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일
“그러므로 형제들 아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야고보 5:7
1. 잘 참으시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그는 어떻게 그가 참으신다는 것을 나타내셨읍니까?
여호와는 가장 잘 참으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참으시는 일은 그의 크신 사랑과 자비에 근거를 두고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과분하신 인자와 관용을 여러 경우에 나타내셨읍니다. 그는 패역으로 가득차 있는 땅에서 살고 있는 「노아」시대의 사람들에게 경고를 발하므로 그러한 성품을 보이셨읍니다. 그는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통고하시고 「애굽」의 초태생(初胎生)들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 일련의 재앙을 보내시므로 그러한 성품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는 또한 「소돔」과 「고모라」사람들에게 천사를 통하여 소식을 전하도록 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며 마침내는 그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그의 성품을 증명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참으시는 일은 인간의 짧은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여러번 나타났읍니다. 인간이 의로운 길로부터 떠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참으시고 그들에게 징계하시고 경고하시므로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인류에 대한 그의 과분하신 인자와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셨읍니다.—베드로 전 3:20.
2.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참으시는 일을 어떻게 비유로 말씀하섰읍니까?
2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써 그가 어떻게 참으시는가를 잘 묘사하셨읍니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 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마태 21:33-39.
3.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참으시는 가를 「예레미야」는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읍니까?
3 여호와께서는 포도원의 주인과도 같이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참으셨읍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말한바와 같이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팍한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셨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래도 계속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셨읍니다.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 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아들을 보내시므로 그가 얼마나 참으시는가를 보이 셨읍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은 그가 비유에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죽임을 당하셨읍니다.—예레미야 7:24-28.
4.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참으십니까? 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4 그러나 여호와께서 한없이 참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을 그의 비유에서 알려 주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 하셨읍니다. 『그러면 포도원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유대」인들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찌니이다.』 (마태 21:40, 41) 여호와께서 현존하는 악한 세계에 대하여도 그와 비슷한 인내를 보이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은 그가 머지 않아 그를 버린데 대한 배상을 물리게 하실 것임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여러 경우에 있어서 형벌하시는 일을 주저하시지 않았읍니다. 심지어 홍수 전에 범죄한 천사들 까지도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간수 해 두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에 세계적인 홍수로써 그 당시 악한 세계 전체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을 억제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는 무서운 불로써 「소돔」과 「고모라」의 악한 도시를 깨끗이 태워 버리셨읍니다. 그는 「이스라엘」나라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게 하셨고 후에는 「로마」군대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멸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그는 참으실만큼 참으셨고 이제 지정된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5. 현존하는 제도는 여호와께서 그들에 대하여 참으실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읍니까?
5 여호와께서 현존하는 이 세계에 대하여도 참으시는 일이 거의 다 끝났다고 믿을만한 좋은 이유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영감에 의하여 예언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후 3:2-5) 여호와께서 더는 이 같은 자들에게 대하여 참으실 이유가 없으며 입 싸움으로 일삼는 나라들과 분열된 국제적 집단들과, 인종적 종교적 원수들과 함께 현존하는 이 악한 조직 제도를 집행하실 것은 확실합니다.
6.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이유로 악을 그와 같이 오랫동안 관용해 두십니까?
6 여호와께서는 심지어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그렇게 참아 오셨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렇게 참으시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의 대표자인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것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지금 현존하는 이 제도가 종말이 되기 전에 경고를 하게 하고 그 동안에 여호와의 이름이 알려지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지고 그의 왕국에 관한 기쁜 소식이 전파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시간을 허락하고 계신 것입니다.—출애굽 9:16.
7. 기롱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일을 수행하실 것입니까?
7 지금도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을 분리하여 다만 멸망에 합당한 폐물과 같은 자들은 따로 제쳐놓시고 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원칙에 의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은 보존하실 준비를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마태 3:12) 멸망을 받을 자들 중에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왜 그는 이 땅의 상태를 좀 더 좋게 하지 않는가? 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바로 「베드로」가 기롱하는 자가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바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종말은 그러한 기롱자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갑자기 오게 될 것입니다. 홍수 전 악한 세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120년 동안이나 그의 분노를 억제하시다가 마침내는 경건치 않은 그 조직 제도에 홍수를 가져 오셨읍니다. 그 악한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기간은 끝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베드로」는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셨다고 말하였읍니다.—베드로 후 3:3-7.
참아야 할 이유
8. (ㄱ) 여호와께서 왜 더디신 분이라고 말할 수 없읍니까? (ㄴ) 「노아」는 어떠한 태도를 나타냈읍니까?
8 인간은 가끔 불과 7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인생의 길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호와께서 그의 목적을 수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수가 있읍니다. 그들은 어떠한 즉각적인 행동이 취해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관점에서 보실때 인류가 창조된 이래 다만 1,000년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루의 엿새인 1주일도 되지 못하는 짧은 기간밖에 지나가지 않았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 후 3:8, 9)「노아」도 또한 이 땅에 악이 충만하였던 흥수 전 시대에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방주(方舟)를 만드는 동안 가진 조롱과 박해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가 『주여 이제 또 한 해가 지나갔읍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단일 당신이 세계 기원 1641년까지 마지막을 가져오시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그만 두겠읍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10년 이상이나 지난 후에 홍수가 올 때까지 꾸준히 충성으로써 참았읍니다.
9, 10. 지금 따라야 할 지혜로운 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9 성경 기록은 우리가 지금 이 조직 제도의 마지막 때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왕국을 통하여 그의 놀라운 목적을 성취 시키시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낙원 상태를 회복시키실 때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읍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하나님의 영감 아래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찌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1-4.
10 이러한 점으로 보아 오늘날 살고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은혜와 그가 「노아」와 「롯」과 「예루살램」의 생존 자들에게 보이신 바와 같은 보호를 받기 위하여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하겠읍니까? (베드로 후 2:5-9)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참는 일로써 여호와의 본을 따를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부요하심을 측량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바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잘 노하거나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참으신 놀라운 본을 잠간 멈춰서 생각해 보십시요. 당신이 만일 지나치게 생각 없이 말하는 일이나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면 참을 줄 아는 성품을 갖도록 노력하십시요. 그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특히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덕이요 하나님과 같은 성품인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우리에 대하여 참아오신 바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 우리의 벗들 사이에서 또는 직장이나 손님들에게 그러한 성품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마태 18:23-35.
11. 참는 것은 왜 지혜가 있다는 징조입니까?
11 참는것이 마치 약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현재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조급하게 행동하는 시대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잘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와 그의 목적에 대하여 재빨리 배울 것이며 쉽게 노하는 일이 있는 대신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을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기에 합당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전도 7:8, 9.
전도 봉사에서 참는 일
12. (ㄱ) 어떠한 크나큰 사업이 수행되지 않으면 안됩니까? (ㄴ) 어떠한 준비가 필요합니까?
12 여호와께서 참으시는 것을 그가 지체하시는 것이라고 혼돈하여서는 안됩니다. 여호와께서 마치 「노아」시대에 땅을 깨끗이 씻어 버리신 것 같이 그는 또한 지금도 이 땅을 망하게 하려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 조직 제도의 종말을 가져 오시기 전에 먼저 수행되지 않으면 안될 크나큰 사업이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마치 「노아」가 홍수 전 시대에 의의 전파자로서 봉사한 것 같이 이 조직 제도의 종말이 오기 전에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설립된 여호와의 왕국에 관한 기쁜 소식이 전파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예언하셨읍니다. 이 기쁜 소식이 지금 여호와의 증인의 연합한 전도 봉사 활동으로 온 세계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읍니다. 그들의 전도 봉사는 어떠한 면으로 보아 농부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농부의 실례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에게 임명하신 전도 봉사에 참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이해하게 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됩니다. 농사틀 전혀 지어보지 않던 사람이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거나 아무런 지시도 받는 일이 없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땅을 사고 농사를 시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전도 봉사에 참여할 수 있기에는 공부하고 회중에서 교훈을 듣고 훈련을 받아야 할 기간이 먼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이같은 훈련의 필요성을 인증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의 제자들을 둘씩 내어 보내서 그들이 서로 도움이 되는 제안을 받으므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13, 14. 전도 봉사는 어떻게 농부의 하는 일과 비교됩니까? 그리고 참는 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농부는 하루에 나가서 씨를 뿌리고 다음 주일에 나가서 수확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먼저 논을 갈아야 하고 그 다음에 거름을 뿌리고 써레질을 한 다음 모를 심은 후에 다시 김을 매주고 피를 뽑아주며 새들을 쫓아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도 농부는 아마 해충 때문에 고통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는 벼에 소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농부는 가뭄으로 말미암아 벼가 완전히 말라버려 크게 실패를 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단념하고 도시로 가서 다른 직업을 구하든가 다른 고용살이를 할 것입니까? 만일 그가 참다운 농부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다음 해에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할 것입니다. 그는 바람을 막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물 때에도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우물을 깊이 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해야 하더라도 그는 단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노동의 열매를 거두어 수확할 때까지 참고 계속하여 일함으로 여호와의 축복에 감사할 것입니다.
14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그가 배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먼저 밭을 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 사람들에게 좋은 본을 보임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사람들은 그의 언행(言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읍니다. 만일 그의 언행이 성서적 원칙과 일치하다면 그들은 그가 전하는 소식을 더 잘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을 여러번 방문하고 그들에게 성경에 관하여 여러번 이야기 한 후에도 그리 반응이 크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요. 「여리고」성도 처음 돌았을 때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이스라엘」백성들은 엿새 동안을 돌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제7일이 되는 날에는 일곱번을 돈 후에야 그 성이 무너졌읍니다. 우리는 결코 여러 세기를 통하여 마치 성벽과도 같이 굳게 쌓여온 종교적 가르침과 교리적 전통의 장애를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큰소리로 한번 외쳤다고 하여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해 주어야 할 소식의 중요성을 인식하므로 우리는 친절하게 참고 사랑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한 농부같이 밭에 있는 곡식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농부보다도 더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15, 16. (ㄱ) 그리스도인은 왜 그의 봉사에서 쉽게 실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까? (ㄴ) 「야고보」는 어떠한 좋은 충고를 하였읍니까?
15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방문하여 여기 저기 진리의 씨를 뿌리고 한번 두번 우연한 기회의 증거나 재방문으로 물을 주고 난 후에 전도인은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에 싹이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이 관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그 선의자가 영적으로 자라나고 튼튼하게 되게 하기 위하여 성경 연구로써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 싹이 말라 버린다고 즉 관심이 죽어간다고 『나는 그 이상 더는 할 수 없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할 것입니까? 그가 만일 참으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고 그의 모든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그를 섬기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밭이요 추수할 일은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노력할 수 있는 기회와 참아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16 「야고보」는 이 점을 이렇게 강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 5:7, 8) 「야고보」는 씨를 뿌린 후에 씨를 싹트게 하기 위하여 이른 비가 필요하고 그 사이 열매를 맺기 위하여 늦은 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증하였읍니다. 우리 전도 봉사에 있어서도 이와 같습니다. 진리의 물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말씀이 싹터야 함을 인식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계속하여 물을 주고 돌보아 주는 것만이 의로운 나무가 되고 창조주에 대한 찬양과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7.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에 뚜렷한 일은 무엇입니까?
17 「야고보」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임재하실 때까지 참으라고 말하였읍니다. 마태 24:3에는 제자들이 예수께 그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징조가 무엇인가를 질문한 기록이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적어도 서른 아홉 가지의 다른 특징을 가진 하나의 종합적 징조가 여러 가지 사건들로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범사에 헤아리라』(영문)337면 참조) 1914년 이래 성취되고 있는 이 징조의 일부분은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땅의 거민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시대에 남녀노소를 막론한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하여 전 세계 179개 나라와 섬에서 활동적으로 전파되고 가르치는 사업이 수행됨으로써 실제로 성취되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목적이 수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신 세계 사회가 계속적으로 확장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읍니다. 1914년에 보이지 않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시작되었을 때 활동적인 전도인 수는 몇 천명에 불과하였읍니다. 그러나 1938년에는 59,000명이 되었고 지금에는 916,000명 이상이 되었읍니다. 씨 뿌리고 물 주는 일에 여호와의 축복이 같이 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증가를 가져 오게 하신 것입니다.
활동하면서 참는 일
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참는 일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8 1914년에 징조의 성취가 시작되었으므로 우리가 더는 주의 임재를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전도 사업이 철저하게 수행되고 여호와께서 「아마겟돈」에서 이제 다되었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고보」가 우리에게 참으라고 교훈한 것은 우리가 가만히 있을 무활동 기간에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가 말한 것은 우리가 배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므로 믿음과 소망을 행사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그의 목적을 수행해야 할 때에 참아야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시편 필자가 예언한 바와 같이 여호와의 권능의 날에 그의 백성들은 즐거이 봉사하고 있읍니다. (시 110:3) 그들은 그의 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많은 가족들은 그들의 집을 팔고 직장을 버리고 그들의 전도 봉사가 크게 필요한 새로운 구역으로 이사해 가서 봉사하고 있읍니다. 그들이 지금 봉사하는 곳에 있는 선의자들은 그들의 도움을 크게 감사하고 있읍니다.
19. 우리는 어떠한 좋은 성서적 충고를 따라야 합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19 이러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충고의 지혜로움을 잘 인증하고 있읍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누가 9:62) 그러므로 이 세상 낡은 제도와 이 세상이 제공해 주는 임시적인 유익이나 출세를 돌아다 보는 대신에 그들은 신 세계의 축복을 바라보고 그들의 눈을 왕국의 목표를 향하여 곧게 보고 전도 봉사활동으로 왕국의 유익을 발전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바칠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 (즉 장래의 생명)을 얻으리라』고 하신 충고를 따릅니다. (누가 21:19) 그들은 신 세계에서의 생명의 놀라운 선물을 위하여 참고 일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증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진리를 인식하게 되기 전에 여러 성경 연구를 사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 예수께서 예언하신 양과 염소를 가르는 사업의 일부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러한 사업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 사업이 완수될 날과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틀 알게 될 날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읍니다.—예레미야 31:34.
20. 우리가 전도 사업에서 여호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20 우리가 여호와께서 그의 조직을 통하여 지도하시는 방법대로 전도하고 가르치는 한, 그러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의 축복을갖게 될 것입니다. 항상 그에게 지도하실 것을 기대하고 그의 성령으로 도우실 것을 기도하십시요. 「바울」은 하나님과의 전도인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읍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 성귀는 계속하여 그가 봉사에 바친데 따라 거두게 된다는 것을 말하여 『각각 자기의 일 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동역자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특권을 참으로 가치있게 보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전도 봉사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십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 전 3:5-9) 당신은 하나님의 가꾸시는 밭의 일부로서 영적으로 장성하고 있읍니까? 포도나무의 새 순과 같이 언제나 양분만 빨아먹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공부하고 회중 집회에 참석하며 좋은 스승이 되도록 진실한 노력을 바치고 진리 안에서 튼튼하게 자라가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열매를 생산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십시요. 그렇게 하면 「바울」의 말은 당신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 전 15:58.
21. 우리는 왜 더는 이 낡은 세상의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까?
21 이방인의 기간은 지나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임재하여 계신 오늘날에 살고 있는 우리가 참고 굳건히 서야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읍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낡은 세상의 조직 제도를 따라 방탕하고 부패한 길을 걷는 대신 더 좋은 것을 위하여 살 이유가 있읍니다.(베드로 전 4:3) 그는 왕국의 유익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왕국의 소망과 모든 왕국의 축복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그에게 헛되이 돌아오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이사야 55:11) 신 세계 사회의 놀라운 증가와 함께 우리는 각각 영적 장성을 증가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장성을 발전시키고 그의 봉사에 온전히 참여하므로 신 세계 사회와 함께 전진합시다.
22.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어떠한 충고를 하였읍니까?
22 『어디 기다려 보자』라고 말하므로 믿음이 약함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노아」시대에 방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목적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에 빠져 버렸읍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믿음은 지식과 소망을 결합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고 견디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편지히면서 매일 매일의 생활에 참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정확한 지식으로 가득찬 「골로새」인들을 만나보기 원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들로 가서 열매를 맺으며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고 영적으로 튼튼하고 강하게 되면 모든 박해를 온전히 견디고 자신들을 오래 참는 사람들임을 증명하라고 격려하였읍니다. 「바울」은 그들이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가치 있게 걸어가는 것이요 모든 선한 일로 열매를 맺으므로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여야 할 목표인 것입니다. (골로새 1:9-11) 여호와께서 그의 목적을 수행하시는데 참으신 것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에는 그를 섬길 기회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미래에 있어서는 의로운 신 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 후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