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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교국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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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2/1 63-66면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교국

유럽의 많은 종교 건물 안에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그들 주위에 여러 가지 장식물, 정교한 조각품, 벽과 천정에 장식되어 있는 벽화 등 ‘유럽’ ‘바로크’ 건축 시대의 유물들을 볼 것이다. 관찰력이 강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보고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자 할 것이다. 그 중에도 사람들을 궁금하게 할만한 한 가지 기호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흔히 장식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나 중요한 분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이상한 글자이다. 왕왕 그 네 글자는 삼각형 틀 안에 들어 있고 찬란한 햇살의 중앙에 들어 있다. 그것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되어 있다. 교회 예배에서는 언급조차도 없는 이 신비한 기호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전에 보면 그에 대한 단어가 있는데 희랍어로 “네 글자”라는 뜻의 단어로 “테트라그램마톤”이라고 한다. 그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YHWH 혹은 JHVH로 음역되는 ‘히브리’어 네 글자로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데, 목사들이 거의 말조차 않는다는 것은 약간 이상하지 않는가?

혹시 당신의 교회에도

많은 교회나 사원들, 특히 16 혹은 17세기, 더러는 그 이전에 건축된 건물에 이 하나님의 이름이 ‘테트라그램마톤’의 형태로 나온다. 아마 그것이 당신의 교회에도 있을지 모른다. 자세히 살펴서 있는가 보라.

예로서, 독일 ‘스타인하후센’에 있는 교회 천정 벽화를 보면 천사들과 구름들을 묘사하였는데, 그 중앙에는 그 네 글자가 삼각형 틀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프랑키시 스위처랜드·고스바인스타인’에 있는 ‘가톨릭’ 교회당 제단 위에 그 동일한 글자가 금으로 입힌 햇살 가운데 나타나 있다. 그 외에 독일에서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이름이 나와 있는 곳으로는, ‘옷트보이렌’ 교회당, ‘민스테르탈 트루드페르트’ 교구 교회당, ‘오베르팔스 빌세크’ ‘가톨릭’ 교회당, ‘알고이 이스니’ ‘센트 게오르게’에 있는 수도원 교회당, ‘알고이 로이키르치’ 근처의 ‘세일’ 궁전 교회당, ‘알고이’ ‘켐텐’에 있는 ‘로렌스’ 교회당 등이다.

이들 교회 건물을 지을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처럼 중요한 자리에 둘만큼 그 이름이 중요하였는데, 왜 지금은 그 ‘히브리’어 네 글자를 교인들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가? 사실 교역자들이 고집 세게도 그 이름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신학자들이 그 이름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라도 있는가? 그들이 이것을 피하려 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고대 ‘히브리’어로 발음되었던 이 이름의 모음을 현재 알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한 주장은 결코 건전한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름들 즉 ‘아브라함’, ‘여호수아’, ‘멜기세덱’ 등의 이름도 빼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름들이 나오지 않는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가?

‘네델란드’ 교역자 ‘헬무트 로신’은 하나님의 이름이 원래의 성경에 7,000번 이상 나오기 때문에 교회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인정하였다. 이 대변인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이 거룩한 이름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든지, 혹은 단지 역사적 관심거리의 문제로 취급해 버리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지난 시대의 어떤 교역자들은 그것을 신중하게 여겼음이 분명하다. 독일 ‘노르들링겐’ 교회당의 ‘도움’ 안에 들어가면, 이 이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인다. ‘보덴제’ 근처 ‘살렘’에 있는 다른 교회당 천정에는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 곁에 있는 ‘모세’의 그림이 있는데, ‘테트라그램마톤’이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로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쇤탈’의 수도원 교회당, ‘스투트가르트’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발덴부르그’에 있는 어느 교회당, ‘바바리아·켐나트 바이로이트’에 있는 ‘스파인샤르트’ 수도원, ‘퓌르스테나우’에 있는 전도 교회 등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스트라스부르그’ 대성당 벽 시계 왼쪽에 둥근 원이 있고 그 안에 세 단어가 들어 있는데, ‘테트라그램마톤’과 희랍어와 ‘라틴’어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차례로 기록해 놓았다. 독일에만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본고장에도 하나님의 이름 네 글자가 나오는 예를 볼 수 있다. ‘바레세’에 있는 ‘센트 빅토르’ 대성당 전면 정문 위에 그 이름이 두드러지게 나와 있다. 심지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도 그 이름이 최소 두번 나온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인들이 이 하나님의 이름, 교회 장식에 그처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이 이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것이라고 기대되지 않는가? 그러나 ‘스페인 톨레도’에 있는 사원을 방문한 한 사람의 경험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가 ‘엘그레코’는 이 교회당의 유명한 벽화에 ‘히브리’어 네 글자를 포함시켰다. ‘바르셀로나’ 대학 교수인 안내자는 방문객에게 이 네 글자가 ‘라틴’어 암호 문자로 “‘마리아’께 영광이 있을지어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높이고 있는가?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국은 예배시에 성서 시편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교인들은 그들의 공식 찬송가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인가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인가 종종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편의 원본에는 그 책 전체를 통하여 ‘히브리’어 네 글자 곧 하나님의 이름이 성서에 다른 어느 책에보다 더 많이 나온다. 시편에 강조되어 있는 주제는 시편 34:3에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라는 말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숭배자들은 이름 없는 “주”에 대하여만 찬송가를 부른다.

교역자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대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을 방침으로 삼고 있다. 사실, 신학자 ‘요한 디. 미켈리스’는 18세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그 번역판에 “여호와”라는 단어를 많이 넣었는데 그의 “친구들이 이상한 단어를 전혀 넣지 말도록 고집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그 “친구들”이 누구인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번역자로서의 진실성 때문에 ‘아브라함’, ‘이삭’, ‘여호수아’ 등의 고유 명사를 넣은 것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고유 명사도 넣지 않을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 동안 종교 건물의 개수(改修)도 있었지만, 그리스도교국 신학생 들의 세뇌(洗腦)만큼이나 빠르지는 못하였다. ‘프랑스’의 ‘그레노블’ 사원에서도 비록 거꾸로 되어 있기는 해도 네 글자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또한 ‘스위스’에도 ‘쉬비스’ 주 예수회 교회당 천정 높은 곳에 나와 있다. 그리고 ‘스위스’ ‘올텐’에 있는 ‘센트 마르틴’ 교회당에는 보통 ‘테트라그램마톤’이 들어 있는 탁월한 위치에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그대로 써 넣었다.

교회에서 “여호와라 이름하신”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이 감소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 83:18) 예를 들면, 영국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스페인’의 무적 함대로부터 구출된 것을 여호와의 도움이라고 하였다. 그의 기념 ‘메달’에 “יהוה(‘하나님’이나 ‘주’가 아님)가 그의 바람을 불어 그들이 흩어 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제임스’ 왕의 지휘 아래 흠정역 성서를 번역한 고위 교역자들은 미신적 습관을 따라 ‘히브리’어 ‘테트라그램마톤’이 있는 곳에 거의 모두 일률적으로 “주” 혹은 “하나님”이란 단어를 대신 넣었다.

하지만, 영국의 ‘와이트’ 섬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천정의 중요한 곳에 ‘테트라그램마톤’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왕성(王城) ‘에딘버러’에도 성 ‘마리아’ 사원 성가대실 입구 위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1614년에 기록된 그대로 나타나 있다. 또한 ‘플리마우스’ 도시 군인들의 제복에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잠언 18:10)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창조주의 이름인 이 ‘히브리’어 네 글자를 지닌 데 대하여 예외가 아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 ‘크리스챤’ 4세(1588-1648)도 공적으로 여호와를 인정한 그리스도교국의 군주였다. 그는 1642년에 완성한 ‘쾨브마게르가데’에 있는 ‘코펜하겐’의 원탑(圓塔)에 상징화 문장(紋章)을 새기도록 하였는데, 그 글을 번역하면, “여호와여, 왕관을 쓴 크리스챤 4세의 마음에 참된 가르침과 의의 지도가 있어 주옵소서”라고 될 것이다. ‘덴마크’에서 ‘테트라그램마톤’을 뛰어나게 사용한 다른 곳으로는, ‘보른흠’에 있는 ‘센트 폴’ 교회당 안의 제단 위 ‘텐더’와 ‘뫼겔텐더’에 있는 교회 안, ‘코펜하겐’에 있는 조선소(造船所) 교회당의 박풍창(牔風窓) 등이다.

‘크리스챤’ 왕은 또한 ‘힐레뢰드·프레데릭스보르그’ 성(城) 강당의 천정 중요한 곳에 창조주의 ‘히브리’어 이름을 기록하였다. 또한 1644년에 발행한 그의 동전에는 “יהוה Justus Judex” 즉 “여호와, 의로운 재판관”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스웨덴 헬싱보르그’의 성 ‘마리아’ 교회당 안 제단 앞에 ‘테트라그램마톤’이 나타나 있다. ‘핀란드’에는 ‘헬싱키’에 있는 ‘센트 찰스’ 교회당 서편 창문 위와, ‘쿠오피오’ 사원, 동‘보드니아카우하조기’에 있는 새 교회, ‘로지’의 구 교회 및 북쪽으로 ‘오울루’ 사원 등이 있다.

‘테트라그램마톤’은 ‘바로크’ 시대의 종교 장식의 하나로서 대양을 넘어 ‘아메리카’에까지 건너갔다. ‘뉴욕’ 시 ‘트리니티’ 교구 ‘센트 폴’ 교회당은 1776년에 완공되었는데, 그 교회당 제단 바로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 그것은 또한 제단 위 중앙부에 태양 광선을 묘사한 금으로 입힌 목조 장식 벽판에 들어 있다. 또한 ‘월스트리트’의 삼위일체 교회 제단 위 색유리 창문에도 들어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도교국의 대표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 버리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로마 10:13; 요엘 2:32) 그러나 현대 교역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 어느 ‘캐나다’ 목사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붙이는 이름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라’라고 하고, 혹은 심지어 북‘아메리카’ ‘인디안’이 부르는 식으로 ‘마니토우’라고 부른다고 하여 그들의 기도를 안들어 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붙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이름이라고 정하신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이사야 42:8.

신비는 계속된다

이 거룩한 이름에 관하여 침묵을 지킨다는 방침이 그리스도교국 전역에 흐르고 있다. 교회 장식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 네 글자의 의미는 많은 교인들에게 아직도 신비로 남아 있다. 아마 그들은 그것을 그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신비로 생각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스페인 팔라프루겔 게로나’ 교회당, ‘룩셈부르그 디페르당게’와 ‘두델랑게’에 있는 교회당,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센트 찰스’의 대사원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지만 자기들의 기도문과 그들의 교회 벽에 있는 그 기호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물론, 현대 교역자들은 그들의 종교 예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금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에큐메니칼’ 시대 곧 무엇을 믿는가 보다는 서로 다른 것을 믿는 종교인들이 위선적인 연합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서 원칙을 얼마나 많이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를 강조하는 시대이다. 성서를 버린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성서의 하나님은 너무 완고하고, 너무 엄격하며, 거짓과 위선과 도덕적 타락을 너무나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 곧 자기 숭배자들에게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다.—나훔 1:2.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과 번역자들은 현대 성서를 발행할 때에 ‘테트라그램마톤’ 혹은 좀더 이해하기 쉬운 ‘여호와’ 혹은 ‘야웨’를 빼버리고 중성같이 들리는 “주”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성서에서 여러 가지 칭호로 부르기도 하지만, 참 하나님에게 다른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 성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단 하나의 이름, 자신이 친히 선포하시고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될 그 이름만을 알려 주고 있다.—출애굽 34:5-7.

그리스도교국의 실패

그리스도교국이 하나님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 조직이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과거 한 때에 그 거룩한 이름을 높이 존중하였다는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교역자들은 그 이름을 그들의 공식 예배에서 축출시켜 버렸다. 그들은 그 이름을 ‘여호와’, ‘야웨’, ‘야브’ 등 그의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만 트집을 잡다가 결국은 그 이름을 완전히 버리고 모호한 칭호인 “주”로 대치시켜 버렸다.

그러나 교회측의 이러한 실패는 그럭저럭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말라기 1:11)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자기의 증인을 세우시고 자기의 이름과 명성을 온 땅에 선포하도록 하셨다. 이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책임을 온전히 인식하고 최고 증인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전도하시는 동안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자기 제자들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요한 17:26) 그들은 또한 지존하신 하나님께 헌신한 종들로서 참 하나님의 이름과, 인간과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웅대한 목적을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64면 삽화]

‘이탈리 바레세’에 있는 ‘센트 빅토르’ 교회당 전면에 나오는 ‘테트라그램마톤’

[65면 삽화]

‘스위스’ ‘올텐’에 있는 ‘센트 마르틴’ 교회당 천정에 나오는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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