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7 8/22 19-21면
  • 어떻게 해야 늘 꾸지람을 듣는 일이 없게 될까?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어떻게 해야 늘 꾸지람을 듣는 일이 없게 될까?
  • 깨어라!—199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부모와 “흉금을 털어놓는 이야기”
  • ‘자기 행실이 어떠한지를 증명함’
  • 편애하는 것처럼 보일 때
  • 문제가 있는 가정
  • 왜 언제나 내 잘못인가?
    깨어라!—1997
  •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 부모에게서 어떻게 더 많은 자유를 얻어 낼 수 있는가?
    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 왜 부모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더 보기
깨어라!—1997
깨97 8/22 19-21면

청소년은 묻는다 ·⁠·⁠·

어떻게 해야 늘 꾸지람을 듣는 일이 없게 될까?

“전 언제나 무슨 일로 꾸지람을 들었어요. 문단속이 안 되어 있다든지, 가스불이 꺼져 있지 않다든지, 뭔가가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건 제 잘못이었죠!”—라몬.

십대 시절에는,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되기만 하면 자기가 꾸지람을 듣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앞서 나간 기사에서, 우리는 부모들이 너무 성급하게 자녀를 꾸짖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a 그렇게 되는 이유로는, 정상적인 부모의 관심을 비롯하여 감정적인 심한 괴로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자기 잘못이 아닌 일들에 대해 책임 추궁을 당하면 고통스럽고 창피스러울 수 있습니다.

물론, 불완전한 인간인 당신은 때때로 실수를 저지를 것입니다. (로마 3:23) 게다가, 당신은 어리기 때문에 비교적 경험이 없습니다. (잠언 1:4, 「신세」 참조) 따라서 판단을 내리는 면에서 이따금 잘못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저지를 때,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일입니다.—전도 11:9.

그러면 자기가 실제로 저지른 일에 대해 꾸지람을 듣게 될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일부 청소년들은 마치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나 당하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부모가 언제나 사사건건 자기를 야단친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소란을 피웁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실망한 부모는 자녀가 알아듣게끔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성서는 이러한 충고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언 1:7, 8) 자기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필요한 변화를 할 때, 자기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됩니다.—히브리 12:11.

부모와 “흉금을 털어놓는 이야기”

하지만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꾸지람을 듣는다든가 호된 꾸지람이 그칠 새가 없다면, 문제가 전혀 달라집니다. 그럴 때 화가 나고 반감이 생기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야단만 맞을 바에는 못된 짓을 저지르고 싶은 생각마저 들지 모릅니다. (전도 7:7, 「신세」 참조) 하지만 앙심을 품고 하는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해롭습니다. (비교 욥 36:18) 잠언 15:22(「신세」 참조)은 문제를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의논[“흉금을 털어놓는 이야기”]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당신을 대하는 부모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는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부모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우선, 성서가 “때에 맞은” 말이라고 표현했듯이, 말할 적절한 때를 찾으십시오. (잠언 15:23) 클레이턴 바보라는 저술가는 “양쪽 다 흥분이 가라앉고 모두들 기분도 꽤 좋은 때와 장소를 택하라”고 제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그러므로 접근할 때, 호전적이 되지 말고 친절하고 공손하게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냉정을 잃고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잠언 29:11) (‘언제나 사사건건 날 야단치시잖아요!’라고) 부모를 공격하지 말고, 부모가 끊임없이 꾸지람하기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제 잘못이 아닌 일로 꾸지람을 듣게 될 때는 기분이 상합니다’라고) 설명해 보십시오.—비교 창세 30:1, 2.

부모가 오해를 하여 화를 내는 경우에도 그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부모도 한때 어린 예수의 행방을 알 수 없었을 때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우는 소리를 하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침착하게 그 상황을 분명히 설명하였습니다. (누가 2:49) 당신도 곤란한 입장에 처했을 때 어른스러운 태도로 부모를 대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모가 화난 것은 당신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공손하게 잘 들으십시오. (잠언 4:1) 당신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에 앞서,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자기 행실이 어떠한지를 증명함’

하지만 일부 부모들이 자녀에 관해 성급하게 그릇된 결론부터 내리고 보는 경향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때때로 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의심할 만한 원인을 제공합니다. 잠언 20:11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당신은 부모에게 어떤 평판을 얻어 왔습니까? 당신은 “동작”으로써 당신이 “정직”하고 신중함을 나타냈습니까, 아니면 경솔하고 책임감이 없음을 나타냈습니까? 후자의 경우라면, 부모가 종종 당신에 대해 성급하게 그릇된 결론을 내리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앞에서 언급한 젊은이 라몬은 부모의 책망에 대해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저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부모님이 의심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었거든요.”

당신의 경우에도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생활로써 과거의 오명을 씻는 것뿐입니다. 신뢰할 만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 양식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당신이 변화하였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을 부모에게 점진적으로 확신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라몬의 경험은 이 점을 잘 예시해 줍니다. 라몬의 친구들과 가족은 아무런 악의 없이 그에게 얼빠진 교수님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그가 뭐든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부모도, “철이 없다”든가 “책임감이 없다”는 식의 좋지 않은 딱지를 당신에게 붙였습니까? 저술가 캐슬린 매코이가 지적하듯이, 부모는 그러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잘못된 점을 꼭 집어 주어 십대 청소년이 그 점을 깨닫고 변화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고정적인 표현은 흔히 심한 반감을 일으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라몬은 그 별명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뭔가 한 가지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열쇠나 과제물 같은 것을 잃어버리고 일상적인 집안 일 하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였거든요”라고 그는 시인합니다.

그래서 라몬은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책임과 우선 순위에 관해 배우기 시작했지요. 계획표를 짜고, 개인 성서 연구를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여호와께서는 큰일들뿐 아니라 작은 일들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16:10) 성서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마침내 라몬은 잘 잊어버린다는 오명을 벗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보지 않겠습니까? 어떤 고정적인 표현이나 별명이 정말 듣기 싫다면, 부모에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아마 부모는 당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입니다.

편애하는 것처럼 보일 때

편애로 말미암아 꾸지람을 듣게 되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라몬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형들이나 누나들은 집에 늦게 돌아와도 아무 일이 없었지요. 제가 늦게 왔다 하면 그 때는 큰일난 겁니다.” 가이아나 사람인 알베르트는 자기도 자랄 때 비슷하게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동생보다 자기를 더 엄하게 징계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보이는 것과 늘 같지는 않습니다. 부모는 흔히 큰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데, 그것은 편애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특수한 환경과 관련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알베르트는 자기 동생이 “작고 몸이 약하기” 때문에 신체적인 징계를 덜 받았다고 시인합니다. 부모가 특정한 아이에게 있을 수 있는 특별한 필요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편애입니까?

물론, 때로는 부모가 실제로 편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교 창세 37:3) 알베르트는 몸이 약한 동생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는 그 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었어요.” 다행히, 그리스도인 사랑은 뻗어나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고린도 둘째 6:11-13) 그러므로 부모가 동기간 중 하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당신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그 아이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당신을 야단치면서 당신을 불공평하게 대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이 그런 것 같다면, 어떻게 해서든 부모에게 당신의 느낌을 알리십시오. 침착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부모가 편애를 나타낼 때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야기하십시오. 아마 부모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가정

물론, 모든 상황에서 변화가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부 부모들의 경우, 창피를 주고 야단을 치는 것이 몸에 밴 버릇이 되었습니다. 감정적인 문제가 있거나 중독 증세와 싸우고 있는 부모들 가운데 특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문제를 이야기해 보려고 해봤자 별 성과가 없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그런 환경에 놓인 것 같다면, 부모의 문제는 당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으며 아마도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부모에게 합당한 공경과 존경을 나타내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6:1, 2) 잠언 22:3은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고 알려 줍니다.b

이와 동시에, 외부의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장로와 같은, 장성한 어른과 상의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으로부터 받게 되는 사랑에 찬 관심은, 언제나 당신 잘못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과 동시에,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야고보 4:8) 사람들이 부당하게 당신을 야단칠지 모르지만,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9, 14) 당신이 하느님 보시기에 귀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부당하게 꾸지람을 들을 때 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각주]

a 본지 1997년 7월 22일 호에 나오는 “청소년은 묻는다 ·⁠·⁠· 왜 언제나 내 잘못인가?” 기사 참조.

b 본지 1989년 6월 15일 호의 “청소년은 묻는다 ·⁠·⁠· 구두 학대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기사 참조. 또한 본지 1996년 10월 22일 호의 “상처를 주는 말에서 치료하는 말로”라는 일련의 기사 참조.

[21면 삽화]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우리의 실수를 통해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