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봉사에서의 담대한 끈기
1, 2. 성경에서 발견되는 믿음의 사람들의 생애에 관한 기록에서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줌으로, 그리고 그의 뜻을 잘 알게 해줌으로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는데 더하여, 성경이 우리가 성의를 행하도록 담대함을 주는데는 또 다른 길이 있읍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의 생애에 관한 기록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성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이 된 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약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개개인들이 그의 상당한 기뻐하심을 얻은 방법에 관한 실질적인 생활의 예들을 마련해 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상태를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볼 수 있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담대하게 행할 담력을 받게 됩니다.
2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을 때 그는 바로 이 격려의 원천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수석 대행자시며]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 12:1, 2, 신세)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서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및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관해서 읽을 때, 그들의 예에서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으며 우리 앞에 있는 경주에서 담대하게 매진하기 위하여 자극을 받도록 합시다.
3.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들을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십니까?
3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앞에 열리는 하나님께 대한 봉사의 책임을 볼 때, 경기에 달려들지 않고 주저합니다. 아마 그들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에 따라 살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사정이 이상과 같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교훈을 받도록 성경에 보존하신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셔서 그를 섬기게 하셨읍니까?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고린도 전 1:26-29)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눈에 지혜로운 자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그에게 인도를 바라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는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그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진전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은 그의 뜻을 행하기를 원할 만큼 그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시 25:4, 5, 9, 12; 빌립보 2:4.
4. 어떤 형태의 사람들이 여호와를 섬겼으며 그의 승인을 받았는가를 표시하는 예를 드십시오.
4 「모세」는 그러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말에 방해를 받았으며 봉사를 위하여 불리움을 받았을 때 팔십세나 되지만, 응하였읍니다. (출애굽 4:10-12; 7:7) 「기드온」은 「그의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 였지만, 기꺼이 섬기고자 하였으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뒷받 침하셨읍니다. (사사 6:15, 16) 「아모스」는 목부(牧夫)였으며 무화과 따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읍니다.(아모스 7:14, 15) 그리고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있으며, 그들은 「갈릴리」의 어부들이었읍니다. 그들은 『학문 없는 범인』이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사도들로 선택하셨읍니다.(마태 4:18-22; 사도 4:13) 「바울」과 같은 몇몇 사람은 상당한 교육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과거가 불미스러웠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고 문란한 생활을 했었읍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에게 헌신하였을 때, 세상적으로 지혜로웠거나 혹은 악하였거나를 막론하고, 그러한 일들을 뒤에 버려두고 하나님의 봉사에서의 새로운 생애를 시작했읍니다.—빌립보 3:4-8; 고린도 전 6:9-11.
5. 어떠한 생각들이 여호와의 봉사에 참예하는데 대한 올바른 견지를 갖도록 돕습니까?
5 중요한 점은 당신이 성의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되기 전에 어땠는가가 아니라, 현재 당신이 어떠한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를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까? 당신은 그의 의로운 신 세계에서의 생명을 갈망하십니까? (히브리 11:6; 마가 12:29, 30; 베드로 후 3:13, 14)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읍니다. 인간적인 견지로보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하나님 섬기기를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호와께서 왜 약점 투성이인 우리 인간을 사용하시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기록합니다. (고린도 후 4:7)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담대하게 침례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하라고 주신 전파 사업에 참예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의 본을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의 전파자들
6.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가 된 모든 자들을 어떤 활동을 하도록 훈련시키셨읍니까?
6 이것은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의 어깨에 놓이게 되는 한가지 의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복음서의 기록을 공부함에 따라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에게 감명을 줍니까!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초대하셨읍니다. 『나를 좇으라.』고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그의 추종자들이 무엇을 하였을까요? 그들은 예수께서 친이 행하셨던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는 사업에 참예하였읍니다. (마태 4:19; 9:9; 11:28, 29; 4:17) 제자들이었던 그들은 그에게서 배웠으므로 얼마 안가서 그들만을 내어보내리만큼 충분히 전도에서 경험을 쌓게 되었읍니다. 처음에 그는 열두명에게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는 교훈을 주어 내어보내셨읍니다. (마태 10:5, 7) 후에 그는 칠십명을 지명하셔서 같은 사명을 주어 내어보내셨던 것입니다.—누가 10:1-11.
7. (ㄱ)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전파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하였읍니까? (ㄴ)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이 사업을 어떻게 보게 되었읍니까?
7 예수께서는 어찌나 이 전파 사업에 파묻혀 계셨던지 후에 총독 「빌라도」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도 당신께서 탄생되신 이유 자체가 즉 세상에 오신 목적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함이라고까지 하셨읍니다. (요한 18:37) 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얼마나 똑 같은 긴급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관리들이 전파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 4:19, 20) 그들은 예수께서 떠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 중에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마태 28:19, 20, 신세; 사도 1:8) 그들에게는 예수의 한 추종자가 된다는 것이 한 전파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음에 조금도 틀림이 없었읍니다.
8. 「고린도」인들에게 편지하였을 때, 사도 「바울」은 전파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 위에 놓여있는 의무를 어찌나 강력히 통감하였는지, 「고린도」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린도 전 9:16, 17)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똑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것처럼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 전 11:1) 만일, 우리가 눈으로 예수와 그의 충실한 본받는 자들을 열렬히 계속 똑바로 바라본다면, 그들처럼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데 관하여 같은 긴급성을 느낄 것입니다.
사업에서 담대하게 견딤
9. 전도하는데 있어서 인내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9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보고 하실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일을 고수 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한 17:4)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그의 모든 추종자들의 결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인내는 요구됩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거나 전파 사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브리 10:36) 마치 암돼지가 우리 안에서 다시 딩구는 것처럼,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되어 낡은 세상 길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 6:9.
10. 자기 구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봉사자에게 듣고싶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까?
10 당신이 전파하는 기쁜 소식에 모든 사람이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동네에서 기쁜 소식의 전파자는 소식에 관하여 가장 간결한 제공 밖에 하지 못하면서 몇시간 동안 호별로 전하게 될지 모롭니다. 사람들이 그가 제공하는 성경 서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따라서, 점점 실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의 제공을 의식적으로 준비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러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자극하기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진데, 자기의 전도가 열매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어떤 이유라도 있겠읍니까? 없읍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마태 10:24) 모든 사람이 예수께 귀를 기울인 것은 아닙니다. 그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읍니다. 그가 「가다라」 지방으로 가셨을 때에는 민중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았읍니다. 보다도 『온 시내가 . . .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예루살렘」에서는 귀신이 들렸다는 비난을 받으셨읍니다.(마태 8:34; 누가 4:16, 28, 29; 요한 8:52) 다른 하나님의 종들도 비슷한 응답에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11. 「사무엘」과 「노아」가 전파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 소식을 어떻게 받았읍니까?
11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살던 하나님의 선지자였으며, 그가 섬긴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 소유로서 구별하신 사람들이었으나, 심지어 그들까지도 항상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읍니다. 「사무엘」은 그 사태에 무관심하지 않았읍니다. 백성들이 그의 선한 충고를 무시하고 왕을 요구하였을 때, 그는 명백히 개인적인 실패감을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시정하시어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 상 8:7) 「노아」의 전파 임명은 더 힘들기까지 했읍니다. 인간이 옳은 일에서 어찌나 아득히 탈선했던지 성서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고 말합니다. (창세 6:5, 6) 그들은 「노아」의 경고에 유의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읍니다. 그가 사십년 내지 오십년 간을 전파하였는데도 자기 식구 외에는 아무도 응하지 않았읍니다. 단지 그와 그의 아내, 그 세 아들들과 그들의 아내들만이 방주에 들어갔읍니다. 남어지는 『깨닫지 못하였』읍니다. (마태 24:39) 그가 전파자로서 실패한 것입니까? 천만에요! 사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악한 세상을 멸하셨을 때 그가 보존하신 『의의 전파자』로서 추천받고 있읍니다. 그는 인내를 나타냈읍니다.—베드로 후 2:5, 신세.
12. 어떤 환경 하에서 「모세」는 전파하였으며, 계속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모세」와 그가 전파하도록 임명받은 구역도 명심하십시오. 누차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심판을 선언하셨읍니다. 이런 누차의 궁궐 방문은 「바로」가 선의를 보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가 혹시 여호와의 숭배에 참가할 어떤 암시라도 해서 고무를 받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오히려 반대를 직면하었으나, 여호와께 순종하여 그의 심판과 그의 이름을 선포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입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출애굽 7:5) 그러한 환경 하에서 전파하기에는 담대함을 요했읍니다.
13. 「예레미야」는 전도에서 어떤 경험을 하였으며, 그러한 예에서 어떻게 유익될 수 있읍니까?
13 「예레미야」도 전도에서 어려움을 직면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야 네가 일하기에 좋은 구역이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보다도 그는 「네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에 그들이 너에게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바로 그렇게 되었읍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배교 때문에 나라 위에 멸망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경고하였을 때, 그들은 웃었으며 조소하였으며 조롱하였읍니다. 실제로, 한번은 그가 성전 근처에서 전파하고 있었을 때 그곳 책임자 중의 하나가 그가 말한데 대하여 흥분해서 그를 때리고 창고에다 가뒀읍니다. 여러 차례 통치자들은 그를 투옥하였읍니다. 한번은 어찌나 낙담하였는지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예레미야 1:19; 20:1, 2, 9) 하지만, 이십삼년 후도 그는 여전히 구역 사람들이 잘 응하지 않는다고 보고 하였읍니다. 『이십 삼년 동안에 . . .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으며.』(예레미야 25:3)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여전히 일하였으며, 사십년 후에도 담대히 전파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보내어 전파하도록 하신 그 일을 성취시키셨을 그때까지 그는 그 일에 고착하였읍니다. 우리를 자극하여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도록 해주는 것은 이러한 예들입니다.
실망을 직면하여 담대함
14. 처음에는 기쁜 소식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 사람들을 재방문할 때 종종 어떤 실망적인 경험을 하게 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당신이 하나님과 그의 왕국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 중 얼마는 귀를 기울일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알아두는 것이 좋읍니다. 즉 처음 만났을 때 귀를 기울이지만 당신이 되돌아갔을 때는 통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상태를 길가에 떨어진 씨가 싹이나기 전에 새들이 쫘먹는데다 비기셨읍니다. 이런 경우에 악마는 자기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는 자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대표하게 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흥미를 말살해버렸읍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마태 13:3, 4, 19.
15. 한때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즐거움을 나타내던 사람들이 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공부하기를 중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찾아갈 때 거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그 때문에 당신은 그들과 말할 때 흐뭇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번 찾아감에 따라 당신을 환영마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얕은 땅에서 급히 싹이 났다가 뿌리를 깊이 박지 못하는 식물과 같읍니다. 친척이나 다른 친구들이 그들을 비웃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들은 것이 진리임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당신과 성경 공부를 중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할 때에도 오히려 사과하듯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겠다는 감명을 받을 만큼 그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떨어져 나갑니다.—마가 4:5, 6, 16, 17.
16. 어떤 일들이 사람들의 생명에서 움트는 말씀을 질식하게 합니까?
16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처럼 또 다른 집단은 말씀이 성장하기 시작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문제들과 두통 거리에 어찌나 되게 눌리우는지 염려의 원인이 되어 그 일에 첫째로 주의를 돌려야겠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일들에는 장시간 세속적인 일을 한다든가 손님들을 대접한다든가 오락을 추구하는 것등이 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도대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기분좋을지 모르며, 앉아서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시간을 낼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롭니다.—누가 8:7, 14.
17. 이러한 경험을 직면하여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17 당신은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낙심하여 실망하겠읍니까? 예비 지식을 갖춤으로 그러한 일을 피하십시오. 그보다도 진리를 꼭 잡음으로써 그리고 「인내로 열매를 맺음으로」써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훌륭하고 선한 마음에 받아들였다는 것을 입증하십시오. 당신이 봉사를 열렬히 계속함으로써 핍박을 직면하여 시들어버린다거나 낡은 세상의 물질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 세계의 전망을 버리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계속 행할 담대함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십시오.—누가 8:8, 15; 디모데 후 4:10, 11.
18. 자기가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실망시킬 때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18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균형잡힌 견해를 가진 사람은 다른 문제도 직면할 수 있는 힘을 받게 됩니다. 개인의 두통거리들 때문에 낙심하지는 않읍니다. 때때로 친구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있는 친구들까지도 실망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옳은 일을 하려고 애는 쓰지만, 완전하지는 않읍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수석 대행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워놓으신 본을 생각하십시오.
19, 20. 이 점과 관련해서, 예수께서는 어떤 경험을 하셨으며, 우리가 유익을 받을 수 있는 어떤 본을 세우셨읍니까?
19 그가 자기 제자들과 함깨 기도하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가신 것은 인간 생애의 마지막 밤이었읍니다. 검과 몽둥이를 가진 폭도들이 들어와서 그를 체포하기는 아직 오래 있어야 했읍니다. 제자들은 오래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볼 수 있었읍니다. 그런데도 기록은 우리에게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라고 말합니다.(마태 26:56) 그날 밤 늦게, 대제사장의 뜰에서 계집 종이 「베드로」를 보고 그가 예수의 추종자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반박하였읍니다.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이런 일이 세번 있었으며, 모든 일은 그 안뜰에서 일어 났는데 예수께서는 닭이운 후에 그를 보셨읍니다. (누가 22:55-61) 그러나, 예수께서는 넘어지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자기 친구들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충실함에 있어 흔들리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하늘에 계시는 자기 아버지를 바라 보셨고 그를 신뢰하셨던 것입니다.
20 그리하여 제 삼일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을 받으셨을 때, 예수께서는 원하셨다면 자기를 실망케 한 자들과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계셨으나, 그는 어떻게 행하셨읍니까? 그는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책망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요전날 밤에 너희가 그렇게 행하였으니, 이제는 다시는 나에게 말도하지 말라. 상종 안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그들을 냉대하지도 않으시고 그들과 이야기하시기를 거절하시지도 않으셨읍니다. 반대로, 그는 그들과 함께 연구하셨으며 함께 기도하셨으며 굳세게 자라도록 그들을 도우셨으며 다시 넘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담대한 종들이 되게 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의 감정보다도 충실함에 한층 관심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얼마나 놀라운 본입니까?—누가 24:44-50.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것』
21.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과의 교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입니까?
21 하나님의 봉사에서 충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상한 감정이라든가 물질주의적인 추구물이라든가 혹은 핍박 때문에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에서 자기를 분리시킬 수 없읍니다. 모든 참 그리스도인은 세워주는 영적인 교제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갖추게 되는 것은 회중의 정규 집회에서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사람의 믿음이 힘을 받아 담대하게 성의를 행하는데 끈기있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은 이러한 모임들을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 회합을 갖기 위하여 불편하였을 뿐 아니라 위험을 직면하였는데도 기꺼워하였읍니다. 그들에게 대한 핍박이 격심하게 되어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하였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공포 때문에 모임에 참석하는데 나른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당한 주의를 하면서 문을 닫고 모이기는 하였지만, 함께 모여 기도하며 서로 힘을 주었읍니다. 예수께서 교훈하셨듯이 그들이 영적으로 계속 살며 계속 증거할 담대함을 가지려면 그러한 모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사도 12:1-5, 12-17) 필요성은 오늘날도 똑 같이 큽니다. 많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특권을 마치 「드로아」의 형제들처럼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잠간 그들을 방문하였을 때 밤새껏 이야기하여 모임이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게 되었을 때에도 「바울」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하여 머물러 귀를 기울였읍니다. (사도 20:7-11) 당신이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과 함께 모일 기회가 있을 때에는, 온전히 이를 이용하십시오. 이 점에 있어서 「다윗」의 본에서 자극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는 구름 같이 허다한 그리스도인 이전의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 122:1.
22.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수단으로 우리가 담대하도록 도우시며, 우리는 어떻게 결심해야 할 것입니까?
22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 그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 얼마나 훌륭한 격려입니까! 충실한 종들의 생애에 관한 성서적 기록을 마련하심으로 여호와께서는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의 전파자들이 될 기회를 잡도록 하기 위하여 신기한 자극제를 마련해 주셨읍니다. 그것은 남에게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르킵니다.(베드로 후 3:13) 그들이 동료 증인들과 함께 모이며 함께 전파하도록 마련하심으로써, 그는 그들이 믿음에서 굳세게 성장하며 확고하게 남아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는 말씀을 통하여 전도에서 끈기 있도록 권면하시며 그의 봉사에 원기 왕성하게 종사하도록 권면하시며, 「절호한 시간을 사라, 지금은 악한 때이기 때문이다.」 라고 권면하십니다.(에베소 5:15-17) 그는 그들에게 그에게 기도로 접근할 특권을 주셨으며 영으로 그들을 뒷받침해 주십니다. 만일 당신이 정규적으로 이러한 거룩한 마련들을 이용하신다면 담대하게 될 모든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당신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기쁜 소식]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빌립보 1:27, 28, 신세.
[471면의 삽화]
누차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