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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오락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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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오락을 선택할 것인가?
  • 깨어라!—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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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2
깨92 11/15 8-10면

무슨 오락을 선택할 것인가?

오락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는 것과, 선택하는 오락에 대해 균형을 나타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오락을 합당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오락의 상당 부분은 허섭스레기이며,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하여간, 우리에게는 날마다 결정할 일이 있으며, 그런 결정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오락 산업은 결정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선택의 폭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성서는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도를 베풀어 왔다. 현대 과학 기술로 인해 성서 원칙이 쓸모없게 된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 원칙은 이 고난의 때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유용하고 필요하다. 그러므로 오락의 위험한 두 가지 부면—오락의 내용과 오락에 드는 시간—과 관련하여 어떻게 성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성서의 지침은 무엇인가?

한 청년이 자살했다. 알고 보니, 청년은 자살을 조장하는 헤비 메탈 록 음악에 깊이 빠져 있었다. 14세 된 한 소녀가 곤봉으로 어머니를 때려 죽였다. 소녀 역시 헤비 메탈 음악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15세 된 한 소년이 어느 여자를 죽였다. 소년의 변호사는 소년이 끔찍스런 공포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폭력배의 폭력을 다룬 영화가 상영되자, 바로 극장 안에서 그리고 그 영화를 보려고 밖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폭력배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선택하는 오락물의 내용이 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지엽적인 증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서 원칙은 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의미 깊은 말씀을 고려해 보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언 13:20) 일부 오락은 미련한 사람 곧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사람과 동행하는 것 즉 그런 사람과 교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고린도 전서 15:33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유익한 습관”, 「신세」]을 더럽”힌다고 알려 준다. 여기에는 결코 애매 모호한 점이 없다. 이 점에 대해 통계 자료를 놓고 서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전문가는 없다. 그것은 인간성에 관한 참다운 법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과 수시로 교제한다면, 우리 자신의 습관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한 성서 원칙은 스포츠, 영화, TV 및 음악계의 스타들을 우상화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도움이 된다. 그런 스타들이 직업 활동과 개인 생활 전반에서 흔히 폭력이나 부도덕을 미화하는데도, 그들의 팬들—특히 청소년—은 그들을 우상화한다. 최근에 「유러피언」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인기 가수들이 한때 많은 청소년의 생활에서 종교가 맡았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사회학자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시편 146:3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한 말을 유의하는 것이 좋다. 그런가 하면 잠언 3:31은 이렇게 말한다.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또 하나의 주요 원칙은 이것이다. 즉 결정할 때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만 아니라, 좀더 민감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 회중의 여러 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고린도 전 10:23-33) 적극적인 면으로 볼 때, 성서 원칙은 또한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오락의 표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교훈하였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 4:8.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원칙의 인도를 받았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살육과 잔인 무도한 행위가 난무하는 검투 경기가 합당한 오락이 아님을 명시하는 뚜렷한 법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단지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은 원칙을 적용하여 자신과 가족 및 회중을 보호하였다.

선택하는 방법

오늘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락을 선택할 때 참 그리스도인은 먼저 오락물의 도덕적 내용을 검토한다. 어떻게 검토할 수 있는가? 예로서, 음반을 사기 전에 표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음악의 선전문은 어떠한가? 그 음악이 조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속한 가치관인가? 증오심인가? 반항 정신인가? 분노인가? 성과 성적인 유혹인가? 가사를 검토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책의 경우에도 흔히 표지에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고, 그 책에 대한 논평이 실려 있기도 하다. 영화 역시 종종 지방 신문이나 잡지에 논평이 실린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영화 등급제를 실시한다. 오늘날의 타락한 세상이 특정한 오락물을 성적으로 너무 노골적이고 부도덕하거나 폭력적이라고 규정할 경우,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표준을 낮추어 기꺼이 그런 오락물을 정신과 마음에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한편 현명한 왕 솔로몬은 이렇게 경고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전도 7:16) 오락과 관련하여 매우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이 바로 독선적인 태도다. 우리는 자신이 성서 원칙을 주의 깊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한 후 선택한 것에 대해 단호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이 다소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을 알게 될지 모른다. 이런 일로 인해 즐거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갈라디아 6:4.

어느 정도가 지나친 것인가?

이 세상의 가치 체계는 여가에 우선 순위를 배정하는 면에 있어서 한심할 정도로 균형을 잃었다. 예로서, 최근에 상업지 「유원지와 레크리에이션」(Parks & Recreation)에 실린 한 사설은 레크리에이션을 “삶의 요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최근에 레크리에이션을 갖기에 인기 있는 시간인 토요일 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계산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평일이 토요일 밤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토요일 밤은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밤이다.” 심지어 일부 사회학자들은 세상의 좀더 부유한 나라들의 사회가 현재 여가를 기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교 자체는 여가 활동의 한 부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우선 순위가 뒤바뀐 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오래 전에 성서는 이 위험한 “마지막 날”(「신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디모데 후 3:1-4) 그러나 성서 원칙은 우리가 합당한 순서대로 우선 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가 12:30, 「신세」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여가 활동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최우선 순위에 둔다. 심지어 세속 직업을 그 중요한 천직인 봉사의 직무를 뒷받침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마태 6:33.

그러므로 오락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은 비용을 계산해 보아야 하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바칠 가치가 있는지를 고려해서 할애할 시간을 결정해야 한다. (누가 14:28) 어떤 오락을 추구하든지, 오락 때문에 개인 또는 가족 성서 연구, 동료 신자들과 갖는 시간,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 필수적인 가족 의무와 같은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런 오락은 추구할 가치가 없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실상을 알려 준다

우리가 오락에 바치는 시간의 양은 우리의 우선 순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마치 우리가 선택한 오락의 내용이 우리의 도덕관과 헌신의 진실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선택한 오락은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지지하는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준다. 우리가 선택한 오락은 벗들, 가족, 회중에게 우리가 균형 잡힌 사람인지 완고한 사람인지, 일관성 있는 사람인지 위선적인 사람인지, 의로운 사람인지 독선적인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자신 및 가족의 신앙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자. 모든 사람의 마음과 동기를 감찰하시는 창조주 앞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13은 이렇게 말한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 오락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 곧 ‘우리는 참으로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그분의 원칙의 인도를 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실 수 있다.

[8면 삽화]

우리가 선택하는 오락은 우리 자신과 가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9면 삽화]

우리는 보고 듣고 읽을 것을 주의 깊이 선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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