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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그것이 해결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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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그것이 해결책인가?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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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5
깨95 3/15 25-27면

청소년은 묻는다 ·⁠·⁠·

낙태—그것이 해결책인가?

“검사 결과 제가 임신하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즉시 제 남자 친구는 낙태를 하라고 요구했어요. 낙태를 하도록 돈까지 주더군요.” 주디의 회상이다. 그 당시 주디는 열일곱 살이었다.a

열다섯 살인 마타는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낙태 진료소에서 한 여자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마타는 이렇게 말한다. “상담원은 저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어요. 제가 낙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만약 제가 낙태를 원하지 않는다면 입양 기관이나 산원(産院)을 찾도록 도와 주겠다고 하였어요.”

미국에서만도 매년 백만 명이 넘는 소녀들이 임신을 한다. 그 가운데는 그리스도인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멀리하”라는 즉 혼전 성관계를 멀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얼마의 청소년들도 포함된다. (데살로니가 첫째 4:3) 이러한 부도덕의 결과로 불필요한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청소년들 가운데 많은 수는 자기의 행로를 후회하고 생활 방식을 바로잡기를 원한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은 사생아를 낳게 된다는 두려운 전망에 직면하여, 낙태가 자기 문제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결국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오십만 명의 임신한 소녀들이 낙태를 택한다. 정말 낙태가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최상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일부 청소년이 낙태를 하는 이유

이해할 만하게도, 강하고 심지어 상반되는 어떤 감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젊은 여성은 틀림없이 자기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끼겠지만, 동시에 당연히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지 모른다.

예를 들어, 18세 된 비키는 “대학에 가서 가능하면 석사 학위까지 얻고 싶”었다. 비키의 생각에는 아기를 갖게 되면 그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잡지 「십대」[’Teen], 1992년 3월 호) 마타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결론 내렸다. “어머니가 되면, 아기와 함께 집에 있어야 하니까 더는 학교에 갈 수 없지요. 저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낙태를 하는 십대들의 87퍼센트는 아기를 갖게 되면,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자기의 생활에 닥칠 것을 두려워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과 홀어버이로서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염려 역시 많은 청소년이 낙태를 택하는 일반적인 이유이다. 비키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는 혼자서 세 자녀를 기르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을 보았지요. ·⁠·⁠· 어머니처럼 결국 홀어버이로 살아가게 되는 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어요.”

또한 다른 사람들의 압력, 특히 남자 친구가 임신 중절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주디의 남자 친구는 이렇게 최후 통첩을 하였다. “낙태를 하지 않으면, 다시는 너를 만나지 않을 테야.” 낸시의 경우는 어머니와 다른 친척들이 낙태를 하라고 압력을 가하였다.

낙태는 실제로 유아를 살해하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통념 역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비키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태아를 아기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 임신 5주째가 되면 태아는 새끼손가락의 손톱보다도 작다는 글을 읽었지요. 제가 그 생각에 얼마나 매달렸는지 모르실 거예요.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실제로 아기가 아니라고 혼잣말을 하였지요. 저는 태아가 실제 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낙태를 할 수 있었어요.”

또한 일부 사람들은 적어도 과학 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낙태가 안전하다고—아마 임신한 청소년이 출산하는 일보다 더 안전할 것이라고—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요소를 고려해 볼 때 낙태가 바람직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낙태를 택한 많은 청소년이 나중에 후회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20세 때 낙태를 하였어요. 지금은 34세인데, 제가 저질렀던 일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아기를 원하였지만, 제 남자 친구가 원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직도 감정적인 고통을 겪고 있어요. 이런 고통은 평생 동안 계속되겠지요.”

감정적인 상처

낙태는 손쉬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최소한 낙태는 선과 악에 대한 내적인 감각—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넣어 주신 양심—을 거스른다. (로마 2:15) 더 나아가 낙태는 젊은 여성에게 자기 속에서 자라는 연약한 생명에 대한 부드러운 동정심을 막아 버릴 것을 요구한다. (비교 요한 첫째 3:17)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는 일인가!

마타는 이렇게 말한다. “[낙태를 한 후] 두 주가 지나자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과 어느 정도의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기를 출산할 예정이었던 달인 2월이 되자 상황은 훨씬 더 나빠졌다. 엘리아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15년 전에 저는 낙태를 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중우울증에 걸렸고, 병원에서 여러 번 치료를 받아야 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젊은 여성들이 모두 다 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진실로 태아가 인간 생명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창조주—“생명의 원천”—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시 36:9) 성서에서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태 속에서 자라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단순한 태아 세포 조직에 불과한 것으로 보시지 않음을 분명히 알려 준다. 그분은 다윗 왕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다. “당신의 눈은 태아 때에도 저를 보셨으며, 당신의 책에 그것의 모든 부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시 139:16, 「신세」) 이와 같이 창조주께서는 태아까지도 별개의 개인, 즉 살아 있는 인간으로 간주하신다. 이러한 이유로 그분은 태 속에 있는 아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출애굽 21:22, 23, 「신세」 참조) 그렇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태 속에 있는 아기를 죽이는 일은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는 젊은 여성이라면—자기가 받는 압력에 관계없이—낙태를 받아들일 만한 대안으로 고려할 수 없다.b

지원을 받음

서두에서 언급한 주디는 아기를 낙태시키지 않는 편을 택하였다. 주디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가 알고는 처음부터 바로 지원해 주었는데, 특히 감정적으로 지원해 주었어요. 언니는 제가 아기를 낳은 후에도 계속 지원해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어요. 그것은 제가 마음속 깊이 옳다고 느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격려였지요. 저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고, 아기를 낳았어요.” 9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여덟 살 난 아들을 보면서 주디는 이렇게 말한다. “낙태를 했더라면, 제 생애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 게 되었을 거예요.”

이와 비슷하게 나티사라는 젊은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5년 전에 저는 낙태 진료소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지요. 차례가 되어 의사를 만나는 대신에, 저는 다시 생각해 보고 진료소에서 나왔어요. 지금은 저에게 정말 귀여운 네 살 난 아들이 있어요. 머지않아 또 한 아이를 낳을 예정이며, 아이한테 인자한 아버지를 남편으로 맞아들였지요.”

결혼 관계 밖에서 임신하게 된 어떤 사람도 성급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상황이 나빠 보이는 것만큼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지원과 원숙한 인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부모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좋은 시작이며, 부모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특히 그러하다. (잠언 23:26) 사실, 처음에 부모는 틀림없이 속이 상하여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결국 마음이 움직여 도움을 베풀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는 출산 전에 보살핌을 받도록 마련할 수 있다. 또한 부모는 받을 자격이 되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도와 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부모는 잘못을 범한 사람이 회중 장로들로부터 필요한 영적 도움을 받도록 격려할 수 있다.—야고보 5:14, 15.

일부 미혼모들은 자기가 아기에게 최상의 보살핌을 베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기를 포기하고 입양시키는 편을 택하였다. 입양이 아이의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좋은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부양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다. (디모데 첫째 5:8) 홀어버이는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최상의 것을 주지 못할 수 있지만, 훨씬 중요한 것—사랑—을 줄 수 있다. (잠언 15:17)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미혼모가 직접 자녀를 기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유아를 기르는 일—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오게 될 생활 방식의 극심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이 대처하기 벅찬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성서는 사람들이 이러한 도전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교훈을 제공한다. 회개하는 미혼모들 역시 하느님의 말씀에 확고히 근거한 영적인 도움을 받음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 사랑 넘친 지원과 올바른 인도를 받음으로, 미혼모들은 그러한 상황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다.c 낙태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각주]

a 일부 이름은 가명임.

b 과거에 잘못을 범하여 태 속에 있는 생명을 낙태시킨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결론 지을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회개하는 행악자들을 지원하시고 “널리 용서”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사야 55:7) 감정적인 상처는 오래갈지 모르지만, 시편 필자는 이렇게 보증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느니라].”—시 103:12.

c 「파수대」 1981년 1월 호 “오늘날의 세상을 대처해 나가는 홀어머니들” 기사 참조. 또한 본지 1994년 10월 15일 호에 나오는 “청소년은 묻는다 ·⁠·⁠· 미혼모가 어떻게 자신의 상황에 가장 훌륭히 대처할 수 있는가?” 기사 참조.

[26면 삽화]

남자 친구들은 종종 소녀들에게 낙태하도록 압력을 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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