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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생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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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생명의 근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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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1/15 30-34면

제4부

그의 생명의 근원

33. (ㄱ)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아버지되시는 분을 어떻게 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아들을 어느 정도까지 공경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요한」의 기록에서 얻은 이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로 이 사실 자체가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의지하셨으며 하나님과 동등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보다 더 크지 못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의하여 아버지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8:49) 그렇다면,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심으로써, 그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하셨다거나 하나님과 동등되려 하셨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요한 5:22, 23) 이 말씀 중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 즉 하나님인 자기를 공경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읍니다. 그는 아버지만큼 아들을 공경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읍니다.

34. 이에 관하여 아들이 왜 그리고 어느 정도로 공경을 받으셔야 하셨읍니까?

34 다시 예수의 말씀을 살펴서, 왜 그가 아버지께서 공경을 받으시듯이 그도 공경을 받으셔야 한다고 하셨는지 보십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를 재판장이 되게 하시어 최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대리 혹은 대표자로 행하도록 임명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임명된 재판장으로서 공경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아들을 공경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재판장으로 임명하신데 대하여 존경을 표시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아들을 재판장으로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들을 하나님 자신으로서 혹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공경하는 정도로 공경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35. (ㄱ)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신 분은 누구이시며, 어느 정도하셨읍니까? (ㄴ) 위대함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는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35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아들을 자기와 동등하게 공경하거나 영광스럽게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다른 모든 아들들보다 더 영광스럽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는 분을 우리도 정말 공경하여야 합니다.사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예수 자신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요한 8:54) 예수의 아버지는 「유대」인의 하나님이셨읍니다. 그들은 예수를 신성 인간(God-Man) 혹은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하나님으로 가장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영광스럽게 해주신 분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크시지 않으나 하늘에서의 인간 이전의 존재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는 것을 선언하시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36. 『아버지』라는 칭호는 무엇을 의미하며,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절하게도 무엇을 주셨읍니까?

36 『아버지』라는 칭호는 남성 어버이를 의미하며, 남성 어버이는 선조, 창작자 혹은 근원을 의미합니다. 즉 자손을 잉태케 하거나 생기게 하는 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아버지이셨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 역시 그에게 달려있었읍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 자신의 말씀 만이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었읍니다. 이제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유의하여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한 5:25, 26)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의 아들 속에 생명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 1:4, 5가 말씀 즉 「로고스」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37. 누구로부터 그리고 누구를 통하여 인간을 비취는 생명은 옵니까?

37 죽음의 흑암으로 내려가고 있는 인간에게 빛을 주는 생명은 근원이신 아버지로부터 오게 되며 통로인 아들을 통하여 오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으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처럼 말할 수 있었읍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니 우리가 뉘게로 가겠읍니까?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그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믿고 확신합니다.』—요한 6:68, 69, 흠정.

38.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그를 먹는 자들이 받게 되는 생명의 기원과 자기 자신의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비교하셨읍니까?

38 믿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하여 인간 희생으로서 자신을 바쳐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나타내어 말씀하셨읍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한 6:56, 57) 먹는 자들이 예수를 인하여 산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살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께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게 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아들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생명의 시작이 없이 영원히 존재해 오셨다면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고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참될 수 있었겠읍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읍니다. 마치 믿음에 의하여 예수의 인간 희생을 먹는 인간이 예수를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되며 그로 인하여 살게 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그의 생명을 천적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읍니다. 만일 예수의 인간 희생이 없었다면 아무도 결코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안계셨다면, 아들도 결코 살아오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39, 40. (ㄱ) 예수의 계속적 삶은 무엇에 달려 있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생 명을 위하여는 하나님께 의뢰하셨었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 기적적인 방법으로 표시되었읍니까?

39 예수 자신의 계속적 삶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달려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십일간의 단식을 범하게 하는 「사단」에 의한 유혹 즉 돌들을 떡으로 변화시켜 보라는 유혹을 받으셨을 때, 매우 적절하게도, 예수께서는 선지자 「모세」의 말을 자기에게 적용하셨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마태 4:4) 예수의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께 달려있었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표시되었읍니다. 어떻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가 자기의 인간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신 후 제삼일에 그를 죽은자로부터 일으키심으로써 입니다.

40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켜 그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요한 5:21(미표, 개역 표준, 「듀웨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알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주십사 하고 하늘에 계신 그의 불멸의 아버지께 의뢰하셨던 것입니다. 회생적 죽음의 제 삼일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일으키시고 그에게 다시 생명을 주셨으며 그 아들은 그것을 받으셨읍니다. 즉 생명을 받아들여서 다시 얻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산 바와 같읍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 10:17, 18.

41.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리고 왜 자기의 인간 생명을 내 놓으셨으며, 어떻게 생명을 되찾으셨읍니까?

41 예수께서는 그의 생명 (희랍어: 「프슈케」-Psykhé-영혼)을 버리셨읍니다. 물론 「로마」 군병들이 「갈보리」에서 죽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의 뜻과 일치조화 혹은 그의 아버지께서 예수에게 주신 계명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생명을 다시 얻게 되셨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인간 희생물을 제단에서 도로 차지하셨다거나, 자기가 자신의 생명을 일으키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 삼일에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도록 예수께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생명을 받 아들이심으로써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였읍니다. 『나는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신 영어 성경 참조.

42. 「요한」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어떻게 『처음이요 나중』이십니까?

42 예수께서는 현재 하늘에 다시 살아계십니다.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 환상 가운데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는 부활문제에 있어서 처음이며 마지막이었읍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예수께 관하여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계시 1:17, 18, 5) 그는 『세세토록 살아』계시도록 하나님께서 땅의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신 첫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신 마지막 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부활된 예수께 『사망과 음부』를 여는 권세 즉 『열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이신 예수께서는 그의 천국 통치 기간 중 원하시는 자들을 일으키셔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43. (ㄱ)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계시록 3:14의 의미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주장합니까? (ㄴ) 그러나 거기에서 에수께서는 누구의 창조 사업에 관하여 말씀 하셨읍니까?

43 이 모든 것은, 부활된 예수께서 「요한」에게 소「아시아」의 「라오디게아」에 있는 회중에 써 보내라고 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는데 참된 도움을 줍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이신 이가 이런 일을 말씀하셨다.』 (계시 3:14, 흠정)a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분이시고 기원자 즉 하나님의 창조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미국인역」과 「모」의 번역을 지적할수 있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기원』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하나님의 창조』라는 이 표현에 주의하십시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을 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라고 말씀하셨지, 마치 자기에 의하여 창조된 사물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시듯이 『나에 의한 창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다른 누구인가에 의하여 창조된 사업 즉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44, 45. (ㄱ) 희랍어 『하나님』이라는 날말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 주격 혹은 속격에 속합니까? (ㄴ) 문법가들에 의하면, 소위 주어 속격은 무엇을 표시합니까?

44 희랍어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데우」-Theoũ)라는 낱말은 속격에 속하는 것입니다. 현재 영어에 있어서와 같이 희랍어에 있어서도 속격은 속격에 있는 낱말이 수식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갖게 되는 여러가지 다른 연관이나 관계를 의미할 수 있읍니다.

45 「에이 · 티 로버트슨」 박사에 의하면,이것은 소유 속격, 속성 속격, 주어 속격, 목적 속격과 같은 여러가지 속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희랍어 문법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근원 혹은 창시자의 소격을 설명합니다. 『주어 속격. 속격에 있는 명사가 행동을 일으킬 때 주어 속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명사를 수식하는 동사의 사상에 대하여 주체로서의 관련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 . .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로마 16:25』 (영문 성경 참조) 다른 희랍어 문법은 주어 속격의 뜻을 설명하여 말합니다. 『행동 혹은 감정의 주체: . . . 사람들의 선의 (즉 사람들이 느끼는 것).』

46. (ㄱ) 계시록3:14 의 『하나님』이란 날말은 어떤 속격에 속할 수 있읍니까? (ㄴ) 희랍어 「칠십인역」의 잠언 8:22에 있는 『시초』라는 말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46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라는 표현은 하나님에 의하여 소유된 창조 혹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창조를 의미할 수 있읍니다. 또는 이것이 문법적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생산된 창조를 의미할 수도 있읍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이 희랍어에 있어서 어느 종류의 속격인가를 그의 기록으로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성서의 희랍어 성서를 만든 자들은 계시록3:14에 인용된 즉 빌려온 희랍어는 잠언 8:22로부터라고 동의합니다. 「희랍어 칠십인역」으로부터 번역한 「촬스 돔슨」은 잠언 8:22을 『주께서 나를 창조하셨다. 그의 길들의 시초였다』라고 기록하였읍니다. 여기 『시초』(희랍어: 칠십인역 「아케」-arkhé)라는 말은 시작한 분, 기원 혹은 기원자를 뜻하지 않읍니다. 이것은 명백히 창조되어야 할 하나님의 길들의 처음 분 혹은 기원이 되는 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 사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에 관한 계시록 3:14에 옮겨 씨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란 낱말은 주어 속격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47. (ㄱ) 말씀의 생명에 언제 방해가 있었읍니까? (ㄴ)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가 되셨읍니까?

47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였읍니다. 그런데 이 생명에 방해가 있었읍니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하여 삼일동안 죽어 계셨을 때였읍니다. 그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생명으로 회복되어 영원히 불멸성을 가지고 살게 되셨읍니다. 부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창조 즉 하나님에 의한 창조가 되셨읍니다. 그러나 모든 창조의 바로 시초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 즉 하나님에 의하여 생산된 피조물이었읍니다. 『시초에』 하늘에서 말씀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 즉 『하나님의 창조의 으뜸』 (「영」씨역)이셨읍니다. 대행자이신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요한 1:3에 기록된 대로 다른 모든 것들을 만드셨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기원 혹은 기원자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인자」 였읍니다.

48. (ㄱ) 「신 세계 역」이 계시록 3:14을 올바로 번역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요한」의 기록은 모든 창조가 누구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말합니까?

48 「신 세계역」은 계시록 3:14을 다음과 같이 올바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시초.』 「요한」은 그의 모든 기록에 있어서 창조주라는 「크티스테스」(ktistes)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지 않고, 모든 창조를 천적 보좌에 앉아 계시는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호 온-ho ōn) 장차 오실 자』에게로 돌립니다. 그분께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 주여 당신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의 기뻐하시는 대로 그들이 있으며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4:8-11; 10:5, 6, 흠정) 말씀은 하나님의 처음 천적 창조이셨읍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49. 사도 「도마」는 어떻게 해서 예수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게 되었읍니까?

49 삼위일체의 선생들은 요한 20:28의 사도 「도마」의 말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이 증명된다고 주장 할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께서 육체로 자기 앞에 나타나 그의 손가락으로 그가 형주에 못 박힌 자욱을 만저보기 전에는, 그리고 그의 손으로 「로마」군병들이 예수의 죽음을 다짐하기 위하여 창으로 찌른 예수의 옆구리를 만저보기 전에는, 예수께서 부활되신 것을 믿지 않겠다고 사도들에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음 주일에 에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를 확신케 하시기 위하여 「도마」에게 말한 대로해 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도마」는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흠정) 희랍어 원본에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다음과 같읍니다.『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50. 희랍어 교수 「믈」씨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사용된 정관사 더(the)가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으로 불리웠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합니까?

50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도마」가 예수께 말한 『하나님』(the God)이란 표현은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이었으며 삼위의 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씨 · 에프 · 디 · 믈」 교수는 하나님이란 명사 앞의 관사 더(the)가 그러한 것을 의미하리 만큼 중요하지 않는 수도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이 사실은 제외하고라도 그곳으로 돌아가서 사도 「도마」가 무엇을 뜻하였는가를 확실케 하기 위하여 그 상태를 고려해 봅시다.

51.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에 「도마」는 예수로부터 어떠한 소식을 받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도마」는 예수와 그의 숭배에 관하여 무엇을 알고 있었읍니까?

51 이주일도 채 되기 이전에 「도마」는 예수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께 『영생은 곧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하고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읍니다. (요한 17:3) 그 기도를 하신지 나흘 즉 부활되신 날에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특별한 소식을 전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한 20:17, 18) 그러므로 예수의 기도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한 이 소식으로 「도마」는 그 자신의 하나님이 누구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셨읍니다.또한 그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셨읍니다. 그리하여 「도마」는 예수께서 숭배하신 하나님 즉 하늘의 아버지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52. 우리는 「도마」가 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를 왜 잘못 알아서는 안될 것입니까?

52 그렇다면 부활되신 예수를 처음 뵙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던 「도마」가 어떻게 예수 자신께 그가 유일하시고 살아계시며 이름이 여호와라는 참 하나님이라고 감탄하여 소리지를 수 있었겠읍니까? 「도마」는 그가 말한 것으로써 예수 자신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었다거나 예수께서 삼위일체의 둘째 위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의미할 수 있었겠읍니까? 「도마」가 예수로부터 들었으며 예수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았었다는 점을 비추어 볼때 그가 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란 말이 어찌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읍니까?

53. 예수께서는 「도마」가 말한 것에 대하여 왜 꾸중하시지 않으셨읍니까?

53 만일, 예수께서 몸소 『나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고 불러오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도마」의 한 말의 의미라고 예수께서 이해하셨다면 「도마」를 꾸중하셨을 것입니다. 진정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칭호를 빼앗고자 하시지도 않으셨으며 그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유일한 위치를 빼앗고자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도마」가 잘못 말한 것으로 여기시지 않으셨으며 그를 꾸중하시지 않은 이상 「도마」의 말을 성서적으로 이해하시는 방법을 알고 계셨읍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그와 같이 이해하였었읍니다.

54. 「요한」의 기록한 요한 1:1은 이상의 점과 관련하여 무엇을 하기에 매우 훌륭한 곳이 될 수 있었읍니까?

54 「요한」은 그곳에 있었으며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친 것을 들었읍니다. 「요한」은 우리가 「도마」의 말로부터 예수께서 하나님이었으며 그의 이름이 여호와라 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었음을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읍니까? (시 35:23, 24) 육신이 되신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셨다면 그리고 그가 『아들 하나님』 『축복된 삼위일체의 둘째 위』였다면 「요한」이 말하며 설명하기에 적으나 좋은 곳은 여기 요한 1:1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달한 결론이 그것이었읍니까? 우리가 달하기를 원하는 바 결론을 「요한」으로부터 들어봅시다.

55, 56. (ㄱ) 「요한」은 우리로 믿게하려고 그의 기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떤 일들을 기록하였읍니까? (ㄴ) 그리하여 우리는 「요한」을 따라 이점에 관하여 어떠한 결론에 달합니까?

5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 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우리가 무엇을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요?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20:29-31.

56 「요한」은 예수에 관한 그의 필생의 기록 가운데서 우리를 설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려는 일들이나 예수께서 『아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일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일들을 기록하였읍니다.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계획적으로 뒤틀어 『아들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이 말한 그대로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요한」을 따라 동일한 결론 즉 예수께서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 분의 아들이라는데 달합니다. 이것은 같은 이 요한복음 이십장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도마」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하나이며 동시에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에 있는 동등된 분들로 숭배하지 않았읍니다.

57. (ㄱ) 예수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도마」는 예수의 아버지를 무엇으로 인정한 것입니까? (ㄴ) 계시록 4장과 5장은 요한 14:28의 뜻에 관하여 무엇을 예시합니까?

57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숭배하신 같은 하나님 즉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숭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다면 그는 예수의 아버지를 한 하나님의 하나님(the Cod of a God)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높으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예수께서 몸소 숭배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시록 4:1-11은 이 하나님을 하늘의 보좌에 앉아계시며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라고 상징적 묘사를 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5:1-8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도마」와 다른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신 에수의 말씀의 뜻을 설명해 줍니다. 『나는 아버지에게로 감이니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 14:28) 이처럼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를 동등된 자가 없으며 그의 아들보다 더 크신 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셨읍니다.

[각주]

a 또한 미표, 「듀웨이」, 개역 표준, 「람사」, 단체역 계시록 3:14을 참조.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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