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의 창조주의 전을 버림
1. 이 『전』은 어떠한 실체와 관계가 있읍니까?
이 『전』은 존재하는 만물 가운데서 가장 큰 실체와 관계가 있읍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위대하신 창조주입니다. 전파는 고사하고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우리의 시야로 이끌어 들일 수 있는 알려진 우주만 하더라도 그것의 창조주를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광대합니다.
2. (ㄱ) 최근에 발견된 『쿠아사』는 별과 비교할 때 어떠합니까? (ㄴ) 천문학자들에게 있어서 우주의 팽창은 그것이 어떻게 지구에 미치게 되었다고 알려줍니까?
2 크기에 대하여 좀 생각해 보십시다. 당신은 『쿠아사(quasar)』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최근에 와서 천문학자들은 「쿠아사」라는 유사(類低)별의 전파원을 발견했읍니다. 이러한 것들은 빛과 전파로 막대한 「에네르기」를 방사하는 천문학적 물체입니다. 별같이 보이는 한 「쿠아사」는 『수 백만 배나 더 크고 수십억 배나 더 밝으며, 어떠한 「쿠아사」는 율동적으로 발사』합니다. 약 40개의 「쿠아사」가 발견되었으며, 제일 먼 거리에 있는 것이 발견되어 발표된 것은 1965년 5월 17일이며 그것을 3씨-9a라고 명명하였읍니다. 이 천계의 물체는 어찌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만국 표준시의 시초에 가까운 것같다고 합니다. 『이 빛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것으로부터의 빛이 우주가 생겨나자 바로 지구로 여행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이러한 「쿠아사」들 중에는 그들의 빛이 이 지구에 도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 십억년 동안에 이미 없어져 버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에 관한 보도는 이러합니다. 『우주가 팽창하는 비율로 보건대 그것이 한 지점에서 약 30억년 전지구의 연령보다 거의 3배나 오래 전에 생겼다.』—1965년 5월 18일자 「뉴욕」「타임즈」지 1, 2면.
3, 4. (ㄱ) 이러한 사실로써 하나님께서 땅 위 전에 계신다는 점에 관하여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이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고 어떻게 가르치며, 「바울」은 이교도들인 「아덴」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3 이상과 같은 발견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이것입니다. 즉 그러한 거대한 것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있는 한 전에 머무르시기에는 너무나 크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하나님이 이 조그만 지구 위에 사람이 만든 집에 머무신다고 말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으며 20세기의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한 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작게 만드실 수 있읍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의 한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 있는 작은 난자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신을 아주 미소하게 만드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성서 자체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읍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바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의 생명을 하늘로부터 이 「유대」인의 처녀의 태로 옮겨 사람 예수 즉 후에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분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유대」인의 처녀 「마리아」에게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가 낳을 첫 아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어머니였읍니다. (누가 1:26-33 참조)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자신에 관하여는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이교도들인 「희랍」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4 『「아덴」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 . .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사도 17:22-29.
5. (ㄱ) 우상이 전에 서 있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건물에 머물러 계십니까? (ㄴ) 「솔로몬」의 성전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숭배가 수행하는 건물을 어떻게 하실 수 있읍니까?
5 그러므로 성서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우상 숭배 종교의 한 전이나 탑 혹은 사원에 서 있는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든 형상과 같이 물질로 만든 건물에 머물러 계시지 않읍니다. 천지의 참 하나님은 그의 명령에 의하여 세워진 성소(聖所) 혹은 전을 성별하실 수 있읍니다. 그는 또한 그러한 건물을 성별 즉 거룩하게 하심으써 거기에 그의 이름을 두실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전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이 전은 그가 문자대로 거기에서 사시는 가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깨끗한 숭배가 수행될 수 있는 곳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통용 기원 전 1027년에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완공시킨 성전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읍니다. 「솔로몬」왕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희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열왕 상 9:3.
6. 「솔로몬」은 그가 세운 전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을 기도하였읍니까?
6 성전 건축자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산에 웅장한 이 종교적 건물을 봉헌(奉獻)할 때에 그는 능하신 천지의 창조주께서 실제로 이 전에 계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음을 솔직히 말했읍니다. 봉헌식 때 「솔로몬」왕은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 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열왕 상 8:27-29.
7, 8. (ㄱ) 「솔로몬」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어떻게 대표되었읍니까? (ㄴ) 이 사실은 십 계명과 하나님의 크심과 어떻게 일치됩니까?
7 「솔로몬」왕은 매우 이치적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서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전에 관하여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 이치적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솔로몬」왕이 세운 성전 안에는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하여 사람이 만든 어떠한 형상도 세우지 않았읍니다. 이 성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臨在)하시다는 것은 지성소라고 하는 성전 가장 깊숙한 곳에 기적적으로 켜져 있는 빛인 「세키나」빛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상징되었읍니다. 대제사장이 매년 속죄일에 언약궤 앞에 속죄의 피를 뿌리러 들어갔을 때에 대제사장은 이 기적적인 불을 볼 수 있었읍니다.—레위 16:11-17.
8 그뿐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에는 그를 대표하기 위한 아무런 신상도 없었읍니다. 사실상 그의 십 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은 손으로 만든 형상을 우상화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였읍니다. (출애굽 20:1-6) 이 사실은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이 직접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원하시며 그가 인간이 만든 성전에 사시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라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9.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관하여 「솔로몬」에게 무엇이라고 경고하셨읍니까?
9 「예루살렘」에서 처음 성전이 봉헌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의 건축자인 「솔로몬」왕과 그의 왕의 후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읍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열왕 상 9:6-8.
10, 11. (ㄱ)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가 한낱 거짓 위협에 불과하였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생각해 버릴 수 있읍니까? 「바울」은 이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0 여기에 경고된 사실이 「솔로몬」왕이 세운 성전에 실제로 일어났읍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왕들이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여호와의 전 즉 집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통용 기원 전 607년 여름에 이 성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의 지휘 아래 있는 군대에 의하여 파괴되었읍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전을 올바로 존경하였더라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 여호와를 두신 전을 존경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그의 경고는 한낱 거짓 위협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읍니다. 기원전 607년부터 537년까지 7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이 먼 「바벨론」 땅에 사로잡혀 가있는 동안에 이 성전은 파괴된 채로 내 버려져 있었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소홀히 생각해 버릴 수 있읍니까? 그렇지 않읍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분석학자였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11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 .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 . . . 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 . .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여호와]를 시험 . . . 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 전 10:6-12.
재건된 전을 버림
12. 우리는 「유대」인들의 어떠한 세대와 같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우리는 왜 「유다」의 총독 「느헤미야」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까?
12 장래 세대는 그들이 과거의 역사 특히 성서의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는다면 이전 세대의 잘못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람들과 같이 그들도 하나님의 전에 대한 같은 악행으로 인하여 같은 나쁜 결과를 당하게 됩니다. 현 세대인 우리는 기원전 5세기에 「유다」 총독이었던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 사이에 그의 전을 버리는 일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열렬한 출발을 하였읍니다. 이 성전은 기원 전 7세기에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올바른 숭배를 계속하는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바벨론」 땅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재건한 기원전 6세기의 것이었읍니다. 기원 전 539년에 강한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에게 함락된 이후에 「유다」 땅은 「고레스」 대왕의 통치 아래 있는 「바사」의 도가 되었읍니다. 기원 전 455년에 「바사」의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를 「유다」와 「예루살렘」도를 통치하도록 임명하였읍니다. 「느헤미야」는 그때까지 내려온 「유대」인의 역사를 멸시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의 세대의 회복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을 저질러 똑 같은 재난을 당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읍니다. 그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총독으로서의 그의 권력을 사용하였읍니다.
13. 기원 70년에 하나님의 성전은 어떻게 되었으며, 「느헤미야」에게 잘못이 있었는가에 관하여 무엇이 알려 줍니까?
13 통용 기원 70년에 「디도」 장군의 지휘 아래 「로마」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재건된 성전이 멸망된 것은 「느헤미야」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읍니다. 그 때 멸망된 여호와의 성전은 다시 재건되지 않았으며, 오늘날 그 성전이 서 있던 곳에 「모슬렘」 즉 회교(回敎)의 「알라」 신에게 봉헌한 바위의 「도움」이라고 알려진 다른 건물이 서 있읍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조사해 본다면 여호와의 성전을 남용한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염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결코 지나친 염려가 아니었읍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해 봅시다.
14. 「느헤미야」는 처음에 어떠한 공사를 하였으며, 그후 「티쉬리」월 24일에 「이스라엘」 축하자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14 첫째로 「느헤미야」는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한 회복된 「유대」인들의 노력의 지지를 얻었읍니다. 그 다음에 그는 성전에 있는 것들과 「유다」 사람들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그의 더 큰 관심을 돌렸읍니다. (느헤미야 6:15로부터 7:5; 8:1-9)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한 다음 달인 음력 「티쉬리」월 24일에 「예루살렘」에서 막 초막절 경축을 마친 백성들이 더 심각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한데 모였읍니다.—느헤미야 9:1.
15, 16. (ㄱ) 이 때에 무엇을 낭독하였으며, 무엇을 고백했읍니까? (ㄴ) 그 다음에 기도는 종 됨과 『견고한 언약』에 관한 어떠한 말로써 끝을 맺었읍니까?
15 그때에 영감에 의한 「히브리」어 성경 전체(39권)가 느헤미야서와 말라기서를 제외하고는 다 완성되어 있었읍니다. 이 엄숙한 때에 그들은 낮 사분의 일 (3시간)을 『율법 책』 (「모세」 오경)을 낭독하는 데 바쳤고, 그후에 그들 자신의 죄와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였으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엎드려 숭배하였읍니다. 그 다음에 직책을 가진 「레위」인들이 강단에 올라 서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읍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느헤미야 9:36-38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읍니다.
1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난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17. 이 기록된 언약에 인친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며, 백성들은 이러한 인침을 어떻게 지지하였읍니까?
17 「느헤미야」 자신도 기록으로써 확고한 언약의 효력을 갖도록 인을 침으로써 증명할 방백들 즉 백성의 머리들 중의 한 사람이었읍니다.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쓴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대표적 「레위」인들을 지지하여 맹세하였고, 이 확고한 언약에 관하여 저주로 책임을 지게 했으며, 모두는 하나님의 율법과 요구에 일치하게 살 것을 결심했읍니다.—느헤미야 10:1-29.
18. 결혼에 관하여,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하여, 하나님의 전의 경제적 지원에 관하여, 제단을 위한 나무에 관하여, 어떠한 결심을 하였읍니까?
18 이렇게 하여 그들은 다시 그 땅과 그 근처에 있는 이방인들과의 혼합 결혼을 피해야 할 책임을 갖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또한 매주 안식일과 매 칠년마다 안식년을 지켜 「이스라엘」 형제들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였읍니다. 재건된지 61년째 되는 「예루살렘」 성전인 『하나님의 전』에 관하여는 그들은 성전 비용과 성전에서 수행되는 봉사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년 각자는 「세겔」의 삼 분의 일(은전 약 50원)의 세를 바치기로 하였읍니다. 또한 매일 번제를 드리는 데 사용될 제단의 불을 위하여 많은 나무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필요한 양을 정규적으로 마련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분담되었읍니다.
19, 20. (ㄱ) 하나님의 율법은 십일조 외에 또 어떠한 것들을 바치도록 요구하였읍니까? (ㄴ) 이러한 모든 물질적 지원은 어떠한 봉사에 대한 대가로서 바친 것입니까?
19 이러한 것 외에도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첫 열매를 바칠 것을 명령하였읍니다. 즉 그들은 밭의 첫 열매와 과목의 첫 열매와 우양의 처음 난 것들과 또한 태의 처음 난 아들들을 바쳐야 하였읍니다.
20 이렇게 바치는 것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정규적으로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매년 그들의 수입의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바치는 것에 부가한 것입니다. 심지어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도 그들이 받는 가운데서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바치도록 법률이 되어 있었읍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가게 되었고, 성전 봉사하는 「레위」인들도 십일조를 바치는 마련에 참예하여 하나님의 전을 받드는 일에 헌금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민수 18:26-32) 성전에는 『성소의 기명 (器皿)』이 있었으며,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 외에 제사장들이 그것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들의 영적 봉사에 대한 대가로서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였읍니다.
21. 이러한 모든 것들을 바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은 왜 그러한 소홀히하는 죄를 짓기 원치 않았읍니까?
21 성전 봉사를 지원하고 성전 운영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이러한 모든 것들을 바치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 즉 성전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특히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록과 맹세와 하나님께로부터의 저주의 책임을 지기로 하는 것으로 『견고한 언약』을 하게 된 이상, 그들은 다시 그렇게 소홀히 하는 죄를 범할 수 없읍니다.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자신도 그러한 책임 아래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너희가 아님]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느헤미야 10:30-39.
기억하고 지켜야 할 만한 가치
22.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의 어떠한 관심을 알려 주는 것이며, 「유대」인들에게서 그는 타락한 육체의 어떠한 경향을 알게 되었읍니까?
22 한 나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그의 숭배자들로 자인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느헤미야」의 이 말은 얼마나 기억하고 지켜야 할 만한 가치있는 말입니까! 타락된 인간의 육체란 물질주의에 빠져 영적 관심사와 이익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데 빠지기가 얼마나 쉬웁니까! 총독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발견하였읍니다. 그는 총독으로 12년 동안 섬긴 후에 「바사」왕의 궁전으로 돌아갔읍니다. 그때는 『[정복된] 「바벨론」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이었읍니다. (느헤미야 13:6) 얼마 동안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은 후에 그는 다시 「바사」 왕의 허락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읍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의 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었으나 슬프게도 「유다」에 있는 백성들의 관심이 식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23.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누구를 성전에 들어와 살게 하였으며, 「느헤미야」는 이 일을 어떻게 하였읍니까?
23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였던 「암몬」 사람 「도비야」를 성전에 들여 놓았읍니다. 그는 또한 「도비야」와 친척 관계를 갖게 되었고 그로 이전에 성전 봉사자들의 식량을 저장해 놓던 성전 마당에 있는 한 방을 사용하도록 임명하였읍니다. 이러한 일은 신명기 23:3-6에 있는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성전 대제사장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므로 백성들은 그대로 두었읍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느헤미야 13:4-9.
24.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인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24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다만 성전 방에 적인 「암몬」 사람을 들여 놓았을 뿐 아니라 그는 합법적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맡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도록 아무런 마련을 하지 않았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바치는 일을 중단하였고, 그러므로 「레위」인 봉사자들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많은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로부터 떠나 그들의 「레위」 도시인 고향에 가서 자신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25. 「느헤미야」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였다고 보고합니까?
25 그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였다고 하였읍니다.—느헤미야 13:10-12; 민수 35:1-8.
26. 「느헤미야」는 성전 봉사자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도록 임명하였읍니까?
26 이뿐 아니라 「느헤미야」는 태만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에게 기대하지 않고 이렇게 하였읍니다.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느헤미야 13:13) 그러므로 이제 「레위」 봉사자들은 고향으로 도망할 이유가 없게 되었읍니다.
27, 28. (ㄱ) 「느헤미야」는 어떠한 것을 근거로 선하게 한 것을 기억하실 것을 기도하였읍니까? (ㄴ) 그는 왜 대제사장의 손자에 대하여 처분하였으며 어떻게 처분하였읍니까?
27 그 후에 「느헤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선한 일로 인하여 그를 기억하실 것을 기도하였을 때에, 「느헤미야」는 어떠한 근거로 그러한 기원을 하였읍니까? 그는 「바사」왕의 잔 바치는 직책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긴 여행을 하여 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을 말하였읍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그가 한 일을 말하였읍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는 깨끗한 봉사자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할 것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의 손자가 혼합 결혼을 하여 「사마리아」의 적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하여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아들 「요야다」의 아들들 중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내게서 쫓아 버렸다.』—느헤미야 13:14, 28, 신세.
29. 「느헤미야」의 마지막 말에 의하면, 그는 제사 직분과 성전 봉사자들의 언약을 더럽힌 것에 대하여 어떻게 하였읍니까?
29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그가 취한 이러한 보고는 「느헤미야」가 그의 이름을 가진 책 끝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끝을 맺읍니다.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렬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헤미야 13:29-31.
버리지 않은 것이 기억됨
30, 31.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까? 이 경우에 있어서 히브리 6:10에 있는 어떠한 법칙이 적용됩니까? (ㄴ) 예언자 「말라기」는 여호와를 두려위하는 자들에 관하여 어떠한 적절한 말을 기록하였읍니까?
30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24세기 전에 「느헤미야」가 기도한 것을 응답하실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느헤미야」의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으시므로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행한 모든 선한 일에 대하여 잊어 버리시거나 보상하시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영감에 의한 성경의 일부가 되게 하심으로써 영원한 기록에 보존되어 기억하게 하셨읍니다. 참다운 『하나님의 전』의 이익을 위하여 더 큰 봉사를 한 예수 그리스도의 「히브리」인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그러므로 「느헤미야」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그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읍니다. 분명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할 때 살았던 「말라기」의 기록에도 이러한 적절한 말이 들어 있읍니다.
31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라기 3:16.
32. (ㄱ) 「느헤미야」는 어떠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그때에 그는 어떠한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까? (ㄴ) 그는 무엇의 뚜렷한 본이 될 것입니까?
32 「느헤미야」는 아직도 「스올」 혹은 「하데스」 즉 죽은 인류의 공통 무덤에서 아직도 죽음의 잠을 자고 있읍니다. 「느헤미야」는 『「메시야」 곧 인도자』의 천년 통치 기간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을 받음으로써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다니엘 9:24-27) 그때에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산 위에 서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물질적 성전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통용 기원 70년에 「유대」인의 성전 마지막 것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마태 23:37로부터 24:2; 누가 19:36-44; 21:5, 6)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산 위의 물질적 성전이 전영한 영직 하나님의 성전에 관하여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성전의 크신 대제사장의 추종자들에 의해 어떻게 영적 성전이 버림받지 않고 보존되어 왔는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 자신도 땅의 충성스런 자들에게 가담하여 이 높여진 영적 성전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틀림없이 온전한 보상을 받게 되는가를 알리는 뚜렷한 본이 될 것입니다.
[각주]
a 3C-9란 부호는 제3 「캠브릿지」 대학 전파원 목록에 나타나 있는 전파원 9번을 말한다.
[46면 삽화]
성전 봉사자들을 위하여 헌물을 가져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