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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로운 길을 걷는 자들의 확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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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파58 2/1 25-32면

의로운 길을 걷는 자들의 확신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

1. 「다윗」은 그의 성실을 어떻게 보았으며 누구의 모형으로 그렇게 행하였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의로운 왕 「다윗」은 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참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그를 여호와라고 불렀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죄인이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가 범한 많은 잘못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는 하늘에 계신 그의 생명의 수여자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의 마음과 정신에 가득차 있음을 알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다윗」은 성실(誠實)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의 성실함에 행하겠나이다.』 (시편 26:11) 「다윗」은 그가 통치하는 모든 백성들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이렇게 하고져 충실히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신 세계의 영광스러운 왕이신 더 크신 「다윗」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을 위하여 예언적 모형으로 그렇게 행하였다.

2. 「다윗」은 어떻게 그가 성실하게 행하였다는데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어떻게 판단될 것을 말하였는가?

2 시편 26편은 「다윗」이 그의 성실을 나타내고 여호와를 찾기 위하여 자신을 바쳤음을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는 올바른 길을 걸어 왔고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생활해 왔음을 확신하였다. 「다윗」은 항상 올바른 일을 행하고저 열망하였음으로 여호와께 이렇게 말할수 있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시편 25:5) 그는 진리대로 행하였음을 확신함으로 이와같이 자신있게 말하였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성실함에, 신세] 행하였아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아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시편 26:1) 시편 전체를 읽어본다면 「다윗」이 얼마나 그가 사괴기를 원치 않는 죄인의 악한 생활로부터 떠나 여호와께 대한 숭배를 즐거워 하였는가를 볼수 있다. 「다윗」은 인간의 생활 표준에 의하여 판단되기를 원치 않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진리를 사랑하고 옳은 일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비난할 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다만 하나의 욕망은 자신을 여호와께 전적으로 바치는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표준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으며 그는 그 표준에 의하여 판단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 [반대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35:24) 그러한 의로운 판단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왔다. 그는 만족하였다. 그는 성실하게 행하였다는 확증을 갖었다. 오늘날 우리의 성실에 대한 우리의 확신도 옛날 「다윗」의 확신과 같이 확실한가?

3. 「다윗」은 그의 욕망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것임을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

3 「다윗」이 젊었을 때 그는 여호와께 왕으로 택하심을 받었다. 선지자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은 후부터 그는 특별한 임무를 갖게 되였다. 그는 이들 임무를 잘 수행하였으며 항상 여호와를 의뢰하였다. 여러가지 시련과 난관을 겪은 후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게 되였다. 그의 큰 기쁨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를 성도(聖都)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거기에 여호와를 숭배하는 한 장소를 세우는 것이였다. 「시온」 산 위에 여호와의 제단(祭壇)이 건축되었으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다윗」은 이 곳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 … 는 자니.』 (시편 15:1, 2) 「다윗」은 이러한 요구조건을 다 이루고 약하거나 불안정되는 일이 없이 강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 하였아오니.』 (시편 26:1) 여호와께 대한 「다윗」의 신뢰와 믿음은 동요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불안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동요하는 일이 없이 평온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사랑하는」자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4. 오늘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다윗」과 같이 그들의 성실에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은 무엇인가?

4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인 참다운 그리스도인들도 「다윗」이 믿고있던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도 『[여호와의] 영광이 거하는 곳』에서 숭배하기를 원한다. (시편 26:8)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들은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다윗」이 죽은 후에 많은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보내셨으며 그들이 한 말은 우리의 교훈과 가르침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기사와 사도들의 행전(行傳) 그리고 제자들의 편지들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책들이 온 인류가 추종하도록 하기 위한 전체적 하나님의 말씀 즉 완전한 성경을 이루게 된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잘 가추워진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행하여 진리를 말』 할수 있고 또 그렇게 하여야 한다. 그들은 「다윗」이 한바와 같이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성실에 확신을 가질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이해하여 그것에 의하여 생활하는것은 우리로 요동치 않게 한다.

확신이 없는 기도교국

5, 6. 기독교국의 성실에 대한 그의 확신에 관하여 어떠한 대답을 요구하는 예리한 질문이 있는가?

5 그러나 어떠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국을 보라. 당신은 요동하는 마음과 불신을 가지고 기독교국의 교회에 나가는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을 볼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교회 회원 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사람들도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수 있는가?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나를 시험에 부치소서. 그리고 나의 기질과 나의 마음을 단련하소서.」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다윗」으로 예표(豫表)된 성실을 지키는 나람들은 도대체 어데 있는가?』

6 그러한 질문을 더욱 많이 물어볼수있다. 기독교국은 참으로 시험대 앞에 설수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그들로부터 믿음을 찾아보실수 있는가? 기독교국의 지도자들은 「다윗」과 같이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여호와 앞에 와서 그들을 살피시고 시험에 부치시고 단련하실 것을 기도로 간구할 수 있는가?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인 성경에 세워놓신 표준에 의하여 생활하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전부 믿는가? 오늘날 교직자(敎職者)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수백 수천만의 기독교국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질에 대하여 「다윗」이 가졌던 바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다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봉사를 행하고저 헌신을 하였다면 그들은 마땅히 「다윗」이 가졌었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국과 그의 지지자들은 충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믿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든 간구하지 않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피시고 계시다.

7. 기독교국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였는가? 누구를 지지하고 있는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행하지 않는가?

7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심판으로부터 버서나 피할수있는자는 아무도 없다. 기독교국은 그 자신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였다. 그는 이 악한 세계에 있는 정치를 지지함으로 그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편에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국은 국제 연합 기구에 모든 지지를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국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와 같이 행하고 있지 않다. 즉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도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한 18:36) 그렇다. 기독교국은 결코 단련될수 없다. 그는 참으로 가치있고 좋은 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탄생시킬수 없는 이 악한 낡은 세계와 타협하였다. 「다윗」이 기록한 것을 들으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험을 찾지 못하였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시편 139:1; 17:3) 기독교국도 이와같이 말할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8.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으며 섬기지 않는 자들에 대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할것인가?

8 전 세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말할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1-24) 정의를 사랑하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깨끗한 세계에서 깨끗한 백성들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 오늘날 그러한 일이 어떻게 있을수 있는가? 우리들 자신이 성실을 지키는 남녀들 즉 의를 행하고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굄으로 그렇게 할수 있다.—시편 15:2.

9, 10. (ㄱ) 시험을 당하고 성실을 지킨 어떠한 고대의 예를 우리는 알고 있는가? (ㄴ) 우리는 현대에도 그러한 성실을 지키는 사람을 볼수 있는가?

9 성실에 대한 시험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윗」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 일 후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창세기 22:1) 그는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祭物)로 받치라는 명령을 받었다. 「아브라함」이 성실과 순종을 보였음으로 여호와께서는 「이삭」 대신에 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셨다. 그후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 그것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해 내셨을때 수행되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어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명기 8:2, 16) 시험은 필요한 것이다. 성실과 인내는 행복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악한 시대에 끝까지 인내함으로 성실을 지킬 하나님께 헌신한 백성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충성스럽게 행하고 성실을 지키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기간은 40년이라는 긴 세월이다. 우리중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오랜 시험을 견디어 나갈수 있을 것인가? 여호와의 심판날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여 왔다. 성실에 대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의 산 아들을 보존할수 있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드러갈수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살수 있게 될것이다.

10 당신은 참으로 풀무속에서 연단 받는 금과같이 연단 받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다만 순금만이 남어있도록 모든 부순물을 제거하기를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와같은 과정을 통과하여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라는 판결을 받었다. 또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연단(鍊鍛)을 받고 있다. 그들이 연단을 받을것에 관하여 「말라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말라기 3:3, 4) 수십만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윗」이 말하고 「말라기」가 기록한바와 같이 그러한 연단을 통과하여 왔다. 그들은 참으로 타는 불로 연단을 받아왔다. 당신은 「로시아」나 「폴랜드」 「첵코스로바키아」 기타 철의 장막 배후에 있는 공산주의적 전체주의 통치하에서 박해의 고통을 받고 있는 형제들과 같이 뜨거운 불을 견딜수 있겠는가? 「카톨릭」 통치 국가인 「도미니칸」 공화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서 구타를 당하고 고문을 받으며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독일과 이태리 「놀웨이」 기타 「나치」와 「팟쇼」적 군주의 압도되어 있는 군중들이 날뛰는 나라에서 성실을 지켜 왔으며 아직도 지키고 있다. 이 세상 어떠한 곳에서 살고 있든지 간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성실을 꺾고저 하는 적의 노력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닥처올수 있다.

11. 오늘날 우리의 성실에 있어서 우리의 확신을 굳게 하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11 오래전에 「다윗」은 그의 아버지에게 자기를 살피시고 자기를 시험하시며 자기를 연단할 것을 간구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의와 성실에 있어서 우리의 확신도 그만큼 굳은가? 만일 우리가 「다윗」과 같이 사물을 관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걷고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확고하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이렇게 말할수 있을 것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중에 행하리이다.』 (시편 26:3)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과 그가 가지고 계신 목적과 그가 하신 일과 그가 지금 하시고 계신 일과 그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축복을 위하여 그가 앞으로 하실 일을 인식하게 될때 우리는 참으로 그의 인자하심을 감사하게된다. 인류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를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 보내심으로 나타내신 그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 이상을 행하셨다. 그는 그의 성실을 지키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입증하셨고 의로운 신 세계의 왕이 되셨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그 신 세계에서 살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성경과 친근해 짐으로 즉 성경의 진리를 주의 깊이 연구하고 그 진리에 의하여 생활함으로 그렇게 될수 있다. 기독교국에서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을 얻기 위하여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 6:10) 여호와의 왕국이 당신의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고 진리 안에서 거러가라. 그리하면 당신도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생명을 즐기게 될 것이다.

12, 13.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게 있기 위하여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사괼 것이며 누구로부터 떠나야 할 것인가?

12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또는 어떠한 때이든지 당신이 할수있는 대로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치라. 그렇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괴라. 그러면 당신은 악한 자들로부터 떠나 있을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성실을 지키기에 바뿌게 되기 때문이다. 진리를 배우고 의로운 길을 걸으며 그후에 그들의 생명을 여호와의 봉사에 바친 모든 사람들은 「다윗」이 자기가 하였다고 말한바와 같이 행할 것이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아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 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시편 26:4-6.

13 성실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길을 정하였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과 같이 앉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왕국을 전파하는 이외에는 아무런 긴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관심사가 여호와의 증인의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욱 크고 중요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한 자들이 의논하는 곳에 같이 앉아 그들의 모략을 지지하는 자들은 항상 비참한 종말을 갖는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 2) 당신도 이와같이 당신의 길을 작정하였는가? 당신은 어느 길로 걸어갈것인가? 그것은 성실을 지키는 길이 되게 하라.

미움을 받을 『행악자의 집회』

14, 15. 어떻게 많은 교직자들은 그들의 성실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는가? 여호와의 손으로부터 올 그들에 대한 보수는 무엇인가?

14 당신는 오늘날 기독교국의 지도적인 학자들이 성경 번역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빼버렸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은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참다운 이름을 감춤으로서 참된 숭배를 없애고저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직자(敎職者)들은 그들의 교회 설교단 위에 서서 창세기에 있는 창조 기록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진화론(進化論)을 가르친다. 어떠한 자는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의 가치를 부정하고 대속의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신성한 모양을 갖기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제단을 두루 다니기를 원치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저 하느니라 …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 8:44) 「다윗」은 그러한 사람을 잘 알고 있었음으로 그들에 관하여 잘 말하였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시편 12:2-4)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감추고서도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을 보수는 어떠하겠는가!

15 대부분의 교직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히 사용하거나 그것을 모다 없애 버렸다. 그러한 성경 번역자들이 출애굽기 20:7을 읽게될때에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매우 의심스럽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에게는 면죄하지 아니하리라.』 교직자들은 결코 면죄받지 못할 것이다. 시편기자는 그들에게 관하여 이렇게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시편 83:16.

16. (ㄱ) 이 세상과 벗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ㄴ) 그의 본체를 감추고저 노력하는 기독교국은 마치 누구의 행동과 같은가?

16 「다윗」과 같이 성실을 지키고저 하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기독교국이나 이 세상 조직과 사괴거나 이 세상의 벗이 될수 없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다. 『음녀들아 너희는 세상과 벗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벗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원수로 만드는 것이다.』 (야고보 4:4, 신세) 이러한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명백한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내 백성아 너희가 만일 그의 죄에 그와 함께 참예하고저 원치 않는다면 그리고 또 그가 받을 화를 받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에게로부터 나오라.』 (계시록 18:4, 신세) 기독교국은 위선적(僞善的)이며 그들의 정체를 숨기고저 노력한다. 이것은 예수 당시에 있던 종교적 지도자들이 한바와 똑 같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걸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태 23:25-28) 그들은 그들의 본체를 숨기고저 노력하였다. 오늘날 기독교국의 지도자들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떠나라.

17. 시편 기자와 같이 되기 위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마땅히 어떠하여야 하는가?

17 다음과 같이 말한 시편 기자와 같이 되라.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시편 28:3) 참다운 그리스도인 태도는 마땅히 『나는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라고 말할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시편 26:5.

18.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다니며』라는 「다윗」의 표현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18 왕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깨끗한 손과 무죄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숭배할수 있었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라고 말하였다. 그는 제사장(祭司長)들이 그들의 손과 발을 씻기 위하여 사용하던 제단 가까히 놓여져 있었던 놋대야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히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애굽 30:19-21) 그러나 「다윗」은 그의 손이 도덕적으로 깨끗하기를 바랐고 하나님의 진리로 깨끗게 되었다.

19. 오늘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손을 무죄하게 씻는가?

19 오늘날 누구든지 여호와의 제단으로 표상되어 있는 숭배의 장소에 오고져 하는 사람은 깨끗하여야 한다. 그는 결코 이 낡은 세상의 생활과 탐욕적인 행동으로 더럽혀질수 없다. 그 당시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한바와 같이 오늘날의 참 다운 그리스도인들은 그 실체를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깨끗함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 10:22-25) 그리스도인들은 이 마지막 날에 모이지 않으면 안되며 항상 깨끗한 숭배를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와 매일 매일의 생활을 포함한다.

20. 어떻게 여호와의 증인들은 의롭고 깨끗한 길을 계속 행하고 있는가?

20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한 숭배는 한 주일에 다만 한번이나 모여 서로 사랑과 올바른 일을 격려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모였을 때이든지 왕국 회관을 떠났을 때이든지 그들은 하루 종일 또는 매일 하나님의 숭배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한번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항상 정결함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두번씩 씻기 위하여 두번씩 죽으시지는 않는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많은 사람들은 간음과 우상 숭배와 탐욕과 폭음과 같은 악한 길을 걸었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한 바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고린도 전 6:11) 「다윗」과 같이 우리도 무죄하게 우리의 손을 씻지 않으면 안된다. 즉 우리는 악마의 조직으로부터 깨끗하게 되었고 떠나 있으며 참다운 숭배를 위하여 바쳤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에 물들수 없다. 심지어 「빌라도」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원치 않았다. 분노로 가득차 있는 「유대」인의 군중 앞에서 「빌라도」는 모든 죄악을 그 당시의 교직자들에게 놓아 주었다. 그는 불의를 사랑하는 자들 앞에서 물을 가져오게 하여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태 27:24) 그러나 그는 「다윗」과 같이 참으로 그의 손을 무죄하게 씻을수는 없었다.

21.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모방하기 위하여 굳게 선 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21 기독교국도 또한 그들의 악하고 불결한 생활로 인하여 여호와께 대한 숭배를 더럽힌데 대한 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의 손을 깨끗이 씻고 기독교국의 어떠한 가지로부터도 완전히 분리하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굳게 설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참다운 숭배를 위하여 이와같이 굳게 서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거짓 숭배자들로부터 떠남으로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라고 말할수 있다. (시편 26:7, 8)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므로 여호와께서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때로부터 온 인류를 낙원이 된 지구로 회복하실 때까지의 그의 기이한 모든 사업을 알리고져 크나큰 충동을 받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굳게 서신바와 같이 모든 종교로부터 떠나 계셨던 바와 같이 또한 하늘의 왕국이 가까히 있음을 선포하신 바와 같이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모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굳게 서있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 악한 조직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으며 이제 의로 통치할 새로운 정부가 시작될 때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선의(善意)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기쁜 소식을 알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가정에서 전도하며 또한 주인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사용하여 가르치는 큰 일을 하고 있다. 왜 그들과 함께 연구하므로 「그들의 감사의 소리가 크게 들리게」 하지 않을 것인가?

죄인과 함께 거두는 것으로부터 피함

22. 죄인들의 운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실을 성경 역사는 어떻게 증명해 주고 있는가?

22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 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시편 26:9, 10)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악을 멸하실 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그는 「노아」 시대에도 천재(天災)로서 그렇게 하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그는 타락한 모든 자들을 그들의 죄로 인하여 홍수로써 멸망시키셨던 것이다. 그는 또한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자들을 소멸시키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시대에 있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그들의 살인 행위로 인하여 심판에서 정죄(定罪)하셨다. 「유다」는 그의 옳은 손에 뇌물이 가득함으로 「께헨나」의 형벌을 받었다. 후에 「아나니아」는 거짓말로 인하여 죽었다. 「유다」는 그들에 관하여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꾼』다고 기록 하였다. (유다 4) 오늘날 생명의 가치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통치자들로 말미암아 더는 높이 평가되고 있지 않다. 교직자들과 정치가들은 평화다 평화다!라고 큰 소리로 웨치며 한쪽으로는 더욱 광범위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인류의 멸망은 오늘날 그들의 주제(主題)가 되어 있다. 그러한 조직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기 때문이다. (잠언 13:20) 그러한 피흘리는 자들과 부도덕적 생활을 하는 자들과 뇌물을 사랑하는 자들의 종말은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멸망인 것이다!

23. 한편 의로운 행동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약속되여 있는가?

23 한편 의로운 행동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윗」과 헌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과 같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수 있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성실함으로, 신세]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시편 26:11) 이것은 마치 나를 악한 자에게서 구원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나타내소서라고 말한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애굽으로부터 속량하시고 그들을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더 크신 「모세」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만일 그들의 속죄를 위한 여호와의 선물로 받어 드린다면 온 인류의 대속주(代贖主)가 되도록 인류에게 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행하신 기적을 볼때 우리로 인간이 왕국의 통치 밑에서 즐길 완전한 생명을 생각하게 한다. 만일 지상에서 그가 병든 자를 고치셨고 소경으로 보게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하셨다면 그는 확실히 하늘과 땅에서 모든 능력을 가지고 그의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완전한 의로운 신 세계를 건설하실수 있을 것이다.

24, 25. 언제 구원의 기적은 나타날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참다운 종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24 구원의 크나큰 기적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이 악한 조직제도를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며 동시에 성실을 지킨 사람들을 살아나도록 보호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인자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오늘날 성실을 지키는 하나님의 종들은 마치 「느혜미야」와 같이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케 할 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느혜미야」는 이렇케 말하였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헤미야 13:14.

25 하나님의 모든 참다운 종들은 올바른 숭배를 계속하고 성실을 지키며 구속(救贖)함을 받어 「아마겟돈」 전쟁을 통하여 구원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더는 불화(不和)와 전쟁과 탐욕과 부패가 없는 때가 올것을 보기 원하며 모든 사람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송축하는 때가 오기를 보고저 한다. 그러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날의 전쟁 즉 「아마겟돈」 후에 완전히 볼수 있게 될것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서 그 행복한 날을 바라보며 또 행복한 날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부터 날의 표준에 의하여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26. 나라들 사이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왜 어리석은 것인가?

26 모든 사람들은 나라들이 서로 미워하고 있는 험악한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그들은 모다 참으로 민족주의적이어서 그들 자신의 나라가 어떠한 다른 나라들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나라는 심지어 저희만이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저 열망한다. 피부의 색갈이나 언어나 신장(身長)이 그 이웃보다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왜 인간은 알지 못하는가? 우리는 모다 하나의 창조주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다 「아담」과 「해와」의 자손들로 한 형제들이며 다만 하나의 하나님을 숭배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그를 발견하여야 한다! 우리가 만일 그에 관하여 그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다면 그를 발견할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진실성있게 사람들이 여호와와 가까히 할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된 사람들이 머지않어 임하실 세계에서 행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7.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어떠한 기간이 도래 하였는가?

27 성실을 지키는 남녀가 『평탄한 곳』 즉 더는 넘어질 염녀도 없고 참다운 숭배가 수행될수 있는 평평한 곳에 서 있을 때는 지금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그들은 참으로 행복하게 「다윗」과 같이 이렇게 말할수 있게 된다. 『내 발이 평탄한데 섰아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시편 26:12.

28.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세상 광경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확신을 나타낼 것인가?

28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164개의 나라와 육지와 섬들에 흩어져 있으며 70만명 이상의 기쁜 소식의 선포자들이 이 악한 조직제도의 최종적 멸망과 의로운 하나님의 신 세계의 완전한 설립을 바라보고 평탄한 땅위에 서 있다. 그날이 이를때 까지 그들은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며 평탄한 곳에 서 있을 것이다. 어떠한 환란과 박해가 악한 자들로부터 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계속하여 『나는 나의 성실함에 행하겠나이다』라고 말할것이다. (시편 26:11, 신세) 다만 그들은 집집을 다니며 온 땅끝까지 전파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은 사람들의 가정에 초대되어 거기서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원은 정의를 사랑하는 모든 양들을 온 나라에서 불러내어 모음으로 그들도 또한 회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가담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 또한 그들의 의로운 행동에 확신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도 1958년에 당신의 성실함에 걸음으로 이들 여호와의 찬양자중의 하나가 될 것인가?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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