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이 언제 끝날 것인가?
새 힘을 주는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유쾌하고도 건강에 좋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스포츠 경기에 참가자가 되는 것 혹은 단지 관람객이 되는 것은 종종 극도로 폭력적이며 그리고 흔히 약물에 취한 세상에 빨려드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스포츠는 그러한 폭력적인 세상의 한 가지 표현에 불과하다. 철학자 에마누엘레 세베리노는 1985년 벨기에의 어느 축구 경기장 관람석에서 39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브뤼셀 사건과 같은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특정한 근본적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더 없어지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데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시대의 폭력은 가치관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의 존재에 기인하는 것이다.”
스포츠계의 새로운 가치관
세베리노 교수가 언급한 그러한 새로운 가치관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선수권자를 “신격화된 영웅”으로 삼는, 선수들의 자아제일주의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주의와 그에 따르는 정치적 암시도 있다. 「레스프레소」지는 이렇게 기술한다. “스포츠는 사회 진흥에 크나큰 수단이 되어 왔다. 승리를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나라는 중시된다.”
돈 역시 스포츠계에 속하게 된 새로운 가치관 중 하나다. 상당한 재정적, 상업적 이익—텔레비전 방송권, 광고, 복권 및 후원—은 어김없이 “파렴치한 경쟁”을 초래하며,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조차 그러하다. 이전에 축구 선수였던 한 사람은 축구가 “더는 경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사업이다”라고 말하였다.
만연된 원칙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라는 것이며,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에 의하면, 그것은 온갖 것—경기장과 관람석 모두에서의 폭력으로부터 경기 전후에 팬들이 야기하는 폭력에 이르기까지, 도핑과 그것의 치명적인 영향에서부터 정당하지 못한 태도와 파렴치한 태도에 이르기까지—을 의미한다. 스포츠 정신, 이른바 정정 당당한 시합 태도는 과거의 것이 된 것 같다. 그러한 정신은 과연 되살아날 것인가? 사람들이 하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조금도 고무적인 것이 아니다.
약물과 폭력—끝날 때가 있을 것인가?
세베리노 교수가 인정하듯이, 스포츠계의 폭력은 현대 사회를 괴롭히는, 좀더 일반화된 폭력의 일면일 뿐이다. 그토록 많은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성서 예언은 문제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대해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열거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경건하지 않고 절제가 없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교만하고 쾌락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덧붙였다.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더 악해[질 것이다.]”—II 디모데 3:1-5, 13, 새번역.
이 현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성서는 설명한다. (요한 1서 5:19) 사단 마귀는 건전한 스포츠 활동과 같은 선한 것을 더럽히는 “악한 자”다. 그는 폭력적인 영을 초래한 자다. 그는 또한 사회와 스포츠를 파괴해 온 국가주의와 이기심 및 탐욕을 조장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악귀적인 영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서 원칙을 적용함으로 자신의 옛 성품과, 폭력적인 태도를 포함한 그 악한 행위를 “벗어버”리고 평화로운 열매를 산출하는 “새 사람[성품, 신세]”을 입을 수 있다.—골로새 3:9, 10; 갈라디아 5:22, 23.
하지만 과연 스포츠계의 폭력과 도핑이 끝날 때가 있을 것인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언제 있을 것인가? 사회의 폭력과 약물 남용이 끝날 때 있을 것이다. 현재의 악의 증가는 그때가 가까웠음을 시사한다!—시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