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8 8/15 363-366면
  • 죽은 자들에게 장래가 있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죽은 자들에게 장래가 있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믿을 만한 약속
  • 그의 약속을 보강하심
  • 부활을 기다림
  • 성취될 예수의 약속
  •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참다운 희망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 죽은 자가 다시 살게 될 것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 “당신의 오라비는 살아날 것입니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23
  • 유일한 치유책!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6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8/15 363-366면

죽은 자들에게 장래가 있다

당신은 이미 죽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들의 장래는 무엇인가?

때는 1965년 9월 11일, 이 날은 한 젊은이와 그의 십대 동생들인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대단히 슬픈 날이었읍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한 경우가 희귀하거나 생소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본 일이 있고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은 것을 보았읍니다. 아마,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하였을 때 오는 공허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얼마나 활기가 없고 허탈한 느낌입니까! 이것이 바로 이 세 자녀들이 뉴욕 시에 있는 어느 장의사에서 장례식을 거행할 때 고요히 누워 있는 그들의 어머니를 보고 느낀 것이었읍니다.

그러한 경우를 당할 때마다, 누구나 죽은 자들의 장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다시 부활시키실 수 있는가? 그들과 다시 교제하고 그들과 행복한 나날을 다시 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어머니는 생전에, 자녀들에게 그러한 일이 가능함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이제 장례사를 하는 전도인이 성서로써, 죽은 자들이 행복한 장래를 누리리라는 확실한 증거를 들어서 연설하였읍니다. 그 연설은 대단히 위로가 되었으며, 믿음을 강하게 해 주었읍니다!

믿을 만한 약속

그 전도인은, 기원 제1세기에 놀라운 기적으로써 갈릴리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약속을 지적하였읍니다. 기원 31년 봄,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하여 유대 예루살렘에 잠간 들르신 예수께서는 유대인 청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를 살리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기억의 무덤, 신세]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 . 나오리라.” 얼마나 훌륭한 약속입니까!—요한 5:21, 28, 29.

거기 모였던 유대인들에게는 부활(復活)이란 교리가 새로운 사상이 아니었읍니다. 사실상, 당시 유명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읍니다. (사도 23:8) 분명히 이들은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으며, 과거에, 그의 예언자인 엘리야와 엘리사를 사용하시어, 그러한 일을 하셨음을 믿었읍니다. (열왕 상 17:17-24; 열왕 하 4:32-37)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이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기억의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불러내시리라는 예수의 약속을 믿을 만한 건전한 근거가 있읍니까?

비록 그 때까지는 예수께서 아무도 부활시키지 않으신 것이 사실이지만, 얼마 후에 기적을 행하셨읍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아버지의 정하신 때에 수행할 일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갈릴리로 돌아가신 후,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갈릴리 바다의 남서부 수 킬로미터 떨어진, 비옥한 에스드렐론 평야에 위치란 나인이라는 조그만 동네로 가셨읍니다.

그 동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예수와 그 일행은 슬픈 장면을 보게 되었읍니다. 상여 하나가 그 동네로부터 그들에게 나오고 있었읍니다. 죽은 사람은 과부의 외아들이었읍니다. 그 어머니의 극도로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가엾게 여기셨읍니다. 그러나 그로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다음, 그는 관 가까이 가셔서 시체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고 명령하셨읍니다. “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셨읍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기서 예수께서는 죽음을 압도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셨읍니다! 이 기적에 대한 소문은 방방곡곡에 퍼졌읍니다.—누가 7:11-18.

그해 말에, 갈릴리 바다 서북부 해변에서 전도 봉사를 하시던 중,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께 나와서, 자기의 열두 살 난 딸이 중병에 걸렸으니 집으로 와 주십사고 간청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집에 도착하시기 전에 그 여아는 죽었읍니다. 그래도, 예수께서는 그 집에 들어가셨읍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호흡, 신세]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누가 8:40-56.

여기서 두번째로, 예수께서는 그가 “원하는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증명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기억의 무덤으로부터 죽은 자들을 불러내실 것이라는 예수의 약속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읍니다.

그의 약속을 보강하심

그러나 제1세기의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 약속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이, 그것을 믿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약속을 성취시킬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더욱 명백하게 증명하셨읍니다.

그 때는 약 1년이 지난 후로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얼마 전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요단 강 저편, 베리아 지방에서 전도 봉사를 하고 계셨읍니다. 그 때, 그의 사랑하는 친구인 나사로, 즉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베다니로부터 들려왔읍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 그는 그곳에 이틀 더 유하셨읍니다. 그 다음에, 그는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때 나사로는 이미 죽었읍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조그만 동네인 베다니 근교에 도착하였을 때,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읍니다. 제일 먼저, 마르다가 그를 맞으러 나왔읍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소망으로 마르다를 위로하셨읍니다. 마르다는 믿음을 표시하면서,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께 나아와서, 그의 발 아래 엎드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삽나이다” 하고 울먹이었읍니다. 마리아를 따라온 다른 친구들도 울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탄과 탄식으로 충격을 받으셨읍니다. 그는 “그를 어디 두었느냐?”고 물으셨읍니다. 애곡하는 친척들이 “주여 와서 보옵소서”라고 말할 때,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읍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친척과 가족을 죽음이 갈라놓는다는 데 생각이 미쳤을 때, 초인적 능력을 가진 예수께서도 슬퍼하셨읍니다.

그들이 기억의 무덤에 갔을 때, 무덤은 동굴이었으며, 입구를 돌로 막아 놓았읍니다. 예수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하셨읍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고 반대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돌을 옮겨 놓았읍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셨읍니다. 그 다음에 그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읍니다. 성서 기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한 11:1-44.

확실히, 예수는 죽은 자를 일으키실 수 있읍니다! 그의 부활의 약속을 확신할 수 있는 건전한 근거가 있읍니다! 이 영감받은 성서 기록은 얼마나 믿음을 강화해 줍니까! 뉴욕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그 세 아이들은 그러한 말씀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살아 있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뵐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부활을 기다림

마르다가 말한, 마지막 날에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수십 수백억이 됩니다. 그들은 현재 어떠한 상태하에 있읍니까? 그들은 의식을 가지고 고초를 받고 있거나, 천당에서 축복을 누리고 있읍니까? 그러면, 나사로가 무덤 속에 죽어 있던 나흘간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읍니까? 죽은 인류의 상태도 그와 동일합니다.

성서 기록을 보면, 나사로는 그 나흘 동안 다른 곳에서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였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가 인간들의 관심의 대상인 천당에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을 즐겼다면, 그는 분명히 무엇인가 그곳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을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읍니다. 나사로는 그 문제에 관하여 아무런 말도 없읍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천당에서 정말로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면, 그의 친구인 예수께서 그를 갑자기 천당에서 끌어 내려, 이 땅에서 다시 살도록 하신 것은 확실히 몹쓸 짓이 아니었겠읍니까?

나사로가 나흘간의 활동에 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는 무의식이었읍니다. 그의 어떠한 부분이 생존하여 타계(他界)에 가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죽었읍니다. 성서는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설명합니다. (전도 9:5)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사후에 생존하는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명시합니다. 예를 들면, 성서는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말합니다.—에스겔 18:4; 이사야 53:12.

그 세명의 아이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어떤 다른 곳에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며, 죽어 잠자고 있음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어떻게 돌아올 것입니까? 어떠한 몸으로 그들은 언제, 어디로 돌아올 것입니까?

성취될 예수의 약속

예수 자신은 죽으신지 사흘만에, 하나님에 의하여 일으킴을 받으셨읍니다. (사도 2:32; 10:40) 그는 영적 피조물로서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셨읍니다. (베드로 전 3:1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이른 부활” 즉 “첫째 부활”을 받을 자들 중의 첫 열매가 되셨읍니다. (고린도 전 15:20-23; 빌립보 3:11, 신세; 계시 20: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적 영광 가운데서 통치하기 위하여 영적 생명으로 부활하는 부활입니다. (고린도 전 15:43, 44) 그러나, 성서는 하늘의 이 “이른 부활”에 참여할 사람은 단지 144,000명이라고 알려 줍니다. (계시 14:1-3) 그러면 나머지 죽은 인류는 어떠합니까? 언제 어떻게 그들은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까?

마르다가 말한 “마지막 날에 부활”은 무덤으로부터 지상의 생명으로 돌아올 수천 수백만의 인류의 일반 부활입니다. (요한 11:24) 이때, “의인과 악인”이 모두 부활될 것입니다. 이들은 영광스러운 천년 왕국의 날에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사도 24:15; 17:31) 이 천년기는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보통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멸망되고, 악마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감금된 후에 있을 것입니다. (마태 24:3; 계시 16:14-16; 20:1-6) 그때 죽은 자들은 깨끗해진 지구,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된 낙원 상태 하에서 부활을 받을 것입니다.—누가 23:43.

이 부활될 자들은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받을 것이며, 위대한 창조주에 관하여 배우고, 인간 완전성으로 자라갈 충분한 기회를 받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죽을 때와 동일한 요소를 가진, 엄밀하게 동일한 몸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은 동일인(人)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수억만명이 되는 개개인에게 그 개인의 선천적 특성과 성품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일생 동안 받은 무수한 영향의 결과로 생긴 후천적 특성과 성품까지도 그대로 생산해 내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오가 없이 정확하게, 그 신체 내에 동일한 개성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나 친척은 그 사람을 볼 때, 그가 그들이 사별한 사랑하는 자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재회할 때는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때가 되겠읍니까! 다행히도 예수의 약속은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 5:28, 29.

이 말씀으로 보건대, 어떤 사람들의 부활은, 그들이 부활 후 행한 의로운 행실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생명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선언받을 것입니다. 그 반면, 어떤 이들은 부활 후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부활은 결과적으로 유죄 판결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영원히 끊어짐을 당할 것입니다. 부활 후에 추구할 행동에 영향을 끼칠 한 가지 요인은 그가 전생에 추구한 행동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전도 봉사를 용감하게 거절한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갈릴리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 사실을 암시합니다. 즉 부활될 어떤 이들은 부활될 그들보다 심판날에 더 견디기가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10:15; 11:20-24.

오늘날은 하나님의 의로운 원칙에 순응하는 것이 특별히 더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의 전쟁의 집행자로서 나타나실 때에 다음과 같이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 . .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 후 1:7-9.

그렇습니다, 인류는 조속히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집행을 직면하고 있읍니다! 이 사물의 제도와 함께 멸망당한 자들은 부활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행동하십시오! 하나님께 관하여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죽은 자로부터 돌아오는 것을 영접할 수 있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