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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9부: 17-19세기—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와 씨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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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9부: 17-19세기—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와 씨름하다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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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10/15 21-25면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

제 19부: 17-19세기—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와 씨름하다

“철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다.”—게오르크 헤르베크, 19세기 독일 시인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희랍어 어근에서 유래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말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이러한 의견을 표명한다. “이 방면에서의 최초의 시도는 철학을 ‘인간 경험의 다양한 부면에 대한 반성’ 혹은 ‘사람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논제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방법적이며 체계적인 고찰’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참 종교와 철학이 양립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참 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이지, “인간 경험의 다양한 부면”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참 종교는 창조주의 권익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논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거짓 종교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 경험에 근거하고 있으며, 인간의 이익을 첫째 자리에 둔다. 이러한 사실은 17세기 이래로 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와 씨름하면서 특히 분명해졌다.

삼중 위협

17세기에 근대 과학이 출현하자마자,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한 것같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과학상의 비약적 발전은 무류성과 권위의 후광으로 과학을 감싸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인 과학주의라는 성우(聖牛)를 산출하였다. 과학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적 주장은 갑자기 근거가 불충분하여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과학은 새롭고 흥미 진진한 것이었고, 종교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따분한 것으로 보였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을 휩쓴 지성 운동인 계몽주의에 의해 강화되었다. 계몽주의는 지성적, 물질적 진보를 중시하여, 정치 및 종교의 권위와 전통을 배척하고 비평적 추론을 지지하였다. 이 사상은 일반적으로 지식과 행복의 원천으로 알려졌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그 조상격의 뿌리”를 “그리스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계몽주의는 주로 프랑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프랑스의 탁월한 지도자들 중에는 볼테르와 드니 디드로가 있었다. 영국에서는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이 그 대변인격이었다. 계몽주의 옹호자들 중에는 토머스 페인, 벤저민 프랭클린 및 토머스 제퍼슨을 포함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있었다. 사실, 미국 헌법에 규정된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계몽주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독일의 뛰어난 계몽주의자로는 크리스티안 볼프, 이마누엘 칸트, 그리고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제스 멘델스존이 있었다.

종교에 회의적이었던 칸트는 “계몽주의”를 “인간이 스스로 가한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고 한다. 칸트의 이러한 정의는, “정치, 교회 혹은 성경의 권위가 지시하는 대로 인간 개인의 의견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도덕, 종교 및 정치에 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용기를 얻게 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코넬 대학교의 앨런 W. 우드는 설명한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을 선두로 하여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다. 농업에 역점을 두던 것이 바뀌어 기계와 화학 처리 과정의 도움으로 재화를 생산하고 제조하는 일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농촌 사회에 동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실직, 주택 부족, 가난 및 직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는 계층이 생겨났다.

과학과 계몽주의와 산업이라는 이 삼중 위협을 그리스도교국이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슬그머니 하나님을 밀어내는 일

계몽주의의 사고 방식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많은 해악을 종교의 탓으로 돌렸다. 「종교 백과사전」에서 알려 주는 바에 따르면, “사회는 신과 자연의 법이 미리 정해 놓은 청사진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사회는 사람 자신의 ‘책략’ 혹은 ‘고안’에 의해 구성되거나 구성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대치되었다. 그렇게 해서 세속적, 사회적 인본주의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 인본주의는 뒤이어 현대 세계의 대부분의 철학 및 사회 이론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이론 중에는 프랑스의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옹호한 “시민 종교”가 포함되었다. 그 종교는 하나님과 그분에 대한 숭배보다, 사회 및 인간과 관련된 것을 그 주된 관심사로 삼았다. 프랑스의 전기 작가 클로드-앙리 드 루브루아는 “신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으며, 한편 그의 제자 오귀스트 콩트는 “인도교(人道教)”에 대해 말하였다.

19세기 말엽, 사회 복음으로 알려진 미국의 운동이 프로테스탄트 교인 사이에서 전개되었는데, 그 운동은 유럽의 이론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신학에 근거한 그 사상은 그리스도인의 주된 의무가 사회 참여라고 주장하였다. 그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프로테스탄트 교인 사이에서 크게 지지받고 있다. 프랑스의 노동 사제들과 해방 신학을 가르치는 라틴아메리카의 교직자들 가운데서 가톨릭식 변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국의 선교사들 역시 그러한 경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1982년 「타임」 잡지의 한 보도가 이렇게 지적하는 바와 같다. “프로테스탄트 교인 사이에서 사람들의 기본적 경제, 사회 문제에 더 깊이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는 변화가 있어 왔다. ·⁠·⁠· 점점 더 많은 수의 가톨릭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일치된 주장을 한다는 것은 곧 정치, 경제 체제의 급진적 변화를—설사 그러한 변화가 마르크스주의자의 혁명 운동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라 할지라도—옹호하는 것을 뜻한다. ·⁠·⁠· 실제로, 개종은 자신들의 참다운 과업과 근본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고 믿는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한 선교사들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는 한때 ‘종교적 숭배의 진정한 목적은 사회이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그리스도교국은 종교에서 슬그머니 하나님을 밀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편, 다른 세력들 역시 활동하였다.

하나님을 의사 종교로 대치함

교회는 산업 혁명에 의해 초래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간 철학의 산물인 의사(擬似) 종교들은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해결책이 없이 비어 있던 자리를 신속하게 채워 들어갔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은 부와 소유물을 추구하는 것, 즉 산업 혁명이 부추겨 놓은 자기 중심적 경향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물질주의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전능한 하나님을 ‘전능한 돈’이 대신하였다. 조지 버나드 쇼의 한 희곡에서는, “나는 백만 장자다. 그게 바로 내 종교다”라고 외치는 한 등장 인물을 통해 그 점이 넌지시 표현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 운동으로 향하였다. 카를 마르크스와 공동 집필자인, 사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마침내 종교를 대신하여 그 자체로 종교적 속성을 지닐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유럽 전역에서 자리를 잡았을 때,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주의자들이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배교하여 그 대용물로 향했다는 것”이라고 퇴직 교수인 로버트 니스벳은 말한다.

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까닭에, 「세계 그리스도교 백과사전」에서 “세속주의, 과학적 물질주의, 무신론적 공산주의, 국가주의, 나치즘, 파시즘, 모택동주의, 자유 인본주의 및 조작하거나 꾸며낸 수많은 의사 종교”라고 부르는 세력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철학적 의사 종교들이 산출한 열매를 볼 때, 영국 시인 존 밀턴의 이러한 말은 매우 적절한 듯하다. “모두 헛된 지혜, 거짓 철학뿐.”

타협안을 추구함

한편으로 비효율적인 교회 제도와 다른 한편으로 기만적인 의사 종교들 사이에 처한 수많은 사람은 더 나은 것을 찾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자연 종교”로도 알려진 이신론(理神論)이라는 데서 더 나은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였다. 17세기 영국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이신론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면서 과학을 포용한 하나의 타협안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신론자들은 중도 노선을 취하는 자유 사상가였다.

저술가 우드는 그 점을 이렇게 분명히 설명한다. “그 주된 의미에 있어서, 이신론은 한분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초자연적 계시가 아니라 오로지 자연적 추론에 근거한 종교 의식에 대한 신앙을 뜻한다.” 그러나 “초자연적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일부 이신론자들은 성서를 거의 전적으로 배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교회 혹은 성경의 권위를 배척하고 개인의 견해나 대체 생활 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그 원칙에 고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그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진화론의 평행 이론들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가장 극적인 충돌은 1859년에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 발행된 후에 일어났는데, 그 책에서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을 주창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은,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처음에 그 이론을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였다. 그러나 반대는 이내 시들해졌다. 다윈이 사망할 무렵, “생각 깊고 논리 정연한 교직자들은, 진화론이 성경에 대한 계몽된 이해와 온전히 조화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밀고 나갔다”고 「종교 백과사전」은 알려 준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 교황청이 다윈의 저서들을 금서 목록에 전혀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은 또한 1893년의 세계 종교 의회 시카고 회의에서 청중이 나타낸 반응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인과 힌두교인들이 듣는 가운데, 한 “그리스도교인” 연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진화론은 우리 종교의 맨 처음 부분에 있는 빈 틈을 메워준다. 그리고 과학이 전반적으로 진화론을 창조의 방법으로서 수긍한다면, 하느님의 길을 알고 사랑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 이론을 환영하여, 냉철한 태도로 동의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커다란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는 비교 종교학으로 알려지게 된 학문이 19세기 말엽에 인기가 있었던 점을 생각할 때,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그 학문은 여러 종교가 어떻게 상호 관련되어 있고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고안된, 세계 종교들에 관한 과학적 연구였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인류학자 존 루벅은, 인간이 무신론자로 출발하여, 그후 페티시즘(주물 숭배), 자연 숭배 및 샤머니즘(무속 신앙)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일신론에 이르렀다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종교 백과사전」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와 같은 견해에서 본 종교는 신에 의해 계시된 절대 진리가 아니라, 하느님과 도덕에 대한 인간의 개념의 발전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종교상의 진화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가로대로서 이신론이나 “시민 종교” 혹은 “인도교”를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최종 분석을 해볼 때, 그와 같은 견해는 어디로 인도하는가? 이미 19세기에,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가 더는 종교와 조화될 수 없는 진보의 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20세기에, 사회학자들은 전반적으로 종교가 “인간의 특정한 사회 심리적 필요들을 충족시켜 주며, 이러한 필요가 인간 종의 생물학적 진화로 인해 사멸될 때까지 혹은 사멸되지 않는 한,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 문화의 지속적 실체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니스벳 교수는 기술하였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따라서, 사회학자들은 “진화에 의한 발전”이 언젠가는 종교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음을 배제하지 않는다!

참 숭배를 찾으려는 노력이 증가하다

19세기 중엽에는, 그리스도교국이 세계 변화에 맞서서 약 200년 동안 승산 없는 싸움을 벌여 왔음이 분명해졌다. 그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는 세상 철학과 다름없는 것으로 퇴보하였다. 많은 정직한 사람이 염려하였다. 참 숭배를 찾으려는 노력이 증가하였다. 참으로 그리스도교국을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참 숭배의 회복이었다. 본지 11월 1일호에서 더 자세한 점을 알아보기로 하자.

[23면 네모]

세계 변화의 압력에, 그리스도교국이 타협하다

근대 과학의 출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교국은 진화론과 같이 증명되지 않았으면서도 흔히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세계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과학적 전문 지식을 선호함으로써, 성서 진리를 타협하였다.

정치 이념의 등장(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등)은 국가주의적 갈등과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땅의 정당한 통치자라는 성서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교국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어기고, 같은 종교 신자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성서 원칙을 타협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은 정치적 성격을 띤 의사 종교들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높은 생활 수준이 산업 및 과학 혁명에 의해 실현되어,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를 조장하고 사회적 불공정과 불평등을 표면화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의 권익을 무시하고 사회, 경제, 생태 혹은 정치 성격을 띤 인간의 이익에 관여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타협을 하였다.

[25면 네모]

발전인가, 퇴보인가?

성서에서 알려 주는 것: 인간은 완전하게 창조되었으며 자신의 창조주를 가납될 만하게 숭배하는 법을 가르침받았지만,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그리고 약 6,000년 동안, 인간은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모두 퇴보하여, 그들이 원래 실천했던 참 종교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갔다.

생물학 및 종교상의 진화론에서 알려 주는 것: 인간은 시초의 원시 상태로부터 진화했으며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였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신체적 도덕적으로 모두 개선되어, 종교와 사회 및 도덕 면에서 유토피아적 발전 상태에 더 접근하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 인류의 현재 상태 및 오늘날 세상에서 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관한 지식에 근거해 볼 때, 어떤 견해가 더 사실과 일치하는 것 같은가?

[24면 삽화]

「종의 기원」에 실린 다윈의 증명되지 않은 공론은 많은 사람에게 계시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는 구실이 되었다

[자료 제공]

Har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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