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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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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1
깨91 7/1 5-8면

화해할 수 있는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패어 있는 골은 대학살로 인한 것보다 더 깊은 것이다. 시초부터 이 두 신앙은 핵심이 되는 쟁점 즉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인가 아닌가를 놓고 사이가 벌어졌다.

제1세기에는, 메시야에 관한 쟁점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인 박해를 당했다. (사도 8:1) 하지만 후에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이 유대인을 개종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유대 민족은 전반적으로 시초의 입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유대인 필자는 유대인들이 개인으로서의 예수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예수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열렬히 기대한 정치적 메시야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하였다.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보다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처럼 믿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우리 유대인과 당신네 그리스도인」[We Jews and You Christians]) 이러한 의견 차이로 인해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종교상의 골이 팬 것이다.

화합의 장애 요소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교리상 예수 없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비교 사도 4:12; 디모데 전 2:3-6.

다른 한편으로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국에 만연해 있는 우상 숭배 행위를 혐오한다. 삼위일체 교리 역시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본질”—“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시니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일신교적 교리—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으로서 멸시한다. (신명 6:4, 「손시노 후마시」) 학자인 제이커브 조크스는 이렇게 피력하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교회와 회당 사이에 팬 골이 그토록 깊고 의미 심장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은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유대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The Jewish People and Jesus Christ).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또한 모세의 율법과 그 전통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랍비 스튜어트 E. 로젠버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계약이 없었다면 유대 민족도 없었을 것이다. 그 계약이 바로 유대 민족을 형성한 것이며 그들은 결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시초부터 이스라엘의 계약과 문제가 있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형주]에 못박으[셨느니라.]”—골로새 2:14, 「신세」 참조.

모세의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거나 ‘하나님께 이르는 서로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볍게 다루는 교회 신학자들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교회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신약”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신학상의 곡예를 부리다시피 해야 한다. 즉 비평적인 성서 구절을 교묘하게 꾸미거나 왜곡하거나 심지어 없는 것처럼 무시해야 한다. 혹은 일부 신학자들이 하듯이, 문제가 되는 성구들을 본래 확실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으며, 베드로가 사도 행전 4:12에서 한 말 곧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유일한] 이름”은 예수라고 한 것은 후에 바울 신학의 영향을 받아 조작된 것이라는 등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 추종자들의 믿음을 침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제이커브 조크스는 이러한 말로 문제를 잘 요약하였다. 두 믿음에는 “‘가교[架橋] 신학’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 요소가 전혀 없다. 오로지 굴종에 의한 타협이 있을 따름이다. 즉 교회가 회당이 되든지 회당이 교회가 되든지 해야 할 것이다.”

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런 타협에 이르는 데도 험난한 장애 요소가 있다. 유대인들의 경우 개종을 제안하는 것만도 혐오할 만한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이 유대인들에게 내세울 만한 무슨 일을 했는가?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교인에게 자행한” 역사상의 참상들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신네 종교가 우리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판단에 우리가 동의할 것이라고 이치적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교는 더 나은 사람을 산출해 왔는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나라들 가운데서 평화와 전쟁 문제를 해결하고 번영과 평온을 가져왔는가?”

대학살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종교로서, 문화로서 유대인의 생존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개종을 단순히 이단 교리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대교 예배지」(Journal of Jewish Communal Service)는 이렇게 개탄하였다. “우리는 새로 성인이 된 유대인 세대 중 그 누구도 잃을 수 없다. ·⁠·⁠· 나치가 대학살로도 이루지 못한 것이 [개종 활동]을 통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랍비 헨리 시그먼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강요된 개종에 대한 기억은 유대 민족의 의식 속에 깊이 사무쳐 있으며 그리스도인-유대인 관계 발전에 가장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되어 왔다.”

실제 쟁점의 직면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과 유대교 사이의 진정한 화합은 요원하다. 연합하려는 노력은 양립할 수 없는 신학, 상충되는 정치적 이해 관계, 상호 불신에 의해 계속 침식된다. 종교상의 대화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불화를 야기한 쟁점 즉 예수가 메시야라는 주장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분명하게 처리해야만 두려움과 불신이라는 해묵은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를 거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거부감은 여러 세기 동안 예수의 이름으로 이어져온 반유대주의가 낳은 어쩔 수 없는 최종 산물이다. 그렇지만 십자군을 일으킨 장본인은 예수가 아니었다. 예수는 종교 재판을 시작하거나 대학살의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한 극악 무도한 행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거짓되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행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 자신의 말씀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분은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시면서 참 그리스도교의 지침이 되는 원칙 중 하나로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였다. (마태 22:39; 레위 19:18)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국을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 분명히 그리스도교국의 특징은 예수께서 실제로 가르치신 것에서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종교라는 것이다.

기록을 바로잡음

여호와의 증인은 유대인이 겪은 엄청난 고통의 원인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임을—그리스도교 자체가 아님을—유대인들이 이해하기를 원한다. 증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와 관련하여 충분한 지식을 근거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예수에 대해 편견 없고 왜곡되지 않은 견해를 가지기를 원한다. 그뿐만 아니라, 증인들은 예언자들이 오래 전에 예언한 메시야 시대가 임박했다는 확신을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한다! 그러면 유대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원할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는 증인들은 숭배에서 우상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또한 삼위일체 교리—유대교에서 혐오하는 또 다른 신앙—를 믿지 않음으로 유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또한 증인들은 이교적이고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배척한다.a 사실, 증인들은 결코 그리스도교국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대학살뿐 아니라 반유대주의의 유혈 역사에 있어서도 책임질 일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 중에서 여호와의 증인만이 예수께서 요한 복음 17:16에서 ‘세상에 속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따라왔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관련된다. 지식 있는 유대인이라면 제2차 세계 대전중에 독일 증인 1000여 명이, 대학살의 말 없는 공범자가 되느니 희생자가 되는 길을 택하여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사망하였음을 알 것이다.b 그들이 나치주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중립을 고수한 것은 참 그리스도교의 힘에 대한 빛나는 증거다. 그리스도교국이 그렇게 하였더라면 대학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 물론 모든 유대인이 증인들의 방문을 고맙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점을 인정한다. (로마 10:10)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들은 우리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또한 당신들이 중요시하는 이것[전파 사명]을 버렸음을 암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가?”—「우리 유대인과 당신네 그리스도인」.

여호와의 증인은 바로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증인들은 존경하는 태도로 이웃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을 그토록 오랫동안 갈라놓은 쟁점인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고려해 보도록 권한다. 무엇 때문에 이 희망이 생겨났는가? 그리스도인의 견해와 유대인의 견해는 어떻게 그토록 달라지게 되었는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현재 반유대주의가 증가하는 일로 인해 예수에 관한 문제가 이전 어느 때보다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다음 기사에서 그 대답을 알려 주고자 한다.

[각주]

a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 참조.

b 본지 1989년 4월 15일 호에 나오는 “대학살—희생자인가, 순교자인가?” 참조.

[6면 삽입]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은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

[7면 삽화]

소위 그리스도교인들의 활동은 그리스도교를 결코 사랑의 종교로 추천할 수 없었다

[자료 제공]

U.S. Army

[8면 삽화]

그리스도교국의 우상 숭배와 삼위일체 교리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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