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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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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2 3/15 11-13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진정한 신세계

“이름이란 불확실한 것,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경험에서 나온, 사리에 맞는 이 견해는 콜럼버스의 경우에도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콜럼버스는 그의 첫 이름 크리스토퍼(크리스토포로)가 의미하는 바대로 어쨌거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아무튼 스페인의 군주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가톨릭 신앙의 확장”을 위해 콜럼버스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원주민들에게 십자가를 긋게 하고 아베 마리아를 부르도록 가르친 후 보다 실속 있는 상에 몰두하였다. 그 상은 금과 찾기 어려운 인도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일부 가톨릭교인들은 콜럼버스가 그리스도교국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성인”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견으로 인해 오게 된 대규모 “개종”은 신세계 주민들에게 진실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는 일을 별로 하지 못하였다. 진정한 그리스도교는 언제나 칼이 아니라 평화로운 수단에 의해 확장되었다. 복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비교 마태 10:14; 26:52.

콜럼버스(스페인어로 콜론)는 “식민지 개척자”를 뜻하는 그의 성에 걸맞게 생활하는 면에서 더 성공을 거두었다. 신세계에서 최초로 유럽인의 두 식민지를 세운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였다. 이들 식민지는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지만, 다른 식민지들이 곧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식민지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하였다.

서인도 제도의 시초 식민지 작업을 목격한 도미니크 수사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그러한 악행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되는 ‘탐욕이나 야망 외에는 아무런 정당한 대의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압제하고 죽이며 짓밟으면서 그들에게 강요하는 왜곡된 정의’에 대해 스페인의 필립 2세 왕에게 항의하였다.

극심한 학대는 후에 시정되었지만 이기적인 동기와 무자비한 방법은 정책 집행을 위해 지속되었다. 그런 통치가 혐오의 대상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식민지 멍에에서 벗어났다.

대륙을 그리스도교국으로 개종시키고 여러 부족과 언어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을 정의롭게 다스리는 일은 물론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대양을 건너가 이른바 “두 세계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토대를 놓은 거대한 계획의 온갖 실패에 대해 그를 탓하는 것도 부당한 일일 것이다.

커크패트릭 세일은 저서 「낙원의 정복」(The Conquest of Paradise)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한때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나라, 그들이 어렴풋이 낙원일 것으로 인정한 나라에서 새로운 정박지를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신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신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신세계를 이룩하려다 실패한 사례는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장대한 여행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기 이천 년 전, 약 20만 명이 또 다른 장대한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대양을 건넌 것이 아니라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고토인 이스라엘을 향해 서쪽으로 갔는데, 그들 대다수는 고토를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과 자손을 위해 신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바벨론(바빌로니아)의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고된 여정은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었다. 예언자 이사야는 200년 전에 그들이 고토로 돌아올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보라 내[주권자인 주 여호와]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65:13, 17.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관리 체계와 새로운 인간 사회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비유적인 용어였다. 이런 것이 필요한 이유는 진정한 신세계에는 식민지로 삼을 새로운 영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세계에는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새롭고 비이기적인 영이 있어야 한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 중 그런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수밖에 없었다. 시초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하였으나, 히브리 예언자 말라기는 그들이 돌아온 지 약 100년 후에 그 땅에서 이기심과 탐욕이 어느 정도나 지배적인 힘이 되었는지를 서글프게 묘사하였다. (말라기 2:14, 17; 3:5) 유대인들이 신세계를 건설할 독특한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는 신세계

그렇지만 과거에 신세계를 세우려고 한 일이 실패하였다고 해서 신세계를 찾을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사야의 말을 되풀이하여 이런 극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그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시 21:1, 4.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온 땅을 다스릴 새로운 정부 그리고 그분의 다스림에 순응할 사람들의 새로운 사회를 세우기로 작정하셨음을 보증해 준다. 그 혜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신세계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신세계는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쪽으로 가면 대륙들이 있다는 콜럼버스의 확신 역시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신세계에 대한 묘사 역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15세기 학자들 중에서 지구의 육지 면적의 3분의 1이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음을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콜럼버스 시대의 과학적 무지는 신세계의 발견을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로 여기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적과 그분의 능력에 대한 무지 역시 그분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를 이러한 말씀으로 끝맺으신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시 21:5.

의문의 여지 없이 인류는 모두 모종의 신세계를 열망한다. 멕시코의 저술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 “유토피아는 과거의 것이자 미래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때 있었으나 더는 없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추억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의롭고 보다 평화스러운 더 나은 세계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다.”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더 나은—환상 속의 유토피아가 아닌—세계를 약속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에 그 세계가 참으로 올 것임을 확신한다.—마태 19:26.

지평선상에 보이는 신세계

콜럼버스가 선원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육지에 다가가고 있음을 확신시키려고 애썼을 때, 필요한 것은 믿음만이 아니었다. 콜럼버스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하였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싱싱한 식물, 육지 새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는 것, 마침내 꽃이 달린 나뭇가지들이 물 위에 떠다니는 것으로 인해 선원들은 그들의 제독을 다시 신임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신세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보이는 증거가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통치를 참으시는 것이 급속히 그 끝에 다다르고 있음이 분명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분은 오래 전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계시 11:18) 탐욕과 이기심은 세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초래하였다. 성서는 그런 문제들이 하나님의 개입이 임박함을 보여 주는 사태 발전이라고 미리 생생하게 묘사하였다.a

콜럼버스는 500년 전 쿠바 섬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외쳤다고 한다. 하나님의 신세계에 들어서는 사람들도 그와 똑같이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각주]

a 하나님의 신세계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성경적 증거를 분석하기 위해,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제18장 참조.

[13면 삽화]

신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신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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