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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리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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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9/1 323-326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리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이러한 말로써 사도 「바울」이 자기 예언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오늘날 성취되고 있읍니다.—디모데 후 3:1, 2.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어째 나쁜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면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읍니까?—레위 19:18.

그렇습니다, 행복하기 위하여는 자기를 사랑하여야 하며 하나님 자신이 『복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행복하게 되기를 목적하셨읍니다. 경건의 명칭 하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지하지 않읍니다. 말씀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디모데 전 1:11; 골로새 2:23.

그러나, 자기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균형잡혀 있을 때야만 비로서 건전하고 빛난 것이 됩니다. 「바울」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한 것은 그들이 남을 도무지 사랑치 않고 자기만 사랑하는 것을 말한 것이 확실합니다. 사람들이 『무정하며』라고 한 말로써도 암시되고 있읍니다.—디모데 후 3:3.

「아담」 이래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여 왔읍니다. 이 점에서 그는 처음으로 범죄한 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 자기 범죄한 것을 아내의 탓으로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라고 부르며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였읍니다. 물론 「하와」도 불평할 수 있었읍니다. 여자도 「자기를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창세 3:1-12.

비록 「아담」이래 인류의 대부분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로서 도장 찍혀왔지만 오늘날은 특히 이전보다도 더욱 극단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를 경계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정치나, 상업이나, 세상적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 중의 여러 사람들은 권력이나 부귀, 명예 등을 열심히 구하는 것으로써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무심 중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기적 성품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생각이나 계획이나 행동 전부가 자기 자신과 자아(自我)만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는 모략자이며 독재적이고 무정하며 남의 권세에 복종할줄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자기에게 유익될 때에만 동무를 사용하되 무용하게 되면 버림으로써 그들은 애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무대와 「스크린」에 서는 영화 배우들과 가극 배우들은 자기 원하는 가격을 정하여 수 많은 변덕스러운 요구를 함으로써 자기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무심 중에 나타냅니다. 어떤 불행한 『배우』의 행동이 이의 전형적인 본입니다. 그 여배우는 『남에게 도무지 무관심』 함으로써 보통 직장에 한시간 내지 24시간씩 지각하였다 하며 따라서, 그의 이기적 행동으로 인하여 한 영화를 제작하는데 백만불 이상의 비용이 낭비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살아있는 『배우』 중에는 이보다 더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들의 변덕스럽고 멍청하니 쏘다니기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는데 수백만불의 돈을 낭비하게 되고 있읍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형태 중 특별히 심한 것은 자기의 육체를 사랑하는 것인데 자기 연애 (나-시써스)라고 불리웁니다. 이것은 『「나-시써스」의 이름을 좇아 부른 것인데 그는 희랍 「로마」 신화의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며 자기 형상을 연애하고 짝사랑을 하다 죽어서 「나-시서스」라는 꽃으로 변하였다 한다.』(웹스터 사진) 다른 건전치 못한 주제와 더불어 이것은 근대 영화의 경향을 이루고 있는것 같읍니다. 즉 한 배우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입을 맞추었읍니다. 또 한 배우는 거울을 들여다 보며 『나는 그대를 믿노라.』고 노래합니다. 한 여배우는 삼면경에 비친 자기 모습을 감탄하여 『나는 어여쁘다.』는 노래를 합니다. 자기 육체미를 헛되게 자만하는 것은 자기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아버지인 「다윗」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권을 탈취하고자 「압살롬」이 공모한 것도 아마 자기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 때문에 머리와 마음까지 돌아서게 되었을 것입니다.—사무엘 하 14:25; 15:4.

얼마 전에 한 젊은 남편은 말하기를 자기의 아름답고 충실한 젊은 부인에게 애정을 도무지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위선자와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 일이 있읍니다. 그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에 부인의 성질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님의 그렇게 하라는 계명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도무지 정을 쏟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에베소 5:25.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심한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가 이런 경향을 대적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집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에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은데서, 아내가 늘 남편으로 자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는데서, 단순히 게으른데서, 불편이나 괴로움을 참지 않는데서, 늦으면 몹시 안달을 부리는데서 저절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결혼불안이나 파혼의 일대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읍니다. 쓸데 없이 자기 건강이나 음식조섭등에 정신 팔리는 것도 자기 사랑의 한 표현인 것입니다.

자기 사랑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까지 방해할 수 있읍니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자기 봉사의 조건이나 목표에 달하느라고 가족을 돕지 않거나 약한자를 돕는 일을 수수방관 하는 수가 있읍니다. 또 조심하지 않는다면 전시간 봉사자는 자기 중심이 되어 부가된 특권으로 인하여 마치 영적인 높은 신분을 얻은양 강요하는 자가 될 수 있읍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 하고 질문 받으셨을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시고 역시 중요한 둘째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오늘날의 위기에 있어서 이 두 계명으로 당신을 보호하게 하십시오.—마가 12: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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