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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진리를 찾으려는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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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진리를 찾으려는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 깨어라!—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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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3 6/15 19-22면

제5부

과학—진리를 찾으려는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성취되는 20세기 “경이”

십구 세기에는 불가능한 “경이”로 보이던 것이 20세기에는 현실이 되었다. 한 세대 안에 사람들은 T형 포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일로부터 칼라 TV에서 달 위를 걷는 사람을 보고 흥분하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이 낳은 “기적”을 특이한 것으로 여기기는커녕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20세기 초의 과학적 업적은 너무 엄청나게 많아서 목록을 만들 수 없다”고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지적한다. 하지만 이 백과 사전은 “진보의 공통 형태”를 언급하면서 “각 주요 분야의 발전은 19세기에 잘 기술된 자료를 기초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과학이 진리를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그룹들로 대치됨

의견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만나는 과학자들의 그룹인 과학자 사회가 일찍이 17세기에 유럽에서 형성되었다. 최신 연구 결과를 알리기 위해 이들 과학자 사회는 자체 간행물을 발간하기까지 하였다. 이로 인해 지식을 널리 나누게 되어 과학 발전이 더 이루어질 수 있는 기초가 다져졌다.

19세기에는 이미 대학교들이 과학 연구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이어지는 세월 동안 대학교 실험실에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졌다.a 20세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여러 기업체들도 연구소를 세웠으며, 시간이 가면서 이 연구소들은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고, (플라스틱을 포함하여) 합성 물질과 그 밖의 물품을 개발하였다. 대중은 그런 개발품의 혜택을 누렸고, 연구소를 둔 회사들은 떼돈을 벌었다.

이런 실험실과 연구 그룹들이 세워진 사실은 개인의 노력과는 달리 조직된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는 표시였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연 이런 방법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1939년,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엑스선 결정(結晶)학자인 존 D. 버낼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였다. “과학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이해한 대로 일하면서 어쩌다 협력하여 진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연구가들의 여러 그룹 혹은 집단이 융통성 있으나 어느 정도 미리 정해진 계획에 따라 서로 돕고 연구 작업을 합쳐서 진보하는 것인가?”

버낼 씨는 연구하는 일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그룹을 지어 연구하는 것을 지지하면서, 단지 어떻게 연구 활동을 올바로 조직할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하였다. 그는 “갈수록 협동 작업이 과학 연구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버낼 씨의 예측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으며, 20세기 과학적 “경이”가 성취되는 과정이 더 빨라지고 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1844년 5월 24일, 모스 부호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는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위의 말에 해당하는 영어의 네 마디 환호성(What Hath God Wrought!)을 전신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하여 20세기 원거리 통신 “경이”의 뿌리가 19세기에 심어진 것이다.

30년쯤 후인 1876년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조수인 토머스 웟슨과 전화기를 시험하다가 산(酸)을 조금 엎질렀다. 그는 “웟슨 군 이리 오게. 도움이 필요하네” 하고 외쳤는데, 이것은 단순히 도움을 청한 말 이상으로 의미 있는 말이 되었다. 다른 방에 있던 웟슨은 그 순간 이제까지 전화로 전달된 것 중 처음으로 아주 또렷하게 들리는 문구를 알아듣고 달려왔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줄곧 전화 벨 소리를 듣고 뜀박질하였다.

과학 지식과 더불어 과학 기술 지식 덕분에 지난 93년 동안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이 지난날에는 결코 누려 보지 못한 생활 수준을 누려 왔다. 세계는 이웃이라고 할 정도로 좁아졌다. “불가능한” 일들이 평범한 것이 되었다. 사실 전화, 텔레비전,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20세기 “경이”들이 우리 세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되었기에, 우리는 인류가 존재해 온 기간 대부분 그런 것들 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금세기가 시작되면서 “과학의 공적은 지식과 힘이 넘쳐 흐를 것임을 약속하는 듯하였다”고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지적한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 동안 과학 기술의 진보를 모든 곳에서 같은 수준으로 누린 것이 아니며, 진보가 다 하나같이 유익한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 “그런 성공 자체가 사회 환경과 자연 환경에 가져올 문제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그 백과 사전은 덧붙인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우주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 사실을 탓할 수는 없으며, 또 과학적 사실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여 인류의 유익에 기여하는 과학 기술을 탓할 수도 없다.

과학과 과학 기술, 이 두 가지는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1800년 이후 과학과 과학 기술의 부흥」(Science and the Rise of Technology Since 1800) 책에 따르면, “지금 잘 알려져 있는 이 둘의 가까운 관계는 아주 최근 들어서야 온전히 확립되었다.” 산업 혁명의 시초에도 그 관계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 밝혀진 과학 지식이 신제품 개발에 기여하였듯이 기술 경험, 수공 기술, 기계를 다루는 숙련된 기술 역시 그 일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산업 혁명이 시작된 뒤, 과학 지식을 한데 모으는 일이 빨라졌으며 이렇게 하여 과학 기술이 활약할 무대가 넓어졌다. 새로운 지식을 갖춘 과학 기술은 힘겨운 노동을 없애고 건강을 나아지게 하며 더 좋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여러 방법을 고안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과학 기술은 그 기초가 되는 과학 지식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과학 지식에 결함이 있을 경우, 이런 결함 있는 지식을 기초로 하여 개발한 과학 기술의 산물 역시 결함이 있을 것이다. 흔히 상당한 손상이 있은 후에야 부작용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염화불화탄소나 탄화수소를 쓰는 분무기가 개발되었을 때 언젠가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는가?

관련된 것이 또 있다. 즉 동기다.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는 지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서 기꺼이 생애의 수십 년간을 연구에 몸바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사업가는 그런 지식을 즉각 이용하기를 열망한다. 그리고 과학 기술을 즉시 이용할 경우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런 기술을 이용하기까지 수십 년간 참을성 있게 기다리려고 하겠는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 문제를 이렇게 지적하였다. “함부로 사용된 원자력은 우리의 사고 방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으며 이렇게 하여 우리는 비길 데 없는 대재난에 다가가고 있다.”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다. 20세기 “경이”가 빚은 여러 문제는 단순히 결함 있는 과학 지식 때문만이 아니라 이기적인 관심사가 동기가 되어 과학 기술을 마구 이용했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적절한 예를 생각해 보자. 과학은 소리와 영상을 먼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원거리 영상 전달—을 발견하였다. 과학 기술은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탐욕적인 상업계와 또 요구해 대는 시청자들의 그릇된 사고 방식 때문에, 그 놀라운 지식과 과학 기술은 외설물과 끔찍한 폭력물을 평화로운 거실로 보내는 데 이용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물질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과학 기술은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국가주의 정치 활동의 그릇된 사고 방식 때문에 그런 지식과 과학 기술은 다모클레스의 칼같이 여전히 인류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이용되었다.

과학을 제자리에 둠

사람들이 과학 기술로 개발한 도구를 종으로 부리지 않고 주인으로 떠받든다면 이것 또한 그릇된 사고 방식이다. 「타임」 잡지는 1983년에 예년과는 달리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지 않고 “올해의 기계”로 컴퓨터를 선정함으로 그런 위험을 경고하였다.

「타임」지는 이렇게 추리하였다.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하던 것을 컴퓨터에 의존하여 처리함에 따라 머리는 어떻게 되는가? ·⁠·⁠· 컴퓨터에 입력된 사전이 틀린 글자를 무엇이든 쉽게 고칠 수 있다면 글자를 바르게 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지능을 요하는 일과에서 자유롭게 된 정신은 중요한 사상을 추구하는 일에서 벗어나거나 비디오 게임이나 더하면서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 컴퓨터는 실제로 두뇌 활동을 자극하는가? 아니면 두뇌가 할 일 중 많은 것을 해줌으로 두뇌를 게으르게 하는가?”

그렇지만 일부 사람들은 과학이 이룩한 업적에 감탄한 나머지 실제로 과학을 신처럼 떠받든다. 과학자 앤소니 스탠던은 1950년에 지은 책 「과학은 성역」(Science Is a Sacred Cow)에서 그 점을 설명하였다. 어느 정도 과장된 표현이 있을지라도, 스탠던의 이러한 설명에는 생각해 볼 만한 점이 있다. “흰옷을 입은 과학자가 ·⁠·⁠· 일반 대중에게 어떤 발표를 할 경우, 사람들은 과학자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를 철석같이 믿는다. ·⁠·⁠· 정치가, 산업가, 종교 교역자, 시민 지도자, 철학자는 모두 의심과 비평을 받지만 과학자는 결코 의심받지 않는다. 과학자는 떠받들어진 존재로 대중의 신망을 받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과학자는 있을 수 있는 온갖 의견 충돌을 해결하는 말로 보이는,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는 공식화된 말을 할 권리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릇된 사고 방식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과학과 성서 사이에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종교적 “미신”과 대조되는 과학적 “지혜”의 증거로 삼는다. 심지어 이른바 모순이라고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야기한 상상 속의 모순이다. 이렇게 잘못 해석함으로 교직자들은 성서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동시에 과학적 진리를 찾으려는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에 제동을 건다.

그에 더하여 그러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맺도록 교구민을 훈련시키지 않음으로 이기적인 분위기가 자라게 하여, 사람들이 주로 자기 자신의 안락과 편리만을 바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로 인해 종종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심지어 과학 지식을 오용하여 동료 인간을 학살하는 데까지 이른다.—갈라디아 5:19-23.

거짓 종교, 불완전한 인간 정치, 탐욕적인 상업은 지금 사람들을 “자기를 사랑하며 ·⁠·⁠· 감사치 아니하며 ·⁠·⁠· 절제하지 못하며” 그릇된 사고 방식에 따라 행동하는,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틀잡아 놓았다.—디모데 후 3:1-3.

바로 이런 사람들과 조직으로 인해 제기된 21세기 도전에 과학이 이제 응해야 한다. 과학은 성공할 것인가? 다음 호에 실릴, 이 연재물의 마지막 기사에서 그 대답을 알아보자.

[각주]

a 예를 들어, 원자탄을 개발한 미국의 특수 프로그램인 맨해튼 계획은 대부분 시카고 대학교와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소에서 연구한 것이다.

[20면 삽입]

과학 지식에 결함이 있을 경우, 이것을 기초로 개발한 것에도 결함이 있다

[22면 삽입]

과학상의 업적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19면 사진 자료 제공]

From the Collections of Henry Ford Museum & Greenfield Village

NAS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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