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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 현상에 대한 설명
  • 깨어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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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4
깨94 6/15 5-7면

환생 현상에 대한 설명

환생 이론에 대한 한 가지 이의는, 지상에 사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억은커녕, 그들은 자기에게 전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어디서 본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처음 간 곳인데도 어떤 집이나 시가지, 풍경이 낯익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환생 이론을 빌리지 않고서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 서로 비슷하게 생겨서, 전에 가 본 적이 없는 곳인데도 가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이 세상 어떤 곳에 있는 집이나 사무실, 상점, 시가지 혹은 풍경 등이 다른 곳에 있는 것들과 비슷할 경우가 많다. 전에 본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전생에 그 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낯익은 곳과 흡사할 뿐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외모가 아주 비슷해서 꼭 닮았다는 말을 듣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의 버릇을 보면 현재 살아 있는 다른 어떤 사람 혹은 심지어 죽은 사람이 생각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전생이 아니라 현생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외모나 개성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전생에서 알게 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나 때로는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곧잘 착각한다. 하지만 양편 모두 전생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현생에 살던 사람들이다. 환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최면의 영향

최면의 영향 아래 경험하는 일도 환생 이론을 빌리지 않고 설명할 수 있다. 정신의 잠재 의식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지식의 창고로 이루어져 있다. 서적, 잡지, TV, 라디오 그리고 그 외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이 창고에 지식이 들어온다.

이러한 지식은 직접 혹은 즉시 사용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잠재 의식 세계의 한쪽 구석에 저장된다. 잠재 의식은 마치 당장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도서실 한쪽 구석 서가에 꽂아 둔 책과 흡사하다.

하지만 최면 상태에서는 피실험자의 의식에 변화가 생겨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전생의 것으로 해석하지만, 실은 잠시 잊었던, 현생의 경험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리적으로 설명하기가 다소 어려운 몇 가지 경우가 있다. 한 가지 예는 최면의 영향 아래서 갑자기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경우이다. 그 언어는 이따금 알아들을 수 있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이 전생에서 사용하던 언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위 방언을 하는 일은 신비적 혹은 종교적 황홀경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그 일이 전생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단지 현생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이 힘이 무슨 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파운틴 트러스트와 영국 국교회 복음 전도회의 공동 선언문에는 방언을 하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슷한 현상이 신비적/악귀적 영향 아래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현상을 우리에게 전생이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릇된 결론으로 비약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경의 체험

그러면 사람들이 사경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살아 있는 증거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몇 가지 순리적인 방법으로 훨씬 잘 설명된다.

프랑스의 과학 잡지 「과학과 생명」(Science & Vie) 1991년 3월 호에서는, 사경에서 체험하는 여러 단계를 가리켜, “환각에서 흔히 있는 전형”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온 것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체험을 사경에서만 겪는 것은 아니다. “피로, 열병, 간질 발작, 마약 남용”과 관련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신경 외과학의 개척자인 빌더 펜필트는 국소 마취를 하여 간질 환자를 수술하다가 흥미있는 발견을 했다. 뇌의 여러 부위를 전극으로 자극함으로써, 환자가 자기 몸에서 벗어난 느낌을 갖고 터널 속을 여행하여 죽은 친척들을 만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있는 점은, 사경을 체험해 본 어린이들이 죽은 친척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인 급우나 교사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그러한 경험은 특정한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경험은 현생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사후의 어떤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리처드 블래커 박사는 「미국 의학 협회지」(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어 가는 것, 즉 신체적으로 위기를 겪는 것은 과정이며, 죽음은 상태이다.” 예를 들어, 블래커 박사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처음 비행기 여행을 하는 사람에 관해 말한다. “비행 자체가 유럽[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는 기술한다. 비행기가 유럽을 향해 출발했다가 출발 몇 분 후에 선회해 돌아와 버리면 관광객이 유럽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혼수 상태에서 돌아온 사람은 죽음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경에 놓였던 사람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한 것이다. 죽기 몇 초 전이라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간 것이지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심장 박동이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된 사람일지라도, “죽었다”고 할 수 있는 무의식 상태의 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사실상 기억할 수 없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깐 정지해 있는 그 동안이 아니라 그것에 다가갈 때 일어난 일일 것이다.

사경의 체험담이 나오는 출판물들을 보면, 거의 언제나 긍정적인 면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는 부정적인 경험도 있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학자 카트린 르메르는 그러한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IANDS[국제 사경 연구 협회]가 설정해 놓은 양상에 들어맞는 [사경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기억이 없다

사실, 우리는 전생이든 사후 생명이든 현재의 삶 외의 다른 삶을 경험한 적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실제로 살아온 삶 이외의 어떤 일에 대해 사실상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상황을 개선할 새로운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에게 정말로 전생이 있었는데 그것을 잊어버렸다면, 그러한 기억 상실은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로부터 유익을 얻으려면 그것을 기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른바 환생 요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최면에 의해 전생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문제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이유는 어떤 일인가를 개선하기 위한 것인데 바로 그 어떤 일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현생에서도 기억 상실은 신체 장애로 간주된다. 환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선한 사람들만 인간으로 재생하기 때문에 그러한 망각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타당한 주장이 못 된다. 선한 사람들만 인간으로 재생한다면 모든 악한 사람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악한 사람이 점점 더 줄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그 누구도 또 한 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인간이나 어떤 다른 것으로 환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혹시 ‘환생은 성서의 가르침이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른다. 다음 기사에서 이 질문을 고려해 보자.

[6면 삽입]

우리 정신의 잠재 의식은 마치 한쪽 구석에 있지만 후에 빼낼 수 있는 자료가 모여 있는 도서실과 같다

[7면 삽입]

“죽음은 상태”이지 과정이 아니다.—리처드 블래커 박사. 「미국 의학 협회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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