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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취지를 이해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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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9/1 387-388면

당신은 취지를 이해하는가?

남을 충고하고 시정하는 일은 하나의 기술이다.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노련한 충고자는 입장을 바꿔보며 친절하고 재치있게 말을 선택하며 듣는 이의 감정을 부당하게상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주된 목적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충고의 취지를 틀림없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정받는 자가 잘 듣는 자로서의 기술을 배양했는가에 크게 달려 있다.

충고로부터 온전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합당한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가 그들의 실수에 주의를 이끌기만 하면 화를 발끈 내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들은 건성으로 들어버리며, 들려 주는 말을 이치적으로 생각하려는 일은 더욱이 없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사람의 충고를 유의한다면 좋을 것이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야고보 1:19) 만일 당신이 시정을 받고 있다면,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속히 갖도록 노력하라.

언제 충고를 듣게 되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우선 당신은 당신의 생활에서 시정을 필요로하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아챌 것이다. “잠깐 이야기”하자고 감독자가 당신을 앉히는 일은 매일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충고자는 보통 시정하는 말을 하기에 앞서 얼마의 칭찬의 말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대뜸 의혹을 품고 칭찬을 입에 바른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얼마의 가치있는 제안을 듣게 되겠다고 생각하라. 겸손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분별력의 필요성

그러나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충고의 취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 전부가 아니다. 분별력이 또한 필요하다. 충고자는 아마 오랫 동안 생각한 끝에 이 말을 하는 것이며 단어와 사상을 잘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임을 기억하라. 충고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을지 모르며, 그저 한 두가지 “제안”을 해두고 싶다고 말할지 모른다. 당신은 그 취지를 이해하는가? 그는 또한 지혜롭게 하려고 애쓸 것이며 간접적으로 비유를 든다든지 하여 당신에게 일러 줄지 모른다. 그러므로 표면적인 말 그 자체만 아니라, 감정을 상하거나 당황할까봐 말하지 않고 빼 놓은 배후의 숨은 사상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재치와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어떤 식으로 했겠는가 생각해 봄으로 그의 말속에 함축된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것이다.

실례를 들어 보자. 좋은 예가 사무엘 하 12:1-14에 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남의 아내를 탐하고 그 여자와 성적 관계를 갖고는 그의 남편을 죽임으로 중대한 죄를 범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에게 필요한 시정을 하게 하셨다. ‘나단’은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이 첫마디는, 그리고 분명히 ‘나단’의 어조는 ‘다윗’으로 심각히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단’은 비유를 계속했다. 어떤 행인이 부자를 찾아 왔다. 그러나 부자는 자기의 그 많은 양떼에서가 아니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가난한 ‘이스라엘’의 관습이 그러했듯이 그의 아들들과 함께 자랐고 그에게 딸처럼 된 하나 밖에 없는 암양 새끼를 빼앗아서 식사를 대접했다. 과거에 목자였던 ‘다윗’은 격분하였다.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렇다. ‘다윗’은 격분했다. 그러나 취지를 이해 못했다. 그는 자기가 바로 그 부자이고, ‘우리아’가 가난한 사람이고, ‘밧세바’가 작은 암양 새끼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나단’이 무슨 말을 빼놓았는지 배후를 분별하지 못했다. 따라서 더 이상 그 말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나단’의 다음 말에 ‘다윗’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화내지 않았다. 겸손히 그의 죄를 고백하고 형벌을 감수하였다.

물론 그리스도인 충고자는 알송달송하게 이야기하거나 “빙빙 돌리고 비비 꼬아서” 말해서는 안된다. ‘나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초를 놓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했지만 그것이 불충분했을 때 그는 매우 직접적이었다. 당신의 성서에서 그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라. 그러면 그는 ‘다윗’의 죄를 전혀 과소평가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충고 방법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함축된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며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하여 분별력을 사용하는 한편, 다른 극단에 빠져서 충고자가 의도한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상상력을 사용하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을 도와주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에 대하여 부당하고 옳지 못한 생각을 품게 될지 모른다.

성실한 충고는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같은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 즉 동료에 대하여 선하고 세워주는 모든 것을 믿는다.—고린도 전 13:4-7; 잠언 27:6.

그러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시정을 받을 때 당신이 참으로 취지를 이해하고 있음을 충고자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윗’이 더욱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나단’의 비유를 듣고 ‘아—나하고 ‘우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군?’이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나단’은 그 다음의 직접적인 말을 얼마쯤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스스로 충고하는 일을 하게 그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 본 다음에 여호와의 선고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해한 점을 분명히 말하라. 그러면 당신의 충고자는 제안이 잘 받아들여졌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충고자는 다시 한번, 그것도 더욱 직접적으로 말해야겠다고 느낄지 모르며, 이렇게 되면 쌍방이 불필요하게 기분을 상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누구나 다 실수를 하지만—시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승리는[구원은, 신세] 모사가 많음에 있”기 때문이다. 충고를 주고 받는 방법을 알 때 원만하고 건설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거기에 분노와 감정의 폭발이 전혀 없이 성취감과 격려감, 상호 신뢰감이 있게 된다.—잠언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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