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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적 조화—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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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적 조화—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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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7/1 246-253면

내적 조화—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로마 3:4.

1.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종교와 성경을 거의 존경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관하여 약간 알거나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것은 흔히 그들이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 신앙 가운데서 자라나지 못한 탓입니다. 대신 그들은 그들 고유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경전들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침을 받아왔읍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종교와 그 경전인 성경에 관한 그들의 지식과 판단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행실을 보고 알게 되는 바에 근거를 두게 되는 법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칭 기독교국이든지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보는 그리스도인 사회이든지 상관 없읍니다. 기독교국이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가를 볼 때, 그들이 얼마나 호전적인가를 볼 때, 상업과 도덕 문제에 있어서의 습관과 원칙을 볼 때, 그들이 그리스도인 종교를 거의 존경하지 않으며 그 종교 서적인 성경에 관하여 빈약한 의견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성경이 비난을 받으며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가요?

2. 기독교국의 많은 사람들은 어느 모로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정당합니까?

2 기독교국 내의 많은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활동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국이 준 나쁜 인상을 억지로 시인하곤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사회에 속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큰 이점을 의식하면서 성경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무식에 대하여 구슬피 머리를 흔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서 그것을 존경합니다.』 하고 그들은 말합니다. 본 잡지는 그들의 성실함을 믿어 의심치 않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의견에 관하여 한 두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 적절하고도 가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 (ㄱ)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러한 견해와 관련하여 분명한 약점은 무엇입니까?

3 그러한 사람들이, 무조건, 하나님께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의 성경의 참 경전을 형성하는 육십육권에 기록된 온갖 것에 대하여 사실상 저자이시며 온전히 책임을 지고 계신다는 것을 정말 받아들입니까? 사실상 그 정도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혹은 그 정도의 근처도 못갈 것입니다. 일반적인 경향을 따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른바 구약과 신약을 구별하며 그들의 믿음을 거의 전체적으로 후자에 둔다고 하지만, 그것을 거의 사용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전자를 덜 신뢰하며, 그것을 역사적 그리고 문학적 가치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주일 학교에 참석하며 자란 많은 사람들은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라든가 기타 옛날에 일어난 사건들이며 기적에 관한 성경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그들이 자랄 때 어떻게 됩니까? 여전히 일반적인 경향에 따라 그러한 일들을 그들이 어렸을 때와 동일하게 옛날 이야기 종류로 구분하여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른바 신약에 있는, 「히브리」어 성서로부터의 그 허다한 인용문들이 항상 의심할바없이 참되며 권위가 있는 것으로 주어졌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 당시에 존재하였던 유일한 성경 부분인) 그러한 기록들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그들이 신약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요한 17:17.

4.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영감을 어떻게 봅니까?

4 이것은 성경의 영감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일으킵니다. 기독교국 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에 관한 한 성경을 최고의 책, 좋은 책으로 보며 정말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가장 존경을 가지고 취급해야 할 책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영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단지 서인들과 음악가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같은 면에서. 그들은 말하자면 「이사야」나 「다윗」과 같은 성경 필자들을 한 천재적인 시인과도 같이 어떤 장엄한 주제에 완전히 잠겨 이끌려가서 그의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며 분기시켜, 사람들이 말하듯이, 자신을 초월하여 영감을 받아 비범하고 불멸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5. 영감에 대한 성경 자체의 주장은 성경 필자들 및 그들의 작품에 관한 일반 견해와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5 이것은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비록 합본되어 있기는 하지만, 성경을 단 한분 거룩한 저자의 인도 하에 즉 그의 성령의 영감 혹은 보이지 않는 활동력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단일 작품이라고 보지않고, 도리어 헌신적인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책들의 수집으로 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바는 후자의 견해로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말합니다. (디모데 후 3:16; 베드로 후 1:21) 그러나 기독교국의 극히 소수인만이 그러한 주장에 동의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구약 필자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는 그때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났다고 조급히 덧붙여 말합니다. 그들은 시대가 예수와 사도들 당시로부터 오래 되었다고 말은 하지 않으나, 성경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취급은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현세의 난관의 현대적 인도자로 생각하지 않으며, 보다도 도덕적인 교훈이 쓸만하며 적당히 인용하기 위한 놀라운 자료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6. 어느 모로 많은 사람들은 거짓된 위치에 처하게 되며 이것은 어떻게 실증 됩니까?

6 그리하여, 비록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부로 말할지는 모르나, 현실에 있어서 이러한 성경의 친구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거짓된 위치에 처하여 있으며 실상 자기 모순 당착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로마 가톨릭」 출판물로부터의 다음 인용문에서도 잘 실증된 바입니다.a 『「가톨릭」신자들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읍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 . . 성경을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여 최고의 경의와 존경을 품고 있으며, 특이한 가치의 보물로 생각한다.』 당신은 보다 더 확신있는 표현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그러나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다음 문장은 이러합니다. 『그러나 그들(「가톨릭」신자들은)은 성경이 신앙의 유일하며 충분한 규칙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을 충분히 철저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그 교리의 표현이 항상 명백하지 않으며 따라서 권위있는 해석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성경에 대한 확신을 침식당한 당신은 다음으로 「가톨릭」교회 당국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영원히 보존하도록 거룩히 준비된 수단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온전하고 최후적인 권위를 가진 자로서 우리의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가톨릭」교회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7. 어떠한 침식하는 영향력이 기독교국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읍니까?

7 우리가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까지 토론하여왔기 때문에, 우리의 많은 독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그 많은 자들의 참다운 위치를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믿음이 없으며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공개적으로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자나 공공연한 무신론자들보다도 더 성경에 해와 비난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침식하는 영향력이야 말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우리 시대의 모든 무서운 난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구제책인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경 소식에 관심을 일으키려고 힘쓸 때, 흔히 만나게 되는 냉담함의 중요한 한 원인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냉담함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유일한 기초이자 근거 즉 하나님의 참되고 의로운 말씀인 성경에 대한 참다운 확신의 결핍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8.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라는 것이 어떻게 잘 실증되며, 그것은 어떤 면들을 포함합니까?

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거룩한 영감을 받았다는 실질적으로 입증되는 어떤 계통의 증거를 시험해 보도록 제안합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거룩한 저작권을 어쩔 수 없이 지적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에 관한 주요 계통 중의 하나는 수백 가지의 성경 예언들이 이미 성취되어 왔으며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디모데 후 3:1) 라고 한 지금 우리의 바로 눈 앞에서 성취되어가고 있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이 분야의 연구에 있어서 뚜렷한 일은 여호와께서 자기와 조화하는 그의 백성에 관하여 뿐아니라 그와 조화하지 않는 자들에 관하여도 그렇게 많은 일들을 예견하셨고 예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계 열국의 행진과 그들의 흥망에 관하여 말하는 예언들을 포함합니다.b 이에 부가하여, 여호와께서는 탄압하거나 심지어는 자기의 원수들의 자유 의사를 방해하시지도 않고 이러한 예언들을 성취하도록 해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더하여 놀랍도록 정확한 여러 가지 시간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9. 다른 어떤 계통의 증거를 고려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로 어떤 도전을 받게 합니까?

9 이러한 일들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적 연구를 형성하며 재삼 재사 본 지면에서 다룬 주요 기사의 제목이 되어왔고, 그것이 여호와의 뜻일진데, 앞으로도 그와 같이 계속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현재 본 토론에서는 우리가 주관적인 증거 즉 성경 자체의 내용에서 발견되는 바를 살피는 것이 목적입니다. 큰 문제는 이러한 것입니다. 즉 성경이란 실제적으로 인간 영감의 영향하에 기록된 인간 저서의 장서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 이론이 조리가 있으며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입니까? 혹은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때, 그러한 이론이 절대적으로 부조리해서 야간 경비원의 활활타는 석탄으로 가득찬 화로처럼, 물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까? 바꾸어 말하면, 성서 전체에 걸치어 내적 조화 즉 조화와 사물의 개념이 어찌나 강력해서 인간에다 그 기원을 둘 수 없든지, 비록 헌신적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인간에게 이러한 기록의 명예를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증명될 수 있읍니까?

10. (ㄱ) 성경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어떤 중요한 세가지 요소가 있읍니까? (ㄴ) 성경 필자들이 공모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10 우리가 첫 계통의 증거를 고려하기 전에 성서에 관한 세가지 주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싶읍니다. 첫째로, 시간요소. 최초의 영감 받은 필자 「모세」는 주전 1513년보다 더 늦게 기록하기 시작하지 않았으며, 최후의 필자인 「요한」은 주후 98년 경에 성경 경전을 완성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기록하는데 약 1,600년이 요하였읍니다.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둘째로, 성경 육십육권의 장서를 기록하는데 사용된 사람들은 삼십오명 이상이었는데 모두 「히브리」인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세째로, 그들이 많은 부분 특히 예언을 기록하였을 때 고도로 표상적이며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하였으며, 흔히 필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한 경우에서 말한바와 같읍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그래서 질문을 하자 이러한 답을 얻었읍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이러한 세가지 요소 즉 삼십오명이 흔히 표상적인 언어로 쓴 그들의 기록을 완성하는데 약 1,600년 걸렸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물론 그것은 그러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꼭 맞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들의 머리를 맞대고 의론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공모란 있을 수 없었으며, 그보다도 오히려, 우리가 알게 되겠지만, 특히 그들이 모두 동일한 관점에서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충돌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다니엘 12:8, 9; (베드로 전 1:10-12을 또한 참조 할것)

최초의 예언—어떻게 살아있도록 보존되었는가

11. (ㄱ) 성경 예언을 어느 모로 살피도록 제안하고 있읍니까? (ㄴ) 최초의 예언의 환경과 문구를 말씀하십시오.

11 우리가 살피고 싶은 첫 계통의 증거는 예언 특히 최초의 예언이 성경 전체에 걸치어 살아있도록 보존된 방법과 관련이 있읍니다. 성경 필자들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된 그들의 주제와 사물의 개념을 유지한 방법 만큼 예언 성취를 살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최초의 예언은 짧은 것이며 문구 자체로 보아 관건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어떤 보이지 않는 자의 대언자로서 사용된 뱀의 선동으로 「에덴」에서 고의적으로 불순종하였을 무렵, 뒤이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셨을 때 주어졌읍니다. 바로 뱀에게 심판을 선고하신 다음,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 3:15.

12. 그 예언에는 어떠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어떻게 함으로써만 그것이 살아있도록 보존될 수 있읍니까?

12 그 예언에서는 네가지 인물을 말하였읍니다. 즉 (1) 뱀, (2) 그 후손, (3) 여자의 (4)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언제 성취된다거나 결국 누가 그 네 인물에 부합된 자로 식별될 것이라든가에 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읍니다. 이제, 만일 성서가 인간 저작물에 불과하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최초의 예언을 살아 있도록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뒤 따르는 성경 필자들이 그 예언 전체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나타낼 때까지 그것을 되풀이하고 그것을 확장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이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결론만이 논리적이라고 확실히 동의합니다.

13. 그러한 이론을 시험할 때, 어떠한 결과를 볼 수 있읍니까? (ㄴ) 계시록 십이장은 어떤 면에 있어서 창세기 3:15의 예언과 연결됩니까?

13 매우 좋읍니다. 그 이론을 시험해 보기로 합시다. 「모세」의 남어지 기록에서나 혹은 다음 성경 필자 중 어디에서 그 네 인물을 말하는 다른 예언이 발견됩니까? 「히브리」성서 전체를 뒤져도 당신은 그러한 예언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 희랍어 성서를 처음부터 찾아 보십시오. 역시 당신은 거기에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최후의 서적인 계시록에 와서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 십이장에서 우리는 약 천육백년 이전에 주어진 최초의 예언과 명백히 연결되어 있는 한 예언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제 자라서 정말 『큰 붉은 용』이 된 뱀에 관하여 읽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나중에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한다는 것을 입증하였읍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뱀의 후손도 언급되었읍니다. 거기에서 또한 가장 생생하게 묘사된 것이 「에덴」의 예언의 여자입니다. 보십시오! 그 여인이 약속된 후손을 낳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읍니다. 부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뱀을 상하게 하는 일도 그의 천사들이 그와 함께 난폭하게 『땅으로 내어 쫓기』는 데서 묘사되어 있읍니다. 마침내 마지막 성귀(17절)에서 제 이차적으로 여자의 후손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뱀의(혹은 용의) 결정적인 노력에 대하여 말합니다.—계시 12:1-13, 5, 9, 17.

14. 「요한」이 스스로 최초의 예언의 신비를 명백하게 하고자 시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14 이제 우리의 주의를 다른 뚜렷한 일에 돌리도록 합시다. 비록 이 환상이 「에덴」에서 주어진 예언과 밀접하게 부합되기는 하지만, 그 환상을 기록한 「요한」이,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심사 숙고하여 나타내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없읍니다. 이 책의 남어지 부분과도 같이 이 환상은 고도로 상징적인 언어로 되어 있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이것은 서언에서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계시인데, 그가 『일을 . . . 그 종 「요한」에게 . . . 지시하신 것이라.』(계시 1:1) 만일 우리가 성경을 인간이 저작했다는 이론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인다면, 「요한」이 자신에게 『오! 최초의 예언이 한번도 명백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에 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그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랬다면, 어떤 암시도 이보다 더 터무니 없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5. 어떤 면에 있어서 성서는 탐정 소설에 비길 수 있읍니까?

15 성경은 어떤 면에 있어서 탐정 소설에 잘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은 아마 그러한 문학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보통은 어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른 큰 문제가 처음에 제출됩니다. 다음으로 당신이 읽어감에 따라 당신의 정신은 참과 거짓의 온갖 실마리에 예민해집니다. 결론에 가서 문제는 해결되며, 탐정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당신은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며 저자가 이야기 줄거리의 진전에 따라 주의 깊이 묻었으며 기술적으로 감춘 모든 실마리를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전체의 짜임새와, 해결을 마지막까지 그다지도 잘 숨긴 저자의 재간에 감탄하게 됩니다.

16. 그러한 예는 성경과 관련하여 어떻게 사용될 수 있으며,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16 우리가 토론하여온 바로 이 제목과 관련하여 성경을 꼭 같은 방법으로 해볼 수 있읍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성경 전체에 걸치어 묻어 놓은 얼마 간의 실마리를 집어낼 수 있으며, 그것은 그러한 모든 거룩한 기록들의 배후에 유일한 지휘자가 계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일점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증명하게 됩니다. 우리가 한번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몇가지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증거를 세밀하게 연구하면 할수록, 거저 보아서는 알 수 없게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저자께서 최초의 예언이 살아있도록 보존하신 재치있는 방법에 더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처음 예언을 위한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결정적인 결과에 더욱 감탄하여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와 사의를 나타내게 됩니다.

인물들을 식별함

17. (ㄱ) 여자의 후손으로 입증된 분은 누구입니까? (ㄴ) 어떤 면에 있어서 이분은 더욱 입증되며,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17 처음 예언의 네 인물 중에서 가장 주의를 많이 받아온 것은 여자의 후손이었읍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성서 자체가 이에 가장 우위를 주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가 그 약속된 후손이 정말 누구인가를 배울 때 그러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약속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에덴」의 예언에서 예언된 후손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씨이며, 그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하신 분입니다. 그는 또한 「다윗」의 가계를 통하여 오셔서 그의 보좌를 상속하실 뿐 아니라 심지어 보다 큰 보좌, 천적인 보좌를 상속할 것으로 예언된 분입니다. 예수의 실제적인 족보는 누가복음의 필자로 말미암아 「아담」에게까지 쭉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족보는 「유다」를 통하였으며 그로부터 나올 『홀 (왕국 통치)이 . . .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라는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읍니다. 계통이 보전되었으며, 초림의 예수의 임하심까지 더듬을 수 있으며, 계시록 십이장에서 표시하듯이, 우리를 「에덴」의 예언의 주요 성취를 위하여 그의 재림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황홀한 한 연구의 대상을 형성합니다. 이것은 또한 그 영광스러운 결과 즉 하늘과 땅의 모든 악을 멸절해 버리시는 것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왕국 통치의 확실성에 대하여 확신을 세워줍니다.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은 온전히 순종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을 축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심지어 『다시 사망이 없』게 될 것입니다.—창세 22:18; 49:10; 누가 3:23-38; 사도 2:34-36; 갈라디아 3:16; 계시 21:1-4.

18. 누가 언제 처음으로 뱀과 그의 씨의 신분을 밝혔읍니까? (ㄴ) 그 때 어떤 중요한 원칙이 발표되었으며 적용되었읍니까?

18 다음의 두 인물은 뱀과 그의 후손인데,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심판을 선고하신지 사천년 이상이 지날때까지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읍니다. 의혹 중에 비밀을 간직하기에는 긴 시간입니다. 그것을 폭로한 분은 바로 예수 자신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뱀을 대언자로 사용한 자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뱀의 후손에 관한 신분을 올바로 맞췄겠읍니까? 예수께서 이것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러나 짐작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몹시 중요한 원칙을 나타내심으로써 입니다. 사람들은 가족 혹은 백성이라고 하면, 그들이 실제로 탄생되어 후손이 됨으로 속하게 되는 가족 혹은 백성을 늘 생각합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을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비난하였을 때,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 하였읍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읍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 . . 죽이려 하는도다.』 토론을 그 논리적인 결론으로 이끄시며 심적 태도가 첫 요소임을 표시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 (「에덴」에서) 부터 살인한 자요.』—요한 8:33-44.

19. 이 원칙에 따라 성경은 어떻게 우리를 더 도와 뱀의 씨를 찾아내며 식별하게 합니까?

19 이 지식 즉 실마리를 가지고 이제 「히브리」 성서로 돌아가서, 마귀가 처음부터 어떻게 자기의 씨 즉 그들의 마음에 살인자의 영을 가진자들 즉 그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는 자들을 발전시켜 왔는가를 볼 수 있읍니다. 지상에 있었던 최초의 씨는 『악한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인 『가인』이었읍니다. 그 발전은 예수 당시의 바로 종교 지도자들까지 계속되었으며, 다시 우리 시대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살인적인 적의로 불타는 동일한 영이 동일한 반열의 인간들로 말미암아 『왕국의 기쁜 소식』을 순종적으로 전파하는 예수의 그러한 추종자들에게 대하여 흔히 표시되고 있읍니다. 우리는 또한 「사단」 악마가 자기 조직을 건설하였으며 하늘의 천사들 중에서 그의 불순종의 본을 따르는 씨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폭로하는 바와 같읍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이자들이 바로 계시록 12:9에서 언급된 자들이며, 이들은 하늘 전쟁에 이어 그들의 지도자와 함께 땅으로 내어 쫓긴 자들입니다.—요한 1서 3:12; 마태 24:9, 14; 요한 16:2; 베드로 후 2:4.

20. 이 원칙으로써 어떤 중요한 교훈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까?

20 여기에서 교훈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위하여 잠간 멈추도록 합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우연한 탄생에 달려 있거나 어떤 지적 조직에 가담하는데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종교에 속하여 있다고 주장해도 매일반입니다. 예수께서는 간단한 규칙을 말씀하셨읍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을 때 이와 일치하여 명령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한 14:21; 요한 1서 3:10.

「에덴」의 예언 중의 여자

21. 우리는 창세기 3:15의 『여자』를 자연히 누구로 생각하게 되며, 이것은 어떻게 입증됩니까?

21 원래의 예언 중에는 토론하여야 할 다른 한 인물이 있읍니다. 즉 약속의 씨의 어머니인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누구입니까? 혹 어떤 미지의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 문제가 일어났을때 「프랑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쉐쉐 라 팜- 그 여자를 찾아라.』 (Cherchez la femme) 인간적으로 말하여, 이는 입증하는데 가장 호기심을 이끄는 인물입니다. 분명한 실마리라곤 없읍니다. 사실상, 심판이 선언되었을 때 지적 장면의 그림에는 여자라곤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와」였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 합당치 않게도 「하와」가 여자란 자기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명백히 생각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와」가 첫 아들 「가인」을 났을 때 한 말로 암시되어 있읍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읍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러한 거룩한 목적을 위한 가치있는 수단으로 기뻐 사용하실 거룩한 여자를 다른 방면에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창세 4:1.

22. 그 여자를 입증하는데 있어서 (ㄱ) 계시록 12:1 (ㄴ) 계시록 12:5과 (ㄷ) 계시록 12:17에서는 어떻게 인도하고 있읍니까?

22 다시 계시록 십이장으로 돌아와서, 이름은 비록 없으나 정말 다른 방면에서 우리의 주의를 이끄는 이 여자에 관한 한가지 묘사를 볼 수 있읍니다. 그 장의 첫째 절에서까지도 그 여자가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즉시 인류의 어떤 지적 여자라는 생각 위로 올리워갑니다. 인간 아기 예수의 어머니었던 「마리아」도 아니라는 점에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오절은 그 약속의 씨의 즉위하시는 때로써 실제 탄생의 때를 암시합니다. 이 점에 관하여 본 잡지는 거듭 본 지면을 통하여 증명해 왔으며, 그것은 1914년(주후)에 하늘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부가적으로, 이 장의 십칠절은 이 여자가 또한 『남은 자손』 즉 악마와 그의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쫓겨내려 온 후에도 땅에 있는 참 교회의 남은 자의 어머니라는 것을 표시합니다. 이 『남은 자손』의 신분은 「바울」이 참 교회의 성원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설명하였을 때 확증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갈라디아 3:29.

23. 갈라디아 4:21-31의 「바울」의 비유와 유추법은 어떻게 우리를 도우며, 어떠한 결론에 이르도록 인도합니까?

23 이러한 참 그리스도인들이 어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읍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실마리가 있는 것입니다. 서한에서 이상의 말을 한 직후에 「바울」은 두 여자와 두 언약과 두 성읍이 포함되어 있는 『비유』를 계속 설명합니다. 당신은 아마, 이야기 줄거리가 점점 복잡해지는걸! 하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가 일단 「바울」의 유추법(類推法)을 파악한다면 우리의 문제를 잘 해결해가고 있는 것이 됩니다. 첫째로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어머니인 계집 종 「하갈」을 말합니다. 「하갈」은 육적 「이스라엘」과 맺어졌으며 「시내」산에서 유효하게 된 율법 언약과 부합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그 구속력 있는 용어로 『종을 낳은 자』가 되었읍니다. 「바울」은 「시내」산이 그 당시의 「예루살렘」 성읍과 같으며, 『그 자녀(「유대」인들)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라고 말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여자인 『자유하는 여자』는 「사라」이며 「이삭」의 어머니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언약과 같으며, 그것은 그 머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참 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을 생산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로서 오순절에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씨의 한 성원으로서 편지하고 있었던 「바울」은 그의 동료 성원들에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사라」와 같이)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말합니다.—갈라디아 3:16-18, 26-29; 4:21-31; 창세 22:18.

24. 한 여자가 예언에서 어떤 성읍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24 당신은 「바울」이 그 두 여자를 두 성읍에 연결한 점에 유의 하셨읍니까? 이 점은 중요합니다. 예언에 있어서 한 여자가 어떤 성읍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점이 상징한 바는 지적 혹은 천적인 한 피조물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조직을 표시합니다. 왜냐 하면, 한 성읍은 한 면밀하게 조직된 마련하에 함께 사는 한 백성의 적절한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혹은 「시온」의 경우와 같은 수도일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곳은 정부와 참 숭배의 국가적 중심지였으며, 보좌를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에 성전이 위치하고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실체에 있어서 여호와의 신권적인 우주 조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 조직이 또한 「에덴」의 예언 중 『여자』로서 상징되었던 것입니다.—히브리 12:22.

25. 「사단」의 조직과 관련하여 어떠한 같은 점을 볼 수 있읍니까?

25 부수적으로, 이상의 말을 강력하게 확증하여 성경은 한 여자가 어떤 성읍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또한 「사단」의 조직을 표상하는데 사용하였읍니다. 『큰 음녀』로 묘사되었으며, 『큰 「바벨론」』이라고 부르는 한 여자에 관하여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읍니다. 「요한」은 환상 중에서 확정적으로 말하였읍니다.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 . . 큰 성[바벨론]이라.』(계시 17:1, 18) 그러나 창세기 3:15은 뱀을 위하여는 어떤 여자도 말하지 않읍니다.

26, 27. (ㄱ) 더 나아가서 「이사야」의 예언에서 어떠한 도움이 되는 말을 볼 수 있읍니까? (ㄴ) 거기에는 어떠한 중요한 지식이 있으며, 그것은 어떠한 그림을 완성시킵니까?

26 비록 많은 참조 혹은 실마리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서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히브리」어 성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읍니다. 이의 증거로서, 우리는 「바울」이 앞서 『비유』를 설명한 다음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이를 지지하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그것은 「바울」시대 보다 약 800년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4:27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 . .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그는 이사야 54:1에서 인용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 내용을 보고 「이사야」가 「시온」이 어떻게 자유하게 되며 여호와의 은총으로 회복되는가를 말한 다음에, 그 성읍을 잉태치 못한 여자에게 비겼지만 크게 즐거워하라고 말하는 까닭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그 여자는 많은 아들들을 낳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즉 그 많은 아들들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언자는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 . .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 . . 아내 . . . 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그리고 예언자는 다시 연결하여 『곤고[한] . . . (여)자』를 『기초』와 『지경』이 『화려한 . . . 청옥』으로 놓인 한 성읍에 비깁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웅대한 약속으로 그 절정에 달합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이사야 52:1; 54:1-6, 11-13; 영문 참조.

27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심적 환상 앞에 「에덴」에서 선포된 예언이 그려낸 완전하고 훌륭한 한 폭의 그림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거기에는 네 등장인물과 이에 부가하여 거룩한 여호와께서 몸소 계시며, 그는 그 여자 즉 약속된 씨의 어머니와 관련된 남편의 구실을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28. 성서가 인간 저서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대하여 이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는 기독교국의 비평가들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읍니까?

28 「아사야」가 그와 같이 기록하여 그 여자 즉 성읍의 『남편』을 이름하였을 때, 그가 뻔히 알면서 「에덴」의 예언의 주요 등장 인물 중의 하나를 입증하는 중대한 고리를 형성할 비밀의 실마리를 묻었다고 누가 말하겠읍니까? 사실상, 성서란 인간적인 영감을 받아 기록된 인간 저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이 도대체 우리가 토론하여온 일들의 의의를 깨닫는가? 하고 질문하고 싶읍니다. 기독교국의 모든 쟁쟁한 학자들과 주석자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문제를 해명하며 약속의 씨를 탄생시키는 예언적 여자의 신분을 밝힐 수 있었던 사람이 있읍니까? 만일 할 수 없었다면 성경의 권위와 거룩한 기원에 관하여 기독교국의 대언자들이 말한 불리한 비평과 판단 때문에 번거로워할 필요가 전연 없을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우리는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말씀에 의롭다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신다는데 최고의 확신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로마 3:4.

29. (ㄱ) 성경을 이해하게 된 모든 영예는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합니까? (ㄴ) 영적 진리를 나누어 주는데 사용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 일은 어떻게 수행되고 있읍니까?

29 이러한 일들을 우리가 이해하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덕택이 아닙디다. 모든 영예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사도가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말하였을 때 이 점을 강조 하였읍니다.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 .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 .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 . . 되셨으니.』 그것은 여호와께서 천사를 통하여 「다니엘」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읍니다. 『마지막 때 . . .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이와 일치하여 그의 아버지의 대표자로서 행동하시는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 중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나타내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것은 그의 참 추종자들의 천적 반열의 남은자들을 집단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며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 성경을 무조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되고 그것으로 인도를 받고 있는 이 충성된 종의 반열과 그 성원들은 『때를 따라 양식』인 영적 진리를 나누어 주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용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고린도 전 1:26-31; 다니엘 12:9, 10; 마태 24:45-47.

[각주]

a 「가톨릭」교회와 그 가르침, 수도회 「이 · 알 · 훌」저.

b 증거로, 「당신의 뜻이 땅위에서 이루어지이다」를 읽을 것. 1958년「왙취 타워」 협회 발행.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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