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인간 이전의 존재
35, 36. (ㄱ) 요한 1:1은 어떠한 존재에 언급하며, 누가 처음으로 그것에 주의를 돌렸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요한」 뒤에 오시는 분이 되셨으나, 어떻게 그 이전부터 존재하시며, 「요한」이 그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른 것은 무엇에 언급한 것입니까?
사도 「요한」은 그의 기록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였읍니다.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가 그것으로써 의미하는 것은 십구세기 이전에 땅 위에서 하신 예수의 공개적 전도의 시작이 아니었읍니다. 그가 의미한바는 지상에서 『육신이 되』시기 오래전부터 말씀은 인간 이전의 존재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 하였읍니다. 「요한」은 그의 기록 전체를 통하여 그 점을 명백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지 한 달 이상이 지난 후에 침례 「요한」은 예수와 그의 이전 생명에 주의를 돌리며 말하였읍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요한 1:29-31, 신세.
36 침례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기 즉 「유대」 처녀의 아들로 탄생되시기 약 육 개월 전에 탄생되었읍니다. 그 때문에 「요한」은 『내 뒤에 오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이 예수께 침례를 베푼 후 그에게 일어날 일 때문에 예수를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이 예수께 관하여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인간 이전의 존재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시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매일 양의 희생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기 위하여는 희생으로 그의 피를 흘려야 하셨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무죄한 희생물의 피흘림이 없이는 하나님께로부터의 죄사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읍니다.—히브리 9:22.
37. 예수께서는 무슨 이유 때문에 「니고데모」에게 하늘에 관하여 말씀하실 수 있으셨읍니까?
37 여러번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육체가 되시기 전에 하늘에 존재하셨었다고 자신에 관하여 몸소 증언하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늘 일』에 관하여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유대」인 통치자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이기 때문입니다.—요한 3:12, 13.
38. 「만나」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의 자기의 이전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증언하셨읍니까?
38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상징적 「만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많은 「유대」인들은 투덜댔읍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더욱 더 놀라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요한 6:32, 33, 38, 51, 57, 58, 61, 62.
39, 40. (ㄱ) 다른 경우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어디서 오신분으로 묘사하셨읍니까? (ㄴ)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실 수 있었읍니까?
39 그러한 이유 때문에 후에 예수께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떠나실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 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한 8:23, 42)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실 수 있으셨으며 그의 충성스러운 사도들의 듣는데서 말씀하실 수 있으셨읍니다.
40 『아버지여 [인류의]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 17:5, 11, 24.
41. 그러므로 위로부터 오신 분은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셨고 증거하셨읍니까?
41 말씀 즉 「로고스」인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가지고 계셨었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셨었읍니다. 이것은 세상이 있기 전이었읍니다. 사도 「요한」은 그러한 예수의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요한」은 정확하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요한 3:31, 32) 예수께서 인간 이전의 생명을 가지고 계셨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말씀 즉 「로고스」로서 그는 『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었읍니다.
믿는 「유대」인들이 그를 무엇이라고 불렀는가
42. 예수께서 십이 사도들을 부르시기 전에 그들은 누구를 믿었으며, 따라서 이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4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십이 사도들을 불러 뽑으셨읍니다.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로 탄생된 사람들이었으며 유일신이신 여호와 만 믿는 『유대교』 혹은 「유대」주의에서 성장되었읍니다. (갈라디아 1:13, 14, 영문 흠정역 참조)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삼위일체에 관하여 가르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자기가 제 이위 즉 『아들 하나님』이신 삼위일체를 믿도록 그들을 개종하셨읍니까?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를 『아들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며 그를 그렇게 불렀던가요? 그들은 그를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요한」이 무엇이라고 보도하는가 보도록 합시다.
43, 44. 「요한」이 예수께 침례를 베푼 후에 그에 대한 어떠한 사실에 관하여 증거하였읍니까?
4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침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소개하였읍니다. 「요한」은 침례를 베풀도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요한」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이 침례 받으신 예수께 관하여 「요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소개하였을 때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44 대답으로서 요한 1:32-34, (신세)를 읽어봅시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45. 침례를 받기 위하여 누가 오실 것을 「요한」은 기대하였으며, 그러므로 「요한」은 무엇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읍니까?
45 침례 「요한」 자신은 바로 자기 어머니의 배에 있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었읍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여호와이시라든가 예수께서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읍니까? 천만에요! 침례 「요한」은 자기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요한」은 『아들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읍니다. 이 표현은 전연 다른 의미입니다.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이 물로 침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자기에게로 오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읍니다. 「요한」은 그리스도,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게 될 분 곧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실 분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아무도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 제자들에게 말하였읍니다. 『나의 말 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 .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 3:28-30) 「요한」은 자기가 본 것으로써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46.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넘긴후, 예수가 어떠한 분이시라고 말한대 관하여 그들이 마음을 변화시켰는가의 여부를 무엇이 표시합니까?
46 침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그들을 그에게 넘겼읍니다. 이 제자들은 듣고 살펴보고 예수와 함께 있어 봄으로써 그에 관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켰읍니까? 그 제자들은 시종일관 그를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예수께서 처음으로 「나다나엘」을 만나셨을 때, 예수의 예견의 힘에 놀란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고 하였읍니다. (요한 1:49) 요한 1서 4:15; 5:5에서 사도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한 2서 3에서 그는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말합니다.
47. 「마르다」는 예수를 무엇으로 믿는다고 말하였으며, 예수의 대적들은 율법에 의하면, 예수께서 죽기에 합당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47 이미 죽은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부활시키기 전에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동생인 「마르다」에게 자기가 바로 말씀하신 것을 믿는가 하고 물어보셨읍니다. 「마르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읍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 11:27) 피에 굶주린 예수의 대적의 증거까지도 유의할만 합니다. 「로마」의 총독 자신은 예수께 죄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구미 당기지 않은 형 집행을 「유대」인들에게 넘기고자 생각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총독에게 말하였읍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라.』 (요한 19:7) 그리하여 침례 「요한」이며 예수의 사도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와 심지어 대적들까지도 모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는데 일치하였읍니다.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48, 49. (ㄱ) 기쁨으로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넘겨주는데 관하여 어떻게 비유하였읍니까? (ㄴ) 신부는 누구와 결혼할 것을 기대합니까?
48 제자들을 갖는데 관하여, 침례 「요한」은 쇠하여 가지만 예수께는 침례를 받은 추종자들의 수가 증가하여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였을 때 「요한」은 예수를 신랑으로 묘사하였읍니다. 「요한」은 말 하였읍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한 3:29) 「요한」은 침례받은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넘기는데 많은 기쁨을 느꼈던 것입니다.
49 상징적으로 말하여 예수께서 신랑인 이상, 침례를 받고 기름부음을 받은자의 전 집단은 그의 신부일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그들의 소망은 신랑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읍니다. 만일 하나님이 삼위일체이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삼위일체의 특별한 위 즉 삼위일체의 제 이위인 소위 『아들 하나님』과 결혼할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있읍니다. 그들은 삼위일체 혹은 심지어 이 삼위일체의 삼분의 일의 부분과 결혼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읍니다. 영감받은 성서는 그러한 몸이 붙은 쌍둥이와 같은 자와 결혼한다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지 않읍니다!
50. 신랑은 누구와 결혼하며, 계시록은 신부가 몇명이라고 표시합니까?
50 신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십억의 전체 인간 가족들과 결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가족으로부터 취함을 받은 한정된 수와 만 결혼하십니다.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에 위치한 정부에 있는 신랑과 신부에 관한 환상을 보았읍니다. 그 정부는 「시온」산이라고 불렀으며 「다윗」왕이 통치하던 「예루살렘」의 「시온」산으로 말미암아 전영되었읍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시 14:1-4.
51. 신부 반열인 처녀는 어떠한 상태이며, 이마에는 어떠한 표시가 있고, 어떻게 그들을 샀읍니까?
51 그리하여 신부 반열은 처녀 반열로 표상되었읍니다. 그들은 현재의 부도덕한 세상과 벗이 됨으로써 사람들이나 혹은 조직과의 영적 간음죄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이마에 신랑의 이름과 신랑의 아버지의 이름 이외에 다른 이름, 즉 성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삼위일체의 어떤 제 삼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읍니다. 144,000의 성원으로된 이 신부 반열은 땅으로부터 하늘로 뽑혀갔읍니다. 혈육인 인간 중에서 영의 피조물로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하여 뽑혔읍니다. 어떻게? 그들의 신랑인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하여 삼으로써 입니다.
52. 신부 반열은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첫 이삭』과 같으며,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52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수한 곡식으로부터 뽑아 낸 첫 곡식을 성전의 종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던 것과 같읍니다. 그것은 오순절에 대제사장이 『첫 이삭』으로 만든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장만한 두개의 떡을 하나님께 바친것과 같읍니다. (레위 23:15-20)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은 단지 신부 반열 뿐임으로, 하늘이 아니라 땅 위의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받게 될 휠씬 더 많은 인간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하나님의 어린 양은 『세상 죄』을 지고 가시는 것이지 단지 자기 신부 반열의 죄만 지고 가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요한 1:29; 요한 1서 2:1, 2.
53, 54. 계시록 19:6-9에 의하면 그것은 누구의 결혼식이며, 신부는 누구에게 속하며, 결혼 피로연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53 사도 「요한」은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 회중인 신부반열이 하늘에서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관하여 우리에게 하등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읍니다. 계시록 19:6-9에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 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영문 개역 표준역 참조.
54 그 결혼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결혼이며, 주이신 우리 하나님 곧 전능자의 결혼이 아닙니다. 신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신부이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신부가 아닙니다. 결혼 피로연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로연입니다. 그리고 예언적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바로 아버지이자 주이신 우리 하나님 전능자께서 그의 아들이신 어린 양을 위하여 피로연을 베푸신다고 표시하셨읍니다.
55. 계시록 19:11-16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누구라고 증언하며, 그러므로 144,000은 누구의 신부가 됩니까?
55 몇절이 지나 사도 「요한」은 19:11-16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말씀 즉 「로고스」임을 증명합니다. 왜냐 하면 「요한」은 아버지의 원수에 대항하여 싸우시고자 말을 타고 나가시는 어린 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를 묘사하여 말하였읍니다.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 .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개역 표준역 참조) 그러므로 그의 144,000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56, 57. 계시록 21장에서 우리는 신부 반열에 관하여 누구누구 사이에 구별이 있는 것을 보며, 그 구별은 어떻습니까?
56 결혼한 자들은 그 후의 환상에 다시 표시됩니다. 그것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여 말하였읍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 . .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계시 21:2, 9-11, 14, 22, 신세, 23.
57 우리는 항상 어린 양과 우리의 전능 하신 주 하나님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는 것과 144,000의 신부 성원들은 바로 어린 양과 결혼한다는 것을 봅니다. 신부는 어린 양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삼위일체와 같은 것이 있었다면 144,000은 하나님의 위들 중의 하나인 하나님과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읍니다.
자기의 증명
58.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 중에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누구라고 주장하셨읍니까?
58 신부 반열을 위하여, 침례 「요한」은 신랑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명하였읍니다. 그러나 신랑은 자신을 신부에게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명하셨읍니까? 그는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다고 몸소 말씀하셨읍니까? 그가 침례 「요한」이 그에 관하여 선포한 것 이상 즉 하나님의 아들 이상이라고 주장하신 적이 있읍니까? 대답으로서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 3:16-18.
59. 예수께서 소경으로 탄생된 사람을 고치신 후에 그 사람은 예수가 누구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읍니까?
59 예수께서 한번은 난 때부터 소경인 한 사람을 고치신 일이 있으십니다. 여러 가지 성경 번역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후에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하나님 아들]을 믿느냐』 그 사람은 대답하였읍니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읍니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예수께서는 그 남자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이상이라고 믿는가 묻지 않으셨읍니다. 그 사람은 그것만을 믿는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요한 9:35-37, 흠정역, 「듀웨이」역, 미표준역, 강조된 「다이야글롯」, 「람사」, 「머독」역 참조.
60. 「나사로」를 일으키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누가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이에 따라 「마르다」는 예수를 누구로 믿는다고 말하였읍니까?
60 친구인 「나사로」의 병 때문에 「베다니」 고을로 가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예수께서 이제 죽어 뉘어있는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시기 전에,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는 예수께서 주장하신 바를 믿는다고 고백하였읍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신줄 내가 믿나이다.』—요한 11:4, 27.
61. 「두아디라」 회중에 소식을 전하실 때, 예수께서는 자기가 누구라고 말씀하셨읍니까?
61 하늘에서 까지도 영광 받으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2:18에서 「두아디라」 시의 그리스도인 회중에 소식을 보내셨을 때, 영광스러우신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 .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 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시 2:18, 26, 27.
62.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에 있다고 말씀하셨읍니까?
62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관계를 기초로 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기도하셨읍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 17:1-3)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63. 「유대」인들은 어찌하여 예수를 돌로 치고자 하였으며, 그들의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표시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시편으로부터 어떤 것을 인용하셨읍니까?
63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데 있어서, 요한 10: 31-39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고 하던 즉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잊은 것은 아닙니까? 아니, 우리는 잊지 않고 있읍니다. 이름이 여호와이신 유일신을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고 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삼위일체와 같은 것을 가르치셨거나 그가 삼위일체의 삼분의 일이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즉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돌을 손에 들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은 대답하였읍니다.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토리」 참조)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성서로부터 시편 82:6을 참조 하시며 말씀하셨읍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토리」 참조.
64. (ㄱ) 예수께서는 그 논의에서 자기가 누구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시편 82편에서 『신들』이라고 언급된 자들은 누구입니까?
64 이 예수의 논의 자체는 그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으셨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다면 「유대」인들은 참람되다고 당장 돌질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보다 작으시다고 주장하셨읍니다. 이것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시편 82편, 1, 2, 6, 7절(영문 흠정역 참조)을 인용하셨읍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읍니다. 『하나님 [엘로힘-Elohím] 이 [대능자들]의 회중 가운데 서시며 신들 [엘로힘-elohím] 중에서 판단하시되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 .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엘로힘(elohím)]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 이 시편에서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불의한 재판자들 즉 단지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들을 「히브리」어로 『신들』 즉 「엘로힘」(elohím)이라고 부르셨읍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법적인 관습을 시정하도록 말씀하십니다. 그 재판장들이 그들의 의무에 있어서 실패하였기 때문에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땅 위의 백성들을 재판하실 필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65. 재판장들이 『신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러한 「유대」인의 『신들』에게 누구의 죽음의 책임이 있읍니까?
65 그들이 『신들』이라고 불리운다는 그것 때문에 이 재판장들이 구원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지존자의 아들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구원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멸성이며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죽을 것입니다. 그들은 땅 위에 있는 다른 재판소의 방백들처럼 죽음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재판의 집행으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과 반대되는 판단을 하였읍니다. 이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로마」인들의 손에 예수를 돌아가시게 한 인간 신들이었읍니다. 출애굽 22:28, 흠정역, 「듀웨이」역 참조.
66, 67 예수께서는 무엇이 아니라고 주장하셨으며, 자기 아버지와 자신에 관하여 「유대」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까?
66 비록 시편 82:6에서 어떤 인간들 즉 어떤 「이스라엘」 사람 재판장들을 『신들』이라고 부르기는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자기를 돌로 치려고 하든 자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이라든가 혹은 하나의 신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것은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저희(나의 양)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67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의 그의 논의는 그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그와 그의 천적 아버지께서 두위가 되시고 제 삼위인 『성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님을 증명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와 성신은 하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성신』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요한 10:28-30.
68. 시편 82:6을 사용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고 말하신 것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증명하셨읍니까?
68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예수의 진술의 의미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보다 작다고 부르셨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입니다. 그는 그 「유대」인들에게 시편 82:6에 있는 그들 자신의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들을 『신들』이라고 비평적으로 부른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며, 「유대」인들이 『신들』의 칭호로써 인간 재판장들을 부른 이 성귀를 취소할 수 없다는 것과 이 성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뿐더러 영감받은 성서로부터 이 성귀를 뺄수도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렇게도 많은 훌륭한 일들을 수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그가 참람되다고 말하며 참람된 자로서 그를 돌로 막 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편 82편이 『신들』이라고 부른 그러한 인간들 이상이 되시는 분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천적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신 분이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삽」이 「이스라엘」의 인간 재판장들을 『신들』이라고 부르는 시를 쓴 것이 참람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자신을 단지 한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훨씬 덜 참람된 일입니다.—시 82편 명(銘)
69. (ㄱ) 「요한」이 기록한 자료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요한」의 기록한 자료들을 더 고려하는데 우리와 함께 참예하도록 독자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9 그리하여 「요한」이 기록한 이상의 모든 자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하게 하신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알았읍니다. 아! 그러나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요한」이 기록한 관련있는 모든 성귀를 아직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 성귀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셨고, 또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게 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할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귀들은, 많은 성경 번역들이 요한 1:1을 『이 말씀 [혹은 「로고스」]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올바로 번역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관한 이 기사의 다음 세부에서 우리는 그런 성귀들을 다룰 것입니다. 그것들을 고려하는데 독자들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