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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 성실한 자에 대한 구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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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파58 1/1 6-14면

하나님께 성실한 자에 대한 구원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성실함으로, 신세] 행하오리니.”—시편 26:9-11.

1. 우리는 어떠한 여러가지 상태로부터 구원되기를 원하는가?

구원! 우리는 참으로 여러가지로부터 구원되기를 원한다. 슬품과 고통으로부터 불의와 압제로부터 무식과 불확실성으로부터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위험성으로부터 절망과 파멸로부터 타락되고 있는 이 낡은 세계의 원치 않은 모든 악한 교제로부터!

2.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 구원이 임할 것이며 어떻게 행복된 미래가 보증되어 있는가?

2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구원이 우리 시대에 오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것은 의의 신 세계가 찬란하게 실현(實現)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께서는 속히 인류를 이 낡은 세상과 그 모든 재난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이 낡은 세상을 완전한 신 세계로 대치시킬 것이다. 이 신 세계의 일부분인 지구는 기쁨과 건강 정의와 공평 지식과 확신 평화와 안전 소망과 완전한 생명 그리고 우리가 바로 원하는 참다운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축복될 것이다. 지구 위에 이와같은 행복한 상태를 가저올 것을 보증하기 위하여 창조주의 사랑하는 아들의 손에 전능한 하늘의 정부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 창조주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 지상에 오셨을 때에 그는 이 신 세계를 소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 10.

3. 무엇을 위한 보상으로서 우리의 구원이 임할 것이며 이 문제는 얼마 동안의 관심사였는가?

3 우리가 이 낡은 세상과 그 재난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은 신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보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보상인가? 그것은 그 분만이 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에게 충성을 지킨 우리의 생활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그것은 온 우주의 최고 통치자이심을 인정하고 그에게 흔들리지 않는 순종을 나타낸 것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그것은 이 부패된 낡은 세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깨끗하게 지키고 그의 의로운 신 세계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그 법칙에 의한 생활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성실을 지킨데 대한 보상인 것이다. 오늘날 이 지상에는 성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이 지상에 성실한 사람이 많이 있었던 때는 없었다. 그러나 성실이라는 것은 먼 옛날부터 논의되어 오던 문제이다. 그것은 지상자 하나님께서 약 6천년 전에 최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때로부터 그가 관심을 가져 오신 문제인 것이다.

4. 성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우리 전부에게 문제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성실에 대하여 보상하시겠다는 어떠한 행복한 실예가 있는가?

4 이 첫 남녀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실을 지키지 않었다. 그들은 그의 율법을 범하여 죄를 짐으로 그들의 완전성을 침해하였다. 그들로부터 우리는 모다 불완전하게 탄생되었으며 죄로 흐르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이러므로 우리들에게 성실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 시대로부터 1,600년전 즉 「애굽」이 세계적 강국이 되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하여 인간의 가족들을 감찰하셨다. 그는 「아시아」 남서부 즉 중동 「아시아」 지방에서 이러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다. 그는 「욥」이라는 사람이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적의 괴수인 「사단」 악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3) 악마 「사단」이 하나님의 종 「욥」에게 모든 수단을 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대한 성실과 생활의 깨끗함과 헌신의 완전성을 지켰다. 하나님께서는 보상으로서 악마 「사단」의 박해로부터 「욥」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낡은 세상의 악한 신 악마 「사단」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그들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성실을 지키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가를 알려주는 산 실예가 되였다.—야고보 5:11.

5. 하나님깨서는 신 세계 정부에 어떠한 통치자를 두시며 그러한 택한 통치자에 대한 어떠한 그림을 보여 주셨는가?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운 신 세계를 통치할 정부를 설립하실 것을 목적하셨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실을 지킨 한 통치자를 그 신 세계 정부의 보좌(寶座)에 앉히실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을 맹서하셨다. 약 3천년 전에 그는 우리에게 한 그림을 주셨다. 중동 지역 즉 「아시아」와 「아푸리카」의 경계에 한 모형적 왕국을 세우시고 성실을 입증한 한 사람을 그의 보좌에 앉히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때 양을 치는 소년이었던 이 사람에 관하여 한 노래는 이와같이 말하고 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시편 78:70-72)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왕 「다윗」은 항상 그의 마음을 깨끗게 하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성실함과 충성을 지키고져 노력하였다. 이렇게 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좋은 통치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신 세계의 정부의 통치자로 만드실 그의 하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6, 7. (ㄱ) 「다윗」은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하고져 열심히 노력하였는가? (ㄴ) 「다윗」은 왜 하나님께 심판 받기를 열망하였으며 그는 무엇을 결심하였는가?

6 「다윗」은 하나님께 충성을 지키므로 인하여 마음이 악하고 거짓을 사랑하는 위선적 인간들인 많은 원수가 있었다. 이러한 악한 자들은 왕 「다윗」이 그들과 같이 사괴지 아니하고 그들과 같이 되지 아니함으로 모욕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 「다윗」을 하나님께 대한 깨끗하고 무죄한 길로부터 떠나게 하여 이 낡은 세계의 악한 신을 숭배하게 만들려고 무진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향하여 깨끗하게 행하고저 참되고 정직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7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다만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서 숭배하고 그분만을 전 우주의 최고 주권자로서 섬기고져 하는 그의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과 그의 충성스러운 노력에 대하여 시험 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판 받기를 열망하였다는 것은 「다윗」의 이러한 말로서 명백하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아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아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나의 깊은 감정] 나의 마음을 단련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하든지 그의 적으로부터 어떠한 반대와 박해를 받든지 왕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향하여 그의 온 마음을 다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성실함에, 신세]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내 발이 평탄한데 섰아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시편 26:1-3, 11, 12.

8. (ㄱ)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다만 어떻게 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8 오늘날은 이 낡은 세계의 마지막이 너무나 가까와 있다. 이러한 때에 만일 우리가 우주 전쟁인 「아마겟돈」을 통과하여 보호를 받고 그의 신세계에 들어가 살게 됨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다윗」이 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 성실하게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창조주이시고 그의 의로운 신 세계에서 영원한 보호자가 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빚지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수여하시고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의 목적에 일치하게 무엇인가를 위하여 생활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하여 생활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정부 밑에 있을 약속된 신세계인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보호자이신 그에게 대한 성실한 행함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해 놓신 그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진리와 원칙에 의하여 행하는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모든 창조물이 그가 세워 놓신 법칙에 의하여 운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모든 일에 있어서 원칙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실 것이다. 그의 영원한 신 세계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그의 긍휼을 얻으려면 우리는 자신이 성실한 사람임을 입증하여야 한다.

9.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9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만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요 성분 즉 하나님의 기록하신 말씀의 기초적인 것 혹은 초보적인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 5:12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너희는 다시 누가 너희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초보로부터 시작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게 되었다.』

10. (ㄱ) 여기 『원칙』이라는 말은 특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ㄴ) 이러한 관점에서 「야고보」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말하였는가?

10 원칙이라는 것은 또한 하나의 고정된 행동의 규칙이며 행위를 지배하는 법률이고 끊임없이 사람의 행위를 지도하는 행동의 규칙이며 생활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믿음과 태도임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웹스터) 원칙은 규모있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사도 「바울」에게 『그대는 규모있게 행하고 또한 율법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21:24, 신세) 「바울」 자신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같은 길을 규모있게 걸어 가자.』 또한 『이 행동의 법칙에 의하여 규모있게 걸어갈 모든 사람들 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 위에 평화와 긍휼이 있게 하십시요.』 (빌립보 3:16; 갈라디아 6:16, 신세) 하나님의 원칙에 의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규모있게 행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사리게 하기 위하여 세워놓신 규칙에 일치하게 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지상에 계신 동안에 그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원칙에 의하여 생활하는 완전한 모범을 세워 놓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닌』 생활에 대한 경고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기 때문이다.—골로새 2:8, 9.

신권적 원칙

11. (ㄱ) 왜 하나님의 원칙은 모든 피조물에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ㄴ) 어떻게 우리는 모다 감정에 굴복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는가?

11 우리가 여호와께서 세워놓신 원칙 즉 행동의 규칙과 일치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서 우리의 성실함을 지킬 때에 우리는 참으로 신권적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지상자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보아 여호와만이 다만 한분의 신권 통치자이시다.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통치하시고 그들 위에 권력을 잡으시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홀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그의 원칙 즉 행동의 규칙과 정부의 규률은 인간이나 영적 피조물이나를 막론하고 이지(理智)를 가지고 있는 모든 만물이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로서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최초의 인간 「아담」을 완전하게 만드셨다. 완전한 인간은 당연히 하늘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원칙을 따르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본능이나 육체의 감정에 의하여 지배될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의 안해가 뱀을 사촉한 「사단」에게 유혹되었을 때 「아담」은 과실을 범한 그의 안해를 기쁘게 하려고 함으로 비신권적으로 행하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도 또는 성실 즉 행동의 완전함으로 그의 율법을 지키는 일보다도 그의 안해를 더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원칙으로부터 크나큰 타락의 고통을 갖게 되였다. 그리고 매우 감정에 굴복하는 경향을 갖게 되였다. 이것은 다만 남녀간에 성적 감정 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여 주는 어떠한 것을 강하게 사랑한다거나 혹은 자기 개인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쾌락을 갖고져 하는 감정도 의미하는 것이다.

12. (ㄱ) 하나님의 원칙이란 어떠한 것인가? (ㄴ) 사람들이 그의 원칙의 지식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는 어떻게 하셨는가?

12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의 피조물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원칙을 구부리시는 일은 없다. 그의 원칙은 완전하며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모든 원칙은 그의 사랑과 정의와 지혜와 능력에 의하여 이루워진 것이다. 그의 윤리(倫理)와 종교적 원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해되거나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낡은 세계의 철학과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로운 원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원칙의 지식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배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위대한 신권 통치자 여호와께서는 그의 원칙을 그의 성경에 기록해 놓셨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원칙을 읽고 연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시대전 1513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의 능력으로 돌판에 열가지의 기본적 원칙을 기록하셨다. 그는 이 원칙을 「모세」에게 주어 「모세」로 「이스라엘」 나라인 그의 형제들에게 이 원칙을 보여주고 가르처 주게 하셨다. 그는 그 외에 많은 다른 원칙을 그의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그 나라에게 주신 율법에 부가시키셨다. 그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많은 다른 원칙과 미래에 관한 예언을 말씀하셨다. 이와같은 거룩한 역사와 이러한 원칙과 예언의 기록이 성경이 된 것이다. 이 책은 한 때 「유대」인 즉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이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인 시대 33년에 생긴 그리스도인 교회 즉 회중에서 가지고 있었던 다만 하나의 성서이기도 하였다.

13. 디모데 후서 3:16, 17에 의하면 어떠한 책이 성서인가? 그리고 「베드로」와 기타 사도들은 우리가 그 내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을 알려 주었는가?

13 이 성서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이것은 즉 성경이 원칙을 기록한 서적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기록된 원칙은 이 비원칙적이고 비신권적인 낡은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지도적 규칙이며 의로운 힘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 세계의 어느 부분에서든지 생명을 얻기 위하여는 『이 조직제도의 신』인 「사단」의 통치하에 있는 이 낡은 세계의 원칙과 계명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과 계명을 더 존중하여야 한다. (고린도 후 4:4, 신세) 우리는 모다 그리스도인인 사도 「베드로」나 그의 동료 사도들이 이러한 행동의 규칙을 기록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예루살렘」의 종교 고등 법원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새로 배운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명령하였을 때에 모든 사도들은 종교 법정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사도 5:29-32.

14. (ㄱ) 왜 사도들은 대답하는데 있어서 선동적이고 파괴적이 아니고 그렇게 하였는가? (ㄴ) 그러므로 그들은 고등 법정의 다음 명령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14 「베드로」와 그 외의 그리스도인인 사도들은 대답할 때에 선동적이고 파괴적이 아니였다.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었다. 그들은 모다 인간의 법정이나 통치자들보다도 하나님을 통치자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최고의 통치자로서 순종할 것을 신권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충성스러운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원칙을 위하여 선두에 섰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우주의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실을 지켰다. 종교 법정은 그 원칙을 인정하지 않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벌함으로 이것을 나타냈다.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 고등 법정의 명령에 순종하였는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대답하여 준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쉬지 아니하다에 주의하라]』—사도 5:40-42.

15. (ㄱ)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보다 오래 전에 어떻게 「모세」를 통하여 같은 원칙을 말씀하셨는가? (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질문자에게 이 원칙을 다시 말씀하셨는가?

15 이와같은 일이 있은지 19세기나 지났다. 그러나 「베드로」와 그의 동료 사도들이 그 때에 종교 법정에서 한 말은 오늘날에도 지배적 원칙으로 되여 있다. 「베드로」의 시대보다도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원칙을 선언하셨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전적으로 바쳤기 때문이다. 그는 전적 헌신을 강요하는 하나님이시다.』 (출애굽 34:14, 신세)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기록된 언약에 포함되여 있는 여러가지 율법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며 우주적인 것으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적용되는 원칙 즉 행동의 규칙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생님이여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실 때 이 원칙을 다시 언급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달려 있는 것이다.』 (마태 22:35-40, 신세) 예수께서는 모든 성경을 통하여 기록되여 있는 주요한 원칙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원칙에 율법과 선지자도 포함되여 있다.

16. (ㄱ)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야 하는가? (ㄴ) 이 요구에 있어 세금에 관한 질문이 나왔을 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16 그들의 원칙에 의하여 생활하는 신권적인 사람들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또는 통치자로 또는 신권통치자로 인정하고 그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을 받고 그의 신 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의 아들 예수의 말씀과 같이 그의 가장 큰 계명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여호와를 사랑하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또는 이웃보다 더 그를 사랑하여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이웃보다도 더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더 잘 이해하게 하여 준다. 셋돈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삭여져 있음으로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22:15-21) 이제 이 두 가지 통치자 중에서 우리에게 마음과 영혼과 뜻을 준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정치적 「가이사」인가? 혹은 하나님이신가? 우리의 이지적인 생활을 위하여 이러한 필수적인 요소를 우리에게 준 통치자는 「가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셋돈보다 더욱 가치있고 더욱 고귀한 이 모든 것을 우리는 「가이사」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17. (ㄱ) 우리는 어떻게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가? (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면 우리의 표어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17 정치 국가에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 베푸는 봉사를 위하여 「가이사」의 셋돈을 그에게 지불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지불할 수 있는가? 우주에서 가장 높은 계명 즉 우리의 정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계명에 신권적으로 순종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두가지 큰 계명의 뚜렸한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의 표어는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가 아니라 여호와와 우리 자신과 같이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첫째로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첫째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이여야 한다.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보다 하나님인 것이다.

18. (ㄱ) 세금을 바치는 것으로 예수께서는 「가이사 디베류스」를 신성시하셨는가? (ㄴ)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둘에게 어떻게 국가를 신성시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는가?

18 「로마」의 「가이사」는 이 지상에서 신(神)의 노릇을 하였으며 「로마」인들은 그를 신성시(神聖視)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쳤을 때 그는 「가이사 디베류스」를 한 신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였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황제나 정치적 국가를 신성시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 낡은 세계의 어떠한 정치적 국가도 신성시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명령으로 바로 「가이사」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형틀에 달려 못 박힘을 당하기 전날 저녁에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날 저녁에 예수께서는 떡과 포도주로 주의 만찬을 베푸셨다. 그리고 그의 충성스러운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누가 22:25-27.

19.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이사」 즉 국가를 신성시하는 것이 되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어떠한 의무를 범하는 것이 되는가?

19 예수께서는 자신을 신성화하지 않음으로서 세금을 걷는 「가이사」도 신성시하지 않으셨다. 예수의 충성된 추종자들도 여호와께 성실함을 지키는데 있어서 이 같은 원칙에 고착하고 우리가 지금 세금을 바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가이사」를 신성시하지 않음으로 예수를 본받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가이사」 즉 정치적 국가에 바침으로 「가이사」를 신성시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그들의 숭배와 사랑을 「가이사」에게 바친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짐승에 대한 숭배

20, 21. (ㄱ) 누구에 의하여 계시록 14:6의 그림은 오늘날 성취되고 있으며 그리고 어떻게? (ㄴ) 그 그림 후에 「가이사」 즉 정치적 국가를 신성시하는데 대한 어떠한 경고가 주어 졌는가?

20 이미 19세기 이전에 계시록 14:6은 오늘날 『영원한 기쁜 소식』이 어떻게 모든 족속과 방언과 지상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파될 것인가를 예언적으로 상징해 놨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전 세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 24:14에 있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1914년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보좌에 앉으시고 왕관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왕국이 설립되었음을 알리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영원한 기쁜 소식이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이렇게 전파되고 있으므로 모든 백성들은 지금 닥어오고 있는 우주적 전쟁인 「아마겟돈」에서 이 모든 나라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증거를 받고 있다. 이 영원한 기쁜 소식이 모든 백성들에게 전파되는 이 그림이 주워진 후에 계시록 14장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이사」 즉 정치적 국가를 신성시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다른 그림이 주어져 있다. 그 성구는 다음과 같다.

21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에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시록 14:9-12.

22. 이 『짐승』은 어떠한 동물인가?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은 이 짐승에게 어떻게 행하는가?

22 그 전장인 계시록 13:1-8에 의하면 그 짐승은 바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 짐승은 바다의 동물이 아니라 표범과 곰과 사자의 특성을 결합하고 있는 육지의 동물이다. 이 동물이 실제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동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통치자의 보좌를 받었으며 면류관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 그의 이름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에 대하여 훼방하는 말을 하고 또 하나님의 성도들과 싸움을 이르키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었다. 이러한 이유로서 지상에 거민들은 이 짐승에게 숭배한다. 그러나 그를 숭배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23, 24. 「로마 카톨릭」의 권위자의 해석에 의하면 계시록 13:1에 있는 이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23 이 짐승이 오늘날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미있는 해석 중에는 「로마 카톨릭」 권위자들의 해석이 있다. 「에푸 · 에이 · 스펜서」 O · P에 의하여 번역되고 「씨 · 제이 · 칼랜」 O · P와 「제이 · 에이 · 맥후」 O · P에 의하여 편찬된(1946) 『우리 주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이라고 부르는 번역은 계시록(묵시록) 계시13:1 난외주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처음 짐승은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정치적 세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한 「그리스도교 교리 조합 감독 위원회」의 후원으로 1941년에 「가톨릭」의 학자들에 의하여 편찬된 또 다른 번역인 『라린어 「발게이트」로부터 번역된 우리 주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에서는 같은 구절에 대한 난외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첫 짐승의 상징은 다니엘 7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 짐승은 이 세상 나라 즉 정욕과 이기심 위에 세워져 있는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나라들은 온 세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대항하며 하나님의 종들을 압제하고져 한다. 「로마」 제국은 이러한 세력을 대표한다.』

24 1931년판 『웨스트민스터역 성경』 제 4권의 총편찬자인 「예수회」 회원 『커드버트 라테이』와 『요셉 케팁』은 계시록 13:1의 난외주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묵시록에 있는 「짐승」은 다니엘에 기록되여 있는 네가지 「짐승」 혹은 제국(帝國)으로 결합한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세력 즉 용의 마음대로 배열해 놓고 하나님의 종들을 압제하려는 물질적 힘을 상징한다. 그 세력은 「로마」 제국과 같은 것으로 대표된다.』 이 구절에 대한 더 자세한 또 다른 「로마 카톨릭」의 해석은 그것의 증거를 증가시켜 준다. 추기관 「제임스 기본스」에 의하여 인증되고 「로마」 법왕청의 출판 기관인 「죤 머피」 회사에 의하여 발행된 「머피」판 「듀웨이」역 성경은 그의 난외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일곱 머리와 열뿔을 가진 첫째 짐승은 처음부터 이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이교도와 적과 하나님의 백성의 박해자를 말하는 것 같다. 일곱 머리는 일곱 왕 즉 이미 있었거나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백성 위에 압제적 세력을 가진 일곱개의 주요한 제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다섯은 이미 망하였으니 즉 「애굽」과 「앗스리아」 「갈데아」a 「폐르샤」및 「기리샤」의 왕조를 말함이요 하나는 현제 있다고 한 것은 즉 「로마」 제국이요 일곱째 것과 장차 올 가장 큰 것은 즉 큰 적 그리스도와 그의 제국을 말하는 것이다. 열뿔은 더 적은 열명의 박해자들로 알려져 있다.』

25. 그러므로 짐승을 숭배하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경고는 누구에 대한 것인가?

25 이상과 같은 「로마 카톨릭」의 해석에 의하면 계시록 13:1-8과 14:9에 있는 짐승을 숭배한다는 것은 정치적 국가를 숭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이 명백하다. 그 짐승은 어떠한 특별한 하나의 정치적 조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세계적인 하나의 조직으로 결합 혹은 합동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징적 국가 숭배는 어떠한 정치 조직이 직접적으로 상징적 『짐승』에 포함되여 있든지 혹은 다만 그것의 정치적 연합체이든지 간에 전 지구 상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고져 원하는 온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심중하게 받어 들여야 한다.

26. 이 짐승을 숭배하고 표를 받는 것을 거절함으로 그의 성실을 지키는 자가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26 그러면 이 짐승과 그의 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성실을 지킬 자들이 있을 것인가? 다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전부가 홀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원칙을 지키고 온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그를 사랑함으로 성실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계시록 20:4은 누가 성실을 지킬 것이며 상을 받을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6절은 이렇게 부가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이들은 하나니의 계명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견딘 거룩한 자들이다. 이 마지막 날에 그들은 선의(善意)를 가진 큰 무리의 동료를 가지고 있다.

27. 그들은 성실을 지킴으로 무엇으로부터 구원되며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누구의 봉사를 위하여 바치는가?

27 이들은 모다 성실을 지켰음으로 상징적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상징적]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것으로부터 구원되였다. 계시록 13:15-17에 예언되여 있는 바와 같이 다만 하나님께 대한 전적 헌신의 원칙을 범하게 만들려는 강압에 그들은 복종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희생시킨다. 그 짐승은 그의 여섯째 머리에 의하여 대표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게 하고 그 후에는 제국을 통하여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을 목버히고 또는 고문 치사케 하고 기타 여러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박해하였다. 「로마」 제국의 현대적 유물도 그리스도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같은 악한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28. 백부장 「고넬료」는 그에게 처음으로 기독교가 알려졌을 때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그는 침례를 받은 후에 그의 군 복무를 사퇴하였는가?

28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처음으로 기독교가 알려졌을 때에는 그가 짐승의 여섯째 머리를 섬기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천사가 환상에 나타나서 그에게 사도 「베드로」를 보내겠다고 말할 때 그는 야전근무(野戰勤務)를 하지 않고 「가이사랴」에 있는 그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또한 4일 후에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그의 친구들에게 전도한 곳도 그의 집이였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와 그와 함께 소식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주신 것도 그러한 환경에서였다. 「고넬료」와 새로 믿는 다른 사람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었음에도 그들은 「베드로」의 명령으로 물의 침례를 받었다. (사도 10:1-48) 백부장 「고넬료」가 침례를 받은 후에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서의 그의 군 복무를 사퇴하였는가 안하였는가에 관하여는 사도들의 행전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다.

29. (ㄱ) 만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사퇴할 것을 권하였다면 무슨 일이 이러났겠는가? (ㄴ)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면 성경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겠는가?

29 틀림없이 하나님의 성령의 활동으로 「고넬료」는 그 후 『수일』간에 「베드로」와 함께 이야기한 기독교의 원칙을 그의 생활 문제와 친우 관계에 적용하였다. 「고넬료」는 할례받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음으로 여러 세기 이전에 있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나 거인 「골리앗」을 죽인 「다윗」과 같이 신권적 전쟁을 위하여 싸울 수 없었다. (여호수아 10:1–11:23; 사무엘 상 17:4-54; 사무엘 하 8:6-14) 만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퇴역할 것을 말하였다면 「베드로」는 『짐승』의 여섯째 머리의 군사 계획의 방해자로서 고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타협하거나 중지하는 일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는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서 형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특히 영감(靈感)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록한 이른바 「신약」이 헌신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징적 짐승의 여섯째 혹은 일곱째 머리를 위한 병무령장을 받었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말해놓았다면 틀림없이 성경은 『짐승』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금지 당하였을 것이다. 특히 군사 문제에 관한 그것의 지시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30. 그러므로 성경은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도웁고 있으며 누가 결정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30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로써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성경은 직접적 충고를 주는 것을 삼가고 있다. 그의 성경은 다만 그리스도인들을 주관하는 신권적 원칙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 다음에 「고넬료」와 같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지키기 위하여 이 원칙을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일치하게 적용시키는 문제는 그들 자신의 책임이며 그들에게 놓여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성경적 원칙을 설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개인적 그리스도인이든지 또는 그리스도인의 조직이든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하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사명이나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하여 자기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각자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각주]

a 혹은 「바벨론」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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