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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못을 인정할 만큼 대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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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파73 7/15 315-316면

잘못을 인정할 만큼 대범하라

“우리는 모두 종종 많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이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19세기 전에 ‘예루살렘’의 한 저명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말하였다. 그 말을 반박할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반박할 여지가 없다!—야고보 3:2, 새번역.

“실수”는 일종의 “잘못”이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지만 잘못을 했다고 인정하기는 실로 어렵지 않은가! 그것은 자존심에 저촉된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면, 자기를 정당화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잘못을 안했다고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거나, 실수를 인정하거나, 판단을 잘못했음을 인정하려면 사람이 대범해야 한다.

때때로 어린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하여 아버지들에게 근거 있는 불평을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나 토론을 할 때에 아버지는 절대 틀렸다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르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아마 이 아버지는, 자기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절대 잘못 했다거나 틀렸음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어떠한 논리를 펴든간에 그러한 태도는 가정 내에서의 대화와 조화를 장려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러한 그릇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기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녀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 된다. 때때로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만큼 대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마치 무류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세계 최대의 종교 조직의 수뇌들은 오랫 동안 자기들이 무류하다고 주장해왔다. 즉 교리와 도덕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할 때에는 자기들이 전혀 잘못이 없으며, 과거의 교황들도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종교 조직 내에서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인도 ‘인도레’의 ‘로마 가톨릭’ 주교 ‘에프. 시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좋은 믿음에 대해서라도 교회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사도적인 증언을 넘어설 때에는, 교회는 틀림없이, 확실하게 그러한 부가적 견해를 가르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권리가 없다. 사도 자신들도 믿음을 요구할 때에는 증거에 호소하였으며, 자기들이 듣고 본 것에 호소하였다. ··· 교회가 사도들이 증거한 틀림없는 내용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확실성있게 설명할 만한 특권을 받았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하리라는 신성한 약속도 없다. 사도들이 놓은 확실한 기초를 떠나는 그 순간, 교회는 그 시대의 무지와 오류에 빠지게 되며, 경험이 알려주는 바와 같이 그것은 성경 이해면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무류성에 대한 주장은 교회의 가르칠 권위의 신빙성에 대해 심히 악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교회가 새로운 증거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지나치게 억제하며, 교회를 과거의 잘못의 희생물로 만든다.”—「콤몬웰」지 1970년 9월 25일호, 480, 481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취한 입장은 교황들이 취한 입장과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교리와 숭배에 대한 잘못을 금방 인정한다. 얼마 동안은 그들도 그리스도교국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다가 그것이 이교에서 기원하였음을 알고 중단하였다. 그리고 또한 로마서 13:1이 세상 정부들에게 무조건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증인들은 거기서 언급하고 있는 ‘높은 세력’ 혹은 “위에 있는 권세”를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문맥을 좀더 면밀히 검토한 결과 로마서 13:1이 사실 이 세상 정부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성귀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한 사도행전 5:29과 같은 다른 성귀와 비교함으로써 로마서 13:1에 언급된 “복종”은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상대적 복종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정부들이 하나님의 법에 배치되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한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정부들이 하나님의 법에 배치되는 것을 요구할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높은 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사도 4:19, 20.

이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이 거짓 예언자라는 낙인을 찍는 결과가 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거짓 예언자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행전에 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믿음에 있어서 잘못을 하여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던 예가 한번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칭찬을 받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은,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된다는 성서 원칙과 일치된다.—잠언 4:18.

그러한 본을 볼 때에 개인들이 잘못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계속 배운다. 우리는 지식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거듭거듭 잘못을 저지른다. 또한 우리는 감정에 좌우되어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며, 편견이나 허영심 때문에 말이나 행동의 결과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행동을 취하는 수도 있다.—잠언 5:1, 2.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다. 그것은 깨끗한 양심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변호를 하려고 한다거나 “완전한 사람은 없어” 하는 식의 말로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해준다.

잘못을 인정할 만큼 대범한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기도 하다. 자기 아버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아이들의 예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 곧 벗들이나, 조직에 있어서의 상급자들이나 하급자들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면, 그것이 우리의 정신에도 인상을 깊게 하여 그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수치감이 관련되기 때문에도 다시는 저지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범하라. 잘못을 인정할 만큼 대범하라. 기꺼이, “아, 그것이 맞습니다. 내가 잘못 했읍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라.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316면 삽입 성구]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서 1: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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