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묻는다 ···
왜 나는 동생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가?
대릴은 집안에서 맏아들이다. 특별히 어려웠던 기간에 그는 좀 소홀히 하여 성적이 내려갔다. 그의 부모는 신속히 반응을 보였다. 대릴은 이렇게 회상한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누이 동생들을 위해서도 학업 성적을 올려서, 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나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집안에서 맏이라면, ‘동생들한테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화가 날 때가 종종 있다. 「여러 아이를 키우는 법」(Raising Siblings)이라는 책에서 필자인 캐럴과 앤드루 캘러딘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맏아이는 부모로부터 동생과의 상호 관계에서 오는 큰 기대를 받는 것에 대해 불평한다. 그들은 출중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부모의 압력을 느낀다. 맏아이가 받는 전형적인 훈계는, ‘그럴 나이는 지났잖니,’ ‘좀더 철이 들어야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부모들은 맏아이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가? 혹시 부모가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본이 되어야 할 이유
인류 최초부터, 맏아이—특히 장자—는 부모로부터 큰 기대를 받아 왔다. 아버지의 생식력의 시작으로서, 성서 시대에 장자는 종종 특별히 사랑을 받았다. (창세 49:3; 신명 21:17) 심지어, 여호와 자신도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들을 그분의 “장자”라고 부르셨다. (출애굽 4:22) 그렇지만, 장자는 궁극적으로 가족의 머리로서 아버지를 계승할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많은 것이 기대되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부모가 맏아이에게 많은 기대를—그것도 좋은 이유로—갖는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 가지로는, 만일 맏이라면 동생들(남동생과 여동생)보다 집안일과 도덕적 가치 기준 및 성서 원칙에 대해서 아마 더 많은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당신이 배워 알게 된 것을 동생들에게 전해 줄 것으로 당연히 기대되지 않겠는가?
14세 된 한 소년은 그처럼 부모로부터, 여동생들이 집안일을 배우도록 도와주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부모님은 내가 맏이라서 누이 동생들보다 훈련과 경험을 더 많이 쌓았다는 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맏이로서 동생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돕는 것은 많은 부모들이 오늘날 직면하는 경제적인 압력 때문에 특히 필요하게 될 수 있다. 종종,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세속 직업을 가지고 일해야만 하기 때문에 부모가 집에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게다가 홀어버이 집안에서 살고 있다면, 그 부모는 부모 양편의 역할을 이행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긴장 속에서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 맏이로서 집안에서 동생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은 그 부담을 덜어 드리는 데 큰 몫을 차지할 수 있다. 그에 더하여, 그 부모는 당신이 동생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는 것이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안다.
그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라
사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한 소녀가 그 점을 가리켜, “나에게 특권과 책임이 더 많이 오기 때문에 맏이가 된다는 것이 매우 힘들어요”라고 표현한 바와 같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동생들이 당신의 처신을 보고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당신의 말과 옷차림과 행실을 자주 흉내 낸다. 한 소년이 자기 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나는 형이 매사에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거든요.” 따라서 당신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 아이를 키우는 법」의 저자들이,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이 부모가 맏아이에게 주는 암호말이다”라고 지적하는 바와 같다.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은 동생에 대한 책임을 맡은 훌륭한 본이었다. 우리는 모세의 부모가 남자 신생아를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기 모세를 파피루스 바구니 혹은 궤 속에 숨겼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미리암은 궤가 나일 강에서 떠내려갈 때 그것을 지켜보았으며 바로의 딸이 그것을 안전하게 들어 내는 것을 보았다. 담대하게도, 미리암은 바로의 딸에게 접근하여 아기의 친어머니가 아기를 키우도록 주선했다. 아기 동생을 위한 미리암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모세는 살아 남았을 뿐 아니라 자라서 이스라엘의 구출자가 되었다!—출애굽 2:1-10.
당신도 동생들에 대하여 비슷한 책임을 느끼는가? 그들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친한 동무와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가? (잠언 17:17) 예를 들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베풀어 줌으로써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혹시 한 동생이 학교에서 누군가와 사이 좋게 지내지 못할 수 있다. 또 다른 동생은 닥쳐오는 어떤 일—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첫 등교, 병원에 갔다 올 일—때문에 걱정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래서 격려와 지원을 상당히 필요로 할지 모른다. 종종, 당신은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보아서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줄 입장에 있는 경우가 있다. 한 십대 소녀가 자기 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언니는 내 안내자 같아요. 언니는 자신이 벌써 겪어 보았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도가 지나칠 위험성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알라!
15세 된 한 소년은 자기 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형은 자기가 권위있는 인물인 줄 알아요. 형하고 입씨름을 벌이게 되면 탁자 너머로 주먹이 날아오기 마련이지요. 우린 도무지 사이 좋게 지내지를 못해요.” 한 십대 소녀는 자기 여동생들을 대하면서 겪는 비슷한 문제를 이렇게 알려 준다. “나는 동생들과 함께 앉아서 성구 몇개를 보여주지요. 그러나 동생들은 화를 냅니다! 때로는 우리의 입씨름이 너무 거칠어져서 주먹 싸움으로 끝나고 만답니다.”
불행하게도, 때때로 청소년들은 본이 되는 것을 상전이 되는 것과 혼동한다. 맏이가 동생들에게 친구와 조언자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부모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십중 팔구, 동생들은 당신이 그들을 징계하거나 교훈함으로써 부모가 하듯이 그들을 다루려 드는 것에 대해 화낼 것이다. “그들을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는 것은—당신의 일이 아니라—부모의 일이다! (에베소 6:4, 신세) 그러므로 한마디 조언을 주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저항에 부딪치게 되면 그 이상은 그만두고 부모가 그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것이 아마도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또한 자신이 부모와 조화되지 않는 입장에 처하지 않게 하는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동생은 당신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당신에게 조언을 구할지 모른다. 또는 부모가 알 권리가 있는 어떤 악행을 고백해 올 수도 있다. 문제를 당신이 직접 다루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잠언 11:2의 말씀 곧 “교만[주제넘음, 신세]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겸허한, 신세]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는 말씀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겸허하게, 부모가 그 상황에 주의를 환기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참으로, 동생을 격려해서 그 자신이 부모에게 접근하게 한다면 훌륭한 일일 것이다.
한 소년은, 맏이가 자신의 한계를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분야를 지적해 주는 이러한 말을 한다. “나는 장남 노릇 하는 것이 좋지만, 때때로 모든 일을 다 잘하기는 힘듭니다.” 압박감을 주는 부담을 느끼는 것보다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다. (야고보 3:2)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본이 되신다! (베드로 전 2:21)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유익
동생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애쓰는 데에는 문제도 있지만 또한 상도 있다. 한 가지로서, 책임감 있는 사람임을 나타냄으로써 더 빨리 장성하고 분명히 다른 부가적인 특권을 스스로 얻게 될 것이다. (누가 16:10) 나중에 자신이 자녀를 가지게 될 때 참으로 가치 있음이 증명될 능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또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은, 맏이의 본이 동생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이 책임감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인이 될 마음이 우러나오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에게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관심을 나타냄으로써 그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수 있다. 동생들이 가끔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십대 소녀가 이렇게 인정하는 바와 같다. “내가 정말 감사히 여기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개인적인 문제거리를 이야기해 오고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는 나를 다정하게 껴안아 주는 두 여동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유대는 한번 맺어지면 평생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좋은 본을 보이는 것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24면 삽화]
동생들이 일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우라
[25면 삽화]
언니가 상전처럼 행동하면 분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