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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술을 의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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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술을 의뢰하지 말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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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12/15 570-573면

복술을 의뢰하지 말라!

누구나 장래 일을 알고 싶어 한다. 일기에 대해서만일지 모른다. “내일 옥수수를 심을 수 있을까?” “다음 주에 풀을 벨 수 있을까?” “한 달 뒤에 있을 명절에 날씨가 어떨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일기 예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는 사람이나 상업과 무역에 있어서 그리고 특히 개인적으로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 영향을 미칠 문제에 관한 국내적 국제적 상황의 장래에 관심이 있다. 허다한 사람들이 미래에 관한 그들의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하여 복술에 의뢰하는 것도 이러한 강렬한 자연적 욕망 때문이다.

영어로 복술(divin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디부스’(divus, “신과 관계함”의 뜻)에서 나온 말이며, 복술로 얻은 지식을 신들이 알려 준 것이라고들 믿는다. 복술이라고 하면 강신술적 신비력의 도움으로 특히 미래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는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것은 마술과는 다르다. 복술은 일반적으로 미래사를 알아 내보기만 하려는 것을 포함하지만 마술은 미래사를 변경, 조절하려고 시도한다.

복술자들은 초자연적 신들이 미래사를 어떤 징조와 전조들을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에게 계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천체현상(별과 혹성과 일식, 월식과 유성들의 위치와 운동), 지구상의 자연력(바람, 폭풍, 불), 동물의 행동(개 짖는 소리, 새가 나르는 모양, 뱀의 움직임), 찻잔에 뜬 차잎 모양 혹은 물에 기름뜨는 모양 혹은 화살이 떨어지는 방향, 동물 희생의 간장과 허파와 내장의 모양, 손금 그리고 죽은 자들의 “영”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징조와 전조가 전달된다고 한다.

복술이 그토록 광범위하기 때문에 복술이란 말은 뒤로 물러가고 복술의 각각의 경우에 특별한 이름이 붙여졌다. ‘로마’인들 간에 유행했던 조복(鳥卜)은 나르는 새로 점치는 것이고, 수상(手相)은 손금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며, 간장을 보고 점치는 것이 ‘헤퍼토스코피’이고, 내장을 보고 점치는 것이 ‘허러스피케이션’이고, 도끼로 점치는 것이 ‘액시노맨시’이며, 화살로 점치는 것이 ‘벨로맨시’이고, 점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래브도맨시’이고, 꿈으로 점치는 것이 ‘오니이로맨시’이고, 죽은 자에게 물어 본다는 것이 ‘네크로맨시’이다. 그 외에도 수정구 투시, 신탁 점이 있고 아마 오늘날 가장 유명하기로는 점성술일 것이다.

역사는 복술이 선하지 않음을 증언한다

복술의 고향은 ‘갈대아’인의 땅인 ‘바빌로니아’이며 여기에서 이러한 복술이 인류의 이주에 따라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창세 11:8, 9) 그 지역의,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의 도서관이 발굴된 지역의 4분의 1에는 하늘과 땅에서 관찰한 기사(奇事)와 일상 생활의 우발적인 불의의 사건을 해석하는데 쓰는 점괘들이 있다고 한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은 복술에 문의하고 나서야 결정한 것이었다. 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 왕이 . . .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 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느니라].”—에스겔 21:21, 22.

징조를 찾으려고 간을 살피는 것은 이 기관이 활력과 감정과 애정의 중심부라는 신앙에 근거하여 있었다. 사람의 피의 6분의 1은 간에 있다. 간의 간엽, 도관, 부속기관, 정맥, 융기, 무늬에 있어서의 변화를 신들이 알려 주는 징조 혹은 전조라고 해석하였다. 흙으로 만든 간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가장 오래 된 것은 ‘바벨론’의 것으로 복술자들이 사용한 표시와 설형 문자 글귀가 있다. 간을 살피는 것이 ‘앗수르’의 점치는 종교에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고대 ‘앗수르’의 제사장들은 바루 즉 “살피는 자” 혹은 “보는 자”라고 불리웠다.

어떤 특수성이 있건 모든 형태의 복술은 성서와 정반대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단호히 그리고 반복하여 ‘이스라엘’에게 이방 나라와 같이 이런 복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명 18:9-13; 레위 19:26, 31.

복술을 꿈꾸는 자들은 그들의 예언의 징조나 전조가 참될찌라도 비난을 받았다. (신명 13:1-5; 예레미야 23:32; 스가랴 10:2) 모든 복술자들은 가차없이 죽여야 된다는 성서의 법령을 볼 때 성서가 복술자를 얼마나 반대하는가 알 수 있다.—레위 20:27.

그러나 이러한 거듭 강조된 계명에도 불구하고 배도자들 즉 ‘엔돌’의 여인과 같은 평민들과 ‘사울’과 ‘므낫세’와 왕후 ‘이세벨’ 등 능력 있는 왕들은 여호와를 업신여겼다. (사무엘 상 28:7, 8; 열왕 하 9:22; 21:1-6; 역대 하 33:1-6) 선한 왕 ‘요시야’는 자기의 통치 시대에 복술을 행하는 자들을 일소하였으나 그 정도로는 ‘유다’ 왕국이 자매 왕국인 ‘이스라엘’의 멸망과 같은 멸망을 면할 수 없었다. (열왕 하 17:12-18; 23:24-27)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랑에서 나온 친절 때문에 먼저 예언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가증한 일들을 경고하게 하셨다. 그 분의 예언자들은 모든 복술의 모국인 ‘바벨론’도 경고하였다.—이사야 3:1-3; 8:19, 20; 47:9-15; 예레미야 27:9; 29:8; 에스겔 13:6-9; 미가 3:6-11.

복술은 예수와 사도들의 지상 전도 기간에도 매우 성행하였었다.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에 있을 때 ‘바예수’라는 박수를 만났는데 사도는 그를 소경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을 때 귀찮게 구는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으며 그 소녀의 점으로 큰 이득을 보던 주인들이 깜짝 놀라게 되었다. (사도 13:6-11; 16:16-19) 그러나 ‘사마리아’의 ‘시몬’과 같은 사람들은 자진하여 마술을 버렸으며, ‘에베소’에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복술 책을 불태웠는데 책값이 은 5만(240만원에 해당)이나 되었다.—사도 8:9-13; 19:19.

복술과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복술로 얻은 지식과는 전혀 다르다. 복술을 행하는 자들로서 복술에 의뢰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악귀들의 세력에 의해서 난폭한 경련을 일으키는 수가 흔히 있다. 그들은 때로 기묘한 음악과 어떤 북으로 광란 상태에 빠진다. “점”이란 말의 희랍어는 “미쳐 날뛰다”를 의미하는 동사 ‘마이네스타이’에서 나온 말로서 입으로 거품을 내고 머리카락은 빗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사람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아폴로’의 여사제의 신탁을 무시한다”는 이방 철학자 ‘셀서스’의 공격에 답하면서 (기원 3세기의) ‘오리겐’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그의 신탁이 가장 찬양을 받은 듯한 ‘아폴로’의 여사제가 ‘카스탈리아’의 동굴 입구에 앉으면 ‘아폴로’의 예언적 영이 그 여자의 음부로 들어갔다 . . . 더구나 그 여예언자로 하여금 어찌할바를 모르는 그러한 광희와 광기의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일부가 아니다 . . . 그리고 ‘아폴로’의 여사제가 그 여자가 예언할 때 제 정신이 아니라면 그 여자의 마음을 온통 암흑으로 채우고 판단력을 암흑으로 흐려놓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쫓아낸 악귀들과 동류가 아니고 무슨 영이겠는가?”—「셀서스 대 오리겐」 제3권 제3, 4장.

여호와의 참다운 종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할 때는 그처럼 신체적으로 심적으로 비정상적인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 (사도 6:15; 베드로 후 1:21)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의무감에서 보수 없이 무료로 말하였다. 그와는 반대로 이방 복술자들은 개인의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서 복술을 사용하였다.

성서 어디를 보아도 어떤 형태의 복술에 대하여도 선의로 말한 곳이 없다. 같은 비난을 하는 귀절에서 많은 경우에 강신술적 행위인 복술을 간음과 음행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열왕 하 9:22; 나훔 3:4; 말라기 3:5; 갈라디아 5:19, 20; 계시 9:21; 21:8; 22:15)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복술이 반역죄와 대등하다. (사무엘 상 15: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과 “선한” 복술의 현시로서 통신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복술의 꿈은 꿈꾸는 자가 간청하였다. 여호와께서 주신 꿈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꿈은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하여 그 꿈이 여호와께서 주신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거나(창세 20:3-7; 사사 7:13-15; 열왕 상 3:5; 마태 1:20; 2:12, 13, 19, 22), 그렇지 않으면 꿈이 신비롭고 은밀하여 복술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다만 여호와의 헌신한 종들만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창세 40:5-19; 41:1-32, 39; 다니엘 2:1-47; 4:1-28.

어떤 문제에 대한 여호와의 뜻을 판단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 것은 인정되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33; 18:18; 레위 16:7-10; 민수 26:55, 56; 여호수아 14:2; 사도 1:26) 아마 제비를 뽑아서 범인 ‘아간’을 폭로하였고, 왕으로 ‘사울’을 선택한 것같다. (여호수아 7:13-19; 사무엘 상 10:20, 21) 대제사장이 지녔으며 재판시에 사용했던 ‘우림’과 ‘둠밈’(출애굽 28:30; 민수 27:21), ‘에봇’을 앞에 놓는 것(사무엘 상 23:9; 30:7), ‘기드온’이 양털 한 뭉치로 이슬을 시험한 것(사사 6:36-40)은 여호와께서 악귀의 복술과 관계없이 인간에게 그 분의 목적을 계시하신 다른 예들이다.

여호와께서 복술자들을 거절하심

여호와의 무한한 능력과 술객들의 극히 제한된 능력은 ‘바로’ 앞에서의 ‘모세’와 ‘아론’의 경우에 극적으로 비교되었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을 때 애굽의 마술사들은 그들의 은밀한 기술로 묘기를 흉내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마술사들의 지팡이들을 삼켜버렸을 때 그들은 납작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술객들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고 개구리들이 땅으로 올라오게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먼지가 변하여 이가 되게 하였을 때 마술사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출애굽 7:8-12, 19-22; 8:5-11, 16-19, 난외주; 9:11.

악인 ‘하만’이 분명히 점성가였던 어떤 사람을 시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여호와의 백성들을 근절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을 정하였다. (에스더 3:7-9) 이러한 방법의 복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잔악한 음모를 실천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행운의 날을 확인하는 이 방법에 호소함으로써 ‘하만’은 ‘페르샤’의 왕들과 귀족들이 항상 점성가들과 상담하지 않고는 결코 어떤 모험적인 일도 하지 않으며 행운의 시간에 만족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였다.”—‘재미슨’의 「주석」 제2권 639면.

악귀적인 조언자들의 말을 듣고 ‘하만’은 즉각 그의 악한 음모를 행동에 옮겼다. 그러나 여호와의 백성들을 구출하시는 그 분의 능력이 다시 나타났고 복술에 의뢰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자기가 준비해 둔 바로 그 기둥에 달려 죽었다.—에스더 9:24, 25.

마술의 힘보다 여호와의 능력이 우월함을 알리는 다른 예로 ‘모압’ 사람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메소포타미아’의 복술자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매수하러 왔던 경우가 있다. (민수 22:7) ‘발람’은 “사술을 쓰”려고 시도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그로 하여금 단지 축복만 말하게 하셨다. 그가 지은 노래 가운데서 ‘발람’은 여호와의 능력에 압도되어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민수기 23, 24장.

복술의 불리한 역사로 비추어 볼 때 이 “마지막 때”에 미래에 관한 조언을 얻기 위하여 복술에 의뢰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욕망이다. 그리고 이 욕망은 숭고하신 창조주를 숭배하고 섬길 때 가장 훌륭히 충족될 수 있다. 결국 여호와께서는 미래에 관한 믿을 수 있는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시다. 그분만이 종말을 처음부터 아신다. (이사야 46:9, 10) 그 뿐 아니라 그분의 전달 통로와 그 분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인자하시게도 인간이 알아 두는 것이 유익한 것은 미리 계시하신다.—아모스 3:7.

그러나 사람들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고 미래를 아시는 유일한 분으로부터 멀어질 때는 그들이 쉽게 강신술적 악귀의 영향력에 희생이 되고 만다. ‘사울’은 그러한 뚜렷한 예가 된다. 그는 처음에 장래사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께 의뢰하였으나 불충실로 인하여 통신이 두절된 후에 하나님의 인도의 대용으로 악귀들을 의뢰하였다. (사무엘 상 28:6, 7; 역대 상 10:13, 14) 결코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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