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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질문 사용
질문은 대답을—말로 하는 대답이든 머릿속으로 하는 대답이든—요구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관련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화를 시작하고 고무적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데 질문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연사이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질문을 사용함으로써, 흥미를 일으킬 수도 있고, 누군가가 어떤 문제에 관해 추리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당신의 말에 강조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을 잘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수동적으로 듣는 대신 적극적으로 생각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방식으로 질문을 하십시오.
대화를 권하기 위해. 야외 봉사에 참여할 때,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권하기 위해 기회를 살피십시오.
많은 증인들은 단지 “··· 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흥미 있는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 경우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을 선택하면, 야외 봉사에서 거의 틀림없이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생각하기에 생소한 질문일지라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표현으로 매우 다양한 문제들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자 빌립은 이사야의 예언을 소리 내어 읽고 있던 에티오피아 궁정 관리에게 다가가서, 단지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실제로 아십니까[다시 말해서,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도 8:30) 이 질문으로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일부 증인들도 그와 비슷한 질문을 사용하여, 성서 진리를 명백하게 이해하기를 참으로 갈망하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되면, 당신의 말을 더 기꺼이 듣게 될 것입니다. 질문하고 나서, 주의 깊이 잘 들으십시오. 비평적이 되지 말고, 오히려 상대방의 대답을 알아들었음을 친절하게 나타내십시오. 진실하게 칭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한번은 서기관이 “총명하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당신은 하느님의 왕국에서 멀지 않습니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마가 12:34) 상대방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을지라도, 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에 대해 감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성서 진리를 전해 줄 때 고려해야 할 태도를 그 사람의 말에서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상을 소개하기 위해. 어떤 그룹에게 말하거나 개인과 대화할 때, 중요한 사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질문들을 사용해 보십시오. 반드시 청중의 진정한 관심사와 관련이 있는 질문들을 하도록 하십시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들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을 하고 나서 잠깐 멈춘다면, 청중은 아마 고조된 관심을 가지고, 이어지는 말을 잘 들을 것입니다.
한때 예언자 미가는 여러 개의 질문을 사용했습니다. 그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를 물은 후에 네 가지 질문을 더 열거했는데, 각 질문에는 가능성 있는 대답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미가는 자신이 논하는 그 부분을 통찰력 있는 대답으로 끝맺었는데, 그 모든 질문은 독자들이 그 대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가 6:6-8) 당신도 가르칠 때 그러한 질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사용해 보십시오.
어떤 문제를 놓고 추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논증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질문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말라기 1:2-10에서 알려 주듯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선언을 하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먼저 그분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사랑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사랑을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그분은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런 다음, 여호와께서는 에돔의 황폐한 상태가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악함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임을 지적하셨습니다. 뒤이어 그분은 이스라엘이 그분의 사랑에 올바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예를 드시면서 간간이 질문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질문들 중 일부는 불충실한 제사장들이 묻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편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에게 물으신 질문들도 있습니다. 그 대화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관심을 붙들어 둡니다. 그 논리는 반박할 수 없고, 그 소식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일부 연사들은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질문을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말로 하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청중은 대화를 나누듯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주고받게 됩니다.
성서 연구를 사회할 때, 우리는 연구생이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물론 연구생이 인쇄물에 나오는 대답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유익합니다. 친절한 어조로, 보조 질문을 사용하여 연구생과 추리하십시오. 주된 사상들에 대해서는, 대답의 근거로 성서를 사용하도록 권하십시오.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논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연구한 이 점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그러한 방법은 당신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거나 당신 자신이 자세히 설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연구생이 “이지력”을 사용하여 하느님을 숭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로마 12:1.
연구생이 어떤 사상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그 사람은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과 자신이 여러 해 동안 믿어 온 것을 비교해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논하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매우 기본적인 추리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많이 활용하십시오. 예를 사용하십시오. 그러한 방법들과 함께, 증거를 놓고 추리하도록 상대방에게 권하는 간단한 질문들을 사용하십시오.
마음속의 느낌을 길어 내기 위해. 사람들이 질문들에 대답할 때, 언제나 자신의 실제 느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당신이 원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답을 할지 모릅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잠언 20:5) 예수처럼,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하고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11:26.
예수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그분의 말씀에 감정이 상하여 그분을 버렸을 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느낌을 표현해 보도록 권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도 가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느낌을 이러한 말로 표현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있으며 또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7-69)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분은 뒤이어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해 보도록 권하시는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베드로는 대답하기를,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마태 16:13-16.
성서 연구를 사회할 때, 어떤 문제들에 대해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습니다. “반 친구(혹은 직장 동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어본 다음에, “그 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실제 느낌을 알고 있을 때, 당신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최상의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강조를 더하기 위해. 사상들에 강조를 더하기 위해서도 질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8:31, 32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한 질문을 사용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거스르겠습니까? 자기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왜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을 또한 우리에게 친절하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각각의 경우에, 문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절(節)을 바탕으로 질문이 전개되고 있음에 유의하십시오.
바빌론 왕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기록한 후에,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임으로 강한 확신을 나타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뜻을 두셨는데, 누가 그것을 꺾을 수 있겠느냐? 그분의 손이 뻗쳐졌는데,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겠느냐?” (이사야 14:27) 이러한 질문들의 내용 자체만 보더라도, 표현된 사상이 부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대답도 기대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폭로하기 위해. 주의 깊이 생각해 낸 질문들은 또한 잘못된 생각을 폭로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바리새인들과 율법 전문가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허용됩니까, 안 됩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분은 병 고침을 행하시고 나서 다시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아들이나 수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곧 끌어 내지 않겠습니까?” (누가 14:1-6) 아무 대답도 기대되지 않았고,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 질문들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폭로하였습니다.
때로는 참 그리스도인들도 잘못된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1세기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어야 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형제들을 법정에 데리고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습니까? 그는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일련의 요점 잡힌 질문들을 하였습니다.—고린도 첫째 6:1-8.
자꾸 해 보면, 질문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심을 나타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특히 연장자나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이나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질문을 사용하여 성서 진리를 호소력 있게 제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