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앤드루—이 무서운 폭풍우에도 파괴되지 않은 것
허리케인도 여러 가지다.a 일부 허리케인은 단지 큰비를 몰고 오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강한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남플로리다(1992년 8월 24일)와 루이지애나(1992년 8월 26)에는 허리케인 앤드루가, 하와이 카우아이에는 허리케인 이니키가(1992년 9월 12일), 그리고 괌에는 태풍 오마가(1992년 8월 28일) 있었다.
이 폭풍우들이 초래한 파괴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플로리다에서는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 가족이 집을 잃었다. 보험 회사 직원들은 집주인들을 찾아다니며 피해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느라 파손된 집 주위를 급히 돌아다녔다.
여호와의 증인의 포트로더데일 구호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 지역 여호와의 증인 주택 1033채 가운데 518채가 복구되어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이 비율을 일반적으로 적용해 본다면, 앤드루가 지나간 길에 있던 전체 주택 중 적어도 50퍼센트가 파손되었을 것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다음에, 아직 쓸 만한 집에서는 가구와 커튼을 말리고, 손상된 지붕을 통해 많은 빗물이 흘러들어와 천장 재료가 씻겨내리는 바람에 하얗게 된 바닥을 청소하였다. 많은 사람은 폐허가 된 자기 집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사정이 가장 딱하게 된 사람들은 주택보다 덜 견고한 이동 주택 혹은 트레일러에서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허리케인 앤드루가 사정없이 강타하다
그런 이동 주택에 살던 사람 중에 레너드 키퍼와 테리 키퍼 부부가 있다. 이들은 이동 주택이 있는 곳인 플로리다 시의 이동 주택촌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군 검문소에서 신분 조사를 받아야 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이동 주택촌은—폭파되어 움푹 파인 구멍은 없었으나—마치 수백 개의 고성능 폭탄에 강타당한 것 같았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있었다. 이동 주택의 벽이나 지붕으로 사용된 알루미늄 판들이 엉망으로 꾸겨진 채 나무를 휘감고 있는가 하면, 마치 기괴한 축제 장식품같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전선이 도처에 흩어져 있었고, 나무 전봇대는 성냥개비처럼 뚝 부러져 있었다. 자동차들은 뒤집혀 엉망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보브 밴 다이크는 자신의 새 집이 거주 부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그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천장이 무너져 내려 깨질 만한 것이나 찌그러질 만한 것은 다 깨지고 찌그러지는 바람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군요.”
개인 소유물, 장난감, 의복, 사진, 책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서글프게도 이전의 생활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외로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폐허 속에서 떠돌아다녔다. 고양이가 묘한 눈길로 키퍼 부부를 다시 바라보았다. 작은 도마뱀들이 이전에는 누군가의 귀중한 소유물이던 물건들 위로 잽싸게 지나갔다. 부서진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음식들 썩는 냄새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처참하게 파괴된 광경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바람, 그것도 시속 26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 때문이었다.
이러한 재해는 집주인이나 거주자들에게는 실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경험이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그들이 여러 해 동안 가족을 양육하고 살아온 특별한 보금자리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부서진 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키퍼 부부의 경우, 지난번에 왔을 때 소유물 일부를 건지기는 하였지만, 이제 폐허가 된 집을 샅샅이 뒤지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는 것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였다.
허리케인 앤드루는 사정없이 강타하였다. 쇼핑 센터, 공장, 창고—모든 것이 자연의 맹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만든 건축 법규가 그 앞에선 있으나마나였다.
인간 본성의 양단면
구호 기관들이 속속 조직됨에 따라 미국 각지에서 플로리다로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는 상황에 즉시 대처하였으며 구호 위원회를 임명하여 포트로더데일 대회 회관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통치체는 또한 자재, 식품, 비상 물품 들을 구입하도록 상당량의 구호금을 배정하였다. 그 결과, 증인들은 상황에 즉각 대처하였으며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온 사람들도 많았다.
증인 봉사자들은 캘리포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오리건, 워싱턴 주, 펜실베이니아, 미주리 그리고 기타 여러 곳에서 왔다. 평소에는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버지니아 지역 건축 위원회는 18명으로 된 지붕 수리반을 보냈다. 그 곳에서 플로리다까지 자동차를 몰고 오는 데 18시간이나 걸렸다. 구호 봉사자들은 휴가를 낸 다음, 재해를 당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려고 전국에서 수백 킬로미터 심지어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차를 몰고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지역에서 온 구호반이 무척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이미 지난 1989년에 허리케인 휴고를 겪은 적이 있다.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곧 발전기와 건축 자재를 포함한 구호 물품을 준비하였다. 2주도 채 안 되어, 자원 봉사자들은 약 800채의 집을 말끔히 치워 놓았으며 지붕도 많이 수리하였다.
증인이 아닌 많은 배우자와 이웃 사람들도 증인 복구반이 제공한 도움으로부터 유익을 얻었다. 웨스트홈스테드에 사는 론 클라크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믿지 않는 배우자들은 이 모든 일로 인해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증인들이 그들을 위해 이미 해준 일로 인해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증인의 믿지 않는 남편에 대해 론은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군요. 증인들이 현재 그 사람의 집에서 지붕을 얹고 있으니까요.”
또 다른 증인은 자신이 밤마다 안부를 확인한, 증인이 아닌 이웃 사람에 대해 말하였다. 이웃 사람은 별일 없다고 말하곤 하였다. 닷새째가 되자, 그 부인은 정신없이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기 기저귀가 다 떨어졌어요. 아기에게 먹일 것도 떨어져 가고요. 식품과 물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의 남편은 20리터의 휘발유가 필요했지만 어디에서도 살 수 없었다. 바로 그날, 그 증인은 왕국회관 구호품 저장소에서 그 부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모두 갖다 주었다. 그 부인은 고마워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구호 활동을 위해 기부하였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은 재해 지역의 복구된 여러 왕국회관에서 구호 활동을 조직하며 함께 일한 회중 장로와 봉사의 종들이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증인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한 공군 장교가 다른 지역의 구호 노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책임자들은 모두 명령만 내릴 뿐이었다. 발벗고 나서서 실제로 궂은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 본성의 양단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간 본성의 나쁜 면에 대한 한 예는 약탈이었다. 한 증인 가족은 현지 왕국회관에 설치된 구호소에서 사용하려고 적어도 냉장고와 세탁기만은 건져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트럭을 가지러 왕국회관으로 갔다. 그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약탈자들이 그 두 가지 물품을 모두 훔쳐가 버렸다!
한 목격자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황폐된 거리를 지나다 보니, 약탈자는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인 집들이 눈에 띄었다. 경고문들 중에는 이런 것들도 있었다. ‘약탈자는 죽일 것임.’ ‘약탈자에게는 발포함.’ 이런 경고문도 있었다. ‘약탈자 두 명이 총에 맞음. 한 명 사망.’ 상점과 쇼핑 센터는 이미 약탈당하였다.” 82공수 사단 소속의 한 하사관에 의하면, 적어도 약탈자 한 명은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재해가 발생하면 범죄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독수리처럼 언제라도 급습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른바 보통 사람들마저도 약탈질에 휩쓸려 들어간다. 종교, 윤리, 도덕도 공짜로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유혹 아래서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 같다.
본지가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재해 발생 초기에 무장한 약탈자들이 몇몇 군인들의 탄약이 들어 있지 않은 소총을 훔쳐가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왕국회관 구호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말한 군인들도 있었다. 그 이유가 그들의 이러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댁들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실의에 빠져 주저앉지는 마십시오”
여호와의 증인은 자연재해를 겪고서 무엇을 배웠는가? 되도록이면 빨리 영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홈스테드에 사는 한 감독자, 에드 룸시는 한 건물 안에 붙어 있는 두 왕국회관의 경우 허리케인이 월요일에 있었는데도 수요일에 열리는 집회를 볼 수 있게 준비하였다고 본지에 말하였다. 지붕 일부가 바람에 날려가 버렸고, 천장은 무너졌으며, 물이 들어왔다. 자원 봉사자들은 왕국회관에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원상 복구하기 위해 그리고 황폐된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인도할 지휘소로 사용하기 위해 신속하게 일하였다. 재해를 당한 사람들과 구호 봉사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곳에 취사장을 세웠다.
프린스턴 스페인어 회중의 장로인 페르민 파스트라나는 80명의 증인이 있는 소속 회중에서 일곱 가족의 집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보고하였다. 그는 동료 증인들에게 무슨 치유책을 제시하였는가? “울고 싶으면 우십시오. 그러나 실의에 빠져 주저앉지는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활동적이 되고, 되도록이면 봉사하러 나갑시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집회들에 빠지지 마십시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십시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안달하지 맙시다.” 그 결과, 증인들은 곧 집집으로 전파하는 동시에 구호품 상자들을 나누어 주었다. 허리케인 앤드루가 그들의 열심마저 날려 보내지는 못하였다.
‘다음에는 꼭 대피하겠어요!’
커틀러리지에 사는 37세 된 여자 섀런 캐스트로는 본지에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아버지는 대피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지난번 허리케인이 플로리다 해안을 스치고 지나간 것으로 보아 앤드루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심지어 창문을 판자로 막지도 않을 생각이었어요. 다행히도, 동생이 와서는 합판으로 창문을 가려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동생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창문은 산산조각 났을테고 우리도 온몸에 상처투성이였을 겁니다.
“새벽 4시 30분경에 전기가 나가더군요. 밖에서 나는 굉음으로 인해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열차가 달리는 소리 같았습니다. 나무가 부러지고 건물들이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소리는 우리집 지붕에 박혀 있던 대못들이 빠지면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장식벽이 바람에 날려갔고 지붕의 3분의 1도 날려가 버렸습니다. 결국 환자인 어머니와 90세 된 외할머니를 포함하여 우리 열두 명은 창문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방에 피해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꼼짝없이 죽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섀런이 그 경험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에는 대피하라는 경고가 있으면 꼭—군말 없이—대피하겠어요. 경고에 주의를 기울일 겁니다. 또한 나누어 주는 법과 아주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울고 슬퍼한 다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론의 반응
보도 매체들까지도 증인들이 참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서배너 이브닝 프레스」지는 “플로리다 남부에서 환영받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표제를 실었고, 「마이애미 헤럴드」지는 “증인들은 동료 신자는 물론 다른 사람도 돌본다”라고 보도하였다. 동지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이번 주에 홈스테드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문전 박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설사 아직 꽝 닫아서 박대할 문이 있을지라도 그러하였다. 약 3000명의 증인 자원 봉사자들이 전국에서 재해 지역으로 몰려들어 먼저 동료 신자들을, 다음에는 증인이 아닌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 군대 조직조차도 증인들의 정확성, 일사 불란함, 효율성을 부러워할 정도였다.”
증인들은 자신들의 여러 대회에서 대규모 급식 마련을 조직해 본 경험이 있다. 더욱이, 그들은 왕국회관과 거대한 대회 회관을 건축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 수백 개의 지역 건축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증인들은 통보만 하면 몇 시간 안에 언제라도 응할 수 있는, 훈련받은 인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태도다. 동 기사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관료주의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존심으로 인한 다툼도 없다. 오히려, 봉사자들은 아무리 덥거나 더럽거나 피로에 지쳐 있다 할지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쾌활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 한 증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도록 우리를 고무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것은 허리케인 앤드루에도 파괴되지 않은 특별한 것, 바로 증인들의 그리스도인 사랑이었다.—요한 13:34, 35.
증인들은 나무로부터 흥미로운 대조를 배운 것처럼 보인다. 한 목격자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다. “돌아다니다 보니,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가 수백 그루나 되더군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나무들은 덩치가 큰 탓에 바람의 힘을 많이 받은데다 뿌리도 넓게 퍼져 있기만 하고 깊이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반면에, 가느다란 야자나무는 대부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야자나무들은 바람에 휘기도 하고 잎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 있어 융통성 있는 반응을 나타낼 수 있었다. 소유물이나 집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은 살아 있었으며 역경이라 할지라도 계속 여호와를 섬길 수 있었다. 허리케인 앤드루는 그들에게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지 못했다.
어떻게 구호 활동이 수행되었는가?
안회저 부시 회사가 한 트럭분의 식수를 기증하였다. 트럭 운전사는 도착하자마자 관리들에게 물을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조직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오직 증인들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앤드루가 강타하고 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화물 트레일러 약 70대분의 물품이 여호와의 증인의 포트로더데일 대회 회관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서 일한 한 자원 봉사자는 이렇게 보고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한 트럭분의 식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즉시 왕국회관들에 설치된 분배소로 보내려던 다른 식품들과 함께 그 식수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지역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식수가 분배되었습니다.” 워싱턴 주에 있는 한 제지 공장에서는 25만 장의 판지를 기증하였다.
처음에 시 당국은 증인이 아닌 자원 봉사자들에게 ‘증인들은 적절히 조직된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여러 왕국회관으로 보냈다. 마침내 부대가 들어와 식품 및 식수 구호소와 천막촌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시초에 증인의 구호 위원회는 구호품 중계소를 포트로더데일 대회 회관에 세웠는데, 그 곳은 홈스테드 부근의 주요 재해 지구로부터 북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다. 작업량을 다소 줄이기 위해 일차 구호품 중계소를 올랜도 부근에 있는 플랜트 시 대회 회관에 설치하였으며, 그 곳은 재해 지구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 곳에서 대부분의 구호 물자를 분류하고 포장하였다. 구호 위원회는 날마다 플랜트 시에 필요한 물자를 요청하였으며, 플랜트 시에서 거대한 화물 트레일러를 사용하여 포트로더데일까지 운반하는 데는 다섯 시간이 걸렸다.
이어서 이 구호품 중계소는 식품, 자재, 물, 발전기 그리고 기타 필요한 물품을 재해 지역 중심에 있는, 복구된 세 군데의 왕국회관에 공급하였다. 그 곳에서 유능한 증인들이 건축반과 청소반을 조직하여 도움이 필요한 수백 가정을 방문하게 하였다. 또한 취사장과 식사대가 왕국회관 뜰에 설치되었으며, 식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을 받았다. 군인 중에서도 식사를 즐긴 사람들이 있었으며 식사를 마친 후 구호함에 기부금을 넣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남자들이 집을 바쁘게 수리하는 동안, 여자들 중 일부는 식사를 준비하였다. 일부 여자들은 밖으로 나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문하였는데, 자연재해에 대한 성서의 설명을 알려 주기 위해서, 또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는 테레사 페레다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의 경우, 집이 손상되고 자동차 유리가 박살났다—하지만 그 자동차에 구호품 상자를 실어 놓았는데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그의 남편 라사로는 한 왕국회관에서 일하느라 바빴다.—전도 9:11; 누가 21:11, 25.
집을 잃은 많은 사람은 앤드루로 인해 해를 입지 않은 증인들의 집에서 임시로 거하였다. 숙소용으로 임대받거나 기증받은 이동 주택에 거한 사람들도 있다. 또한 군인들이 설치한 천막촌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잃은 것을 없었던 일로 치고 그 나라의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나 친척들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그들은 집도 일자리도 없었다. 전기도, 물도, 적절한 하수 처리 시설도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최선의 해결책을 취한 셈이었다.
모든 사람이 배워 알게 된 한 가지 교훈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한 증인의 이러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인생의 목표에 대한 교훈을 배우게 되어서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15년이나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집과 여러 가지 물건을 장만했어도, 단지 한 시간 안에 다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경험은 우리 자신의 목표가 영적인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 생활을 좀더 단순하게 만드는 데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언명하였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빌립보 3:7, 8.
자연재해는 우리가 사는 현 세상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가 당국의 경고에 청종한다면 적어도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집이나 소유물은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위로의 하나님”과 누리는 관계는 강화될 것이다. 재해로 죽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회복된 땅—자연재해로 인한 고통이나 사망이 결코 없는 땅—으로 그들을 부활시키실 것임을 약속하셨다.—고린도 후 1:3, 4; 이사야 11:9; 요한 5:28, 29; 계시 21:3, 4.
[각주]
a 허리케인은 “북대서양에서 일어나 바람의 속도가 시속 121킬로미터를 넘는 열대성 폭풍우”다.(「콘사이스 컬럼비아 백과 사전」) 태풍은 “서태평양이나 중국해에서 일어나는 폭풍우”다.—「아메리칸 헤리티지 영어 사전」(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20면 네모]
깜짝 놀라다
11명의 백인 증인들로 된 한 집단이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플로리다, 탬파로 여행하여 왔다. 그들은 자재를 받은 다음 한 흑인 증인의 집 지붕을 수리하기 시작하였다. 증인이 아닌 조카가 도착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한 무리의 백인 증인들이 자신보다 먼저 도착하여 아저씨 집을 수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그는 매우 감명을 받은 나머지 건축 활동을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그는 증인이 다음 번에 자기 집을 방문하면 성서 연구를 요청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탬파에서 일하던 그 집단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같은 지역에서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 집단 중의 한 장로가 다음 주에 성서 연구를 마련하였다! 한 증인이 말한 바와 같이, 이 일은 증거하기 위해 단지 문만을 두드려서는 안 됨을 증명한다—지붕을 두드릴 수도 있는 것이다!
[15면 삽화]
허리케인 앤드루가 사정없이 강타하여 성한 건물이 거의 없다
키퍼 씨의 이동 주택과 그 잔해
[16면 삽화]
레베카 페레스와 그의 딸들, 그 밖에 열한 사람이 이 좁은 곳에서 살아 남았다
약탈을 막기 위해 투입된 군대(오른쪽 위); 약탈당한 상점들(오른쪽)
허리케인으로 인해 지붕이 날아가 버린 집, 나가둥그러진 자동차
[17면 삽화]
왕국회관들에서 구호 활동이 조직되었다
이동 주택이 나무를 휘감고 있고, 어린이용 장난감이 매트리스 위에 처량하게 놓여 있으며, 성서 출판물이 폐허 속에 보인다. 테레사 페레다와 같은 증인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주었다
기증받은 건축 자재. 의복을 분류함
[18면 삽화]
미국 각처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이 구호 활동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