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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근이영양증을 견디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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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근이영양증을 견디며 산다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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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만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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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0
깨90 1/15 18-21면

나는 근이영양증을 견디며 산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천천히 의자를 접고 불안정한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뻣뻣한 두 다리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면서 한발짝을 내딛었다. 비틀거리며 통로로 나서는 순간, 갑자기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서려면 결단력을 있는 대로 다 발휘해야 할 형편이었다. 키가 큰 금발의 낯선 사람이 우정어린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도와드릴까요?”라고 그 사람이 물었다. 1978년초, 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에서 있었던 이 우연한 만남은 나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왜 넘어졌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모든 일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결함있는 유전자를 나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1948년 1월 16일에, 나는 근육병에 걸린 상태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가 여섯살쯤 되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제 발에 걸려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걸핏하면 넘어졌다. 그 당시에는 의사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의사들은 내 발을 교정하기 위해 부목을 대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증세가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내 발은 부목을 모양 없이 구부러뜨려 쓸모없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양발을 곧게 펴기 위한 수술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도합 칠년 동안이나 부목을 대고 수술을 받고 또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병원을 쓸쓸히 오간 끝에, 의사들은 내 나이 13세 때 마침내 나에게서 손을 뗐다. 그들은 내가 일종의 진행성 근육 소모 질환인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에 걸린 것이며, 스무살 무렵에는 휠체어를 타게 될 것이라고 어머니와 나에게 말했다. 그 예견에 대한 나의 반응은 ‘그건 선생님의 생각이죠! 두고 보셔요!’라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투쟁

내가 다섯살 때,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했다. 어머니에게는 한살부터 열 두살까지 여섯명의 자녀가 남게 되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돌보기 위해 몹시 힘들여 일했지만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많이 쏟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혼자서 해야 하였다.

아마도 다리에 부착해야만 했던 눈에 띄는 부목 때문에 성장기 동안 수줍음이 심하게 나타났지만, 그래도 인생을 즐기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친구도 거의 없었다. 사실, 상급 학년 때 검은 머리의 강건한 십대 소년인 웨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정한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웨인은 간질로 고생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의 입장에 대해 감정 이입을 나타내었고 의사 소통이 아주 잘 되었다. 우리는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종교를 통해 위안을 찾음

웨인은 자신의 종교 곧 크리스천 사이언스로 나를 인도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관심을 끈 부면은 병 고침이었다. 나는 신체적인 제약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위안과 구원을 몹시 얻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후 2년 동안, 대학교에 다니면서 이 종교를 조사해 보고는 마음에 들어 거기에 온전히 몰두하게 되었다.

활동적인 신자로 십년을 지낸 뒤, 나는 지방 지부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일 학교 교육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병 고침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불행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절친하던 친구 한명이 납치되어 살해당했다. 그리고 웨인은 간질의 발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또한, 나는 바랐던 바와 달리 좀더 그리스도와 같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나는 낙담한 나머지 실제로 자살을 계획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계속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우리가 존재하는 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죽기 전에 그것이 무엇인지 꼭 알아내야겠다.’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

하나님과 지상에 사람을 창조하신 그분의 목적에 관해 궁금해 하면서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어머니는 우리를 가톨릭 신앙으로 양육시켰으며 정기적으로 교회에 동반하였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서를 읽도록 격려받지는 않았지만, 성서를 대단히 존중하였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가 되어서는 성서를 여러 번 통독하고 철저하게 연구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이해하고 거기에 담겨 있는 희망과 위안을 얻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어디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관에서 나를 일으켜 주었던 키가 큰 금발의 낯선 사람, 존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그가 나를 부축해 준 일이 있은 후, 여동생과 나는 존과 그의 아내 앨리스를 커피 숍에 초대하여 함께 다과를 들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잃어버린 친구들을 이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에 나는 그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그 가족이 기도할 때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게 좋게 들렸고, 그들의 신앙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성서를 토론했다. 금방 친구가 되어 준 존은 성경을 가지고 내 의문과 거짓 추론을 깨끗이 해결해 주었다. 나는 모든 병과 슬픔이 없는 지상 낙원에 관한 성서의 약속에 근거한, 새로 발견한 희망으로 인해 긍정적인 인상과 크나큰 격려를 받았다. (계시 21:1-5) 토론이 더 발전될 때는 종종 꼭두새벽까지 계속되기도 하였다. 참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 영적 양식을 닥치는 대로 먹었다. 이제 영적으로 새롭게 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가능한 한 새 힘을 주는 모든 마련을 이용하고 싶었다.

그해 가을,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회중 성원들과의 우호적이고 격려적인 교제는 정말 마음을 뜨겁게 하였다. 1979년 봄,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어서 6월 23일에, 형제 여섯명의 부축을 받으며 물에 들어가 침례를 받았다.

침례받은 이래로 내게는 많은 축복이 있었다. 한 가지 축복은 사랑스러운 아내, 팸이다. 어느 친구 집에서 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1981년 3월에 우리는 결혼했다. 우리는 몬태나 주 미줄라 시에 정착하였다. 팸과 네명의 의붓자녀는 나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 주었으며 아직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현실에 대처함

내가 평상시의 일과를 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의 길이는 지금 내가 대처해야 하는 가장 좌절이 되는 부면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날에는 특히 더하다. 그런 날에는 아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혼자서 내 일을 해결한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신장 운동, 세수, 면도를 하고 옷입는 일을 마치면 거의 점심 때가 다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모든 고생스러운 활동을 직업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이 좌절감을 극복하려고 애쓰는데, 그것은 중노동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내가 하는 신장 운동이란 근육과 힘줄이 오그라드는 것을 막기 위한 운동이다. 이것은 혈액 순환이 잘 되게 돕고 힘줄의 많은 고통과 수술 가능성을 줄인다. 또한 근육을 정상으로 유지시킨다.

이따금씩, 아직도 우울해진다. 그럴 때면 여호와께 기도를 한다. 그러면 그분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으려는 나의 결의를 새롭게 해주신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러한 제약을 받아들임으로써, 가혹한 현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걷기를 중단해야만 할 때가 닥치기 전에,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중고 휠체어를 하나 샀다. 그 결과, 1980년 봄, 내 나이 32세에—의사들이 예견한 20세 때가 아니라—휠체어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머감이 도움이 되다

내가 휠체어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겪는 일상적인 문제 한 가지는 화장실에 드나드는 일이다. 내가 방문하는 집이나 우리가 여행할 때 머무는 모텔은 대개 나한테는 편리하지 않다. 휠체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방들조차도 들어가기가 어려운데, 왜냐하면 휠체어를 타는 일부 사람들과 같은 상체의 힘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모텔 객실에서, 화장실 문을 통과할 수가 없어서 휠체어에서 등받이가 똑바른 의자로 옮겨 앉았다. 일을 마치고 다시 휠체어에 옮겨 앉을 때, 아내는 의자를 뒤로 기울이면서 동시에 방향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만 내가 앉아 있는 상태로 의자를 침대와 화장실 입구 사이에 틀어박고 말았다. 아내는 이 딱한 상황에서 나를 건지기 위해 나를 의자에서 끌어내어 침대 위로 올린 다음 의자를 접어서 빼내야 했다. 아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틀림없이 연출했을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둘다 한바탕 웃었다.

한번은 미끄럼판을 사용하여 승용차에서 휠체어로 옮겨 타려고 했을 때 유머감이 도움이 되었다. 내 친구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미끄럼판이 차의 좌석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나는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아내는 운전석에 앉아 있다가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차에서 뛰쳐나와 반대편으로 달려왔는데, “나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My World)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감사함

가족과 친구들이 베푸는 도움을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어려운 상황에서 좌절감을 많이 덜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것을 때때로 간과했었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이 감사의 영을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때가 아주 잦았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가 쉬웠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나에게도 유익하지 않았고 도움을 베푼 사람들에게도 격려가 되지 않았다. 나를 돕는 사람들에게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하여도 감사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나는 더 행복해졌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일도 더 쉬워졌다.

근이영양증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아내와 집에 남아 있는 두 의붓자녀에게도 어려움을 준다. 의붓 가정에 흔히 있는 적응 문제 외에도, 우리는 이 근육병과 관련된 골칫거리와 씨름을 한다. 자녀들과 아내는 나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요일 오전 집회를 위해 서너 시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도, 우리는 곧장 차에 올라타고 떠날 수가 없다. 외투를 걸치고 밴에 올라타고 안전 벨트를 매는 등등의 일에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일에는 가족의 시간과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들은 또한 찬장과 높은 선반에서 물건을 내려 주고 올려 주는 식으로 내가 개인 일을 수행하도록 돕기 위해서 사적인 시간과 활동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 나는 자칫 잘못하여 그만 방이나 땅 바닥에 넘어지는 일이 여러 번 있었으며, 그런 때마다 아내는 190센티미터 키에 몸무게 75킬로그램의 거구를 그 자리에서 휠체어로 들어올려야 했다. 오로지 여호와께 의뢰함으로써 우리는 견디어 나갈 힘과 결의를 가질 수 있었다!

회중 내의 친구들은 내가 집회에 참석하고 오락과 사교 모임을 즐기도록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러한 자진성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격려가 된다. 한 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삐걱거리는 바퀴에 기름을 치는 법이지”라고 말해 준 바와 같다. 그래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혼자 최선을 다해 본 다음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 아니나다를까 가족이나 친구들이 도와주러 온다.

다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방법

휠체어에 타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궁금한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물어보아 지시를 받는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타고 있는 사람이 준비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휠체어를 밀지 말아야 한다. 만일 휠체어에 탄 사람이 그 일을 도움받지 않고 해내야 한다고 느낀다 해도 부디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기 바라며, 또 개인적인 제약을 갖고 있어서 돕기가 힘드는 경우라면 결코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기 바란다. 하지만, 누군가가 물건을 집어 주거나 외투를 걸어 주거나 앞의 장애물을 치워 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나 무척 고맙게 느낀다. 끝으로,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슷한 감정과 욕망 및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거리낌없이 말을 건네기 바란다.

근이영양증과 그와 유사한 질병들은 많은 도전을 제기한다. 내 경험이 다른 일부 사람들처럼 고달프지는 않았지만, 누구든지 땅과 그 거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으로써 유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나는 확신한다.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서 오게 될 미래의 더 나은 생활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근이영양증에 걸린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와 같은 모든 사람에게 견딜 힘을 줄 수 있다. (고린도 후 4:16-18)—데일 T. 딜런의 체험기.

[18면의 데일 딜런의 사진]

[20면 삽화]

데일과 아내인 팸 그리고 두 자녀, 패멀라와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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