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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는 전쟁의 신인가?
  • 깨어라!—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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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3
깨93 11/15 20-21면

성서의 견해

여호와는 전쟁의 신인가?

일부 성서 독자들은 여호와가 전쟁의 신이자 피에 굶주린 신이라고 오랫동안 비난해 왔다. 예를 들면, 조지 A. 도시는 저서 「문명 이야기—인간의 업적」(The Story of Civilization—Man’s Own Show)에서, 성서의 하나님 여호와는 “약탈자, 고문자, 전사, 정복 및 온갖 천박한 격정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성서 비평가인 롤런드 H. 베인턴은 이렇게 신랄하게 말한다. “전쟁은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을 때 더 인도적이다.”

여호와는 과연 전쟁의 신인가? 일부 사람들이 시사하듯이, 그분은 실제로 죄없는 사람들을 살육하기를 즐기시는가?

과거의 심판들

사실, 성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거에 심판을 집행하셨음을 솔직하게 알려 준다. 하지만 그 심판은 언제나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집행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노아 시대의 땅이 ‘강포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 멸절하리[라.]” (창세 6:11, 17) 또 다른 심판의 경우로, 소돔과 고모라 도시들이 “음란에 빠지고 색다른 육욕을 좇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들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셨다.’—유다 7, 「새번역」; 창세 19:24.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모든 육체를 멸하기를 즐기셨는가? 또는 소돔과 고모라 주민들을 멸하심으로써 잔인한 쾌감을 얻으셨는가? 대답을 얻기 위하여, 노아 시대의 홍수에 관한 사건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성서는 땅에서 폭력을 일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면에서 악인을 없애실 것이라고 언명한 후, “여호와께서 ·⁠·⁠·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알려 준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셨다. 따라서 임박한 대홍수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의를 전파하는” 노아를 보내어 경고의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보존을 위해 방주를 짓게 하셨다.—창세 6:3-18; 베드로 후 2:5.

그와 마찬가지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창세 18:20-32)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조카 롯이 소돔에 살았음) 단 열 명의 의인이라도 찾으면 그 도시들을 남겨 두겠다고 다짐하셨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신이라면 그처럼 자비로운 염려를 나타냈겠는가? 오히려 여호와의 두드러진 성품 중 하나가 자비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는가? (출애굽 34:6) 그분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에스겔 33:11.

하나님께서 심판을 집행하심은 언제나 악인들이 완고하게 나쁜 행로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지,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죽이기를 즐기시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과 싸워 그들을 멸절시키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평화를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전쟁

역사는 가나안 족속의 비열한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그들은 극히 악했다. 영매술, 자녀 희생, 변태 성욕적 폭력, 여러 형태의 도착된 성숭배가 그 시대에 만연되어 있었다. 전적인 정성을 요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께서는 이 가증스러운 행위들이 순결한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교란시키도록 허용하실 수 없었다. (신명 5:9) 예를 들어,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에 법을 집행하는 믿음직한 경찰이나 민병대가 없다면 어떠할지 상상해 보라. 그로 인해 무정부 상태나 최악의 폭력 사태가 유발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가나안 족속의 방탕함과 그들이 참 숭배에 끼칠 실제적인 위험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족속에 대해 조처를 취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공포하셨다.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리라.]”—레위 18:25.

하나님의 집행군—이스라엘 군대—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였을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었다. 하나님께서 불이나 홍수가 아니라, 인간을 사용하여 이 심판을 집행하기로 하셨다고 해서 판결의 심각성이 약화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전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 군대는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찌니[라.]”—신명 20:16.

하지만 생명을 존중하는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무차별 살육을 승인하시지 않았다. 예를 들면, 가나안의 한 도시 기브온의 주민들이 자비를 구하였을 때,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베푸셨다. (여호수아 9:3-27) 사악한 전쟁의 신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평화와 공의를 사랑하는 신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시 33:5; 37:28.

여호와의 표준은 평화를 증진시킨다

성서는 거듭거듭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를 결부시킨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민수 6:24-26; 시 29:11; 147:12-14) 따라서, 다윗 왕이 여호와를 위한 숭배의 전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역대 상 22:8; 사도 13:22.

더 큰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께서 공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오늘날 만연된 악을 더는 묵인하실 수 없을 시기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태 24:3, 36-39) 노아 시대의 홍수로써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심으로써 행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머지않아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들을 땅에서 없애기 위해 사법적인 조처를 취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그분의 하늘 왕국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상태가 존속하는 길을 여실 것이다.—시 37:10, 11, 29; 다니엘 2:44.

분명, 여호와께서는 피를 탐하는 전쟁의 신이 아니시다. 한편, 그분은 정하신 때에 사법적인 처벌을 단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압제하는 악한 제도를 멸망시키심으로써 그들을 위해 행동하실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 참다운 평화가 땅에 편만할 것이며, 참으로 온유한 사람들이 연합하여 “평화의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게 될 것이다.—빌립보 4:9, 「신세」.

[20면 사진 자료 제공]

David and Goliath/The Doré Bible Illustrations/Dover Publication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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