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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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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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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파66 9/15 349-355면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냄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갈라디아 5:25.

1. 오늘날 어떤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왜 그러한 경향을 따르지 않읍니까?

오늘날 현대인은 지성있는 인간들의 최신 발명품들로 둘러싸여 있읍니다. 여러 국가들은 그들의 업적에 있어서 최고 수준에까지 도달하였읍니다. 민족주의 정신은 국민들의 마음 가운데 그들 나라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최고라는 사상을 심고 있읍니다. 그 공적을 인간에게 돌립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실상 이러한 영향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서에 설명된 기적들과 능력있는 일을 실제로 일으키셨다는 것을 인간은 점점 믿지 못합니다. 이 동일한 영향력은 베드로 후 3:3, 4에 기술된 상태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읍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행로를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인 성서 배후에 계시는 권세이심을, 점차적으로 인정합니다. 고린도 전 2:12, 13에는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당신 자신의 특수한 지식을 검사해 보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기롱하고 어떤 이들은 믿은 성서 기록의 몇 가지 사실을 고려해 보고, 자신의 반응을 살펴 보십시오.

2, 3. (ㄱ) 당신은 당신의 사고 방식을 어떻게 검사할 수 있읍니까? (ㄴ) 당신은 「바울」의 충고와 계시록, 「모세」의 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이 기원 60-61년 경에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였다고 가정합시다. 거기서 「두기고」라 이름하는 그리스도인이 사도 「바울」로부터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회중에서 낭독합니다. 이 때 당신은 그 편지가 「로마」에 있는 한 노인의 충고라고 단정하시겠읍니까, 혹은 그 편지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주신 것으로 인정하시겠읍니까? 기원 96년 경에 계시록을 읽는 것을 당신이 들었다면 당신은 한 섬에 유배되어 있는 고독한 사람이 꾼 꿈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시겠읍니까? 혹은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시 1:1)라는 것과 지상과의 통신 매개로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계시된 것이라고 인정하시겠읍니까?

3 여호와께서 「모세」를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참된 숭배로 인도하도록 하셨을 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말하였읍니다. (출애굽 3:11) 그리고 또 다시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출애굽 4:10) 성서 기록은 「모세」가 「바로」 앞에 여러번 나아갔으며, 여러번 많은 대중들 앞에서 확신 있고 강력하게 말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출애굽 7:10–10:29; 신명 32:1–33:29를 보십시오.) 당신은 「모세」가 40년간의 대단히 활동적인 봉사로 진보하여 장성을 얻었다고 생각하시겠읍니까, 혹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장성된 사람을 만들었다고 이해하시겠읍니까?

4.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단정하는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당신이 기원전 647년에 「예레미야」 옆에 서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에 대해 예언할 것을 임명하셨고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 1:6) 이제 당신이 40년 이상 그가 담대히 그 민족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말하고 기록할 때 이 동일한 사람을 좇아다녔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이 일이 걸출한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고 놀라며 감탄하시겠읍니까, 혹은 「예레미야」 자신이 말한 것 같이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이라고 말씀하시겠읍니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9:23, 24) 「예레미야」가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의 직접적인 개재가 없었더라면, 그는 단순한 제사장으로 머물렀을 뿐이요, 우리는 그로부터 다른 수만명의 동료 제사장들로부터 듣는 것 이 외에 다른 것을 못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탄생하기도 전부터 그를 예언자로 정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의 성령에 의해서 담대한 예언자, 역사가, 성서 집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5. 오순절날 기적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떠한 여러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읍니까? 그러면 올바른 견해는 무엇입니까?

5 당신이 기원 33년 「시반」 월 6일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의 중요한 모임에 참석하였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바람같은 급한 소리를 들었을 것이며 불이 참석자들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공부한 외국어를 하였었읍니까? 그들은 어떤 이들이 단정한 바와 같이 술취하지는 않았읍니까? (사도 2:11, 13) 혹은 당신은 사도 2:4에 있는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 .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는 강력한 설명을 이해하시겠읍니까? 당신은 그 큰 날에 「베드로」가 지적한 처음 점 중의 하나에 동의하시겠읍니까? 즉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사도 2:15-18.

6. 하나님의 성령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열 세 가지의 사건과 어떠한 관련이 있읍니까?

6 당신이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생긴 많은 일들 중 몇 가지 사건을 더 검토해 보십시오. (1) 창조—창세 1:2; 시편 104:30. (2) 예수의 탄생—마태 1:18. (3) 예수의 부활—로마 8:11. (4) 예수가 행하신 기적들—마태 12:28, 사도 10:38. (5) 예수의 침례—마태 3:16. (6) 침례받을 새로운 전도인들은 성령의 작용을 반드시 인정하여야 한다.—마태 28:19. (7) 「고넬료」에게 도움을 베푸심—사도 10:1-48. (8) 「솔로몬」 시대의 성전 건축—역대 상 28:11, 12. (9)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심—느헤미야 9:20, 21. (10) 「바로」와 「느부갓네살」의 꿈 해석—창세 41:25, 38, 39; 다니엘 4:18. (11) 성서의 저작— 베드로 후 1:20, 21; 디모데 후 3:16. (12) 그리스도인 회중의 감독자 임명—사도 20:28. (13) 말세에 하나님의 왕국 선포가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도록 하심—계시 1:1; 14:6; 마태 24:14.

숭배의 보호처를 발견함

7.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러한 기적을 성취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이들이 취할 현명한 길은 무엇이며, 누가 모범을 세워 놓으셨읍니까?

7 의심의 여지없이 최선의 장소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작용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결과를 내는 장소입니다. 이 말은 당신이 오늘날에도 겸손하게 그러한 성령의 영향력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요셉」, 「다니엘」, 그리스도 예수와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취시키신 분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도하도록 보낸 70인이 돌아와서 그들이 한 일의 결과를 보고하였을 때 예수께서 나타내신 태도를 살피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누가 10:21) 성령에 완고하게 대적함으로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영적 양식에 대해 싸움을 벌이는 대신에, 그러한 겸손한 자들은 그들의 생활에 하나님의 영이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무엇이나 제거하기에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에서 당신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읍니다. 그 열매들은 갈라디아 5:22, 23에 나열되어 있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8, 9. 그리스도인들 안에 작용하는 성령의 열매를 설명하십시오.

8 당신은 그러한 일이 오늘날 같이 『고통하는 때』에 일군(一群)의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하실 수 있읍니까? (디모데 후 3:1)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작용하여야만 될 상술한 아홉 가지를 마음 가운데 되새겨 보십시오. 사랑은 예수의 다음의 말씀을 마음에 점차적으로 가져다 줄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 22:37-39) 그러한 계명을 따르는 것은 사람으로 디모데 후 3:1-5에 기술되어 있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행로를 버리도록 해 줍니다.

9 희락은 박해를 받을 때나 어려운 때나, 가족이 슬픔을 당할 때나, 편안한 때나 여호와를 섬기는 데서 오는 깊은 만족감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충실히 머물러 있음으로 만족합니다. 그럴때 화평이 있읍니다. 사소한 일에 대해 언쟁하거나 다투는 일이 없읍니다. 가족간의, 이웃간의 분쟁은 자취도 없이 묻혀 버립니다. 화평은 우리가 장성으로 자라고 새로운 자들이 회중 집회에서 경험하는 놀라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모두가 잘못을 범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래 참음은 각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 참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장성되지 못하여 성급한 말을 할 때 급히 화내지 않읍니다. 자비[친절]는 일을 부드럽게 하는 성과 사려깊음입니다. 친절은 매우 어려울 때나 시험 받는 때에 도움의 말을 주도록 합니다. 친절은 상대방의 비위를 상하기를 두려워해서 필요한 때 충고와 훈계를 주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음식이 청결과 영양 표준에 부합할 때 우리는 좋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정결[양선]한 전도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며, 그들은 함께 사귀기도 좋읍니다. 믿음[충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주의깊은 연구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을 명확하게 해 줍니다. 많은 증거는 견고하고 전도인의 행동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줍니다. 온유는 하나님의 균형잡힌 전도인들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즉 그는 양극(雨極)을 따르지 않고 골고루 형성되어 있읍니다. 성령의 열매를 계속 배양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체력과 정신력에 자제를 행사하므로, 하나님의 종의 자격을 상실케 만드는 부도덕을 피합니다.

10. 이 열매들이 왜 생활 표준입니까?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종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10 그런데 이 열매들은 회중 집회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열매는 생활 표준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동일한 5장 25절에서 명백히 하였읍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 이 동일한 성령은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 성령의 영향력 아래 걸을 때 그들 가운데 사랑스러운 순종심을 배양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살펴 보면, 그들의 숭배 장소인 집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은 집회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내는 것과 동일한 성령의 열매를 그들의 아내에게, 남편에게, 형제 자매들에게 나타냅니다.

여러 가지 집회—힘을 주는 기회

11. 여호와의 백성들의 집회는 왜 다릅니까?

11 그러한 이유로 여호와의 증인의 여러가지 집회는 그렇게 행복하고 힘을 주는 기회입니다. 이 집회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냅니다. 그 분위기는 생기있으며 무엇인가 성취합니다. 그러나 그 공적과 찬양은 여호와께 돌려집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의견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기록을 조사해 보십시오. 여기에 한 가지 예가 있읍니다. 즉 우리의 대회에 관한 「뉴욕 타임즈」지의 보도인데, 이 기사가 미국 의회 기록 1958년 부록 에이(A) 6907면에 포함되어 있읍니다. 『이 도시의 귀빈들, 증인들—국제 대회에 참석한 180,000명은 예의 바름과 조용함과, 단정함으로 칭찬 받다.』 그들은 웅장하게 장식되고 오래된 교회 건물보다는 영적 건강과 장성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읍니다. 그들의 평범하고 단순한 숭배 장소는 당신을 환영하는 밀접히 연결된 가족의 따뜻함을 반영합니다.

12. 이 집회들이 왜 힘을 주는가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집회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12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가 그렇게 힘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으로 안심하게 만드는 그들의 마음 상태입니다. 「바울」의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는 기록을 기억하십시오. (디모데 후 3:1) 갈라디아 5:19-24에 기술되어 있는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과 함께 일하거나 학교 다닐 때 하루 종일 계속적으로 경계하며 방어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일들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탐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시편 14:1에 있는 생각을 가집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중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마음이 다릅니다. 무엇인가 변화되었읍니다. 고린도 후서 3:3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니라.』 당신은 아무런 경쟁이 없는 화평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 가운데 경계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읍니다. 이것만도 얼마나 상쾌한 일입니까! 잠언 14:30은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라고 확신시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혹시 하루의 일과가 끝난 다음에 신체적으로 피로하다 할지라도, 주간 성서 연구와 전도 학교에 참석할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을 얻는 기회를 가집니다. 「모세」는 그러한 길을 따랐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읍니다. (히브리 11:24, 25) 그러한 집회를 떠날 때, 우리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 봉헌식에 참석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느낄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8일 후에 「솔로몬」왕이 『백성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역대 하 7:10.

13, 14. 개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강력한 결의로 이루어집니까? 그 결과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13 여호와의 성령만이 개성을 변화시킬 수 있읍니다. 인간이 만든 조직과 강력한 정부는 악을 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 1955년 5월 13일 사설과 같읍니다. 즉 『도덕과 관대함 같이 관용과 비이기심은 성공적으로 입법화 될 수 없다.』(1955년 「파수대」지(영문) 86면) 육체의 일에 종사하다가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은 개성을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이것을 에베소 4:22-2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다음에 계속되는 25절부터 32절에 기술되어 있는 변화에 유의하십시오. 거짓말하는 자는 참된 것을 말하는 자가 됩니다. 도적은 필요한 자에게 주기 위하여 직장을 가지게 됩니다. 떠들며 비방하는 자들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타락되고 더러운 말은 세워주고 깨끗한 말과 대치됩니다. 간음, 음행, 술취함, 기타 모든 종류의 방탕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맺게 하는 행실을 하게 됩니다.

14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집회들은 장성으로 매진하려는 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만일 그러한 개성의 변화를 한 개인과 교제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면, 그러한 사람의 집단과 맞나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즐거움이겠읍니까! 이것은 당신이 결코 상실해서는 안될 정규적 축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 13:11에서 그러한 집회에 참석함으로 얻게 되는 커다란 유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성령으로 행함

15.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중지하게 되며, 그 종말은 바랄 만한 상태입니까?

15 그러나 숙고할 점이 있읍니다.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 열기한 후에 갈라디아 5:25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고 확신있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영향력을 떠날 때, 우리는 불법하게 되며 하나님께 대해 점점 냉냉하게 됩니다. (마태 24:12) 그렇습니다, 그것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지켜야 할 원칙은 「성령으로 질서있게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중지하였을 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변하셨다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약하시지 않은 다른 것을 설립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성령의 감독 아래 기록되고 만들어질 때와 동일한 그의 성서 가운데 계시되어 있고 알려져 있읍니다. 또한 사람들은 갑자기 고의적으로 중지하지도 않읍니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영적 양식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물질적 양식을 중지하였을 때, 곧 죽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쇠약해 사라지는 것처럼, 영적인 영양 부족도 용기와 확신을 공포와 의심으로 대치하며 서서히 들어옵니다. 열정이 줄어듭니다. 한 때 생기발발한 하나님의 종이 흐릿하고 정체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서서히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상실합니다. 약한 상태에 있는 그러한 자들이 다시 육체의 일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베드로 후 2:20.

16. 성령으로 걷는 것은 어디로 인도하며 무슨 위험으로부터 멀리해 줍니까?

16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는 하나님의 성령의 분위기 안에서 걷고, 일하고 놀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력 아래 볕을 받고 자라십시오. 「사단」의 영향력으로부터의 방해에 방해받지 마십시오. 제도들과 백성들을 통제하는 큰 「바벨론」의 영은 현 제도에 상위(上位)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자아(自我)와 이기(利己)는 상위에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5를 고려하고 『고통하는 때』를 조성하는 그러한 많은 것들이 어떻게 이기주의로부터 솟아나오는가를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자칭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경건의 모양』이 있는 자들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꼭 유의하십시오.

17. 매일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어떠한 행로가 권할만한 것이며 어떤 행로가 위험한 것입니까?

17 하나님의 성령은 그 정반대의 것을 가져다 줍니다. 사실상 디도 1:7은 회중 감독자의 요구 조건을 말하면서, 감독자는 「제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후 2:10은 그러한 태도를 하나님의 성령 아래 있지 않는 자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기술합니다. 즉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느니라].』 우리들이 일상 생활의 책임과 여호와께 대한 숭배 사이에 올바른 균형을 취하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를 고려할 것입니다. (1) 내가 꼭 해야만 될 일—가족의 물질적 필수품을 돌보는 것 등.(디모데 전 5:8) (2) 내가 해야 될 필요가 있는 일—여호와를 더 충실히 섬기기 위해 자신을 가능한 최선의 위치에 두는 것 등.(에베소 5:16; 골로새 4:5) (3) 내가 하고 싶은 일—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것 혹은 오락을 위한 결코 흡족할 수 없는 추구. (디모데 후 3:4) 만일 자기 이익을 여호와의 숭배보다 더 앞세운다면, 그는 성령의 영향력 밖에서 걷는 것입니다. 외변(外邊)이란 있을 수 없읍니다.

18. 하나님의 성령은 모든 곳에서 작용합니까? 이것은 당신의 생활에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18 통제 구역 밖으로 나가서 생명을 위험에 맡기는 것보다, 안전 지역에서 노십시오. 고린도 전서 15:33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말합나다. 이 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악한 교제라고 명기된 곳에서 작용하지 않읍니다. 악한 교제는 부도덕, 사생아, 우혼(愚婚), 마약 중독, 그리고 부모에게 슬픔을 가져다 줍니다. (고린도 전 7:39; 베드로 전 3:17; 고린도 전 6:9, 10) 휴식할 때, 당신은 어디서 안전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읍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들과 함께 있지 않는 곳입니다. 『이러므로 저희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베드로 전 4:4) 하나님의 성령으로 통제받는 행로를 취하는 이들과의 오락은 격려적입니다. 악한 교제를 아쉬워하며 뒤를 돌아다 볼 필요는 없읍니다.

19. 개인과 가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9 예수께서 산상 수훈에서 왕국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읍니다. 이것은 마태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한 바와 같읍니다. 이것은 결정할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할 것입니까? 즉 고집대로 할 것입니까, 혹은 성령의 인도 아래 머물러 있겠읍니까?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악한 교제에 영향을 받은 근시안적인 선택입니까, 혹은 우리의 귀에 경고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 것입니까? 성서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고린도 후 6:14) 아마 직장을 구하는 데도 그러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자들이 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연기함으로 직장을 첫째로 두시겠읍니까? (야고보 4:13-17)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제도에서 직업을 가지는 것을 기대하도록 훈련시키겠읍니까, 혹은 여호와의 번영하고 보호받는 조직 내에서 봉사의 증가된 축복을 증가시키기를 열심히 바라도록 훈련시키겠읍니까? (잠언 22:6; 사무엘 상 1:28; 2:26) 하나님의 인도를 생활에 첫째로 두는 결정을 개인이나 가족이 하였다면, 그 가족은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내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회중 집회와 마찬가지로 격려적이고 생기를 줍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언 3:9.

20. 불완전한 사람들이 성령의 적용으로 인한 축복을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겠읍니까?

20 만일 우리가 매우 귀중하고 어느 때나 말할 수 없이 유익한 것을 발견하였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여 주지 않겠읍니까? 이 말해 주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확신을 주는 것은 유익받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성령의 인도에 응합니까? 라는 질문은 해결되어야만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의 행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추천합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로를 관찰하고는 당신이 무엇인가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할 만큼 당신의 성품을 변화시켰읍니까? 당신의 행로는 무엇을 추천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은 일을 성취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그러한 영향력을 반영할 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행로에서 그 행동을 볼것입니다. 다른 면으로 고찰해 봅시다. 계시록 7:9, 10의 환상에서 『각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횐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위치에 있는 큰 무리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을 머리에 그려 보실 수 있읍니까? 그 축복은 당신으로 하여금 매우 열성있는 행로로 다른 이들에게 그러한 상태를 추천하도록 움직일 것임에 틀림 없읍니다.

21. 농부의 견지에서 사물을 볼 때, 당신은 무엇을 이해할 수 있으며, 당신은 어떠한 행로를 추천합니까?

21 이 모든 것을 농부와 농토로 비유해 봅시다. 농부는 주의깊게 토지를 갈고, 써레질을 하고, 다지고 손질하여서, 씨뿌리기에 적합한 토지로 만듭니다. 그 다음에 모를 심읍니다. 그가 모를 심는 이유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우연히 손에 잡힌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심읍니까? 아닙니다. 그는 명확한 목적을 마음에 가지고 있읍니다. 일부는 그 자신의 가족의 양식으로 쓰고 일부는 다음 해를 위한 씨로 보존할 것이며 나머지는 팔아서 다른 필수품을 살 것입니다. 심어진 모는 그대로 자라고 풍성하여지면 큰 보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저급의 벼 밖에 산출하지 못하는 수척하고 가는 줄기로 자란다만, 농부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농부는 벼가 정 나쁘다면 추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농부이신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잘 준비하셨고, 경작자와 파종자, 관리자들을 보내었으며, 추수할 자들을 보내셨음을 잘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에 어떻게 응해야 하겠읍니까? 잠언 12:11은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단비와 여호와의 성령의 장성을 촉진하는 따뜻함 아래서 자라십시오. 생산하십시오. 머무르십시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백배나 생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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