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통-1 “메사”
  • 메사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메사
  • 성경 통찰, 제1권
  • 비슷한 자료
  • 모압 비석—파괴되었으나 소멸되지는 않았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 모압
    성경 통찰, 제1권
  • 그모스
    성경 통찰, 제1권
  • 고고학과 그 땅이 진리의 말씀을 뒷받침한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더 보기
성경 통찰, 제1권
통-1 “메사”

메사

(Mesha)

1. 유다 지파에 속한 “헤스론의 아들 갈렙”의 맏아들. 메사는 십의 아버지 즉 십을 세운 사람이었다.—대첫 2:18, 42.

2. 모압 왕.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의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왕 시대 사람.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 예속되어 있던 모압 사람들은 아합 왕에게 어린양 10만 마리와 털을 깎지 않은 숫양 10만 마리를 조공으로 바쳤는데, 아마도 그 양들은 양털의 질이 좋기로 유명한 품종들이었던 것 같다. 아합이 죽자 메사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에게 반역하였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짧은 기간 통치한 후 사망하고 그의 형제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여호람은 메사를 다시 굴복시키기 위해 유다의 여호사밧과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에돔 왕과 굳게 동맹을 맺었다. 그들의 연합군은 사해 남쪽의 험한 길로 진군하였는데, 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예언자 엘리사는 메마른 급류 골짜기에 도랑들을 파면 여호와께서 그 도랑들에 물을 채워 주실 것이라는 보증을 하였다.—왕둘 1:1; 3:4-19.

보증대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물 위에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치자 모압 사람들에게는 물이 피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금방 판 도랑에서 나온 붉은 진흙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러한 착시 현상으로 인해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이 서로 싸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질투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그들이 그처럼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또한 에돔 사람들은 이때 이스라엘과 동맹한 유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왕둘 3:20-23. 대둘 20:10, 11, 24, 25 비교.

자신들의 적들이 서로 살육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압 사람들은 “그러니 이제 모압이여, 전리품을 향하여 가자!”라고 소리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쳐들어갔다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그 뒤를 쫓아 길-하레셋(모압의 ‘길’)이라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모압 사람들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샘들을 막고 그들의 토지를 돌로 가득 채웠다.—왕둘 3:23-25.

사면초가에 빠졌음을 알게 된 메사 왕은 칼을 쓰는 사람 700명을 데리고 반격하여 에돔 왕 쪽으로 돌파하려고 하였으나(아마도 그는 그쪽이 가장 저항이 적을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임)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는 자기를 대신하여 통치하게 될 맏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번제 희생으로 바쳤다.”—왕둘 3:26, 27.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메사가 자기의 신 그모스에게 자기 아들을 희생으로 바쳤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소수의 학자들은 희생으로 바쳐진 사람이 포로가 된 에돔 왕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아모스 2:1을 그 증거로 인용하는데, 그 성구에는 모압이 “에돔 왕의 뼈를 태워서 석회를 만들었”다는 언급이 있다. 히브리어를 그처럼 해석하는 것이 문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러한 후자의 견해는 알려져 있는 다른 사실들과는 어긋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이웃들인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적들을 희생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자기들의 신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자기 자녀들을 번제로 바치는 일은 잘 알려진 그들의 종교적 관행이었다. (신 12:30, 31; 미 6:6, 7) 따라서 패배를 당할 급박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모스의 숭배자인 메사가 그처럼 극단적인 수단에 의지하려고 한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모압 비석 모압 비석은 1868년에 디반(디본)에서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비석은 메사가 만든 것으로 생각되며 그 내용은 대체로 열왕기 둘째 3장에 기록된 사건들로 시작된 시대에 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명한 비문에서 메사는—그의 말에 따르면 40년간 지속된—이스라엘의 지배를 끝낸 것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그 내용 중에는 메사가 함락시킨 곳들(메드바, 아다롯, 느보, 야하스)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들어 있다. 메사는 이스라엘에 대해 거두었다고 그가 주장하는 승리에 대해서만 아니라 자신이 매우 신앙심이 강한 사람인 것에 대해서나 도시들과 도로들을 건설한 것에 대해서도 뽐내면서 그 모든 영예를 그모스 신에게 돌린다. 메사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는데, 그 문서의 18행에 테트라그람마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메사는 이처럼 자랑한다. “짐은 거기서 야훼의 [그릇들을] 취하여, 그모스 앞으로 끌어 왔다.” (1권, 946면 사진) 하지만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자신의 패배와 그의 아들을 희생으로 바친 일은 기록에서 빠져 있었다. 「성서 고고학 평론」(Biblical Archaeology Review, 1986년 5/6월, 57면)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단독으로 서 있는 석비나 신전 벽에 새겨진 기념 비문들은 선전을 목적으로 그리고 그 민족의 신과 그 나라의 통치자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메사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왕들이 그의 나라에 대해 군사 작전을 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서에는 그 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들어 있다.”

3. [히브리어, 메샤(Meh·shaʼʹ)] 사하라임이 아내 호데스를 통해 얻은 아들. 메사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한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대첫 8:1, 8-10.

4. [히브리어, 메샤(Me·shaʼʹ)] 욕단의 자손들이 살았던 지역의 경계가 된 곳들 가운데 하나. (창 10:29, 30)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메사라는 이름을 맛세로 번역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메사”는 “맛사”라는 이름의 다른 철자 형태로 생각되는데, “맛사”는 한 이스마엘 사람의 이름이며 그의 자손들은 아라비아에 정착한 것 같다.—창 25:13, 14.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