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1 3/15 26-27면
  • 어린이의 죽음—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어린이의 죽음—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가?
  • 깨어라!—1991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창조주는 동정심을 나타내신다
  • 죽음이 시작된 때
  • 관련된 우주적 쟁점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맨 마지막 적인 죽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14
  •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 예수의 구원—어떻게?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1
더 보기
깨어라!—1991
깨91 3/15 26-27면

성서의 견해

어린이의 죽음—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가?

자녀를 잃은 많은 부모는 일부 종교들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죽은 자녀를 데려가신 것이 아님을 알고 위안을 얻는다.a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막을 힘을 분명히 가지고 계시는데도 죽음을 계속 허용하고 계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자녀가 죽으면, 부모는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이 있게 내버려두셨는가?”하고 괴로워하며 부르짖을지 모른다. 사고에 의한 것이든 질병이나 폭력에 의한 것이든 죽음은 거의 언제나 몹시 불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이의 죽음은 훨씬 더 그렇게 보인다. 한 공동 묘지에 있는 어떤 어린이의 묘비에 이러한 절망 어린 원망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도 어리고 귀여운 것이 그렇게도 빨리 가다니.”

창조주는 동정심을 나타내신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고통을 허용하실 수 있단 말인가? 최근에 사망으로 자녀를 잃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이치적인 설명을 들을지라도 그런 사별의 고통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서 시대에, 커다란 믿음의 소유자들까지도 인생의 불공정한 비극들에 대하여 몹시 괴로워했으며 하나님께 왜 그와 같은 일들을 허용하시는지 질문하였다. (비교 하박국 1:1-3) 그러나 머지 않아 우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대답이 성서에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린이가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이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악인의 멸망마저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비교 베드로 후 3:9) 틀림없이, 그분은 어린이가 죽을 때 깊은 고통을 느끼신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죽음이라는 비극을 느끼는 것은 죽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동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미약한 정도지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반영한다. (창세 1:26; 요한 1서 4:8) 성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 가장 깊숙한 느낌을 읽으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수도 세시며, 심지어 참새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까지도 아신다고 보증한다. 따라서, 그분은 “자비의 아버지”라고 불린다.—고린도 후 1:3; 마태 10:29-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성 있는 창조물 중에 어느 하나라도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죽음을 끝내실 즉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 (이사야 25:8)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느끼신다면, 왜 이 때까지 죽음, 특히 어린이의 죽음을 허용해 오셨는가?

죽음이 시작된 때

하나님께서는 성인의 죽음을 허용하시는 것과 같은 이유로 어린이의 죽음을 허용하신다. 죽음은 아담의 선택이었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담과 하와(이브)는 에덴에서 자신들의 창조주를 반역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을 정해 놓으셨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불충성하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들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던 가장 귀중한 유산—땅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권리—을 팽개쳐 버렸다. 그들은 일단 죄를 짓자 더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들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곤 죄와 죽음뿐이었다.—창세 3:1-7; 로마 5:12.

그러나 이렇게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대가가 그토록 컸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셨는가? 혹은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이 죄와 고통을 그들의 자녀들—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전에 그들의 반역을 끝내지 않으셨는가?’

관련된 우주적 쟁점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섬기는, 로봇 같은 인간들의 세계를 창조할 의도가 전혀 없으셨기 때문에 첫 조상의 불순종을 허용하셨다. 여느 부모들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간 자녀들이 강요가 아니라 신뢰심과 사랑에서 우러나와 자신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얼마든지 주셨으나,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불순종하였고 그것을 배척하였다.—창세 1:28, 29; 2:15-17.

하나님께서는 왜 그 반역자들을 그때 그 자리에서 즉각 처형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땅이 언젠가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목적을 공표하셨다. 그분은 반드시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분이다. (이사야 55:10, 11)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으로, 매우 중대한 질문이 에덴에서 제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스릴 권리를 가지고 계신가, 그리고 그분의 방법이 최상인가, 아니면 사람은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하고 공정한 방법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려 보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역사는 냉혹하게 그 질문에 대답해 준다. 인간 통치의 비참한 결과는 도처에 널려 있는데, 순진 무구한 어린이의 죽음이 다반사로 일어나 다른 수많은 불행 속에서 거의 잊혀지고마는 정도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제외하고라도, 6천 년 간의 인간 통치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왔다. 즉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서글픈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형편 없는 거짓말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 없이 다스리는 한, 인간은 고통 속에 살고 고통 속에 죽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자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더욱 현명한 선택을 하신다. 부모가 자녀의 행복과 건강한 장래를 위하여 사랑하는 자녀의 고통스러운 수술을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원한 장래를 위하여 인간 스스로의 고통스러운 통치를 허용해 오셨다. 그리고 수술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같이, 인간 통치와 그 불공정도 곧 끝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이 반대받는 일 없이 이 땅을 다스릴 때, 수많은 어린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어 환영받게 될 것이다. 기원 1세기에 예수께서 부활시키셨던 어린이의 부모처럼, 그때 많은 사람은 “크게 놀라고 놀라”게 될 것이다. (마가 5:42; 누가 8:56; 요한 5:28, 29) 그리고 모든 인류가 마침내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완전한 상태로 회복된 때에는 어린이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결코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다!—계시 21:3, 4.

[각주]

a 본지 1991년 2월 15일 호에 실린 “성서의 견해—‘하나님은 왜 내 아이를 데려가셨나요?’” 참조.

[27면 삽입]

수많은 어린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어 환영받게 될 것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