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불일치의 증거들?

「컬럼비아 세계사」(The Columbia History of the World)는 이렇게 논평한다. “9세기에 그리스의 철학과 논리가 도입되면서, 이슬람교의 합리주의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뚜렷이 구별되는 이슬람식 철학(팔사파)이 일어났다. ·⁠·⁠·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종교이자 생활 방식으로서의 이슬람교 자체는 그 연합에 영향을 미치는 심한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신비주의를 일컫는 서구식 용어인 수피즘은 8세기와 9세기에 출현하여 대규모 종교 운동으로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12세기 무렵에는, 수피 결사 즉 형제회가 널리 퍼졌다. 수피즘의 수도원은 중요성 면에서 거의 이슬람 사원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수피즘의 의식에는 정신 집중 기법이나 광란적 춤을 통한 자기 최면술, 신조를 외는 일, 기적에 대한 신앙 및 성자 숭배가 포함된다.

수피교인들은 지방적 관습 및 신앙과 타협하였다. 터키인들은 샤머니즘 의식을, 아프리카인들은 주술 치료사들을, 인도인들은 힌두교 및 힌두교 이전 시대의 성자들과 신들을, 그리고 인도네시아인들은—「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서 표현하듯이—“이슬람교의 외형적 의식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 이전 시대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분파와 관련하여 보다 최근의 주목할 만한 사태 전개는 19세기 중반에 이란에서 시아파 이슬람교로부터 발전한 바하이교이다. 또 다른 것은 아마디파라고 불리는 수니파의 일파인데, 19세기 후반 인도에서, 자칭 예언자인 미르자 굴람 아마드가 스스로를 마호메트의 현신, 재림 예수, 힌두 크리슈나의 화신이라고 공언하면서 발전하였다. 그는 예수가 골고다에서 죽음을 모면한 다음 인도로 도망하여, 120세에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활동했다고 가르쳤다.

이슬람교인인 저술가 S.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자신의 쿠란 주해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알-바카라[이 기사의 서두에서 인용한 수라]가 계시됐을 때, 온갖 부류의 위선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지적으로는 이슬람교의 진리를 확신하지만, 자신들의 이전 전통들을 포기할 만한 도덕적 용기가 없는 ·⁠·⁠· ‘이슬람’ 무나피킨(위선자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바로 시초부터, 많은 추종자는 마호메트가 의도했던 대로 알라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교국은 그런 사람들이 제기한 도전을 피하기 위해서 “칼에 의존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였다. 본지 8월 15일호에서 그 점을 다룰 것이다.

[각주]

a “쿠란”(“암송”을 뜻함)이란 이슬람 저술가들이 더 좋아하는 철자 표기로, 본지는 이 기사에서 서양식 표기인 “코란” 대신 그 철자 표기를 사용할 것이다.

b 이슬람교가 엄격하게 아라비아인의 종교라는 일반적인 견해는 부정확한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교인의 대부분은 아라비아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인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1억 5천만명의 신도가 있다.

[22면 네모]

이슬람교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은 이슬람교인들에게, 적어도 한번은 샤하다로 알려진 신앙 고백—“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 마호메트는 하나님의 예언자다”—을 공개적으로 할 것, 하루에 다섯번씩 기도할 것, 지금은 보통 자진적으로 모금하지만 의무적 세금인 자카트를 낼 것, 제 9월 즉 라마단중에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금식할 것, 재정적으로 가능하다면 적어도 한번은 메카에 하지(순례)를 다녀 올 것 등을 요구한다.

카리지파는 “지하드”(“성전[聖戰]” 혹은 “거룩한 투쟁”)를 여섯째 기둥으로 생각하지만, 보통 이슬람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그 목적이 “개개인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제반사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함으로써 그 사회를 이슬람교의 원칙과 일치하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알려 준다. 쿠란은 “정당한 원인 이외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영혼을 죽이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은 “성전”을 허용한다.—수라 17:33.

이슬람 교리와 법의 주요 원천은 약 사반세기에 걸쳐 기록된 쿠란, 순나(전승), 이지마(공동체의 동의) 및 키야스(개인의 사상)이다. 이슬람교의 법전인 샤리아는 이슬람교인의 종교, 정치, 사회, 가정 및 개인 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기원 8세기와 9세기중에 체계화되었다.

메카와 메디나와 예루살렘은 그 순서대로 중요성을 지니는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 세 군데다. 메카는 아브라함이 건축했다고 전승에서 알려 주는 카바 성역이 있기 때문이고, 메디나는 마호메트의 이슬람 사원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예루살렘은 전승에서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3면 지도와 삽화]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전성기의 이슬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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