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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9 12/15 23-27면
  • 제 23부: 1945년 이후—심판의 때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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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3부: 1945년 이후—심판의 때는 가깝다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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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12/15 23-27면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

제 23부: 1945년 이후—심판의 때는 가깝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종교를 없애는 일이다.”—카를 마르크스,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겸 경제학자

부모의 가계 양쪽에 유대인 랍비 조상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카를 마르크스는 여섯살 때 프로테스탄트 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그는 인류가 행복을 이룩하려면, 종교와 정치 모두 철저하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서는 그러한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주창한 철저한 변화가 실제적인 개선을 가져오지 못한 반면, 우리 세대에 일어날 것이라고 성서에 예언된 변화는 지속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특히 1914년 이래, 거짓 종교의 유혈죄는 극한 수준에 달하였다. 또한 그때 이래로 거짓 종교는 늘어나는 무관심과 대중의 지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연재물의 이전 두 기사 참조.) 그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 참 종교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눈에 띄게 번영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무슨 일이 더 있을 것인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지금은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가 어떠할 것인가?’라고 질문하기에 적절한 때이다.

성서는 무엇을 알려 주는가?

통용 기원 1세기에 있었던 일들은 그 문제에 빛을 비춰준다. 거짓 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앞에는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으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언된 장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참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대 제도의 멸망을 피할 길이 마련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어다.]”—누가 21:20, 21.

기원 66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그 도시는 멸망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군대가 철수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안전을 위해 도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지만 배교한 이스라엘이 형벌을 면했다는 식의 생각은 수그러지게 되었다. 4년 후, 로마인들이 돌아와서 그 도시를 다시 포위 공격하고 마침내 도시를 점령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엄청나게 앗아갔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마지막 요새, 마사다는 3년 후에 함락되었다. 그렇지만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한 참 종교는 존속하였다.

지금 우리 세대에, 거짓 종교 세계 제국 전체가 재난에 직면하여 있다. 또다시 “군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유지하기를 꾀하였던 1세기의 로마 군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군대 역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성서 예언은 UN 회원국 중의 군국주의 세력이 현대의 예루살렘인 그리스도교국과 큰 바벨론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최종 심판을 집행할 여호와의 도구 역할을 할 것임을 지적한다.—계시 17:7, 16.

언제 그런 일이 있을 것인가? 데살로니가 전서 5:3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유행처럼 번지는 평화”

1988년에 미국의 전임 국무 장관 조지 슐츠는 “도처에서 갑자기 평화가 시작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한 외교 정책 전문가는 “유행처럼 번지는 평화”에 대해 말하였다. 독일의 명성있는 주간지 「디 차이트」는 “그처럼 재난으로 얼룩졌던 한 세기의 마지막 십년이, 파괴가 끝나고 평화 건설 시대가 시작하는 것으로 특징을 이룰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하였다. 그리고 「타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란-이라크, 캄푸치아,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심지어 중앙 아메리카에도 평화가 올 것 같다.”

지금 끝나가고 있는 1989년 역시 평화 회담으로 가득하였다. 2월에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이러한 사설을 실었다. “1985년 무렵부터 우리는 초강대국들이 단지 발톱을 감추는 것 이상을 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 오늘날 두 초강대국이 뜻을 합하지 않는 곳은 지상에 거의 한 군데도 없다. ·⁠·⁠· 아무튼, 전에는 그렇게 좋은 전조를 보였던 적이, 즉 양쪽 모두 그렇게 진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동시에 그렇게 여러 걸음을 내디뎠던 적이 결코 없었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상황이 그렇게 밝지 않았다. 저널리스트 로이 라슨은 “1983년 내내 세계 도처의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 평화’를 외쳤지만, 평화가 전혀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때 이후로 일어난 깜짝 놀랄 만한 세계 사건들이 데살로니가 전서 5:3의 성취인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1989년 12월인 지금,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가 전보다 더 가까운 것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하는 종교 지도자들—무엇을 위하여 일하는가?

라슨이 알려 준 대로, 종교 지도자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1983년에 대한 평가를 계속하면서, 라슨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중앙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국가들을 방문한 “평화 순례”를 언급한다. 또한 그해에, 미국의 전국 가톨릭 주교 회의는 “평화에의 도전”이라는 제목의 사목서간(司牧書簡)을 채택하였다. 그 직후에, 100개 나라의 300여 교회 대표자들이 세계 교회 협의회 제 6차 총회에 모여, 비슷한 결의문을 승인하였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자 역시, 라슨이 “평화에 대한 전세계적 열심”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었다.

1948년의 창립 모임과 1966년 회의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는 현대식 대량 살육 무기의 사용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에 따라,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헬무트 골비처 같은 수십명의 교직자와 신학자들은 평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금년초, 골비처의 80회 생일 행사에 즈음하여, 스위스의 한 프로테스탄트 주간지는 그를 가리켜 “정치에 개입하여, 언제나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신학자”로서, “자신의 가르침과 정치적 현실 참여를 통해 많은 신학자에게 또한 교회 내의 평화 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따라서, 그 헌장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것을 호소하는 국제 연합 기구에서 지정한 1986년 국제 평화의 해를 큰 바벨론이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해에, 가톨릭의 교황,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 불교인, 힌두교인, 이슬람교인, 아프리카의 애니미즘(정령 숭배) 신봉자,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유대교인, 시크교인, 조로아스터교인, 신도(神道) 신자, 자이나교인을 포함한 그 밖의 700명의 종교 지도자가 로마 근처의 아시시에서 함께 모여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다.

보다 최근인 1989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는 세계 종교 평화 회의 제 5차 대회를 위해 “불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유니테어리언교, 바하이교, 유교, 자이나교, 신도, 도교, 라자 요가 그리고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신자들이 멜버른에 모였다고 기술하였다. 의미 심장하게도, “약 85개 나라에서 온 600여 명의 대표자들이 ·⁠·⁠· 종교적 차이에 의한 긴장이 오랫동안 전쟁의 주원인의 하나로 악용되었음을 인정하였다.”

종교가 평화를 추구하는 일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 연합 전임 사무 총장, 다그 하마슐드가 한때 이렇게 말한 것이 참됨을 확증한다. “[UN] 기구와 교회들은 지상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들의 교리나 숭배 방식에 관계없이, 선의의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의 참여자로서 보조를 맞춘다.”

그렇지만, 큰 바벨론은 항의 행진과 공공연한 시위 그리고 그 외에 보다 더 미묘한 형태로 정치에 종교적 간섭을 함으로 인해 파멸을 자초할 것이다.a 그러한 일은 이미 상당한 마찰을 초래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미니크회 수사, 앨버트 놀런이 최근에 이렇게 인정한 바와 같다.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평화를 이룩하는 유일한 효과적 방법은 투쟁하는 것이다. ·⁠·⁠· 군비 감축을 이룩하기 위해서, 정부와 충돌을 빚는 것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다.”

큰 바벨론이 계속해서 평화를 외치게 내버려 두자. 교황이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계속해서 전통적인 우르비 에트 오르비(도시[로마]와 세계로)의 축복을 하게 내버려 두자. 현재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지난 5월에 생각했던 것처럼—계속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 평화의 말을 늘어놓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채려고 해도 큰 바벨론의 과거의 유혈죄는 없어질 수 없다. 그러한 죄로 인해 큰 바벨론에는, 인간들 사이의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를 방해한, 이제껏 존재한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인류의 모든 문제는 큰 바벨론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거짓 종교가 UN과 공동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하는 상태를 가져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으로 인해 그의 멸망이 촉발된다는 것은 얼마나 뜻밖의 일인가! 거짓 종교의 끝은 참 종교의 하나님을 입증할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고 말씀하신다.—갈라디아 6:7.

머뭇거리지 말라—생명을 위해 도피하라!

거짓 종교가 심판을 받을 때는 가깝다! 생명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지체하지 말고 큰 바벨론을 떠나는 것이다. (계시 18:4) 멸망을 향한 마지막 초읽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땅에서 사이비 종교와 의사(擬似) 종교인 국가주의가 없어진 후에, 하나님의 정부 아래에는 참 종교만 남을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생존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전망인가! 독자는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포함될 것인가? 독자는 “참 종교의 영원한 아름다움” 가운데 영원히 기쁨을 누리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본지 1990년 1월 1일호에 실릴 이 연재물의 마지막 기사를 읽음으로 그 방법을 알아보기 바란다.

[각주]

a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1988년에 발행한 「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왔다!」 책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인지를 설명한다.

[25면 삽화]

뉴욕의 UN 본부와 세계 평화 상—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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