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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가 편을 들다
  • 깨어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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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4
깨94 11/1 3-6면

종교가 편을 들다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3주 후 “교회가 독일군을 독려하다”라는 표제가 「뉴욕 타임스」지 1면을 장식하였다. 독일 교회가 정말로 히틀러의 전쟁을 지원하였는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빈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프리드리히 헤어는 사실이 그러함을 이러한 말로 인정하였다. “독일 역사의 엄연한 사실로, 십자가와 스바스티카 간의 밀월이 시작되더니, 마침내 스바스티카가 독일 대성당들의 탑에서 나부껴 승전보를 알렸고 스바스티카 기(旗)가 제단 주위에까지 등장하였으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자, 교역자, 교직자, 정치가들은 히틀러와의 제휴를 환영하였다.”

실제로, 교회 지도자들이 히틀러의 전쟁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인 고르던 찬 교수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히틀러의 전쟁에서 복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교직자에게서 영적 지침과 지도를 기대했던 독일 가톨릭 신자들은 나치 통치자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대답을 듣곤 하였다.”

상대편의 종교들

그러나 독일의 적대국들의 교회들은 어떻게 말하였는가? 1966년 12월 29일자 「뉴욕 타임스」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과거에 각 나라의 가톨릭 교계 제도는 거의 언제나 자국의 전쟁을 지지하여 군대를 축복하였으며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반면, 상대편 나라의 주교단은 정반대의 결과를 기원하는 기도를 공개적으로 하였다.”

이처럼 적대 관계에 있는 양쪽 군대를 각각 지지한 일이 교황청의 승인 아래 자행되었는가? 다음 내용을 고려해 보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지 만 3개월 후인 1939년 12월 8일, 교황 피우스 12세는 아스페리스 코모티 안크시에타티부스라는 교서를 내렸다. 이 교서는 교전 중인 나라들의 군대에서 근무하는 군목들에게 보내졌으며, 양편 군목에게 각각 아군 주교를 신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군목은 “자기 조국의 투사로서 교회를 위해서도 싸”우라고 이 교서는 훈시하였다.

종교는 종종 나라들로 하여금 전시 체제를 갖추게 하는 데 발벗고 나선다.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까지 전투 깃발을 꽂아 놓았다”고 프로테스탄트 교직자 고(故) 해리 에머슨 포스딕은 시인하였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에 관해 영국군 여단장 프랭크 P. 크로저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유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으며, 우리는 교회들을 마음껏 이용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가 과거에 저지른 일이다. 그러면 최근에, 대부분의 국민이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믿는 구유고슬라비아의 공화국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종교의 역할은 어떠한가?

종교의 책임

1993년 10월 20일자 「아시아위크」지에 “보스니아, 종교 분쟁의 진앙”이라는 표제가 실렸다. 1993년 6월 13일자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지는 “종교 수뇌들, 보스니아 재난을 끝내야”라는 제목의 논평 기사를 게재하였다. 그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이슬람교는 ·⁠·⁠·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전세계가 밤마다 (보도 매체를 통해) 지켜 보고 있는 이번만은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벌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 전쟁에 대한 책임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바로 그들의 위선적인 경건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쪽 편이 이기도록 축복함으로써 그렇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동방 정교회 신자들 간에 반목이 그토록 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교황과 총대주교를 비롯하여 종교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 두 종교가 1054년에 최종적으로 분리된 이래로 교회 지도자들은 양편의 신자들 간에 반목과 전쟁을 조장해 왔다.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신문 「포베다」지 1991년 9월 20일자는 당시 벌어지고 있던 전투에 관한 기사에서 그 교회 분리 즉 이교(離教)와 그에 따른 결과를 지적하였다. “하느님의 이름을 빙자한 살인자들”이라는 표제 아래 그 기사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크로아티아 대통령] 투주만과 [세르비아 지도자] 밀로세비치의 정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 전쟁이다. 짚고 넘어갈 점으로, 교황이 경쟁 상대인 정교회를 쓸어내기로 결정한 지 이미 천 년이 지났다. ·⁠·⁠· 1054년에 ·⁠·⁠· 교황은 교회 분리에 대한 책임이 정교회에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 1900년에 열린 제1회 가톨릭 교회 대회에서는 20세기에 정교회를 말살할 계획이 명확하게 설명되었다. [이] 계획이 지금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최근의 분쟁이 금세기 최초의 종교 분규 사례는 아니다. 50년 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로마 가톨릭은 이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정교회의 존재를 없애 버리려고 하였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운동 조직인 우스타샤는 교황의 후원을 받아 크로아티아 독립 국가의 정권을 잡았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이 통치는 “수십만 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처형하는 등 야만스럽기 이를 데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고슬라비아의 아우슈비츠와 교황청」(The Yugoslav Auschwitz and the Vatican)이라는 책은 이러한 대량 살육—수만 명의 희생자가 있었음—을 입증할 뿐 아니라 그 일에 교황청이 연루된 사실도 문헌으로 입증하고 있다.

반면에 정교회는 이 전투에서 세르비아를 후원하였다. 한 세르비아 군 부대장은 “우리의 사령관은 총대주교”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만도 15만 명이나 되는 사망자 혹은 실종자를 낸 이 살육 사태를 막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었는가? 프레드 슈미트는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지에서,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관할하는 가톨릭, 동방 정교회,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즉각 전투 중지 명령을 내리고, 함께 만나 그들의 신자들이 종교는 달라도 이웃으로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는 공식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의 「프로그레스 트리뷴」지는 논평 기사에서 전쟁은 “그 곳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중단시키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중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기사는 종교 지도자들이 “사라예보에서 포탄을 발사하는 신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즉각 파문함으로써” 그렇게 할 것을 제안하였다.

평화를 조성하는 진정한 힘이 아니다

그러나 역대 교황들은, 극악 무도한 전범을 파문해야 한다고 동료 가톨릭 신자들이 탄원했을 때에도 그런 조처를 취하기를 한결같이 거부해 왔다. 예로서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가톨릭 텔리그래프-레지스터」지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나 신앙을 저버린 자에 대해 교황에게 보내는 전문”이라는 표제 아래 이렇게 보도하였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파문해야 한다고 교황 피우스 12세에게 탄원한 바 있다. ·⁠·⁠· [전문]의 일부는 이렇다. ‘아돌프 히틀러는 가톨릭 신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로 양육되고 교육받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결코 파문당하지 않았다.

또한, 잔악 무도한 전쟁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상황을 고려해 보자. 아프리카 나라인 부룬디,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자이르에서 모인 로마 가톨릭 주교 15명은, 이 지역에 영세받은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는데도 “내전이 대량 학살, 파괴, 주민 강제 추방을 가져왔다”고 자인하였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사람들의 정신에 충분히 스며들지 않은 데 있다”고 이 주교들은 인정하였다.

1994년 4월 8일자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는 “교황이 ·⁠·⁠·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의 분쟁에 관한 보도를 처음 듣고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가톨릭 신자인 르완다에서의 살육에 대해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교황은 말하였다. 그렇다. 양편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에서처럼 서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그리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실로 볼 때, 모든 종교가 전쟁에서 편을 든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인가? 평화를 조성하는 참된 힘이 되는 종교가 과연 있는가?

[5면 삽화]

여기 교황 대사 바살로 디 토레그로사와 함께 있는 히틀러는 결코 파문당하지 않았다

[자료 제공]

Bundesarchiv Kobl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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