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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기록하셔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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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기록하셔도 좋은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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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파58 3/1 43-47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기록하셔도 좋은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예레미야 31:33, 미표.

1.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마음에 기록하시는가?

여호와께서 한번 하기로 결정하신 일로 하실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 수 천년전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의 언약을 맺으셨을 때 그는 그의 율법을 두 돌판에 기록하셨다. 이제는 다만 그에 대하여 감수성과 반응이 있고 또 겸손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을 받아 유순히 그리고 기쁘게 변화하는 마음에만 그의 계명을 기록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니께서 당신의 마음에 기록하실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가 아니라 그로 기록하게 할것인가? 당신은 그것을 기쁘게 용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진리를 위선적이며 야비한 자들의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귀에 조차 들려 주시려는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은 여호와의 원칙과 교훈을 기록할 만한 바탕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마태 7:6.

2.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의도가 어디 표명되어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마음이 잘 받아들여야 하는가?

2 돌에 새긴 기본적 계명과 더불어 율법의 언약이 아직 유효한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의 율법을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에 옮겨 베끼시겠다는 그의 의도를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얼마후인 오순절에 구 율법의 언약은 의를 사랑하는 마음과 여호와의 증가된 지식을 가져온 새 언약으로 대치되었다. (예레미야 31:31, 33; 갈라디아 3:24, 25; 골로새 2:14; 히브리 8:6-13) 다만 천적 반열이 되도록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만이 이 새 언약에 들게 된다. 그러나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들도 전부 그것으로부터의 축복을 같이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까지도 마치 새 언약이 존재하기 전에 충성된 사람들이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또는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여호와의 계명을 잘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시편 40:8; 119:11.

왜 마음에 기록하는가?

3. 여호와는 사람의 척도를 재실 때 어디를 보시는가?

3 여호와는 사람의 척도를 재실 때 표면적 증거에 기초를 두시지 않는다. 즉 그는 사물의 바로 중심까지 깊이 살피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는 외모에 속지 않으신다.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여호와의 판단이 어여쁜 얼굴이나 아름다운 몸 또는 화려한 복장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고 표면 안에 감추어져 있는 속 사람에 의하여 결정된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사무엘 상 16:7; 역대 상 28:9; 베드로 전 3:3, 4.

4. 마음은 무엇을 표상하는가?

4 마음은 무엇을 표상하는가? 『마음』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 말은 상징적으로 애정과 동기 그리고 양심 및 도덕적 행동의 근원을 표시하는데 가끔 사용된다. 배에 관하여 바다의 마음에 있다고 말하였으며 바다 가운데라는 뜻으로 「요나」는 바다 마음 속으로 던지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로서 그 말은 우리의 속 즉 우리의 속 사람이 사실상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 진짜 사람인 것이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언 23:7, 34; 30:19; 요나 2:3.

5. 어떤 사람은 어떻게 기만하는가? 그러나 결국 무엇이 명백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왜?

5 어떤 위선적 종교가들의 경우와 같이 그럴듯 한 말과 사람 앞에 나타내려는 행동의 겉 모양으로 사람들을 속일수있을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바리새」인들에게 적용시키셨다. 『이 백성이 입설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들에 관하여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하여 하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15:8; 23:5) 그러나 진짜 마음의 상태는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말과 행동으로 영원히 은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하며 행동하는 것은 결국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며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만일 그 마음이 악하면 그것은 그 마음의 소유자로 하여금 악하게 행하도록 재촉하며 자극할 것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태 12:33-35; 15:19.

6. 여호와는 어떻게 마음의 상태를 들어내시는가?

6 때때로 마음속 깊이 있는 생각과 감정이 괴로운 고문으로 들추어 내기 전에는 폭로되지 않는 일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마음을 들어내도록 시험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수 세기 후에 그는 그의 백성에게 『내가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인정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하게 시험을 받는다.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신명기 8:2; 이사야 48:10; 베드로 전 1:6, 7) 여호와를 섬기는 동기가 순결한가를 보며 또 헌신과 사랑의 깊이를 재며 그 개인의 성실함에 흠이 있는지를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시험하는 목표물은 마음인 것이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언 17:3.

7. 문자 그대로의 심장에 관하여 잠언 4:23에는 어떠한 사실이 밝혀져 있는가?

7 마음의 중요한 역활에 대하여 잠언 4장 23절은 다음과같이 힘차게 진술하였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심장]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은 피에 있다. 피는 고동하는 심장으로부터 맑은 샘처럼 솟아 온몸에 흐른다. 그리하여 산소와 자양분을 세포로 운반하며 또한 그곳으로부터 노폐물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의 심장은 계속 생명의 샘이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 될수 있는대로 건전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체의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감정 상태도 또한 주의 깊게 돌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장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하–베이」 박사의 논증이 있기 전까지는 의학이 혈액순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다. 그가 논증한지 수년 후인 주후 1628년에 그의 책이 발행되였으나 이 성경의 잠언(箴言) 기자는 그것에 관하여 그리스도 전 천년 전에 알았으며 생명을 가지고 있는 피를 계속 순환시키도록 심장을 주의 깊게 보존하라는 경고를 하였던 것이다.

8. 잠언 4:23에 교훈된 바와 같이 우리는 왜 상징적 심장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가?

8 그러나 이 성경 기자는 다만 올바른 것을 우리에게 퍼내주는 상징적 심장을 주의 깊이 지켜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실제적 심장을 실예로서 사용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여호와의 법으로 채우며 그의 교훈을 우리 기억에 간직하고 우리의 욕망과 애정을 그와 그의 약속된 축복에 두어 말과 행동을 우리 속의 순결한 동기로부터 샘솟도록 한다면 그 때에는 우리의 상징적 심장은 영적 건강을 유지하며 우리의 영원한 생존을 위해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의 뜻에 일치하는 말을 하게하며 행동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로 여호와의 신세계에서 영원히 거하게 하는 생명의 샘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결코 위선적이 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마음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며 일하고 생활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여호와의 율법을 잘 받아 들이도록 주의 깊이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의미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에 기록된 율법은 돌에 기록된 율법보다 나음

9. 현대 국가들은 돌에 기록된 여호와의 율법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냈는가?

9 돌판에 기록된 여호와의 율법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대 국가들의 법률의 기초가 된 것이다. 「클라–크」의 저서인 「성경의 율법」이라는 책은 22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한 특별한 백성에게 공포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은 인류에 대한 보편적 법률이 되었다.』 같은 책은 411과에서 「무어 · 브이 · 스트릭랜드」(1899)의 판결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다. 『우리의 법의 도의는 십계명에 대한 「모세」의 설명의 도의와 같은 것이다. 다만 가해질 형벌의 정도 또는 종류에 대해서만 일부 변경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판에 기록된 율법을 순종하지 않은 것과 같이 오늘날의 국가들도 그들의 법령전서에 기록된 모든 법을 따르지 않는다. 만일 사람들이 그 법을 알고 그것을 기억하며 그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순종하고저 하는 강한 속으로부터의 욕망을 갖이고 있지 않는한 그들은 붓잡히지 않게 법을 위반할 수 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범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일 그들 마음에 법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들은 위반하고 싶을 때 또는 그 형벌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때에는 그것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10. 「쿨레이」의 「헌법의 한계」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이 강요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10 여호와의 율법중의 어떠한 명령은 강요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그러한 것으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이 있다. (레위 19:18) 이 계명과 하나님의 고대 율법중 다른 중요한 점들이 그리스도교에 다시 진술되었다. 그것은 사실상 상술(詳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기록된 성문법에 의하여 강요될 수 없으며 법으로 규정된 형벌로서 벌 할수 없다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많은 행동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쿨레이」씨의 저서인 「헌법의 한계」라는 책은 975면과 976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끔 그리스도교가 국법의 일부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사실이다. … 명령중의 어떤 것은 그것들의 계속적이며 보편적인 의무를 용인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것들을 인간의 법으로는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사람에게 그 자신과 같이 그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도덕의 표준을 용인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것은 너무 고상하여 인간의 법정이 시민의 행실을 심판하는 적당한 시험으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선량한 마음과 자발적인 자선에 있어서 무엇인가 선량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느낀다 하여 그가 형법(刑法)상의 책임을 질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교의 명령은 마음을 감화케 하며 양심에 호소한다. 그러나 국가의 법률은 외부의 행실만을 참작할수 있다.』

11. 단지 법령전서에 기록된 것보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에 기록된 법을 갖는 것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무엇이 증명하는가?

11 사람으로 많은 중요한 원칙과 고상한 도덕적 표준을 따르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법령전서에 기록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인정된다.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그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게 그로 이웃을 사랑하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를 강제로 그 이웃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로 하여금 그 이웃을 사랑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 사람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감정이 솟아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이웃에 대하여 생각있게 비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율법이 그의 마음에 있다면 특별한 행동을 요구 또는 금지하는 기록된 법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소위 강요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종은 마음으로부터 솟아 나와야 하며 그것은 도의에 대한 참 시험인 것이다. 1955년 7월 3일부 「뉴–욕 · 타임스」지는 『시험 즉 강요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종』이라는 제목의 논설을 기재하였다. 그 기사 가운데 이러한 말이 있다. 『악한 일에 봉착하였을 때 우리 미국 사람들은 흔히 「마땅히 어떤 법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 악은 대부분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 법은 말질을 막을 수 없다. 법은 어떤 사람의 탐욕 또는 폭식을 억제할 수 없으며 또는 친구를 배반하지 않도록 할 수 없다. … 따뜻한 인간관계는 예절과 훌륭한 행동을 자세히 규정한 법의 결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강요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종심을 이르킴으로써 올수 있는 것이다.』

12. 지적으로 법에 일치하는 것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2 우리는 지성을 가지고 옳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을 행할 성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감정이 다른 길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억지로 옳은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리하면 그것이 마침내 그 마음에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뒤 따르는 마음과 지성 사이의 격투에서 결국 마음이 이기게 될 것이며 지성은 굴복되어 마음이 이바지한 행로를 따르기 위한 정당성을 생각하게 된다. 감정이 우리의 목덜미를 잡아 당길지라도 우리는 논리적인 것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고저 한다. 이성은 사실들을 정돈한다. 그러나 보통 선택하는 것은 감정이다. 만일 우리 마음이 사실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감동된다면 이성과 감정은 함께 옳은 방향으로 끌린다. 그러므로 기록된 법령에 의하여 강요될 수 없는 원칙을 준수해 나가기 위하여 우리는 올바른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되며 또 올바른 것을 행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록 그런때에도 타락된 육신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하고싶지 않은 것을 하게하여 가끔 실패하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단속적인 실패는 관예라기 보다는 오히려 에외일 것이며 선이 점점 습관적이 될 때 도수가 줄어들게 될것이다. 그러나 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다.

13, 14. (ㄱ) 우리 마음에 기록된 여호와의 율법은 어떻게 우리를 위선과 죄악과 타락으로부터 보호하는가? (ㄴ) 왜 선한 마음이 훌륭한 두뇌보다 더 중요한가?

13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가 12:30, 31) 만일 우리가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기와 애정의 근원인 우리 마음에 갖는다면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말하며 행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올바른 말과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며 위선적이고 불성실 할것이다. (시편 12:2; 로마 13:8, 10; 고린도 전 13:1-3; 고린도 후 9:7) 그러나 만일 여호와의 사랑의 율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일부분 즉 우리 개성의 일부분이며 동기의 근원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동기의 원천이 될 것이며 항상 우리로 하여금 올바르게 행동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14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의 법이 새겨진 마음으로부터 인도를 받는 걸음은 조심스럽고 확실하게 그리고 견고하고 튼튼한 발디딤 위에 놓여진다. 그리하여 거기에는 미끄러지거나 퇴보하는 일이 없으며 성실의 길에서 타락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죄악의 냄새를 풍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만 한낱 책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이요 그 마음에 두지 않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37:31; 119: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법으로 채운 마음은 범죄와 타락에 대한 방패이다. 이 세상은 지력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신다. 약한 마음으로부터 솟아 온 이 세상 지혜가 그것을 남용되게 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게 만든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한 마음을 가지므로 올바른 사용으로 인도되는 보통 지력이 악한 마음을 가지므로 해로운 길로 잘못 인도되는 뛰어난 지력을 갖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세계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개선을 요하는 것이 이 세상 두뇌라기 보다도 오히려 그의 도덕이라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가? 그러나 많은 개인들은 보존을 받기 위해서 요구되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즉 상징적 심장으로부터 나쁜 개념을 제거하여 그 대신 그 곳에 여호와의 법을 기록하기 위하여 이 악한 제도를 포기하고 있으나 이 악한 제도는 여호와의 「아마겟돈」 전쟁을 살아 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마음의 변화를 거절한다. 어떻게 이것을 행하는가? 그 답을 얻기 위하여 다음 기사를 읽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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