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0 1/15 3-4면
  • 집 없는 어린이—누구의 책임인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집 없는 어린이—누구의 책임인가?
  • 깨어라!—1990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거리에서 사는 이유
  • 무주택자—세계적인 문제
    깨어라!—1988
  • 집없는 노숙자들—미제로 남아있는 그들의 비참한 처지
    깨어라!—1985
  • 집 없는 어린이—해결책이 있는가?
    깨어라!—1990
  • 집 없는 어린이—돕기가 왜 그토록 힘든가?
    깨어라!—1990
더 보기
깨어라!—1990
깨90 1/15 3-4면

집 없는 어린이—누구의 책임인가?

「깰 때이다」 브라질 통신원 기

어느 날 저녁, 프란시스코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그 지방 피자 집에 간다. 주차장에서 남루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프란시스코의 가족이 식사하는 동안 차를 봐주겠다고 제안한다. 프란시스코와 가족이 식당에서 나오자 소년은 봉사의 대가로 동전 몇푼을 받기 위해 손을 불쑥 내민다. 그와 같은 어린이가 늦은 밤에도 도시의 거리에서 생활비를 벌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는다. 거리가 곧 집이기 때문이다.

집 없는 어린이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로 여겨지며, “고아” 혹은 “버려진 아이”로 불려 왔다. 그들의 수는 엄청나게 놀랄 정도로, 4,000만명 정도나 된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문가들은 모두 그 문제가 세계적으로,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증가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문 앞에 웅크리고 있거나 돈을 구걸하는 집 없는 어린이의 모습은 매우 비참하므로 사회는 그들을 행방 불명자 목록에 냉혹하게 올려 놓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지나친다. 그러나 사회는 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UNICEF(국제 연합 아동 기금)에 의하면 8세에서 17세 사이의 집 없는 어린이의 60퍼센트는 환각제를 사용하고 40퍼센트는 알코올 음료를 마시며 16퍼센트는 마약 중독자이고 92퍼센트는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그들은 장사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종종 구걸이나 도둑질 혹은 매춘 행위로 연명한다. 그들은 “고아”로 자라기 때문에 무법자가 될 위험이 있으며, 무법자는 어느 지역 사회에서나 안전에 위협이 된다.

브라질 신문 「오 에스타두 데 상파울루」는 부랑배에 관하여 이렇게 보도하였다. “그들에게는 가족도, 친척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전혀 없다. 그들은 그날 그날이 최후의 날인 것처럼 산다. ·⁠·⁠· 부랑아들은 ·⁠·⁠· 시간을 조금도 허비하지 않는다. 즉 몇초 만에 십대의 손목 시계를 빼내고 여자의 목걸이를 잡아채며 노인의 주머니를 턴다. 그리고 또한 지체하지 않고 군중 속에서 종적을 감춘다. ·⁠·⁠· 미성년 부랑아들 ·⁠·⁠· 사이에서 성관계는 일찍부터 시작된다. 11세 된 소녀와 12세 된 소년이 동거하다가 한두달 만에, 시작할 때처럼 편리하게 낭만스런 생활을 끝낸다.”

거리에서 사는 이유

집 없는 어린이를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보도가 밝힌 바에 의하면, 거리의 어린이의 30퍼센트는 매우 겁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 어떤 정보도, 이름조차도 당국자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이 거리에서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립하려는 욕망 때문일 것인가? 브라질의 한 소년의 경우는 그러하였는데,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아버지가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멕시코 신문 「엘 우니베르살」에 의하면, 거리의 어린이의 수가 많은 주된 이유는 아버지들이 유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랑아 수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으로서 결혼 생활의 붕괴에 책임을 지울 수 있다.

그에 더하여, 일부 부모들은 자녀를 돌보는 데 무책임하고 자녀를 때리며 성적으로 학대하고 내쫓거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결과, 학대받거나 등한시되는 어린이는 흔히 거리에서나마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이에게는 인자한 돌봄과 지침이 필요하다. 그 점을 UNICEF 집행 이사 제임스 그랜트가 잘 표현하였다. “어린이와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라틴 아메리카 데일리 포스트」지의 한 사설에 인용된 그의 말은 이러하다. “사람은 서너살 때 뇌세포의 90퍼센트가 이미 연결되며, 신체 발육은 생애의 나머지 기간의 형태가 잡힐 정도로 진척된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에는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 즉 온전한 잠재력을 발전시킬 어린이의 권리를 수호하는 것과 아울러 그들이 가정과 국가의 복지에 좀더 온전히 기여할 수 있도록 사람 육성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관찰자들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집 없는 어린이에 대해 경제 체제나 정부 혹은 공공 기관에 책임을 지운다. 같은 사설은 이렇게 계속된다. “인도주의자도, ‘어린이에 투자하는’ 경제 실태도 별로 진보해 오지 않았다. ·⁠·⁠· ‘경제 조정’은 흔히 식품과 일용품 보조금을 삭감한다는 말이었다. ·⁠·⁠· 실직이 늘어나고 실질 임금이 저하되는 것에 뒤따라오는 그러한 삭감은 불경기의 부담을 지탱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극빈 가정과 그 자녀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거리의 어린이의 수가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나라의 경제가 빈약한 데 있음이 분명하다. 부모들은 자녀를 거리에 내보내서 무엇을 해서든지, 어떤 식으로든지 돈을 벌어 오도록 시킨다. 그러면 집 없는 어린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토록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