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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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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9
깨99 2/22 30면

독자로부터

가난이 끝날 때 「깨어라!」 1998년 6월 8일호에 실린 “가난이 끝날 때가 가까웠다”라는 일련의 기사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는 참으로 사물을 올바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다루었으며, 제게 불평하는 태도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실직한 상태인데다 여유 돈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가난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음식, 의복,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호와—에 대하여 감사하게 여기겠습니다. 그리고 가난이 끝날 때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제 결심은 여호와의 왕국을 계속 구하고 더는 불평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C. W., 뉴질랜드

독신 생활 저는 여러 해 동안 여러분이 발행한 잡지를 읽어 온 사람입니다. “성서의 견해: 독신 생활은 그리스도교 교직자의 요구 조건인가?” 기사(1998년 6월 8일호) 가운데 가톨릭교의 교리에 관한 편파적인 내용이 있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가톨릭교에는 “강요된 독신 생활”이란 결코 없습니다! 특정한 서원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자원하여 선택한 독신 생활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든 독신 생활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R. G., 독일

우리는 강요된 독신 생활이라는 말과 사람들이 독신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는다는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어느 회사가 복장에 관한 규정을 세워 놓고, 그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동의한 사람들만 고용하는 반면 그 규정을 어긴 사람들은 해고할 경우, 그 회사에 “강요된” 복장 규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로, 가톨릭 사제직에 “강요된 독신 생활”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행한 기사는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에게 독신 생활을 선행 조건으로 삼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주로 지적한 것입니다. (디모데 첫째 3:2) 그 기사는 인생 행로로서 독신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는커녕, 독신 생활이 “일부 사람에게는 보람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만족스러운 생활의 길임이 증명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편집자.

두 아버지 사이에서 내가 한 선택 저는 열네 살 때 학교 친구에게서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를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 특히 아버지는 제가 연구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집에서 내쫓겠다고 위협하셨지만, 다행스럽게도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는 꾸준히 연구를 하였고 5년 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기사(1998년 6월 8일호)에 나오는 형제처럼, 제가 바라는 것은 언젠가 우리 부모도 저와 같이 여호와의 의로운 신세계에서 생활할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W. S. L., 브라질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호하게 제 믿음을 반대해 오셨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서로 합리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있기는 하지만, 성서나 여호와의 증인이 대화의 주제가 되기만 하면, 아버지는 무서우리만큼 화를 터뜨리십니다. 아버지는 제게 여러 차례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 그처럼 긴장되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굳건히 서 있도록 따뜻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I. H., 독일

저는 이 기사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종교적으로 분열된 가정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그처럼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청소년의 감정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A. M., 이탈리아

섬유성근육통 “섬유성근육통을 이해하고 견디며 살아감” 기사(1998년 6월 8일호)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6년째 섬유성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완벽하고 정확합니다. 또한 네모 안에 실린 성경 구절들이 제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N. M., 미국

이 기사에 대한 반응이 대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발행될 호에 더 많은 의견들을 싣고자 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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