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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93 6/1 18-20면
  • 나는 왜 신체 장애로 고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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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신체 장애로 고생해야 하나?
  • 깨어라!—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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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자들의 문제
  •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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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3 6/1 18-20면

청소년은 묻는다 ·⁠·⁠·

나는 왜 신체 장애로 고생해야 하나?

“다섯 살 때였어요”라고 베키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친구가 자전거에 태워 줘서 뒤에 타고 가는데, 자동차가 모퉁이를 돌아 나오더니 우리를 받아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를 많이 다쳤지요. 의사들은 내가 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베키는 살아났으며, 현재 쾌활한 16세 소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그 자국을 남겼다. “몸이 몹시 허약해졌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크레이그라는 젊은이도 뇌성 마비에 걸려 신체 장애자가 되었다. “뇌성 마비가 근육과 신경 계통에 영향을 주었어요”라고 크레이그는 설명한다. “내 근육들은 뇌가 보내는 지시에 따라 제대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걷고 말하고 몸의 균형을 잡는 데 문제가 있지요. 그 모든 걸 할 수는 있지만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당신에게도 어떤 신체 장애가 있는가? 통계에 의하면, 2000년경에는 신체 장애를 가진 청소년의 수가 전세계에 약 5900만 명에 달할 것이다. (「세계 보건」[World Health], 1985, 1/2월 호) 하지만 다른 청소년처럼 달리고 뛰어오르고 놀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당신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장애자들의 문제

신체 장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서 시대에도 다리를 절거나(사무엘 하 4:4; 9:13), 눈이 멀었거나(마가 8:22), 기형 상태로(마태 12:10)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신체 장애자들은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데도 흔히 어려움을 겪었다.—비교 신명 28:29; 잠언 26:7.

그런 제한을 받고 사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옷을 입거나 먹거나 학교에 가는 데도 엄청난 노력이—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몸의 오른쪽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라고 베키는 말한다. “그래서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배워야 했지요. 걷는 것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꽤 정상적으로 걷는 편이지만, 어떤 날은 다리를 심하게 절어요.” 또한 소인증(小人症)에 걸린 한 소년이 겪는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그는 유머감을 잃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벽의 전등 스위치까지 손을 뻗치는 게 또 정말 골칫거리지요. ·⁠·⁠· 집들은 확실히 키 큰 사람들 위주로 만들어졌다니까요.”—「신체 장애자로서 사는 심정」(How It Feels to Live With a Physical Disability), 질 크레멘츠 저.

하지만 가장 괴로운 문제는 사실 신체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될지 모른다. 「부모」(Parents)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십대들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특수한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은 특히 생활하기가 힘들다. ·⁠·⁠·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외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하며, 흔히 우정의 표현을 의심하여 선의의 의사 표시를 달갑지 않은 동정의 표현으로 곡해한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고 인정받기 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당신은 소외되어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미셸이라는 소녀가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달랐어요. 그 이유는 왼손이 없기 때문이지요.”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놀림을 당할지도 모른다. 크레이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5학년이 되기까지는 특수 학교에서 배웠어요. 하지만 5학년 때 정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그다지 많은 어려움은 없었는데, 하루는 몇몇 아이들이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내 걸음걸이 때문이었지요.” 베키도 학우들한테서 잔인한 놀림을 받았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는 이전 수술 때 성대를 다쳤기 때문에 목소리가 약간 귀에 거슬린다. “급우들이 나를 보면 도깨비 목소리라고 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어른들 역시 부당한 편견을 나타낼 수 있다. 당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어른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당신과는 전혀 말하지 않고—마치 당신이 투명 인간이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당신의 부모나 친구를 향해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가장 짜증스러운 경우는 끊임없이 동정을 쏟으며 호의를 베풂으로써 당신이 비정상이라는 느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견해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당신에게 있는 장애는 그분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일종의 표인가?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된 한 사람”을 만나셨을 때 하신 말씀에 유의해 보자. 그분의 제자들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질문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요한 9:1-3, 「새번역」) 그렇다. 눈이 먼 것은 맹인이나 그 부모의 특정한 죄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불완전성의 결과였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따라서 신체 장애는 하나님의 개입이나 징벌의 결과가 아니다. 더러는 부주의한 태도의 산물이다. 더러는 단순히 “시기와 우연”에 의한 것이다. (전도 9:11) 그런가 하면 부모의 학대나 태만 때문에 신체적인 고통을 겪는 청소년도 있다.

장애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비정상으로 보신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그분은 당신을 귀중하고 가치 있게 보시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청소년이라면 특히 그러하다. (누가 12:7) 그분은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당신을 돌보고 계시’며 기꺼이 당신을 그분의 봉사에 사용하고자 하신다. (I 베드로 5:7, 「새번역」) 사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종으로 손꼽을 만한 사도 바울에게도 신체 장애—“육체에 가시”—가 있었던 것 같다. (고린도 후 12: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씀은 정말 위로가 된다. (사무엘 상 16:7) 그분은 당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이해하시며, 당신이 신세계에서 완전성을 회복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도 아신다.—계시 21:3, 4.

대인 관계

유감스럽게도, 학교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고상한 견해를 따르지 않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때때로 아주 몰인정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겪는 고통에 관해 그처럼 무자비한 동배들이 있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하라. 하지만 대개는 진정으로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창피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단지 호기심에서 그러는 것이다. 장애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어쩌면 그저 둔감한 탓으로, 어리석은 말이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할지 모른다.

그럴 때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때로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당신이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긴장해 있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것같이 보인다면,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결함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적절한 상황이라면, 아마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서 휠체어를 타게 되었는지 궁금하세요?” 「부모」지에 의하면, 수술로 몸의 한 부분을 절단한 어느 교사는 첫마디를 이렇게 꺼내어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할 거에요. 알고 싶은가요?”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이따금 마음에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소녀 베키는 이렇게 말한다. “더 어렸을 때는 남들이 놀리면 몹시 화가 나곤 했어요. 늘 예민한 아이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로 화를 내지 않는답니다. 때로는 그런 상황을 웃어넘길 수도 있게 되었어요.” 과연, 유머감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받아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웃을 때”가 있는 것이다. (전도 3:4) 그에 더하여 솔로몬 왕은 이런 충고를 하였다.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전도 7:21) 때때로 어리석은 말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못 들은 척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라고 베키는 말한다.

희망은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으로, 전 인류에게는 결함이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고 성서는 말한다. (로마 8:22) 그러나 당신은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캐럴이라는 소녀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소녀는 날 때부터 귀머거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전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캐럴은 죽고 싶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다가오는 의로운 신세계에 관해 배워 알게 되었다. (이사야 33:24) 실로, 언젠가 자기 자신의 신체 장애가—기적으로—치유될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된 것이다!—이사야 35:5, 6.

하나님에 관해 배운 결과 캐럴의 성격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가까운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캐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애는 항상 명랑하고, 신체 장애로 고민하지 않아요.”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은 이런 말도 한다. “친구들 중에는, 캐럴의 한쪽 다리가 의족이고 그렇게 심한 청각 장애가 있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독순술(讀脣術)과 보청기를 사용하거든요.” 분명히, 캐럴은 장래에 대한 희망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현재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당신도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 있는가를 이 연재 기사의 다음 기사에서 살필 것이다.

[19면 삽화]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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