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식을 듣기 싫어하는 현대적 경향은 재난으로 인도한다
1. (ㄱ)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듣는 면에 있어서 어떠한 유리한 점이 있습니까? (ㄴ)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각국어로 인쇄되어 땅끝까지 배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인류는 얼마나 큰 유익을 얻고 있읍니까! 그뿐 아니라 오늘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모든 나라 사람들의 집에 찾아 가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서를 연구하고 이해 하도록 돕고자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 교국 사람들은 예언자 「이사야」시대의 사람들과 꼭 같아서 하나님의 선함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주신 선물에 대하여 많이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깨닫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을 누차 보고 증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읍니다. 그들은 배우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가치 있는 말씀 곧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는 말씀을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사야」와 같이 합니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 6:10.
2.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던 때에도 상태는 비슷하였습니까?
2 예수께서 지상에서 전도하시던 때에 그 당시의 사람들에 대하여 그도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다고 똑 같은 말씀을 하셨읍니다. (마태 13:13-15) 사도들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에 따라 행하였으며 그들은 그를 좇았읍니다. 열 두 사도들, 칠십 복음 전도자들, 오순절에 있었던 120명 그리고 「바울」과 및 기타 수 천명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의 초기인 그 당시에 활동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읍니다. 그 사람들은 즐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뜻을 행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랐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수 백만의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의 눈과 귀는 감겼읍니까?
3. (ㄱ)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국을 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지신 바와 같은 믿음을 볼 수 있습니까? (ㄴ)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도덕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3 이 이십 세기의 그리스도교국은 자칭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러한 말을 믿으십니까? 원하신다면 소위 그리스도 예수의 대표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듣고 읽어 보십시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수께서 보이신 바와 같은 믿음을 보이지 않고 있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말하고자 하며 많은 사람들을 참된 그리스도교의 믿음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이탈시키고 있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늘의 왕국에 대하여 가르치신 위대한 말씀을 무의미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성서의 도덕률에 대하여도 그들은 그것이 오늘날 사람들을 위한 지침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1965년 12월 3일 「펜사콜라 저널」 지는 이렇게 보도하였읍니다. 『「로마 가톨릭」을 휩쓴 풍조가 역시 「프로테스탄트」도 휩쓸고 있다. 놀라웁게도 많은 종파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신조들이 의심을 받고 있다. 그나마 모진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신학자들이 의심하고 있다. 더 좋은 용어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인도주의 파는 「하나님은 죽었다」 운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4.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4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어떻게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즉 그리스도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또한 그 문제에 있어서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혹은 하나님이 죽었다면, 어떻게 종교가 있을 수 있읍니까? 어떤 신학자들은 혀끝을 놀려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죽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밀어내 버릴 수도 있으며 인간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성서 곧 하나님의 책을 쓸어 없애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 남녀는 1965년 12월 3일자 「펜사콜라 저널」지에 보도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건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감리교 소속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종교학 부교수 「토마스 제이 · 제이 · 알타이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5, 6. (ㄱ)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고려해 볼 수 있도록 「웹스터 신 국제 사전」에서는 무슨 흥미있는 내용을 설명합니까? (ㄴ) 동일한 책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정의하였읍니까?
5 그러한 신학자들은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로 성서를 버리고 자기들의 종교를 세우고 자기들의 신앙을 발전시키도록, 그나마 하나님이 없이 그렇게 하도록 강력히 권장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것을 종교라고 부를게 아니라, 어느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웹스터 신 국제 사전」(1927년판)에서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순종, 봉사, 존경을 바쳐야 하는 신 혹은 신들의 존재의 인정을 나타내는 사람의 외적 행동 혹은 형식. 신앙의 공언, 의식과 예식의 준수, 또는 생활상의 행실에 의하여 어떤 초인간, 지배 세력에 대한 감정 또는 인간적 사랑, 공포, 혹은 경건(敬虔)의 표현. 신앙과 숭배의 체계, 충성의 표현.』
6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표제 아래 이 동일한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였읍니다. 『지존자, 영원 무한한 영, 창조자 그리고 우주의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숭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숭배할찌니라.」 (요한 4:24).』 또 이렇게 계속합니다. 『인간의 속성과 능력 이상의 존재. 특히 초인간으로서 지배적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며 . . . 그에게 숭배를 드려야 하며 그는 숭배를 받을 만하다.』
7, 8. (ㄱ)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신학자들은 정직하게 무엇을 인정하여야 합니까? (ㄴ) 그러한 운동에 가담하는 자들은 무엇을 숭배하고 믿을 가능성이 있읍니까?
7 자기들의 이론을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을 죽여 버렸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은 자기들이 더 이상 종교를 가르치지 않으며 우주의 참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숭배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 외에는 숭배할 것이 없읍니다. 그런데 그들 자신은 분명히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숭배할 만한 것이 없다면, 종교도 없읍니다.
8 누구든지 종교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믿는 목사들은 자기 교구민들이 하나님 믿는 것을 싫어함이 분명하므로 그러한 교회를 왜 폐쇄하지 않읍니까? 아마 그들의 신도들은 조상 숭배, 자기 숭배 혹은 자기들의 마음을 점차적으로 불교로 전향할지도 모릅니다. 불교는 사람들이 종국에 가서 열반 곧 그들이 신으로 믿는 전무(全無)의 상태에 달할 것을 바랍니다. 「웹스터의 신 대학 사전」(1961년판)에서는 『열반(理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읍니다. 『고뇌, 증오, 및 미혹의 경지에서 사멸함. 이 해탈에는 영적 극락 상태와 장래의 윤생의 필요로부터 해방이 있다. 번뇌, 중고(衆苦) 및 외적 실제성의 망각.』 우리는 무에서 나왔으며 무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까?
9-11. (ㄱ) 어떤 성서 기록에 대하여 한 신학자는 어떠한 견해를 가졌읍니까? (ㄴ) 그러한 이론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면 어떠한 결론에 이릅니까? (ㄷ) 우리가 따를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견해를 어떻게 약술하였읍니까?
9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저명한 종교인들은 우주의 크신 하나님과 그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모든 믿음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한 예가 1961년 2월 13일자 연합통신에 보도되었읍니다. 거기에는 「캘리포오니아」 감독교회 보조 감독 「제임스 에이 · 파이크」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되어 있읍니다. 『그는 「에덴 동산의 신화」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는 그것이 인간성의 「복잡한 진리」를 설명하는데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나서 이렇게 부가하였다. 「그러나 나는 영국 교회파 성원들 중에서 감독, 장로, 집사 혹은 평신도를 막론하고 이 이야기를 실제로 믿는 사람을 하나도 모른다.」 그의 관할 구역에 있는 모든 교구 목사들에게 오늘 읽으라고 명한 교서(敎書)에서 처녀 탄생은 신화로서 교인들이 인정하든지 배척하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10 만일 「에덴」 동산에서 인간 남녀의 창조가 없었고 우주의 크신 하나님 여호와와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한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씻으실 죄도 없을 것입니다. 대속주나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도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날의 회의론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았읍니다. 그는 위대한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였으며, 믿음이 깊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말하였읍니다. (로마 5:6) 그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대속주가 필요함을 알았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하였읍니다. (로마 5:12) 그는 또한 이렇게 전도하였읍니다.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사도 24:15)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믿으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성서의 어느 부분은 신화이고 어느 부분은 아니라고 말하는 교직자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바울」이 살아 있다면 그는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로마 3:4.
11 「바울」은 「에덴」 동산에 하나님의 법을 범한 「아담」이 있었음을 믿었으며, 세상 죄를 없애기 위하여 대속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그는 그리스도 예수가 인간을 대속한 분임을 믿었읍니다. 1,9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도 예수의 모든 사도들과 충성스러운 추종자들도 그렇게 믿었읍니다. 문제는 당신도 그렇게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12, 13. 「캐나다 옷타와」와 「뉴욕」주 「버펠로우」에 있는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두 교직자들의 성서에 대한 견해는 어떠합니까?
12 당신 주위에 있는 목사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한 교구 목사는 목요일 영국 남부 성공회 본부에서 구약은 「영적 쓰레기」와 사람들에 대한 「독소」의 문구가 들어 있다고 말하였다. 「런던」 근처에 있는 「우드포드」의 「제이 · 씨 · 완세이」목사는 「캔터베리 교직자 회의」에서 평일과 주일에 교회에서 낭독하도록 정하여 놓은 공과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켰다.』 (1963년 5월 10일 금요일 「옷타와 시티즌」지, 「런던」발 「로이타」)
13 1962년 8월 13일 「버팰로우 익스프레스」신문에 『성직자, 성서 검열의 필요를 주장』이라는 표제를 실었읍니다. 본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읍니다. 『「런던」발(AP). 이전 감리교 총회 회장 「레슬리 웨더헤드」 박사는 성서를 검열하고자 한다. 「런던」에 있는 3개 신문사 특파원과의 회견에서, 그는 성서를 쭉 훑어 보면서 「정정 삭제하고 싶다」고 하였다. . . . 그의 주된 관심은 구약이다. 그는 그것을 「완전히 구식」이라고 하였다.』
14. 성서에 대한 많은 「프로테스탄트」 평신도들의 염려에 관하여 「달라스」 「모닝 뉴스」에 보도된 내용의 개요를 말씀하십시오.
14 그리스도교국 내에 있는 성직자들의 성서에 대한 믿음의 결핍은 현저합니다. 1966년 5월 31일 화요일에 「달라스」 「모닝 뉴스」지의 논설 위원 「마이크 엥글맨」은 그 신문에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읍니다. 『연합 장로교 내에 장로교 평신도 위원회라는 새로운 조직이 있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전 미국 신교 평신도들의 근본적 염려가 놓여 있다. 즉 성서는 충분히 강조되고 있는가? 현재 설교자들이 사회 문제 혹은 정치에 대하여 설교를 너무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는 하지 않는가 하는 것 등이다. 어느 저명한 「달라스」 장노교 평신도는 최근에 이렇게 말하였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대단히 잘못 알고 있으며, 정신이 대단히 틀어져 있고 자유적이고 인간 본위의 정신이 대단히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신도들에게 더 가치가 없어진다.」』 그 기사에서 그는 계속 이렇게 논술하였읍니다. 『오늘날 현대 사람들은 성서를 분리시켜 「히브리어 성경」이나 「희랍어 성경」에서 자기들이 버리고 싶은 것을 버린다.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맞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덕률이나 법도 뜯어 맞출 것이다.』
15-17. (ㄱ) 교직자들은 도덕적인 행실과 부도덕한 행실에 대하여 어떠한 극단적인 견해까지 이르렀읍니까? (ㄴ)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어떠한 지침이 되는 원칙들을 말하였읍니까?
15 이 기사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저명한 성직자들은 성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신화라고 생각하며 도덕적 행실에 대한 성서의 도덕적 계율을 구식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믿음이 점차 약해져서 「그리스도의 연합교회」 목사 「존 더블류 · 우우드」같은 사람과 동의할 만큼 될 것입니까? 그 교회는 회중 교회, 복음 교회, 개혁 교회의 조합에 의하여 미국에서 형성된 단체입니다. 그 목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동성애는 신성한 경지에 이르러 이성간의 성적 행위와 같이 도덕적으로 순결하게 될 것이다. 동성인 두 사람이 결혼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한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인데 그에 대하여 나는 「합당하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1963년 6월 15일자 「터론토」 「스타」) 물론 이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존 더블류 · 우우드」목사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읍니다. 「런던」발 연합 통신은 『성직자, 동성애 합법화를 요청』이라는 표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읍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수요일 영국 상원 의원들과 함께 성인 남자들간에 있는 동성애 행위의 합법화를 역설하였다.』
16 물론 이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들의 율법서에 사람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합법화시키면, 설사 그것이 하나님의 도덕률에 배치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대주교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 . . . 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 전 6:9-11; 로마 1:24-32; 레위 18:22)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르십시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계시 18:4.
17 5월 11일 「브리티쉬 콜럼비아, 벤쿠버」발 연합 통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읍니다. 『성공회 감독은 결혼 밖의 성교가 부도덕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였다. 영국 「데본 크레디톤」의 감독 「윌프레드 에이 · 웨스톨」은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자들 상호간에는 그러한 환경이 일어날 수 있다고 회견하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는 혼란을 묵인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단순히 처녀 총각이 결혼 전 성교를 하였다고 하여 그들이 결혼에 합당치 않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사도 「바울」의 말과는 일치하지 않읍니다. 『음란하는 자나 . . . 간음하는 자나 . .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바울」은 시종 일관 그리스도인들에게 『음행을 피하라.』고 권고하였읍니다.—고린도 전 6:18.
18. 우리가 올바른 생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 우리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까?
18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로부터 이탈시킨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읍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아버지의 뜻을 알려준 것입니다. 우주의 지존하신 통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따라야 할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십니다. 그는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사람에게 따라야 할 정확한 도덕률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그들이 처한 범죄 상태를 보십시오.
19, 20. 「이사야」시대가 예수 시대 및 우리 시대와 어떻게 비슷합니까?
19 오늘날의 상태는 예언자 「이사야」때의 상태와 매우 유사합니다. 「이사야」는 활기있고 충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꼬?』하고 물으셨을때에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기의 충성을 보이고자 하였읍니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사야 6:8, 9) 「이사야」는 그 백성들에게 전도하고 꾸준히 나아감으로써 『이 백성』이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하였읍니다. 그들은 귀로 듣고자 하지 않았읍니다. 그 백성들은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백성들은 억지를 써서 안들으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교란하는 소식을 원치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눈을 감았고 귀를 닫아 버렸읍니다.
20 예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읍니다. 「유대」 나라는 범죄 국가가 되어 버렸읍니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을 잊어버렸읍니다. 침례자 「요한」은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노력하였읍니다. 그도 얼마의 성과는 보았으며,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열어 진리를 넣어 주셨읍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에게 참된 생명에 대하여 더많이 말하면 말할수록 그들은 눈을 감고 더욱 듣지 않으려는 것같았읍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줄 때에는 많은 군중이 예수를 따랐읍니다. 그러나 결국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는 단지 3천명밖에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지 아니했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전도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주셨읍니다.
21. 예수께서는 백성들의 태도가 어떠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태 13:13-15.
22. (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나 예수는 전도를 중단하였읍니까? (ㄴ)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 문전을 방문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22 그렇게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고집센 사람들이었읍니까! 그러나 「이사야」가 전도를 중지하지 않은 것과 같이 예수께서도 중지하지 않으셨읍니다. 이 예언은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읍니다. 현재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도 동일한 입장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귀를 열어 듣는 사람들은 별로 없읍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천국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수십억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서 소수만이 진리와 의에 굶주리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정규적으로 자기들의 문전을 방문하는 것은 자기들이 시간을 내어 들어 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귀찮게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더 많이 말하면 더 할수록, 그들이 성실을 다해야 하지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줄어집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
23.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전도에 얼마나 오랫동안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것입니까?
23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왕국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무반응 상태가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입니까? 그들은 귀로 들으려 하지 않으며,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여졌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제나 동일한 대답을 듣습니다. 곧 재난이 임할 때까지 듣기를 거절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지 않을 것이니 「성읍들은 황폐하고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방문합니다.
24.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합니까?
24 그리스도교국을 이루고 있는 「프로테스탄트」, 「희랍」 정교회, 「가톨릭」 및 소위 그리스도교 조직이라고 하는 기타 모든 조직의 목사, 신부, 감독, 주교들 중 많은 수가, 사실상 대다수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인류를 위한 유일한 소망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대단히 열심히 전파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업에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읍니다. 「희랍」 정교회의 수장인 「크리소스트모스」 대주교가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하여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희랍」정교회는 이 이단 교인들을 제일 원수로 생각한다. . . . 우리는 누차 이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간섭하고 고소하고 검거하도록 당국에 호소하였다.』(「뉴욕」「타임즈」 1966년 8월 22일 월요일) 지도적 입장에 있는 교직자들의 이러한 말과 그리스도교국 여러 종파에서의 성서는 신화라든가 하나님은 죽었다는 말들은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말살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25, 26. (ㄱ) 이 잡지의 독자들에게 무슨 개인적인 질문이 행해집니까? (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관하여 전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였으며,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5 독자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십니까? 여러분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전하는 내용을 들으시겠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눈을 감아 버려서 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성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시겠읍니까? 좌우간 여러분은 어떠한 식의 그리스도인이며, 어떠한 부류의 사람에 속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 상태에 대하여 너무 자기 만족에 젖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만한 시간이 없읍니까? 「바울」은 현 시대와 같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았읍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부지런히 노력하였으나, 더 노력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듣지 않으려 하는 것같았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사도 28:25-27.
26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같이 고침을 받고자 하지 않읍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고침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받고자 하십니까? 만일 그러하시다면, 여호와의 증인들과 함께 여러분의 성서를 연구하십시오.
27.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국의 상태에 대하여 누구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이유는?
27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험악한 상태는 교직자들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기 교인들의 마음을 인간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부터 이탈시켰기 때문에 그들에게 책임이 있읍니다. 많은 종교인들은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를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이제는 사람들로 하나님은 죽었다고 믿게 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성서에 들어 있는 도덕적 행실에 대한 높은 수준을 제거하려고 하며 성서를 무의미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집을 다니면서 성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할 것이 있읍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보려고 하지 않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눈을 감아 버리고 귀는 있어도 듣지 않읍니다.
28. 여호와의 증인들이 왕국의 기쁜 소식을 계속 전파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28 그 점에 대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할 셈입니까? 중지합니까? 활동을 늦춥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들의 눈은 감기지 않았으며, 그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부름을 들었읍니다. 기원 1919년 이후 지금까지 백만 이상이나 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를 좇』았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이 기쁜 소식을 계속 전파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이 사물의 제도의 완전한 종말이 되었을 때에 듣지 않은 『이 백성』들은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확정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10 )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고침받기를 권하여도 그들은 고침받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께 반대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읍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며, 국제연합 조직에 사랑과 애정을 나타냄로써 이 세상을 영속시키려고 합니다.
29. 현재 「사단」 마귀의 목적은 무엇이며, 누가 이 사업에서 그를 돕습니까?
29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온 세상 왕들이 함께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터로 모이도록 돕고 있읍니다. (계시 16:14) 『이 세상 신』인 마귀와 그의 악귀들은 수 많은 인류가 이 세상의 불결한 조직 편에 서는가, 자기가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그들을 다 모았는가 살피고 있읍니다. (계시 16:16) 분명히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소식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완악하게 만들기 때문에 되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성읍들은 황폐하며 거민이 없』을 때에 완전히 멸망될 것입니다. (이사야 6:11)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에서 뛰쳐나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30, 31. (ㄱ) 어느 교직자는 영국에서 수행된 어떤 감정적인 전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ㄴ) 지금은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때입니까?
30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훌륭한 말씀을 그리스도교국 백성들에게 전하는 방법에 있어서 의견이 상호 일치되지 않읍니다. 심지어 고위 교회 간부들도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도 방법이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1966년 9월 28일 수요일 「뉴욕」 「타임즈」지에 이러한 보도가 있었읍니다. 『「캔터베리」, 「빌리 그라함」의 전도를 한탄, 「브리티쉬 콜럼비아, 벤쿠버」 9월 27일 발(AP)—「캔터베리」 대주교 「마이컬 람세이」 박사는 그리스도교회에 좀 시대에 맞는, 그러나 「빌리 그라함」 목사가 행하는 그러한 형식이 아닌 것이 필요하다고 어제 말하였다. 「최근 영국에서 「그라함」의 운동은 약간의 개종자들을 얻었으나 기본적인 영국 종교의 습관에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하였다」고 「람루프」에서 온 비행기에서 내린 후 「람세이」박사는 말하였다. 「이 시련기에 「빌리 그라함」 식의 전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지성적이고 생각깊은 접근이 필요하지 감정의 폭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교회가 구식이냐는 질문에 그 대주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나는 영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구식의 면들을 보았으나 다른 면에서는 씩씩하고 성장하는 면을 보았다. 많은 경우에 인습적인 교회 참석이 저하되었지만, 참석하는 사람들간에는 신념이 더욱 강하다.」』
31 그 대주교가 우리 시대를 『시련기』라고 인정한 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자기의 동료들이 그들의 『감정의 폭발』로 써는 상태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읍니다. 「빌리 그라함」이 「약간의 개종자들을 얻었으나 기본적인 영국 종교의 습관에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하였다」고 그가 말한 점은 흥미있읍니다. 그 대주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영국과 「캐나다」에는 교회에 구식인 점들이 있읍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말은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신조에 근거한 그들의 교리와 이론은 심지어 그리스도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교로부터 가져 온 것입니다. 만일 성서의 어떤 부분을 신화라고 하고, 우리는 현 세대에 적응해야 한다 하는 다른 교직자들의 이론이 종교의 현대적인 면이라면, 성서의 표준은 그러한 교직자들에게는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합니까?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이나, 예수의 대속의 희생이 가치가 없다는 것,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만 배우는데, 뭣하러 교회에 갑니까? 지금은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깨어서 거짓 스승들에게서 뛰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여호와의 참된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부름에 응하라
32.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무슨 도움을 베풉니까?
32 만일 여러분이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진리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것을 연구하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따르기 전에 예수께서 사도들을 얼마 동안 가르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그 들이 말씀을 배운 후에는 예수의 부름에 응하였읍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드셨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하고든지 기쁘게 가정 성서 연구를 마련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하고 있지 않거나 여호와의 증인들과 왕국 회관에 참석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그들과 접촉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서울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제7호 「왙취 타워 협회」로 편지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여러분의 집에서 성서 연구를 사회할 사람들을 마련하겠읍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과 여러분에 대한 하나의 목적을 배울 때입니다.
33, 34.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도 봉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오랫동안 전파하고자 합니까?
33 여호와의 증인들은 짧은 기간만 예수를 따라 봉사하라는 부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들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한 「이사야」와 같이 생각합니다. 그는 짧은 기간만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백성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자기의 여생 동안 계속하여 전도하였읍니다.
34 여호와의 증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단순히 수년간만 섬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랐던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섬기기를 원하며, 그것은 죽기까지 충성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계속 일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그들을 하나님의 회중으로 모아,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고 인류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한 찬양과 존경을 돌릴 수 있게 합니다. 역사상 인간에게 하나님의 전도 봉사자가 되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제공된 적이 없었읍니다. 그것을 붙잡으십시오! 예수께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까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한 사람과 같이 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그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라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하셨읍니다. (누가 9:59-62; 10:1-3) 여러분은 예수를 따라 추수하는 주인의 보냄을 받은 칠십인과 같이 된다면 즐겁지 않겠읍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