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묻는다 ···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단념할 수 있는가?
“저는 스무 살 된 침례받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28세 된 [믿지 않는] 남자와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사랑했고 그도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허락하실 것 같지 않아서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아시고는 속상해 하셨고 충격을 받으셨지요. 부모님은 제 마음이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에게 빠져 들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하시더군요.”
모니크a라는 그리스도인 젊은 여성이 써 보낸 글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청소년이 이와 비슷한 곤경에 빠졌다. 믿지 않는 사람 즉 자신과 동일한 그리스도인 믿음과 도덕 표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반하거나 낭만적으로 끌리게 된 것이다. 이 연재물의 앞 기사(「깰 때이다」 1994년 6월 1일 호)에서는 그러한 관계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행복과 복지에도 심각한 위협이 됨을 보여 주었다. 루스라는 소녀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는 믿지 않는 남자와 퍽 가까워졌어요. 하지만 여호와와의 관계를 지속하려면 그 남자와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요”라고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야고보서 4:4에 나오는 이러한 성서의 말씀을 아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빠져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적용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관계가 끝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좋아하는—또는 사랑하는—사람을 어떻게 단념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지 모른다.
사도 바울은 한때 이렇게 말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로마 7:22-24) 바울과 같이, 우리도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경험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그리스도인 청소년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말하자면 “불에서 끌어내”졌다. (비교 유다 23)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기 전에, 해가 되는 관계를 끝냄으로 그렇게 하였다.
도움을 받으라
예를 들어, 마크는 겨우 열네 살 때 믿지 않는 사람에게 “홀딱 반”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도움을 구하기는커녕 감정을 숨기려 하였다. 하지만 그 소녀에 대한 감정은 오히려 강해졌다. 얼마 안 가서 그는 소녀에게 몰래 전화하곤 하였다. 이제 소녀가 전화해 오기 시작하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부모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 잠언 28:26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사실, 판단력만 흐려지지 않았다면 애당초 이런 상황을 겪게 되었겠는가? 때때로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므로 우리에게는 냉철하게 객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명 부모가 도움을 베풀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부모라면 특히 그렇다. 부모는 누구보다도 당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한때 청소년 시절이 있었으므로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시킬 수 있다. 잠언 23:26에서 성서 필자 솔로몬은 이렇게 권고한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부모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이 필요함을 알리지 않겠는가?
짐이라는 소년이 그렇게 하였다. 그는 한 여학생에게 반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짐은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지요. 이 일을 계기로 그러한 감정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많은 도움이 되어 주셨죠.” 부모의 사랑 넘친 지원을 경험한 후에 짐은 이렇게 조언한다. “다른 그리스도인 청소년들도 주저하지 말고 부모님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과 의사 소통하기 바랍니다. 이해해 주실거예요.”
앤드루라는 소년은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또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받았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순회 대회에 참석한 일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충격을 받은 연설이 있었어요. 순회 감독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성과 사귀지 말라고 강력히 교훈했지요. 생각을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했는가? 먼저 홀어버이인 어머니에게 이야기했고 어머니의 조언으로부터 유익을 얻었다. 다음에 그 지방 여호와의 증인 회중의 장로를 찾아가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었다. 회중 장로들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수 있다. (이사야 32:2) 장로들 중 한 사람을 찾아가 고민거리가 무엇인지를 알리지 않겠는가?
깨끗이 헤어지라
마크의 부모는 그의 은밀한 관계를 알게 되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부모님께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관계를 끝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엔 대들었지요. 언성을 높여 말을 주고받고는 방에 들어가 꼼짝 안했지요. 그러나 곧 현실로 돌아와, 그 소녀와 저는 목표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지요.” 그렇다. 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자문해 보라. ‘이 사람은 나와 같은 목표, 신념, 도덕 표준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결혼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숭배하려는 나의 노력을 지원할 것인가? 이 사람은 영적인 것에 대한 나의 열심에 동참할 것인가? 정말이지 그런 관계에서 무슨 조화를 찾을 수 있겠는가?’—비교 고린도 후 6:14-18.
그렇지만 깨끗이 헤어지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모니크는 이렇게 인정한다. “저는 두 번이나 관계를 끝내려고 시도했지만 헛수고였지요. 그가 완전히 떠나 버리는 게 싫었던거죠. 그가 여호와를 받아들일까 해서 증거도 해 보았어요. 일요일 집회에도 한 번 왔었지요. 그러나 여호와께 진정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와 완전히 헤어지는 것이 옳은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은 마태 복음 5:30(「새번역」)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오른손 같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다. “찍어버리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더라도 온 몸이 게헨나[영원한 멸망의 상징]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낫다.” 이러한 원칙과 일치하게, 용기를 내서 상대방을 만나 “진실을 말”하라. (에페소 4:25, 「공동번역」) 공개적인 장소—단둘이거나 낭만적인 상황이 아닌 곳—에서 분명한 말로 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라. 실라라는 소녀는 이렇게 회상한다. “단호하게 행동했더니 효과가 있더군요. 더 이상 점심 식사도 같이 하지 않았어요. 자습 시간에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지요. 제 태도를 분명히 한거죠.” 팸이라는 그리스도인 소녀도 그처럼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혼자 있게 해 달라고 말하고는 그냥 그를 무시했어요.”
아픔을 이겨 냄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시편 필자와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시 38:6) 얼마간 비탄에 잠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성서에서도 “울 때가 있”음을 인정한다. (전도 3:4) 그러나 영원히 비탄에 잠길 필요는 없다. 아픔은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마크는 그 점을 이렇게 시인한다. “그래요. 제게도 비탄에 잠겼던 시기가 있었지요. 부모님께서 그걸 알아차리시더니 다른 그리스도인 청소년들과 더 많이 교제하게 해주셨어요.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앤드루도 헤어지고 난 후에 그와 비슷하게 의기 소침해 있었는데, 이렇게 말한다. “장로들이 도와 주셨어요. 전파 사업에도 더 많이 참여하고 저와 잘 맞는 몇몇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가깝게 지냈죠.” 그렇다. 영적인 활동에 바쁘라. (고린도 전 15:58) 약간의 신체 활동이나 운동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을 고립시키지 말라. (잠언 18:1) 유쾌하고 세워 주는 것을 계속 생각하라.—빌립보 4:8.
여호와께서 당신의 용기 있는 태도를 기뻐하신다는 점도 기억하라. 거리낌 없이 그분께 기도로 나아가 도움과 지원을 구하라. (시 55:22; 65:2) “기도를 많이 드렸어요”라고 실라라는 소녀는 회상한다. 해로운 관계를 끝내기란 쉽지 않다. 실라는 이렇게 인정한다. “다 끝난 일인데도 가끔 그 애 생각이 나고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져요. 그러나 결심한 바에 고착해야 해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니까요.”
[각주]
a 가명임.
[18면 삽화]
분명한 말로 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