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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문학적 계산과 역사 연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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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6/1 257-260면

천문학적 계산과 역사 연대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성서 연대기보다 자기네가 산출한 연대를 더 좋아한다. 그들은 그러한 연대가 고대의 천문학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문학 기록 중 어떤 것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토판이다. 한 역사가는 심지어 이렇게 장담하기도 하였다. “천문학적 확증은, 단순히 사건의 순서만 나열해 놓은 상대적 연대를 우리의 현대 역법에 연관시킨 절대적 연대로 변경시킬 수 있다.”1

이러한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물론 창조주께서는 지상의 인간이 천체를 보고 시간 계산을 하도록 하셨다. 창세기 1:14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고 하셨다. 그러나 고대의 천문학 자료를 역사 연대와 연결시키는 데는 계산면에서나 해석면에서 착오를 일으키기 쉬운 몇 가지 난점들이 있다.

언듯 생각하면, 고대 설형문자 토판에 어느 특정한 사건이 일식이나 월식과 동시에 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면 그 사건의 연대를 간단히 계산할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부분식과 개기식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어느 것이었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브리타니까 백과 사전」에 의하면, “한 도시나 읍에서는 50년에 평균 월식 40회 부분 일식 20회를 겪지만 개기 일식은 400년만에 한 번씩만 볼 수 있다.”2 그러므로 일식이나 월식에 따라 역사 연대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의 개기 일식이라고 분명히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란의 여지가 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대 기록 가운데 그처럼 세밀하고 정확한 설명은 희귀하다.

연결상의 미비점

주어진 일식이나 월식이 보였던 지역의 범위에 대하여도 불확실한 점이 있다. 지구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바다의 조류가 얕은 곳의 해저와 접촉할 때 지구의 자전을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 어느 과학 서적을 보면, “수명의 과학자들은 조류가 고대에 기록된 일식이나 월식의 일자를 점차적으로 늦게 하는 효과를 낸다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하나의 일식이나 월식은 지구상의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더구나 수백(수천)년 전에 일어난 일(월)식의 가시(可視) 지역을 현재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계산은 고대의 기록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월)식을 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지역보다 수백 ‘킬로미터’ 동쪽 지역에서 관찰되었던 것 같다.”3

이러한 연대 산출 방법이 정확치 못함을 보이는 한 가지 예가 있다. 역사가들이 ‘앗시리아’ 연대를 성서 연대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사용하는 한 가지 일식이 있다. 이 일식은 ‘앗시리아’ [저명 인사들의] 인명록a에 기록되어 있는데, ‘앗수르단’ 3세 제9년 3월(일년이 봄부터 시작)에 있었다고 하였다. 현대 역사가들은 그것이 기원전 763년 6월 15일에 있었던 일식이라고 단정한다.4 그 인명록에서 90년(혹은 90개의 이름, 이름 하나가 일년이라고 생각하므로)을 소급하면 ‘살만에셀’ 제6년의 ‘칼카르’ 전쟁 연대인 기원전 853년에 이른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다른 ‘살만에셀’ 왕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앗시리아’에 대한 그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그 12년 후(‘살만에셀’ 18년)에 ‘이스라엘’의 ‘예후’ 왕이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5 이로써 그들은 기원전 853년이 ‘아합’의 말년이고 기원전 841년이 ‘예후’ 통치의 원년이라고 결론짓는다.6

이러한 계산은 어느 정도 믿을 만한가? 그 인명록에서 그 일식이 부분식이었는지 개기식이었는지를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기원전 763년의 것이었다고 보증할 수는 없다. 사실 어떤 학자들은 기원전 809년의 일식이었다고 한다. 그 해에 일식이 있었으며, ‘앗시리아’에서도 부분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근거 자료로, 기원전 817, 857년 등의 해에도 부분식이 있었으며, 모두 ‘앗시리아’에서 볼 수 있었다.7 그럼에도 역사가들은 기원전 763년의 일식이었다는 결론을 변경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앗시리아’ 역사에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역사는 이미 상당한 혼란을 면치 못하고 있다.b

기원전 853년에 ‘칼카르’ 전투에 ‘아합’ 왕이 참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성서는 이 사실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에 대한 ‘앗시리아’ 기록의 번역도 다분히 추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서 연대기에 보면 ‘아합’이 기원전 919년 경에 죽었고 ‘예후’의 통치가 기원전 904년 경에 시작되었다. ‘살만에셀’이 ‘예후’를 언급한 것이 반드시 그의 통치 원년을 말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예후’ 통치의 후년(後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앗시리아’ 역사가들은 자기네 전투 연대를 수의(隨意) 조작하고, 심지어는 오래 전에 죽은 왕으로부터도 조공을 받은 양 조작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자료들을 순서적으로 연결하는 데 약점이 심히 많다. 심지어는 ‘앗시리아’ 연대와 성서 연대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크게 의존하고 있는 천문학적 자료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월식

‘톨레미’의 정전 가운데 나오고 설형 문자 기록에서 옮겨 쓴 것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월식의 예들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 왕들의 연대를 추정하는 자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설사 ‘톨레미’가 과거 어느 날의 월식을 정확하게 계산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은 병기해 놓은 역사적 사건들이 정확하다는 보증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어느 왕들의 통치 때에 어느 월식이 있었다고 서로 연관시켜 놓은 것은 사실에 기초한 기술이 아닐 수도 있다. 더구나 월식 현상은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증언은 별로 커다란 힘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면, 기원전 621년(4월 22일)의 월식을 ‘톨레미’가 ‘나보폴라살’ 5년에 있었다고 한 월식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20년전 기원전 641년(6월 1일)의 월식을 ‘톨레미’가 말한 월식으로 생각한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나보폴라살’ 통치 제5년과 일치된다. 그리고 기원전 641년의 월식은 개기 월식이었고 621년의 것은 부분 월식이었다.8

아마 월식을 가지고 연대를 계산하는 것이 불확실함을 알리는 가장 좋은 예는 ‘헤롯’의 사망 연대일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퍼스’는 ‘헤롯’이 월식이 지난 조금 후, 유월절 얼마 전에 죽었다고 하였다. 많은 학자들은 ‘헤롯’의 사망 연대로 기원전 4년을 잡으며 그 증거로 그 해 3월 12/13일 저녁에 있었던 월식을 들고 있다. 이러한 계산 때문에 현대의 어떤 연대 학자들은 예수의 탄생을 기원전 5년으로 잡는다.

하지만, ‘더불유. 이. 필머’ 씨는 한 신학 잡지(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1966년 10월)에서 상기 설명의 약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기원전 1년 1월 9일과 12월 29일에 있었던 월식을 들어서 그 두 월식 다 유월절 얼마 전이라고 하는 조건에 합치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기원전 1년 1월 9일의 월식은 개기 월식이었기 때문에 기원전 4년의 부분 월식보다 더 잘 부합된다고 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월식의 증거로만 본다면, ‘헤롯’은 기원전 4년, 혹은 1년 또는 기원 1년에 죽었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후자의 두 연대를 잡는다면, 기원전 2년 가을 곧 성서에서 산출한 예수의 탄생 연대와도 일치한다.

이상으로 보아 월식 그 자체만으로는 연대 추정에 확고 부동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천문학 “일기”

그러나 역사가들이 고대 사건들이나 기간 등의 연대를 추정할 때 모두 일식이나 월식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천문학 “일기”라고 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들 일기에는, 어느 특정한 날 ‘바벨론’에서 달이 뜰 때와 질 때 달의 (어떤 별들이나 성좌들과의 상대적) 위치 및 같은 시각에 어떤 혹성의 위치 등이 표시되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달은 사자 뒷발의 1‘규빗’ 앞에 있었다”는 식이다. 현대 연대학자들은 그러한 성좌 위치는 수천년만에 한번씩 밖에 안온다고 한다. 이러한 일기에 어떤 왕들의 통치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이 ‘톨레미’의 정전과도 일치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한 증거는 논란의 여지 없이 강력한 증거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첫째 ‘바벨론’에서 관측하였을 때에 착오를 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벨론’ 천문학자들은 해나 달의 출몰(出沒) 시에 지평선상에 일어나는 현상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벨론’에는 모래폭풍이 자주 일어나서 지평선이 희미하여 진다. ‘노이게바우엘’ 교수는 ‘톨레미’ 자신도 “[고대 ‘바벨론’으로부터] 믿을 만한 천문 관측 기록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불평하였으며, 그[톨레미]는 본래 관찰하기 대단히 어려운 사항들 곧 별들의 출몰, 위치 등에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 관측은 충분한 능력도 없이 행해진 것이라고 논평하였다”고 말하였다.—The Exact Sciences in Antiquity, 98면.

현존하는 천문학 일기의 증거력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그들이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사실상 현재 알려진 대다수의 자료들은 신 ‘바빌로니아’ 혹은 ‘페르샤’ 제국 당시에 기록된 것이 아니고 기원전 364-312년경 ‘셀류시드’ 시대에 기록된 것이다. 그들이 훨씬 오래 전의 문헌을 복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사시의 착오, 부가 혹은 변경의 가능성 등은 확실히 이들 증거의 가치를 약화시킨다. 사실상 역사가들이 신 ‘바빌로니아’와 ‘페르샤’ 시대의 연대를 완전히 결정할 수 있을 만한 그 당시의 천문학 기록은 없다.

그리고 또한 ‘톨레미’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현존하는 문헌 중의 천문학적 자료와 그것을 현재 번역 및 이해하는 방법 등이 정확하다고 치더라도, 천문학 자료에 병기되어 있는 역사적 자료가 정확하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톨레미’가 단순히 자기의 천문학 자료를 전체 윤곽을 잡아서 배열하기 위하여,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어떤 왕들의 통치 사실을 삽입한 것 같이 ‘셀류시드’ 당시의 다른 복사자들도 그 당시의 “인정된” 연대들을 천문학 문헌에 삽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정된” 연대들이 틀렸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기원전 2세기의 어느 천문학자가 현용 달력으로 기원전 465년이 되는 해에 어떤 천문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기술하였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확증할 만큼 정확한 계산을 하였다면, 그것은 정확함이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부가하여 그 고대 학자가 그 천체 현상이 발생한 해가 ‘크세르크세스’ 21년이었다고 말하였다면, 이 말은 전혀 틀린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천문학 기록의 정확성이 역사 기록의 정확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믿을 만한 연대 계산

이와 반대로 성서 연대의 신뢰성에는 우리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성서 기록의 성격상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솔직담백하고 정직한 점, 각각의 성서책의 내용에 때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는 점, 날, 주일, 달, 년 등 성서 기록 시초부터 사용한 시간 계산 방법들, 정확히 성취되었음이 여러 모로 증명된 연대에 대한 예언들 등등이 신뢰성을 넣어 준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을 볼 때에 수 많은 성서 필자의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한 분이 한 분 계시며 그분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는 분임을 확신할 수 있다.—이사야 46:10.

성서는 오래 전에 벌써 ‘유대’ 땅이 70년 동안 황폐할 것과 그 거민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고생할 것을 예언하지 않았는가? 때가 되자 ‘페르샤’인 정복자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충실한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예언된 정확한 그 때에 ‘예루살렘’에 돌아왔던 것이다.—예레미야 25:11, 12; 다니엘 9:2.

독자 여러분이 열왕기 상 6:1과 누가 3:1, 2절을 읽어 본다면 중요한 역사 연대를 용의주도하게 언급한 점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서는 연구자들이 사건의 정확한 연대를 정확히 꼬집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서 필자 자신들도 그 기록의 정확성이 하나님의 공로라고 하며, 자기들은 단순히 집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이 성서에서 정확한 연대를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기록이야말로 인간 역사가들의 추측이나 추단보다 월등하게 신뢰성이 크기 때문이다.

참조 문헌

1. The Old Testament World, Martin Noth 저 272면.

2. The Encyclopaedia Britannica, 1965년판, 7권, 297면.

3. Time, (1966년), Time-Life Books 발행, 과학총서, 105면.

4. The Encyclopaedia Britannica, 1959년판, 7권, 913면.

5. Ancient Near Eastern Texts, Pritchard 저 277-280면.

6.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E. R. Thiele 저 53면.

7. Oppolzer’s Canon of Eclipses, 도표 17, 19, 21(1962년판).

8. 동서 333, 334면.

[각주]

a 「파수대」 1969년 4월 15일호 186면.

b 이의 증거로 「파수대」 1969년 4월 15일호 185, 186면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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