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좇음
1.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평화를 발견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며 이제 그에게는 어떠한 의무가 놓여져 있읍니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와 평화스럽게 되는 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발견한 후에 그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그는 거기서부터 평화를 좇아야 합니다.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으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주어진 충고입니다. (베드로 전 3:11) 그는 그의 남은 생애에 있어서 평화를 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즉 그가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즐기는 사람은 다만 그 사람 하나뿐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의 평화스러운 상태가 된 것은 그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회중과 평화스러운 관계를 갖게 해 줍니다. (고린도 후 5:18-21) 그는 그리스도인의 회중의 방해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조직과의 평온하고 잠잠한 일치연합의 관계를 갖는 것은 그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통솔체의 한 사람이었던 사도가 말한 다음과 같은 행동의 원칙에 의하여 생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여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불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데살로니가 전 5:13-15.
2.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때에 이 길을 좇기 위하여 힘쓰지 않으면 안되며, 그들이 공격의 주요 대상임으로 「사단」은 그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록 애쓰고 있읍니까?
2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혼란이 전 세상을 덮고 있는 이 때에 이 길을 좇지 않으면 안됩니다. 1914년에 하늘에 하나님의 왕국이 탄생되자 마자 악마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이 땅으로 쫓겨 내려왔으므로, 그들은 발악적으로 인간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재난과 혼란과 불안을 일으키고 있읍니다. (계시록 12:12) 그가 공격하고자 하는 주요 대상물은 영적 「이스라엘」의 그리스도인 남은자들과 그들의 양과 같은 벗인 『큰 무리』입니다. (계시록 12:17) 그러므로 그는 될수있는대로 이들 사이에 불안과 혼란과 분렬을 일으켜 그 조직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읍니다.
3. 「사단」은 이 세상의 어떠한 점을 이용하여 이 세상을 불안케 하고 있읍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오래 전에 그의 회중 가운데 그러한 것이 없도록 하셨읍니까?
3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가 구하던 평화를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에서 발견하였으므로 이제 그는 이 평화를 굳게 좇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단」 악마는 이 세상에서 인종적, 민족적, 또는 피부색의 다른 것을 이용하여 불안을 폭발시키는 일에 성공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것을 그의 참된 그리스도인 조직 안에는 있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인의 회중은 다른 나라 사람으로 할례받은 몇명의 개종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옛날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그리스도인 조직으로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2:10; 6:5) 그 다음에 할례를 받은 「사마리아」인들이 믿는 자가 되었읍니다. (사도 8:4-25) 처음으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즉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형주에 죽으신지 삼년 반이 지난 후였읍니다. 그들은 「고넬료」라는 「이태리」 사람과 몇명의 그의 친족과 매우 가까운 벗들이었읍니다.—사도 10:1-11:2.
4.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자비로운 마련을 조정할 수 있게 하셨읍니까?
4 이 문제는 얼마 동안 할례를 받은 「유대」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불안정상태를 가져 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있어 하나님의 이 자비로운 마련을 평화로써 조정할 수 있었읍니다. 할례받지 않은 「유대」인 아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회중에 들어오는 문제에 대한 마지막 결정은 하나님에 의하여 가능하게 되었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겠읍니까? 그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세상을 갈라놓고 있는 울타리와 분리의 담을 으로써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그와의 사이에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던 것입니다.
5, 6.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회중에게 회중 안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회중에 인종적, 민족적, 또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있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한번은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있는 「에베소」 회중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한 일이 있읍니다.
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형주에 죽으신]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자기의 앞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형주, 신세]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형주, 신세]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 [이방인〕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 2:11-18.
7. 오래 전에 영적 「이스라엘」이 조정한 것으로 보아 오늘날에도 왜 영적 「이스라엘」과 다른 양의 큰 무리 사이에 어떠한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학개 2:6-9은 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해 주고 있읍니까?
7 형틀에서의 예수의 제사는 온 세상에 있는 믿는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차별을 없애는 기초가 되었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있어서도 『세상 죄』를 위한 같은 예수의 제물은 영적 「이스라엘」의 적은 남은자들과 온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나오는 이 땅의 양과 같은 『큰 무리』들 사이에 차별을 없애고 연합을 가져오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의로운 목자가 그의 다른 양들을 그의 오른 편에 모으고 있는 이 때에 있어서, 이 다른 양의 큰 무리와 「영적 이스라엘」 사이에 어떠한 차별이 있을 수 없읍니다. 『저희도 . . . 한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게 된다고 의로운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0:16; 마태 25:31-40) 의로운 목자 예수 그리스도 밑에 있는 한 무리 사이에 있는 그들 가운데는 일치 연합과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만국을 진동시켜 만국으로부터 보배로운 것 즉 사모하는 것을 나오게 하여, 그의 숭배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시겠다는 약속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6-9) 「사단」과 악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예언을 실패하게 할 수는 없었읍니다.
평화를 위하여 기도함
8. 시편 122편 6-8과 일치하게 우리는 항상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와 같지 않은 상태에 있는 회중의 머리가 되실 수 없읍니까?
8 우리가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조직의 선을 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일치 연합과 평온한 상태가 있을 것을 평화의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할 때에 우리는 시편 기자 「다윗」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강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시편 122:6-8) 이러한 기도와 일치하게 「예루살렘」이라는 말의 뜻은 『평화의 소유자』 혹은 『평화로운 기초』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멜기세덱」이 「살렘」의 왕으로 있던 곳이 바로 이 「예루살렘」이었읍니다. 「살렘」 왕이라는 말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과 같이 영원히 제사장이 되며 왕이 될 것을 맹세하셨읍니다. 이와 일치하여 영광스럽게 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중의 하나는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것이었읍니다. (창세기 14:18-20; 시편 110:1-4; 히브리 6:20-7:21; 이사야 9:6, 7) 그러한 명칭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서 어떻게 오늘날 기독교국과 같이 분렬과 요란과 분쟁과 적대시하는 것과 질투와 경쟁과 파쟁으로 소란한 회중의 영적 머리가 되실 수 있겠읍니까? 그는 결코 지금이나 장차나 그렇게 되실 수 없읍니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서, 『그의 몸인 회중』 안에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으십니다. (에베소 1:22, 23) 그는 평화를 교란하는 자들을 천사를 통하여 뽑아 내십니다.—마태 13:41.
9. (ㄱ) 「바울」은 빌립보 4:6, 7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기도의 힘을 어떻게 찬미하였읍니까? (ㄴ) 디모데 전 2:1-4과 일치한 기도를 하는 하나님의 순종적인 종들은 어떠한 정부 아래에서도 어떠한 일에 결코 참여할 수 없읍니까?
9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동적인 기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힘을 찬미하여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 4:6, 7) 사도는 또한 땅위에 있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평화를 구하지 않는 이 세상 정치적 지도자들과 평화의 왕의 참다운 추종자들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들의 정부에 대하여도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그리스도교의 감독자인 「디모데」에게 써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 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 전 2:1-4)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순종적인 종들은 결코 높은 정치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정부에 대하여 혁명을 일으킨다거나 반역이나 이탈이나 음모나 또는 교란과 반란을 일으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참여할 수 없읍니다. 어떠한 종류의 정부 아래에서든지 심지어는 금지와 추방령을 받고 있는 나라 밑에서도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은 평온하고 고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읍니다.
10.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좇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회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것은 무엇의 열매이며 어떠한 지혜의 열매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까?
10 히브리 12:14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교훈하고 있읍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회중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평화를 좇을 것을 구해야 한다면 그들 자신의 헌신한 형제들인 회중안에 있는 사람들과 평화를 좇아야 할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열매를 풍부히 맺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갈라디아 5:22) 그것은 천적 지혜를 행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는 화평』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3:17)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잠언도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 이기 때문입니다.—잠언 3:13-17.
11. 「바울」은 회중을 연합시키는 평화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어떠한 사람이 회중 안에 있을 가치가 없는 자입니까?
11 그렇습니다. 내부적 싸움이나 분렬이나 무질서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인 회중을 연합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의 증거로써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동기의 원인이 되는 곳)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둘 혹은 그 이상으로 분렬된 몸이 아니라)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골로새 3:14, 15) 우리가 만일 계속해서 이것을 좇는다면 평화는 하나님의 성령을 가진 사람들을 연합시키는 띠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것을 지적하였읍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리스도 아래)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에베소 4:1-4) 고의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교란케 하는 자는 평화의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 있을 가치가 없는 자인 것입니다.—로마 16:17, 18.
신권적 마련의 효과
12. (ㄱ) 하나님의 왕국의 탄생이 쾌락을 위한 어떠한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까? (ㄴ) 사는 것과 평화를 즐기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모든 징조는 우리가 1914년 이래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 밑에 살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바로 그 해에 하늘에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의 원인이 되어 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욕심껏 분별력없이 물질적으로 먹고 마시고 하게 하는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넘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래 기다렸던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받는 유익을 즐기는 것은 의식을 둔하게 하는 과식이나 과음을 하게 하는 것 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로마 14:17, 19, 20) 우리의 이기적인 육체의 정욕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좇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의 좇을 일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있을 생명과 좋은 날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우정이 없음)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라.』 (로마 8:6-8) 그러므로 영의 생각을 가지십시요.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평화스럽게 되십시요.
13. 1914년에 하나님의 왕국이 통치를 시작하였다는 것은 그 왕국의 백성들의 회중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사야 60:17의 성취로서 언제부터 이 사실이 그들에게 참이 되었읍니까?
13 1914년에 하나님의 왕국이 하늘에서 통치하기 시작함으로 이 땅 위에 있는 왕국의 백성들의 회중 가운데서는 단순한 즐거움 대신에 엄격한 일이 행하여졌읍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에 인간 왕이 없을 때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은 각자가 다 자기의 의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대로 그들에게 인간 왕을 주셨을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바와 같이 그들의 개인적 행동의 자유는 바뀌어졌읍니다. (사사기 21:25; 사무엘 상 8:9-18) 이와같은 엄격성은 여호와의 현대 증인들이 무서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해인 1919년에 그들 자신을 신권적인 방법으로 재조직하였을 때부터 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게 되었읍니다. 이 사실은 특히 이사야 60:17을 기초로 한 『조직』이라는 제목으로 두 부분에 걸친 기사가 「파수대」에 발표된 1938년 이후부터 더욱 그러합니다. 그 성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14. 신권적 방법에 의한 운영은 어떠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을 충실히 지지하고 유지해 나가야 합니까?
14 이 예언에서 약속된 바와 같이 1938년 이래 땅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 신권적 방법의 운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때부터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놀라운 발전을 성취하였읍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위대한 평화를 이루어 놓았읍니다. 그것은 조직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운영 방법과 지금 여호와의 중인들이 마태 24:14의 성취로서 그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있는 175개국에서 행하여지는 그들의 행동의 표준을 세워 주었읍니다. 그것은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이 조직으로부터 의견 대립과 혼란과 불평등과 무질서를 제거하여버렸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내와 같은 조직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 충만한 약속을 성취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그 약속은 이러한 것이었읍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이사야 54:13)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진심으로 평화를 좇기 위하여 조직의 신권적 마련을 충실히 지지하고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15. 「바울」이 고린도 전 14:26, 29-33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운영 방법은 어떻게 회중집회에서도 적용됩니까?
15 신권적으로 즉 하나님의 법칙대로 운영하는 이 마련은 또한 그리스도인 회중의 집회를 사회하는 일에 있어서나 그러한 집회에 참석자들을 위한 순서에도 적용됩니다. 신권적 통솔체의 한 성원으로서 「바울」은 질서없는 집회나 또는 좋은 연결성이 없거나 잘 사회되지 않는 순서를 가진 집회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한 집회에서는 연결성이 없는 말을 한다거나 또는 설명하는 일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순서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린도 전 14:26, 29-33.
16. 「다윗」과 「베드로」는 우리가 평화를 좇기 위하여 무엇을 금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회중의 일치 연합과 평온을 위하여 우리는 특히 우리의 혀와 입술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누가 사는 것을 즐거워하여 앞에 좋은 날 보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은 후에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시편 34:13) 그렇습니다. 사도「베드로」도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충고한 다음에 바로 이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악은 악으로 욕은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베드로 전 3:9) 그렇습니다. 우리는 혀와 입술로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있읍니다. 우리는 혀와 입술로 욕을 욕으로 갚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혀와 입술로써 심지어 우리에게 악과 욕올 행하는 자들에게까지 복을 빌 수 있읍니다. 복을 비는 일은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것은 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대답인 것입니다. (잠언 15:1) 그렇게 하는 것은 적어도 축복한 사람에게 영적 유익을 갖다 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로 악이나 욕을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조직 안에 평화를 갖다 줍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좇는 일은 우리에게 우리의 입술로 해롭게 하는 말이나 거짓말을 하는 일로부터 금할 것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단순히 말질이나 모함하는 일이나 욕하는 일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17. 혀와 입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며 왜 평화를 좇는다는 것이 뜻에 있어서 그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까?
17 이것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보배로운 진리를 우리의 집회 장소에서나 밖에서나 공중 앞에서나 집집을 방문하여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입니다. 경건한 평화라는 것을 비활동적이거나 안일을 구하거나 계으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요. 평화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조직된 백성들에게 즉 이 땅에 있는 그의 증인들에게 열심히 수행하여야 할 일을 주셨읍니다. 이 일은 하나님과 그의 통치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는 사업입니다. 이 일은 온 땅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마겟돈」에서 그들의 비참한 종말이 오기 전에 수행되어야 합니다.
18. (ㄱ) 이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호와의 중인들은 어떠한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그들은 어떠한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으며 평화와 형제 관계에 대한 어떠한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읍니까?
18 이 사업은 모든 민족과 나라와 백성과 인종과 모든 방언에서 나온 그에게 헌신한 증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입니다. 그들이 만일 외부적 또는 자연적 차이가 있다고 하여 그들 사이에 다툼이나 언쟁이 있다면 이 사업을 연합하여 수행할 수 없읍니다. 그들은 다 같이 평화스럽게 협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 사업을 세계적으로 일치연합하여 수행하기 위하여는, 그들 사이에 나라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회중을 초월한 평화가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중요한 사실올 잘 인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서로 화목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읍니다. (마가 9:50) 이 국제적 평화와 여호와 하나님깨 대한 연합된 숭배를 위한 형제 관계에 관한 아름다운 예언적 환상이 이사야 2:1-4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행동과 노력을 일치시키고 있읍니다. 그러한 이유로서 그들의 증거 사업은 번영하고 있는 것입니다.—야고보 3:8.
19. (ㄱ) 그들은 어떠한 싸움을 위하여 무장하고 있으며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ㄴ) 그들은 집집을 방문하는 사업에서 어떠한 사람을 찾아 다니고 있으며 어떠한 사람에게서는 그대로 떠나 갑니까?
19 어디를 가든지 그들이 왕국의 소식을 가지고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의로운 신세계를 장식하는 평화가 깃드립니다. 그들은 다만 영적 싸움만을 위하여 무장하고 피를 흘리는 싸움을 위한 혈육의 무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 「바울」이 하라고 말한대로 무장하고 있읍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에베소 6:11-15) 그들은 집집을 방문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원하는 벗을 찾고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누가 10:5, 6; 마태 10:12, 13) 만일 집주인이 평화의 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면 그들은 그 집을 떠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원수와 종교적 쟁론을 조금도 할 필요가 없읍니다.
20. 종교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즐거워하고 있으며 그들은 평화에 관한 어떠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읍니까?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교적 박해를 많이 받고 있읍니다. 그러한 박해에도 그들은 항상 즐거워합니다.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잠언 12:20) 그들은 불의하게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이 「아마겟돈」에서 멸망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후 1:6-10) 그들은 평화를 계속해서 좇음으로 「아마겟돈」후에 의로운 재판장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약속된 신세계에서 끝없이 받을 보상의 확실한 소망으로 힘을 얻으며 위안을 받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 . .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로마 2:6-10.
21. 어떠한 영감에 의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대답하기를 원하며 그 대답대로 무엇을 구하고 좇아야 합니까?
21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행하여진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라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각각 『나 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읍니까? 만일 우리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대로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