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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가 내 목숨을 되찾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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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가 내 목숨을 되찾게 해주었다
  • 깨어라!—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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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6
깨96 10/22 12-15면

진리가 내 목숨을 되찾게 해주었다

나의 이전 친구 대부분은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기 전에 나는 종종 그들을 거리에서 만나곤 하였습니다. 진리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나는 1954년 12월 11일, 존 호리와 도러시 호리의 둘째이자 막내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내 이름을 돌로러스라고 지었지만, 막상 내가 태어나자 어머니는 나를 돌리라고 불렀는데, 내가 아기 인형처럼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이 애칭으로 불렸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가장 심한 악몽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안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철도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기다랗고 좁게 설계된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 아파트는 뉴욕 시 61번 가에 있었습니다. 쥐들이 들락거리는 별로 살기 좋은 아파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내가 쥐한테 물리자 우리는 즉시 그 아파트에서 이사하였습니다.

1957년에 우리는 남부 맨해튼의 동부 지역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전에 살던 곳과 비교해 볼 때 이 곳은 훌륭하였습니다. 멋진 침실이 있고, 창 밖으로는 큰 공원이 있고, 이스트 강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나는 배가 지나가는 것과 아이들이 공원에서 미식 축구와 야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곳은 나에게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안정된 세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알코올 의존증과 마약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투는 일이 많았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항상 술에 취해 있음을 차츰 알아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한 직장에 머물러 있지 못하였으며 어머니 혼자서 일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나를 놀렸으며, 그 때문에 내 인생은 비참해졌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난폭해지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홀어버이 가정이 되었습니다. 내 나이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때쯤이었는데, 나는 우리 가족 상황 때문에 매우 상심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언니와 나는 방과후 이웃 사람들에게 맡겨졌습니다.

6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몹시 반항적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빼먹고 근처의 톰킨스 스퀘어 공원으로 가서, 얼마 살지도 않은 내 인생의 시름을 술로 잊어버리려고 애쓰곤 하였습니다. 나는 곧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친구들과 몰려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열한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나이보다 커 보여서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로 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 친구들의 무리는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LSD를 사용하고, 헤로인 주사를 맞았습니다. 어쨌든 나도 인정받고 싶어서 이러한 물질들을 사용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열네 살 무렵에는, 이러한 물질들에 의존해야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알게 되다

“너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나니까 너를 죽이는 일도 내가 하겠다.” 이 말은 자녀로 인해 몹시 마음이 상하거나 실망한 우리 이웃의 어머니들이 하던 말입니다. 보통 때는 매우 침착하고 감정을 잘 제어하던 우리 어머니도 열네 살 된 딸이 헤로인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나를 죽이겠다고—말하였습니다.

나는 욕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닫고 욕조에다 다리를 뻗디딘 채 등으로 문을 열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동작이 너무 느렸습니다. 이젠 정말 혼쭐날 참이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과 언니가 욕실로 들어와 어머니를 붙잡고 내가 아파트에서 피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진노로부터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도망해 있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나는 마약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얼마의 도움을 받는 데 응하였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음

몇 달 후, 나는 TV에서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 관한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 곳은 마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정으로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나는 내가 본 광고에 관해 어머니와 의논하였으며, 어머니는 나를 뉴욕 시에 있는 한 재활원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재활원에서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싶은 동기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약 2년 반을 살았습니다.

베풀어진 도움으로부터 유익을 얻긴 했지만, 내가 신뢰하고 존경하던—그리고 마약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여겨지던—일부 직원들이 다시 마약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몹시 실망하였습니다. 배신감과 내가 어리석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한번 중독자는 영원한 중독자”라는 속담이 거짓말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서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산 증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일곱 살 때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으며, 다시는 헤로인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머니와 언니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여전히 집안의 골칫거리

마약 사용은 중단했지만 나는 여전히 집안의 골칫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흡연이나 디스코 파티 등을 금하는 가족의 새로운 규칙에 따라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는 나를 아파트에서 나가게 하였습니다. 내가 교제와 세상적인 태도를 바꾸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어머니가 정말 미웠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의로운 원칙에 확고하였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새롭고 더 나은 삶을 꾸려 가기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대학에 다닐 학비를 버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복학을 하여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는 아주 잘 해내어 다시 사회의 유용한 성원이 되었습니다. 좋은 직업과 내 소유의 아파트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옛 남자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개선시킨 다음, 바르게 살면서 결혼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남자 친구가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우리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감정적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내가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감정을 약물로 달래는 일—을 하였습니다. 나는 코카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위 부자들만의 황홀경이라고 하는 것을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코카인은 중독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헤로인보다 더 나빴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나는 코카인을 약 3년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가 악순환에 빠져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인생에 염증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돌아가서, 이러한 생활에 신물이 나기 때문에 재활원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또 1년 반을 보낸 후 나는 다시 마약에서 벗어났습니다.

거의 진리를 찾다

나는 다시 좋은 직업과 멋진 아파트를 구하였고 남자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우리는 약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나와 정기적으로 접촉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성서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보내 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잡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밀 계획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에게 책 한 권—「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을 보내 주었는데, 그 책은 내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또한 내가 그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얻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내 감정과 내 속마음을 진정 이해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정상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동거하던 사람은, 내가 「가정」 책과 성서를 보여 주려고 하자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힘든 결정을, 즉 그의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를 떠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하였습니다. 그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남자 친구는 몹시 화를 냈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그가 면도칼로 내 옷을 전부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내 소유의 물건은—구두건 코트건 가구건—거의 모두 찢겼든지 팔렸든지 하였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내 몸에 걸치고 있던 옷뿐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투쟁할 기력조차 없이 소진할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에 대처하기 위해 늘 하던 행동—약물로 감정을 달래는 일—을 다시 하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자살을 하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다시 마약을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어머니는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방문해서 「파수대」와 「깨어라!」를 갖다 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대화 중에 나는 어머니에게 내 감정을—노력할 기력조차 잃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간단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시험해 보았으니, 한번 여호와를 시험해 보는 게 어떻겠니?”

진리로 인해 구출됨

1982년에, 어머니가 여러 해 동안 권고해 온 일을 하기로 동의하였습니다. 나는 진지하게 성서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곧 내가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이 여호와께 매우 소중하다는 것과 인생에는 참다운 목적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호와를 섬기려면 변화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과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다시 집으로 들어가도 괜찮겠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너무 자주 어머니를 실망시켜 왔기 때문에 어머니는 신중을 기하였습니다. 다시 들어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대해 어머니는 그리스도인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어머니가 느끼는 것을 알고서 그 장로는 “따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권고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성서 연구를 계속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내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서에서 제공하는 조언 덕분에 나는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요한 17:17) 나로서는 헤로인과 코카인 중독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웠던 중독인 담배를 피우던 습관도 끊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살아 있는 것이 정말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몇 달 후인 1983년 12월 24일에, 나는 여호와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물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4월에는 봉사의 직무를 증가시키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보조 파이오니아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나의 이전 동료들은 내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고서 나를 조롱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미리 경고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그런 길을 자기들과 함께 동일한 방탕의 늪까지 계속 달리지 않기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여러분에 대하여 모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베드로 첫째 4:4.

1984년 9월에, 나는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었고, 이내 10건의 주간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습니다. 이 연구 중 일부는, 내가 처음으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였을 때 나를 조롱하던 사람들과의 연구였습니다. 그 즈음은 내 인생에서 매우 감격적인 순간이었는데,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성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녀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던 나에게 이른바 영적 자녀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끊임없는 기쁨의 근원이 되었습니다.—비교 고린도 첫째 4:15.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우리 집 근처의 거리에서, 한때 마약을 함께 사용했던 이전 친구들을 만나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사기를 감염된 사람들과 함께 사용한 결과, 에이즈에 걸려 끔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많은 친구들이 죽었습니다. 성서 진리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아마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사실, 성서 진리가 내 목숨을 되찾게 해준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라

나는 종종, 어릴 때 진리를 알았더라면 고통과 불행이 가득한 인생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청춘을 헛되게 보냄으로 겪게 된 고통을 극복하도록 여호와께서 지금도 도와 주고 계시지만, 감정적인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려면 새 제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계시 21:3, 4) 현재 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여호와를 알고 있는 것은 축복이며 또한 그분의 조직의 도움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합니다.

세상이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은 여러분이 세상의 재미를 고통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이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여러분을 버릴 것입니다. 마귀가 세상의 통치자—실제로 이 세상의 신—이므로 우리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한 성서의 말씀은 참됩니다. (요한 12:31; 14:30; 16:11; 고린도 둘째 4:4; 요한 첫째 2:15-17; 5:19) 세상 사람들은 부패의 종으로 살아 가고 있으므로 그들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베드로 둘째 2:19.

나의 체험담이, 다른 사람들이 “참된 생명” 곧 하느님의 신세계에서의 영원한 생명만이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걸으면서 아무리 심한 삶의 기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울타리 너머에, 즉 사탄의 세상에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사탄이 그렇게 보이게 하려고 애쓰는 것일 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나 역시 참된 생명, 그렇습니다.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계속 내 눈을 고정시킬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디모데 첫째 6:19)—돌리 호리의 체험담.

[15면 삽화]

어머니와 함께 톰킨스 스퀘어 공원에서 증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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